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간일 때의 기억을 완전히 소거하지 못한 로봇경찰’이라는 다소 황당한 설정으로 인해 무려
15명의 감독에게 퇴짜를 맞은 프로젝트였지만, 결국 〈로보캅〉은 네덜란드에서 할리우드로 건너온 폴 버호벤 감독을 탄탄한 입지에 올려준 SF 액션영화다. 기계인 로봇의 기억의 문제, X등급을 받은 과도한 폭력성, 그리고 자본주의적 창조주에 대한 비판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블레이드 러너〉(1982)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제작연도
1987
감독
폴 버호벤
출연
피터 웰러, 낸시 앨런, 로니 콕스, 커트우드 스미스, 미구엘 페레, 댄 오헐리히
시놉시스
멀지 않은 미래, 유능한 경찰관 머피가 디트로이트로 전입해온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 경찰 루이스와 한조가 되어 순찰 중이던 그가 악명 높은 범죄자 클라렌스 일당에 무참히 살해된다. 방위산업체의 과학자들은 머피가 죽기 직전에 즉각적으로 몸을 티타늄으로 보강하고, 지워진 기억 위에 정교하게 짜인 프로그램을 집어넣어 극비리에 최첨단 사이보그 ‘로보캅’을 탄생시킨다.그즈음 거대 기업 OCP는 디트로이트의 범죄를 해소하기 위해 딕 존스의 주도하에 로봇경찰 ED-209를 만들었지만, 배치되기도 전에 직원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하는 심각한 오류가 생기면서 실패한다. 결국 OCP 회장은 로버트 모턴이 제안한 로보캅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에 주도권에서 밀려난 경쟁자 딕 존스는 분노한다. 한편 업무 도중 경찰 내부 컴퓨터 기록을 조사하던 로보캅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고, 과거 자신이 살던 집으로 찾아가기도 한다. 되살아나는 기억으로 인해 로보캅은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클라렌스를 응징하러 나선다. 그리고 그 배후에 딕 존스가 있음을 감지한다.
작품해설
1. 사회적 배경
〈로보캅〉의 시대적 배경은 영화가 개봉한 1987년으로부터 불과 몇년 지나지 않은 1990년대다. 더불어 황량한 공업도시 미국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한 것에서 보듯, 곧 닥치게 될지도 모를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임을 강조한 것이다. 로보캅이 정부 차원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인 OCP에서 제작한다는 것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공부문에 대한 무분별한 민영화의 물결이 공권력에 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실제로 〈로보캅〉에는 모니터를 통해 보여지는 기업 CF 등을 통해 미래자본주의 사회를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죽어가는 인간을 마치 물건처럼 대상화하는 로보캅 프로젝트 또한 OCP의 딕 존스와 로버트 모턴의 과잉경쟁에서 비롯됐다. 특정기업 간부들 간의 다툼이 국가의 치안을 뒤흔드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제작 시점으로 볼 때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미국의 49대, 50대 대통령을 연임한 레이건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2. 영화사적 의미
1980년대는 할리우드에서 SF 장르의 르네상스기였다. 〈스타워즈〉(1977)와 〈미지와의 조우〉(1977)의 경이적인 성공 이후 이전까지 묘사한 외계인에 대한 공포를 트렌디한 코믹물 화법으로 풀어낸 스티븐 스필버그의 〈E.T.〉(1982), 창조주를 찾아 나선 안드로이드를 통해 암울한 묵시록적 비전을 선보인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육체 변형을 미래 사회에 대한 공포로 연결지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1983), 로보캅 그 이상으로 SF 장르의 전무후무한 매력적인 초인 캐릭터를 등장시킨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1984) 등 SF 장르는 보다 다양하고 성숙해졌다.네덜란드 출신인 폴 버호벤은 이전까지 SF영화를 만든 적이 없었지만, 해외에서 온 이방인 감독의 시선으로 〈로보캅〉 안에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과 웨스턴 장르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냈다. 특히 권총을 들고 천천히 움직이는, 그렇게 악당들을 혼자서 일망타진하는 로보캅의 모습은 영락없이 과거 서부극의 근사한 총잡이를 닮았다. 경찰이라는 특성상 ‘보안관=로보캅’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영화사적으로 볼 때 〈로보캅〉은 ‘SF 웨스턴’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했다. 동시에 〈E.T.〉나 〈터미네이터〉 못지않은 ‘인간적 이방인’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SF영화와는 궤를 달리한다. 로보캅은 과거 머피의 허약한 육체에 비하면 강력한 능력을 갖춰 경탄의 대상이지만, 인간적으로는 가족으로부터 동떨어진 존재라 동정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 점들이 로보캅을 보다 독특한 SF 캐릭터로 남게 했다.
