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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흔든 여인(18)-
'알'을 낳은 청하의 요정 -유화부인
하늘에서 오룡차가 내려온다. 웅심산으로 오룡차가 내려온다. 휘황찬란한 오룡차에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타고 있었다.
오룡차 주위로 해모수의 종자들 백여 명이 하늘나라의 신묘한 풍악을 울리며 땅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웅심산에 서식하던 산짐승들이 모두 나와 풍악 소리에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자신이 타고 온 오룡차와 종자들 백여 명이 타고 온 백학을 한쪽 나무 그늘에 세워 둔 해모수는 까마귀 털로 만든 오우관을 고쳐 쓰면서 어느 사이에 발아래 구름같이 모여든 주민들에게 위엄을 갖춰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왕이로다. 하늘나라 천제의 아들 해모수는 오늘부터 여러분의 임금이로다. 나라 이름은 북부여. 웅심산 밑에 왕궁을 짓고 오늘부터 해모수는 여러분들의 임금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로다."
해모수는 허리에 찬 용관검을 번쩍 뽑아 들고 선서를 하였다.
아침에 웅심산으로 내려와 하루 종일 백성을 다스리고, 밤이면 어김없이 천상으로 승천하는 해모수왕더러 사람들은 천왕랑이라 불렀다. 한나라 신작 3년(BC 59년) 4월 8일의 일이었다.
해모수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틈틈이 웅심산에 올라 사냥을 하기도 하였고, 웅심산 북쪽 청하(지금의 압록강)에 나가 물고기를 낚기도 하였다. 순박한 백성, 비옥한 토지를 가진 북부여에서는 공을 들여 정치를 한다거나 따로 힘을 기울여서 할 일은 없었다. 청하는 아름다운 강이었다.
해모수가 나라를 세운 4월이 지나 나무마다 들마다 신록을 마련하는 여름이 돌아왔다.
청하의 물빛은 연변에 울창한 숲 그늘에 내려앉아 푸르다 못해 검게 일렁였다. 청하 연변에 사는 부여 낭자들은 아침저녁으로 더위를 씻어내려고 이 강가로 몰려들었다. 낭자들은 하나 둘 짝을 지어 강가에 모이기도 하고, 부끄러움에 젖어 있는 낭자들은 혼자 후미진 강굽이로 나가 옷을 벗고 밤 목욕을 하기도 했다.
강가로 가세
강가로 가세
청하 아름다운 강가로 가서
천왕랑 오룡차 타고
하늘로 가세, 하늘로 가세
강가로 가세
강가로 가세
청하 아름다운 강가로 가세
해모수왕 오우관을 쓰고
임금이 될까......? 임금이 될까?
노래가 끝나면 으레 낭자들은 허리를 쥐고 한바탕 웃어대는 것이었다.
한여름이다.
찌는 듯한 무더운 강변의 여름.
그날도 하백의 세 딸들은 천왕랑이니 오룡차니 해모수 왕의 오우관이니 하는 들뜬 노래를 부르며 청하 강가로 나왔다.
청하 강가에는 목욕하기에 알맞은 연못이 하나 있었다. 애초에는 청하에 이어진 물줄기였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강 한쪽으로 모래가 쌓이고 쌓여진 모래성 안에 웅덩이 물이 고여서 연못을 이루게 된 곳이었다.
하백의 세 딸, 유화, 훤화, 위화 자매는 근동에서 인물이 빼어난 낭자들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이 세 낭자는 그날도 여느날처럼 연못가에 나와 옷을 벗고 목욕을 하던 참이었다.
그 때였다.
허리에 용광검을 번쩍이며 말을 탄 사나이 하나가 연못가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세 낭자는 물어볼 것도 없이 그 사나이가 해모수라는 것을 첫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세 낭자는 발가벗은 알몸을 해모수에게 보였다는 부끄러움보다도 먼저 겁부터 났다. 웅심산과 청하 일대에서는 해모수의 명을 거역한 사람이 지금껏 한 사람도 없었으니, 해모수가 발가벗은 세 아리따운 낭자 앞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 올는지 그게 궁금한 것이다.
해모수는 말에서 몸을 날려 연못가로 다가갔다.
"내가 찾던 낭자들이 바로 여기에 모여 있었구나. 그대들을 모두 궁궐로 데리고 가서 왕후로 삼고 싶으니 물속에서 나오너라!"
첫마디부터 명령이었다.
세 낭자들은 해모수가 이글거리는 눈을 잠시도 그들의 몸에서 떼지를 않고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물 속으로 몸을 감추었으나, 옷을 벗은 몸으로서는 그 이상 어떻게 부끄러운 알몸을 감출 도리가 없었다.
"저기, 저 키가 크고 눈이 커다란 숫색시가 유화랑이렸다.!"
