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우물 29
예수님은 정말로 매력적인 분이신가요?
어린 시절 성당에서 상영해준 영화 한 편이 내 인생에 적지 않은 감동을 남겨주었던 기억이 있다. 바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영화였다. 어린 내게 그 영화 속에 프란치스코의 모습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부자의 아들로 태어나 방탕하고 젊은 혈기에 가득 찼던 한 젊은이가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깨어나면서 세상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던 장면, 다미아노 성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맨발로 구걸을 하면서도 빵 한쪽을 형제들과 나누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던 모습. 그 중에서도 어린 내게 프란치스코를 향한 글라라 성녀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서 두 사람의 사랑의 방식에 대해 꽤나 동경했던 기억이 난다.
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일종의 동경의 방식이다. 내 생애에서 갈망하던 삶이었거나 언젠가는 한 번 비슷하게 살아보고 싶은 한 인생의 롤모델을 발견하는 것이다. 비록 현실의 내가 동경의 대상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간격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왠지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내가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고 내 삶에 작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기도 한다. 한 사람이 좋아지면 그 사람이 자라난 환경이 궁금해지고, 그 사람의 내면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나도 그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희망도 조금씩 자라나기도 한다.
하지만 신앙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렇게 편한 분만은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죽음을 넘어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르게 사신 믿음의 대상으로 여겨지기 쉽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때로 예수님의 요청이 지나치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 신화 속의 한 인물처럼 생각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의 주님,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고, 그 분의 말씀과 사랑을 읽어낸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신앙의 고백일 뿐 예수님이 내 인생에 빛이 되는 매력적인 롤모델이 되기는 쉽지 않다.
솔직히 우리가 신앙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 그 자체라기보다는 예수님을 둘러싼 다른 요소들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복잡한 세상살이 속에서 성당의 고요함과 거룩함이 좋고, 멋진 신부님과 수녀님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성당의 웅장함과 전례 음악이 맘에 들거나,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과 그들의 삶이 부럽게 느껴지는 일이 더 많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예수님을 만나 빛과 희망을 찾은 그리스도 신자를 먼저 만난다. 그들이 내 부모님일수도 있고, 가장 친한 내 친구이거나 직접은 아니더라도 책이나 영상을 통해서 만나본 사람일수도 있다. 어째든 내가 신앙에 매력을 느끼게 된 동기는 대개 예수님 자신보다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로부터 받은 강한 매력에서 시작된다. 도대체 무엇이 그 사람들의 삶을 바꾸게 했을까? 무엇 때문에 그들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찾으며 기쁘게 살까? 도대체 예수님은 누구시길래 그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교회에 봉사하고, 기도하는 일을 즐기며,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나누는 일을 즐거워할까?
신앙은 먼저 신앙인들과의 인격적 매력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나로 하여금 그 매력을 느끼게 해준 예수님이 누구신지 궁금하게 하고, 예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알고 싶게 한다. 그래서 성경을 읽기 시작하고, 미사 전례에 열심히 참석하며, 신부님의 강론을 귀담아 듣거나, 본당의 단체 활동을 하면서 귀동냥으로 교리와 신앙 간증들을 조금씩 들어가면서 그 매력의 실체를 보게 된다.
복음서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찾는 예수님의 매력이 누구보다 먼저 예수님을 만나 삶을 바꾼 병자들, 눈먼 이들, 창녀, 세리, 간음한 여인이 찾았던 매력이었음을 알려준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귀 담아 듣고 그 분을 따르며 그분의 말씀과 행적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용서와 평화, 정의와 진리를 찾은 가난하고 소외된 군중들이 발견한 예수님의 매력을 전해준다. 우리는 그들 안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병들고 지친 내 모습, 하느님께 다가서기에 너무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나, 뒤늦게 깨닫고 아버지께로 되돌아가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 망설이는 잃었던 아들의 모습을 내 안에서 본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고개를 돌렸던 베드로의 모습이나,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고 고통스럽게 기도하실 때 옆에서 무심하게 잠만 자고 있던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내 얼굴을 본다. 하지만 때로 그분의 옷자락이라도 한 번 만져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고, 군중 속에서 소리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탄식하거나, 남들 눈이 무섭지만 나무 위로 올라가서라도 예수님을 쳐다보고 싶어 하는 숨겨진 내 모습도 만난다.
우리가 예수님께 느끼는 매력은 그냥 성경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들을 때 결코 얻어질 수 없다. 그 안에 들어가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이들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볼 때 그분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분이 나를 일으키시고, 손짓하시며, 자비와 용서의 눈길을 보내시고 계심을 느낄 때 예수님의 인격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예수님을 친구로 여기며 좋아하던 어린 시절을 되찾고, 그분이 내게 보여주실 인생의 의미와 희망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이 내 인생을 가득 채워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쁨이 용솟음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이렇듯 가슴 뛰고 매력적인 일이면 참 좋겠다.
송용민 신부
(인천교구 삼산동 성당 주임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