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을 하고 있는 용인의 처인구엔 3군 사령부가 있었다. 그러나 40여년 넘게 있다가 최근에 사라졌고 새로운 이름의 부대가 창설되었다.
어릴적 한강 이북인 당시 양주군(지금은 남양주시) 살다가 73년도 용인에 이사온 것도 어쩌면 3군사령부라는 부대의 창설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고 그전에 아버지의 소속부대(1101야공단 )도 팔당댐 수몰이 없었다면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은 없었을 것이다.
1101야공단은 원래 원주의 1군사령부 직할부대였고 한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었고 70년대 초중반 3군사령부 직할대가 되었다.
중앙선 철도는 일찍부터 원주뿐 아니라 안동과도 연결 군작전에 영향을 주었고 예전에는 원주에서 춘천을 가려면 삼마치라는 고개가 있어 교통이 불편해 6.25 초기 중앙선을 타고 서울까지 와서 춘천으로 갔었다고 한다.
일본에 의해 한반도에 X모양의 철도를 설치해 대륙으로 가려는 의도 때문이었을까 강원도의 경우는 춘천과 원주 그리고 원주에서 강릉까지는 교통이 열악했고 인제나 양구 그리고 진부령이나 미시령 한계령 고개를 넘어 속초 양양과는 육로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영동고속도로가 이어지고 확장되면서 설악산 주변이 개통되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고 군부대간의 연계가 이어지면서 당시 원주와 용인의 사령부도 통합해야 한다는 말들이 오고 갔었다.
원주와 용인은 빠르면 자동차로 1시간 거리로 군사령부급의 부대가 너무 가깝다는 지적이 있었다.
당초 원주의 1군사령부가 경기도와 강원도 전방지역을 다 책임졌 듯 다시 회귀한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육군의 절반가량과 주요화력 기동부대가 있는 수도권과 강원도 중부전선까지의 전력을 책임졌던 3군 사령부가 1군사령부를 흡수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비효율적인 지휘체계와 작전지역의 조정에 따른 군의 상부구조를 시대에 맞게 재편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년에 비육사출신을 합참의장이나 1군사령관에 임명했다고 논란이 있었으나 용인에 위치한 3군사령부에 대한 지휘권을 두고 육사출신 장군을 배제한 적은 지금까지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장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육사출신 장군은 핵심보직을 담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장교양성 체계상 추구하는 방향이 그렇기에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단 박찬주 대장 같은 인사는 육사출신이라도 제외해야 하며 3사출신이나 학군출신 기타 학사 출신이라도 능력이 있고 부하들의 신망이 있다면 우리육군의 핵심이고 전방의 작전을 책임진 지상군 작전사령부의 사령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용인은 차별받던 처인부곡지역주민들이 단합하여 대규모 몽고군을 격퇴한 적도 있었지만 임진왜란 땐 일본군에게 많은 숫자의 병력을 동원하였지만 크게 패한적이 있고 병자년에도 청의 군대와 싸운적이 있고 동란시기에도 터키군이 싸웠던 접전지역이다.
사통팔달 교통이 좋아 편리한 점도 있었지만 전쟁을 피하기 어려웠다.
베트남전 이후 만들어진 3군사령부가 형식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실제로는 1군을 흡수했고 지상군의 작전이 새롭게 변화할 것이다.
1군 사령부는 사라졌으나 1군사령부의 역사는 고스란히 지상작전사령부로 녹아들고 1군사령부의 부대 마크는 역사에 길이 남아 육군의 역사를 증명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