하백의 첫째 딸 유화는 해모수의 눈이 핥듯이 자기 몸을 쏘아보자 몸을 떨었다.
"그옆에 몸을 담그고 있는 낭자가 하백의 둘째 딸 원화, 그 옆이 셋째 딸 위화, 모두 다 듣던 대로 아름다운 낭자들이로고........."
세 낭자는 당장 용광검을 뽑아 들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올 것 같은 해모수의 당당한 체구 앞에서 그저 말문이 막히고 몸이 떨려 올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갈팡거렸다.
"낭자들은 듣거라 나는 이 나라의 국왕 해모수로다. 천재의 아들 해모수가 그대들을 맞아 왕자를 갖고 싶으니 부끄러워 말고 나와 옷을 입으라."
둘러보니 주위에는 해모수를 따라온 종자들도 보이지 않았고, 검푸르게 흘러내리는 청하의 물줄기가 발가벗은 세 낭자와 해모수를 지켜볼 뿐이었다.
해모수의 명을 받은 세 낭자 중 맏이 되는 유화가, 물속에 몸을 담근 채 입을 열었다.
"해모수 마마!"
"오, 유화랑, 할 말이 있으면 어서 말하라."
"아무리 마마의 명이시라 하더라도 발가벗은 몸으로 어찌 마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나이까?"
해모수는 무릎을 쳤다.
"그렇지 그래. 장차 내 비가 될 사람들이 함부로 알몸을 드러내고 나올 수는 없으렷다. 내 당장 그대들이 머물 집 한 칸을 마련해 놓을 터이니 그리로 와서 옷을 갈아입도록 하라."
해모수는 즉시 청하 강가 숲 그늘에 숨어 있던 종자들을 시켜 나무집을 짓게 하고 술통을 마련해 놓으라 일렀다. 청하 강가 야트막한 숲속에는 순식간에 통나무집이 세워졌고 토주까지 한 통 마련되었다.
유화를 비롯한 훤화, 위화 세 낭자는 통나무집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값진 옥패로 몸을 단장하였다. 몸에는 향유를 뿌리고 곱게 빗어 올린 머리에 황금 비녀를 꽂았다.
통나무 집 밖에는 해모수가 한꺼번에 세 낭자를 맞이할 양으로 용광검을 절그럭거리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초조한 마음은 통나무 집 안에 있는 유화, 훤화, 위화랑도 마찬가지였다.
세 낭자는 머지않아 이 나라의 국왕 해모수가 자기 몸을 요구하러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리 준비된 술을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몸에 술이 들어가자 방금 목욕을 마친 세 낭자의 모습은 더욱 요기를 띠고 아름답게 보였다.
이윽고 해모수왕은 세 낭자가 취해 쓰러져 있는 통나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자, 몸에 향유를 뿌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겠다. 밖에 종자들도 멀찍이 물리쳤으니 그대들은 부끄러워 말고 나와 인연을 맺도록 하자."
해모수가 손을 뻗쳐 세 낭자를 한꺼번에 이끌어 당기려 하자, 세 낭자는 일제히 몸을 날려 통나무집을 뛰쳐나갔다.
그러나 술이 취한 몸들이라 발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죽어라 하고 몸을 날렸으나, 세 낭자 가운데 유화는 끝내 해모수 왕에게 손목을 잡히고 말았다.
"하하하, 너희들이 도망을 치면 어디로 간단 말이냐? 앞에는 장강이 성처럼 두르고 흘러 건너뛸 수가 없고, 뒤에는 첩첩 산중이라 연약한 여자의 힘으로는 백보도 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릴걸? 자아, 기왕지사 두 낭자는 나하고 인연이 없어 이 통나무집을 빠져 나갔다. 하나, 유화 낭자는 가장 나이 많고 힘이 센 몸이 도망치지를 못하고 남게 된 것으로 보면 이 또한 어쩌지 못할 천제의 명이시라 여겨지니, 부끄러워 말고 옷을 벗어라."
유화 낭자는 눈을 지그시 감고 해모수가 하는 대로 몸을 내맡기면서 나직한 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소녀 유화가 이곳에 남게 된 것은 천제님의 뜻이 아니옵니다."
"뭐, 천제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전혀 소녀가 택한 길이옵니다. 해모수 대왕마마."
"유화 낭자가 스스로 택한 길!"
"그렇사옵니다. 마마. 소녀 유화는 일찍부터 해모수 대왕마마를 뵈올 날만 고대하였나이다. 소녀 유화가 어린 훤화와 위화를 데리고 연못에 나와 목욕을 하게 된 것도 실은 낚시하러 나오시는 대왕마마를 행여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였나이다."
"오호, 과연 미색이 신자 염려한 유화낭자의 뛰어난 지모에 나는 다시 한 번 놀랐구나."
