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11월 3일 금요일 흐림
‘어라, 이 게 비냐 ? 뭐냐 ?’
버섯밭으로 나가는데, 얼굴을 스치는 촉촉한 습기가 느껴진다. ‘비가 오나 ?’ 앞산을 둘러 싼 안개는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말 하는 것 같은데....
“오늘 비 온다고 했는디, 오 미리랴. 오나 마나여, 어여 밥 먹고 은행 끝내러 같이 가” “오늘은 저 혼자 갈래요. 가을 비 맞으면 감기 드셔요. ”
“오늘 대전도 간대 매. 언제 할겨. 그것 만여. 매실두 걸러야지. 할 일이 한 두 가진감.” 하긴 밀린 일이 늘어서 있다. 한 가지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
아침부터 창고 공사 마무리를 하러 온 사람들을 지켜보느라 시간을 보낸 나를 책망하신다.
“어머니, 오늘은 진짜 안 돼요. 비 맞고 감기 드시면 큰 일 나요”
“어여 가. 이따 오후에 마늘밭에 퇴비나 날러줘” “그 건 걱정 마시고요”
앞장서시는 장모님을 말릴 도리가 없네. 은행을 줍는 중에 진짜 비가 내린다.
“어머니 빨리 집에 가요. 안 되겠어요” “괜찮여. 하늘이 벗어지잖여” 꼼짝도 않으시니 나도 도리가 없다. 비 맞으며 은행을 주을 수밖에....
“어허, 정말 하늘이 벗어지네요” “거 봐” 은근히 웃으신다. 천기를 아시나 봐.
그 덕에 오전 중에 은행 줍기를 끝내고 보니 은행 푸대 51개가 늘어서 있다.
이젠 나무가 높아 털지 못한 나무에서 은행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면 된다.
은행도 흉년인데 작년 수준은 되니 다행이다. 그물망 깔개와 바람 불어내는 기계 덕분에 고생도 덜했고, 앞장 서 도와주신 장모님 덕분에 일찍 끝냈으니....
그 다음 순번은 무엇이냐. 창고 완공을 서둘러야겠다.
정산의 도배와 장판점 사장님을 모셔 견적을 뽑게 했다. “여보 어떤 수준으로 해야 돼 ?” ‘이런 건 안 사람에게 물어서 해야 뒤탈이 없겠지.’ “좋은 거로 해요” “비싸도 괜찮아 ?” “한 번 하면 오래 가는 거니까....” “알았어”
“사장님 씽크대 잘하는 집을 아셔요 ?” “알지요. 제가 불러드릴게요” 금방이다. 서로 간에 도와주는 협력관계인가 보다.
기다리는 동안 장모님 마늘밭 꾸미는 일을 도와드렸지. 비닐과 콩 대를 걷어내고 퇴비를 날라다 뿌려댔다. 퇴비가 엄청 들어가더라. 나중에 마늘 농사를 지으려면 잘 봐둬야지. 아는 게 힘이다. 시골 농사에서 고추와 마늘은 필수니까.... “씽크대로 좋은 거로 해요. 한 번 하면 바꾸기 어려우니까....”
‘어라, 돈 쓰는데 벌벌 떠는 마누라한테 이런 면도 있었나 ? 별일이네’
비싼 편으로 맞췄지. 어떤 놈이 들어설지 궁금해진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늦어간다. 허겁지겁 몸을 닦고, 대전으로 출발했다. 오늘이 금요일 고속도로가 막힐 시간인데, 그래도 조금 일찍 서둘렀다고, 덜 막혀 다행이었다.
몇 분이나 오시려나 ? 오늘도 목 빼고 기다리느라 키가 조금은 커졌겠지.
빈 자리에 목말라하는 내 마음을 채워주시려고 총무님까지 대동하신 26분회 이기연 분회장님의 신경 써 주심이 마음에 와 닿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다. 열 댓 분을 모시고 회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운사모에 열정을 가지신 분들이 모인 자리라 열기가 후끈거리다.
“회원 수 400명 중 허수가 많습니다. 진성 회원들로 똘똘 뭉친 운사모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회칙에 12개월 이상 회비를 미납하신 회원들을 제명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강력하게 주장하신다.
옳은 말씀이다. 매년 겪는 일이었지만, 여러 여건이 변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응집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 출발이 꼭 필요하다. 한 번 해보자.
나도 바빠지겠다. 언젠가는 한 번 거쳐야 할 과정이었지만 이번에는 강하게 밀어보자. 다음은 장학생 선정 수를 논의했지. 올처럼 11명으로 결정됐다. 더 늘리지 못하는 여건에 마음이 답답하다, 운사모 장학생을 고대하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데.... 야유회는 18일로 결정됐다. 장소는 1안이 산내 임용혁 부회장님 네 풋살장이고, 여의치 못하면 보문산으로 결정됐다. 몇 분이나 오실지 ?
‘몇 분 안되실 테지’ 생각되는 내 마음에 자신감을 잃어가는가가 걱정이 된다.
‘나부터 이래서는 안 되는데....’ 희망을 가져보자.
시골로 들어가 농사에 전념하다 보니 아무래도 신경이 덜 쓰여지나 보다.
창립 10년, 이젠 회장이 애간장을 태울 때는 지나갔고, 사무국 중심의 운영으로 안착되어야 할 때가 됐다.
박정현 사무국장님을 중심으로 한 사무국에서 열정을 보여주길 고대한다.
즐거운 정담이 이어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술잔이 오고 갔다. 장례식장에 꼭 들를 일이 있어서 2차는 따라가지 못했다.
대리운전으로 장례식장을 들리고, 다시 대리를 불러 집으로 오는 길에 음주 단속을 만났다. 오랜 만이다. ‘본전을 뽑았구나’ 생각드는 것은 나 만이 아닐 것이다. “아빠 오셨어요” 아들들이 반긴다.
제 엄마도 없는데 아빠라고 밖으로 나돌기만 했으니 미안하다.
“충정아 밥은 먹었어 ?” “엄마가 끓여놓은 닭도리탕 데워서 먹었어요”
“우리 막내 이젠 다 컸네. 아빠가 미안해.”
수능이 며칠 안 남은 충희는 학원에서 안 왔다네. ‘충희야 며칠만 더 고생하자’ “충정아 오늘 아빠랑 같이 잘래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살살 꼬셔봐도 요지부동이다. “아빠가 서운해. 한 번만 같이 자자” 안 된단다.
‘자식이 비싸게 노네’ 이미 때가 지났다. 하루에 몇 cm씩 멀어진다는데....
충희가 오는 거는 보고 자야지.
쏟아지는 잠을 간신히 참고 있다.
내일 아침은 뭘 먹어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