3. 주제
〈로보캅〉은 신체 훼손과 기억상실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이 ‘로봇’이라는 기계장치를 빌리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로봇에 대해 인류가 가지고 있는 최초의 판타지는 바로 자신들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켜 주리라는 것이었다. 로봇 개념의 근원적인 설화이자 히브리 민족의 전설인, 생명을 지닌 진흙 인조인간 ‘골렘’도 초인을 향한 열망의 반영이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진흙으로 만들었듯이 골렘을 진흙으로 만들어서 유대인들을 박해자에게서 보호하도록 한 것이다.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거기서 더 나아가 〈로봇〉 시리즈를 통해 ‘로봇공학 3원칙’을 밝히기도 했다. 로보캅 또한 처음부터 프로그래밍된 원칙이 있다. 하지만 로보캅은 전체가 기계가 아닌 로봇의 신체를 빌린 인간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전직 경찰 머피의 분신으로 법을 지키며 악을 응징하도록 만들어졌지만 절반은 기계, 절반은 인간이라는 모순 속에서 자신의 기억에 얽매이는 것이다. 그러한 모순성이 〈로보캅〉의 주제를 더욱 강화시키는 효과를 준다.
4. 특수분장
SF 장르를 미지의 세계를 묘사하는 장르라고 한다면, 1980년대 할리우드는 특수분장이 활짝 꽃피운 시기이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거의 모든 것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하게 됐다면, 당시만 해도 아날로그 특수분장의 매력을 십분 감상할 수 있던 때였다.가령 〈엑소시스트〉(1973)의 악령 들린 소녀와 〈아마데우스〉(1984)에서 살리에리에 대한 특수분장으로 아카데미 분장상을 수상한 딕 스미스, 그리고 1982년 신설된 아카데미 분장상 부문에서 11번 후보에 올라 6개의 트로피를 가져간 릭 베이커는 특수분장의 역사를 일군 위대한 예술가들이다.〈로보캅〉의 특수분장을 맡은 롭 보틴은 14살 때 릭 베이커의 문하생으로 입문해 존 카펜터의 〈괴물〉(1982) 등을 통해 승승장구하던 인물이었다. 폴 버호벤과 롭 보틴은 제작 기간 내내 충돌했던 것으로 유명하지만, 폴 버호벤은 촬영 직전 완성한 롭 보틴의 로보캅 의상을 보고는 무척 만족했다. 하지만 너무 두껍고 무거워서 피터 웰러가 무지막지하게 고생했던 일 또한 유명하다. 폴 버호벤과 롭 보틴의 최고 합작품은 바로 〈로보캅〉 다음에 함께한 〈토털 리콜〉(1990)이다. 특수분장 자체가 이야기의 흐름을 결정짓는 놀라운 경지를 보여줬고, 결국 롭 보틴은 생애 최초로 아카데미 분장상을 거머쥐었다.