유화의 말은 사실이었다.
유화는 힘도 세고 담력이 강한 하백의 딸로서 만족할 낭자는 아니었다.
유화에게는 남이 꿈조차 꿀 수 없는 이상이 일찍부터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사냥꾼 하백의 딸이라 는 것을 앞세우고 아버지와 똑같은 젊은 사냥꾼을 맞아 정혼 할 수는 없다 했다.
'아무렴, 나의 미모와 지략은 이 근동에서 소문이 자자할 만큼 인정된 터다. 이러한 내가 범부의 아내가 되어 한 평생을 늙어갈 수는 없지. 아무렴, 내 상대는 적어도 오룡차를 타고 옆구리에는 용광검을 차고, 하늘과 땅 위를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는 천제님의 아들 해모수
대왕이어야 한다. 해모수 대왕....... 나는 그 대왕을 함락시켜야 해…….'
이튿날부터 유화는 동생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로 나물을 캐러 다니기 시작했다. 웅심산 깊숙이 인적이 드문 골짜기가지 기어 들어가서 사냥 나온 해모수를 만나보려고 했으나, 어찌된 셈인지 해모수와 유화 일행은 단 한 번도 부딪칠 수가 없었다.
그 봄이 지나고 여름이 돌아오자 아직도 몸을 담그기에는 이른 청하 강가로 나와 유화는 옷을 벗었다. 물론 그 자리에는 훤화, 위화 두 여동생이 언제나 시녀처럼 따라 나와서 함께 옷을 벗긴 하였으나 무엇인지 기대를 가지고 연못 속에 몸을 담구는 유화와는 달리 유화의 동생들은 차가운 5월의 연못 속에 쉽사리 몸을 담그려 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산은 산대로 신록을 마련하기에 바빴고, 강물은 또 몇 백 리씩 흘러내리면서 그 연안에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해모수왕은 강가에 그림자도 비쳐 주지 않았다.
유화는 여름이 와도 강가에 나타나지 않는 해모수 왕이 차츰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유화의 속마음을 모르는 훤화, 위화 두 낭자도 차츰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에유, 언니는 덥지두 않은 날에 맨날 옷을 벗고 목욕을 하라시니 이러다가는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고뿔 감기에라두 걸리겠수."
"글쎄 말이다. 추운 날에 목욕을 자주 하라시는 언니 마음도 모르겠거니와, 목욕하러 온 여자들이 몸에다 값진 옥패를 두르시라는 것도 정말이지 귀찮은 일이야."
이런 불평 속에서 가까스로 만난 해모수 왕이었다.
유화는 해모수가 목욕하는 세 자매의 벗은 몸을 탐내어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야말로 하늘이 준 절호의 기화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해모수가 시키는 대로 유화는 겁에 질린 동생들과 함께 통나무집에 들어갔던 것이고, 동생들보다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해 있었던 것도 실상 유화 쪽에서 미리 계산해 놓은 함정이었던 것이다.
급기야 야욕에 이글거리는 해모수의 몸이 유화에게 던져졌을 때 유화는 비로소 자기가 만든 함정이 행복으로 이끄는 길잡이였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유화....... 유화....... 너는 내 여자다. 이 넓은 부여의 국모란 말일세. 유화, 오늘은 이 통나무집에서 인연을 맺고 내일이라도 왕궁의 의식을 갖추어 대례를 치르도록 하자."
해모수를 소유하고 싶었던 유화의 꿈은 이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해모수 왕과 유화 부인의 결합이 그렇게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해모수가 천제의 아들임을 확인한 하백이 성대한 의식을 갖추어 혼인 대사를 치르긴 하였으나, 하백은 자기 딸의 앞날이 그저 걱정스럽기만 했다.
'천제의 아들이 땅 위에 사는 여자를 평생토록 데리고 살 것 같지 않거든. 해모수, 놈은 언제고 내 딸을 버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말 거란 말이야.'
하백은 그런 생각 끝에 하나의 묘안을 안출해 내었다.
해모수에게 술을 취하도록 마시게 한 뒤 유화와 함께 커다란 가죽
주머니 속에 가둬 놓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설사 해모수가
하늘나라로 승천한다 해도 자기 딸을 버리지는 않겠지.......
하백은 계획대로 해모수에게 독한 술을 먹여서 유화와 함께 커다란 가죽 주머니 속에 가둬 놓고 말았다. 해모수가 마시고 취한 그 술은 한 잔만 마셔도 일주일 뒤에 가서 취기가 깬다는 독한 술이었다.
햇볕이 한 점도 들지 않는 가죽 주머니 속에서 술에 취해 있던 해모수는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겨우 눈을 떴다.
"크, 큰일이로다. 나는 햇빛을 보지 못하면 죽어 버리는 몸. 이 가죽 주머니를 어떻게 뚫고 나간다?"
