2023. 1. 15. 주일예배설교
하박국 2장 1~4절
기도와 묵상의 샘플-하박국
(온 우주를 품은 당신)
■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을 목표로 하거나, 좀 더 나은 개선책을 찾아보려 할 때, 이용하는 것이 ‘벤치마킹’(benchmarking)입니다. 긍정적 결과든 부정적 결과든 누군가의 앞선 경험이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선배들이 경험했던 것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사실상 당연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선배들 중에는 성경이 소개하는 선배들이 으뜸입니다. 성경 이외의 선배들은 나중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나중이 먼저고, 먼저가 나중이 되는 괴이한 일이 빈번합니다. 혹시 예수님께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말씀을 오해하고 행동하는 것일까 해서 걱정입니다. 여하튼 보다 분명하고, 보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성경이 소개하는 믿음의 선배들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박국 선배를 벤치마킹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하박국인가?’라고 질문하실 것 같습니다. ‘그것도 왜 2장의 하박국인가?’라고 질문을 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죠?☺
질문과 지적이 당연합니다. 2장은 오늘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분위기와는 다른 분위기로 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주제는 <기도와 묵상>입니다. 그런데 하박국 2장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불만 많아 시비하고 있는 하박국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질문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이러한 본문을 기도와 묵상의 샘플로 선정했을까요? 사실 성경에는 이 본문 말고도 기도와 묵상의 샘플이 여럿 있는데 말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으로 들어가서 설명하죠.
■ 하박국은 일종의 하박국의 ‘회심 신앙고백서’입니다. 불만과 의심이 가득 담긴 질문을 하던 태도에서, 감사와 확신에 찬 신앙고백으로 그 태도를 바꾼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하박국입니다.
그러므로 2장은 그 회심 과정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시비의 장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는 은혜의 장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 본문을 선정한 것에 대한 시비에서 자유로워진 것이죠?☺
하박국 1장은 하박국의 호소와 하나님의 응답, 그리고 하박국의 재호소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은 하박국의 재호소에 따른 하나님의 응답을 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응답을 기다리는 하박국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2장 1절입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바로 이 모습이 기도와 묵상의 이상적인 모델입니다. 기도와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질문하고 요청했습니다. 왜 자신의 민족이 갈대아(바벨론)에게 짓밟히고 아파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물론 자신의 민족이 악한 것은 알지만, 하필이면 이스라엘보다 더 악한 갈대아에게 짓밟혀야 하느냐는 항변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이해하기 어려우니 이해시켜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바로 이 기도를 도시의 가장 높은 망루에 올라가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시고, 어떻게 대답하실지를 듣기 위해 그 망루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1절입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기도와 묵상이 바로 이런 것이고, 이런 태도여야 합니다. 이렇게 질문하고 요청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궁금함을 질문하고, 그 뜻을 따르도록 인도해주십사 하는 요청이 묵상입니다.
그런데 기도와 묵상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더욱이 이렇게 끝나서는 결코 안 됩니다. 내가 하고픈 말만 하고 끝내는 것은 대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와 묵상에 있어 무척 중요한 것이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다리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바라보는 것이 별개의 행동은 아닙니다. 기다려 보는 것입니다. 혹시 기다려 본다는 말을 마치 팔짱 끼고 기다리는 것 같은 어감으로 읽지 않길 바랍니다.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지,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의 기다려 본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히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대답을 듣지 못할 때,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안다면, 팔짱 끼고 말씀을 듣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모스 8장 11절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대답을 듣지 못할 때 무슨 일이 생깁니까? 방황하고 갈증이 생깁니다. 인생의 향방을 잡지 못하고 헤매게 됩니다. 결국 이러다 죽음으로 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대답을 듣지 않고 살겠다고 하는 것은 교만 중에도 최상의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들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다면 목숨 걸고 들으셔야 합니다. 살고 싶다면 들으셔야 합니다. 이것이 4절의 의미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겸손입니다. 교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교만이 들어 온 순간 그 믿음은 더 이상 믿음이 아닙니다. 신념이고, 죄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더 이상 그에게는 그 어떤 말씀도, 그 어떤 대답도 안 하십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겸손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2절과 3절이 이것의 설명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2절에서는 묵시, 즉 하나님의 말씀을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인가요? 아무리 다급하고 황당한 경우에도 말씀은 놓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반드시 말씀을 붙잡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믿음은 곧 기다림은 같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이므로 반드시 정한 때가 있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정한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계획’을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참으로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 하나님의 말씀과 대답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에게 반드시 말씀하시고 대답하십니다. 그리고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정한 그 시간, 정한 그 장소에서 반드시 이루십니다. 이것을 믿고 기다리고 바라보는 것이 기도고 묵상입니다.
이처럼 기도와 묵상에는 어마어마한 약속과 성취가 있습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묵상은 우주를 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묵상을 하는 여러분은 작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주입니다.
■ 이제 우리는 기도와 묵상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고, 얼마만큼의 은혜를 갖고 있는지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기도와 묵상의 삶을 살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의미 없습니다. 반드시 기도와 묵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단지 이익이 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세상이 혼란스럽습니다. 더불어 우리의 삶도 혼란스럽습니다. 지혜는 안 보이고, 존경할만한 사람도 안 보입니다. 말과 지식은 많은데, 본받을 말과 지식이 부족합니다. 지도자는 많은데 따를 수 있는 지도자는 부족합니다. 참으로 세상이 어둡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기도와 묵상은 더욱 절실합니다. 주님을 만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혼란스럽고 어두운 세상의 생명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영혼의 만찬장이요, 온 우주인 여기 기도와 묵상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영혼과 삶이 새롭게 시작됐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