5. X등급의 잔혹한 폭력성
앞서 만들어진 〈블레이드 러너〉나 〈터미네이터〉와의 차별성을 위해 〈로보캅〉은 처음부터 폭력 묘사의 수위를 높게 설정했다. 또 다른 로봇경찰 ED-209가 작동 오류로 시연식에서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로 총을 난사하고, 머피가 클라렌스 일당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장면 또한 잔인하기 이를 데 없어 처음에는 X등급, 그러니까 사실상 등급 판정을 받지 못해 개봉이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런 잔인한 장면들을 자진 삭제하고 R등급(17세 이하는 부모나 성인보호자 동반시 관람가)으로 개봉하게 됐다. 이에 대한 폴 버호벤의 생각은 ‘언젠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질지도 모를, 사실적인 폭력의 공포’를 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주요 등장인물
머피(피터 웰러) : 유능한 경찰관이었지만, 우연히 맞닥뜨린 범죄자들에 의해 거의 몸이 벌집이 되다시피 죽을 운명에 처한다. 하지만 첨단 기술에 힘입어 로봇경찰 ‘로보캅’으로 다시 태어난다.
루이스(낸시 앨런) : 일처리가 꼼꼼하고 머피를 끝까지 지켜보는 여자 경찰. 머피가 자신과 한조가 되어 순찰에 나섰다가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지니고 있다.
딕 존스(로니 콕스) : 공권력마저 좌지우지하는 거대 기업 OCP의 간부. 머피를 죽기 직전까지 몰고 간 클라렌스의 배후 인물로서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쁜 인물.
명장면 명대사
- OCP 회장 : “솜씨가 좋군, 이름이 뭔가?”- 로보캅 : “머피.”
마지막에 이르러, OCP 전체 회의에 들이닥친 로보캅은 모든 사건의 주범인 OCP 간부 딕 존스의 범죄사실을 폭로한다. 그러자 그는 OCP 회장을 인질로 잡는다. 이때 “자넨 파면이야”라는 회장의 얘기를 들은 로보캅은 딕 존스를 총으로 쏴죽여버린다. 로보캅은 OCP 고위층은 손댈 수 없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었지만 최고 지위자인 회장의 말에 반응한 것. 위기를 벗어난 회장이 로보캅에 고마움을 표하자, 자신의 이름을 로보캅이 아닌 과거 인간일 때의 이름 ‘머피’라 답한 것은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더구나 헬멧이 아닌 인간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을 때라 그 의미는 더욱 확장된다. 로보캅이 자신의 자아를 되찾았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원작
직접적인 원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로봇 형사’라는 점에서 일본의 특촬물인 〈우주형사 갸반〉을 모티브로 삼았으며, 판권자인 일본 도에이 영화사의 허락도 받았다.
수상
• 1988년 아카데미상 음향효과 편집상(스티븐 헌터 플릭, 존 포스피실)• 1988년 새턴상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마이클 마이너, 에드워드 노이마이어), 분장상(롭 보틴, 스티븐 두푸이스), 특수효과상(피터 큐란, 필 티페트, 롭 보틴, 로코 지오프레)
연관 영화
〈터미네이터〉(1984, 제임스 카메론) : 기계의 지배를 받고 있는 미래의 2029년, 반기계 연합을 구성해 기계와의 전쟁을 시작한 사령관 존 코너의 출생을 막기 위해 기계 진영은 터미네이터를 1984년의 LA로 보낸다.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진 ‘T-101’ 터미네이터는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을 지닌 로봇이라는 점에서 로보캅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제작 초기 로보캅을 연기할 인물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저지 드레드〉(1995, 대니 캐넌) : 치안 능력이 상실된 미래의 거대 도시, 경찰이자 심판자이기도 한 일부 엘리트가 사회를 다스린다. 그런데 가장 강력한 저지인 드레드가 살인 누명을 쓰고 도시에서 추방된다. ‘경찰이 곧 법’이라는 미래 사회의 관료화된 모습을 〈로보캅〉과 공유하고 있다.
집필 주성철
<씨네21> 취재기자. 이제는 없어진 <키노>, <필름2.0>에서 일하다 지금은 <씨네21> 취재팀장.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감수 김영진교수, 영화평론가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이자 전주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이다. 쓴 책으로 <미지의 명감독>, <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평론가 매혈기>, <코스타 가브라스> 등이 있다.
씨네21 [네이버 지식백과]로보캅 [Robocop] (세계영화작품사전 : SF영화,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