해모수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고 유화는 머리에 꽂았던 황금 비녀를 뽑아 주었다.
"이 비녀로 구멍을 뚫어 보셔요."
구멍이 뚫렸다. 해모수는 구멍만 있으면 얼마든지 몸이 빠져 나가는 천제의 아들.
신묘한 기술을 가진 해모수는 한번 가죽 주머니를 빠져 나가자 하늘나라로 승천한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부터 유화 부인의 슬픔이 시작되었다.
화가 난 하백은,
"이년 꼴두 보기 싫구나, 스스로 천제의 아들을 골라 몸을 더럽히고 집안 망신을 시킨 년이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느니!"
이러면서 펄펄 뛰었다.
하백은 유화의 입술을 길게 잡아 빼어 꿰맨 뒤 시종 두 사람을 붙여 우발수가로 내쫓아 버렸다.
그 때부터 유화 부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러나 유화부인은 언제까지나 슬픔을 씹고 앉아 있을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총명한 머리는 부단히 무엇인가 생각을 했고, 그녀의 예리하고 빛나는 두 눈은 전후좌우 사물을 열심히 관찰하기에 바빴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유화 부인은 왕이 행차하는 길가 우물가에 선녀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아가 앉아 있었다.
당시의 부여왕은 금와왕이었는데 그날은 수렵을 좋아하던 금와왕이 우발수 쪽으로 납시는 날이었다. 유화 부인은 그것을 그녀 특유의 직감으로 알아 버린 것이다.
금와왕이 탄 수레가 우발수에 이르렀을 때다.
수레의 휘장 밖으로 멀리 우물가에 청초한 차림새의 선녀(?)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왕은 수레를 멈추게 하였다.
종자를 시켜 유화 부인을 수레 곁으로 불러들인 금와왕은 첫눈에 유화의 아름다움에 반해 버렸다.
"선녀, 그대는 뉘 집 딸이기에 이렇듯 후미진 우발수 물가에 나와 넋을 잃고 있느냐."
"예, 이 몸은 청하 강가에 사는 하백의 딸로서 아버지에게 죄를 지어 쫓겨난 유화입니다."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물가에서 남자를 사귀에 몸을 내맡겼다가 그 남자에게 버림을 받았다하여 쫓겨났나이다."
"허허허, 내 그대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구나. 궁궐로 가기를 권하는 바이니 허락해 주겠는고?"
"예, 대왕마마 뜻대로 하시와요."
뜻대로 하란다. 그렇다. 유화는 이 기회를 은근히 노리고 있었던 중이다.
금와왕은 말하자면 자기를 버리고 승천한 해모수의 손자였다. 해모수에게는 원래 해부루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없던 해부루는 어느 날 돌 속에서 금빛 나는 개구리 같은 아이를 얻게 되었는데, 이 아이가 금와왕이었다.
유화 부인은 그러니까 자기를 버린 최초의 남성 해모수에 대한 보복으로 해모수의 후손인 금와왕을 소유해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유화 부인은 어쩌면 해모수를 그리는 간절한 이성에의 정을 그의 후손인 금와왕에게서 찾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금와왕은 유화 부인을 맞아 혼례를 치렀고, 그해 안으로 유화 부인은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조화인가. 유화 부인이 낳은 아들은 아들이 아니라 '알'이었다.
유화 부인이 크기가 닷 되들이만 한 알을 낳자 금와왕은 화가 나서 그 알을 내다 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개와 돼지에게 주어도 먹지 않는 알, 길 가운데 버려도 소와 말이 피해서 가는 이 신기한 알을 끝내는 들에 내다 버렸지만 새들이 모여들어 날개로 알을 덮어 주고 감싸 주기를 잊지 않았다.
알을 낳은 어미였으나 그래도 유화 부인은 산모였다.
유화 부인은 자기가 낳은 알을 값비싼 천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갖다 두었다. 그랬더니 며칠이 못 가 그 알 속에서는 골격이 준수하고 영특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나왔다.
아이의 나이 일곱 살이 되자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서 쏘기도 했는데 화살을 쏠 때마다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했는데 사람들은 유화 부인의 아들을 주몽이라 불렀다.
고주몽. 이가 곧 후에 고구려의 시조가 된 동명성왕이었으니 유화 부인은 스스로 선택한 남자와의 사이에서 이를테면 왕을 얻은 셈이었다.
그녀의 몸에서 한 나라의 시조가 될 왕을 얻음으로써 유화 부인의 한은 풀렸다. 해모수에게 버림받은 나약한 여자에서 끝내는 자기의 지모와 미색을 함께 버리지 않고 활용한 나머지 비로소 왕의 생모로서 추앙받는 자랑스러운 여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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