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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07 안식일의 주인(마태복음12장1-8절)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12장 1절에서 8절까지 봉독합니다.
[마태복음 12장]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일반 사람들에게 비춰질 때 제일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거예요.
지금은 우리 사회에서는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 회사 군대 공무원 다 그저 엿새 일하고 하루 쉬고, 때로는 닷새 일하고 이틀 쉬고 이렇게 합니다만,
어떻든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엿새 일하고 하루 쉰다하는 것 참 아주 희한하게 보였어요.
엿새 일하고 이레째는 우리는 더 많이 일했어요.
우리 아버지 아버지가 농촌에 일이 많으니까 일요일 더 일 시켜 먹을려고 아주 벼르고 일을 딱 짜놓고 있다니까..
그런데 비가 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어요.
그 때부터 비가 오면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도 비가 오면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아주 일찍부터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을 지켜왔는데, 그것을 너무 과잉해석을 한 거.
엿새 일하고 쉬라고 하는 것은 은혜거든요. 사실은..
지금도 유대교 사람들이나 우리 기독교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심지어 목사님들까지도 안식일이나 주일을 지키는 게 하나님을 위한 계명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사람을 위한 계명이예요.
1계명부터 3계명은 하나님과 관계된 계명이고, 4계명부터 7계명은 사람을 위한 계명이고, 마지막 8계명부터 10계명은 물질적인 계명 이렇게 되어 있어요.
어차피 사람은 세가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세가지 관계를 반듯하게 해야 돼요.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 관계, 물질 관계. 이 관계가 질서인데, 잘 조화롭게 해 가야 되는데, 그 중에 안식일 문제를 여기 예수님이 오셔서 아주 딱 부러지게 쉽게 말씀을 하신 겁니다.
사건은 아주 간단해요.
그 시기가 지금쯤 됩니다.
우리는 아직은 밀 보리가 막 이삭이 패어 올라오고 그렇죠?
지금은 이스라엘 땅에는 이미 추수가 보리 거두기 밀 거두기가 끝나가고 그렇습니다.
3월 중순에 밀 보리가 익어서 거두는데도 있고, 4월 중순이면 다 거두고, 4월 넘어가면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가을처럼 가물어서 타들어가는 그런 때인데, 어떻든,
[마태복음 12장]
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 제자들이 3년 동안 상당히 배가 고팠다고 봅니다.
어디 한번도 가서 마음 놓고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빠듯한 그런 재정을 가지고 어렵사리 살아갔다고 봐요.
그래서 배가 고픈데,
..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보나마나 베드로가 저질렀지 싶어요.
확실하게 제자들 하면 베드로 뿐 아니라, 뭐든지 베드로가 앞장서면 다 따라해요. 그냥..
그래서 우리 장로님들 조심해야 돼요. 장로님들이 하면 성도들이 다 따라합니다.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이삭을 잘라먹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히브리 율법에 배가 고파서 이삭을 잘라 비벼먹는 것은 죄가 아니고, 포도밭에 가서 포도 한송이 따 먹는 것은 죄가 아니예요.
그릇에 담아가면 죄가 돼요.
다만 그릇에 담지 말지니라.
이삭을 손으로 비벼 먹어도 죄가 아닌데, 남의 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 많이 가져가면 죄가 되는 거야.
도적질 정도가 되는 것은 죄가 되는데, 배가 고파서 이것 한번 비벼먹는 것은 죄가 안 돼.
지금 사람들은 이해를 못할 것 같은데, 우리도 옛날에 학교 다닐 때 배가 고프니까 밀밭 가에 가서 밀을 베어다가 마른 솔가지로 구워먹는 밀사리라고 해요. 밀사리..
밀을 그슬러 구워가지고 비벼먹으면 입가가 시커멓게 되고 엉망이죠.
그런 것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데 배가 고플 때 그거라도 먹으면 요기가 되는 거야.
지금 참 아주 웰빙 음식이죠.
밀사리 뿐 아니라 가을에 콩사리 논두렁에 있는 콩을 꺾어다가 풋콩을 불에 살라서 까먹으면 그것도 입이 지저분하고 엉망이죠.
참 무공해이고 좋은 음식이죠.
또 한가지 하는 게 뭐냐 하면, 좀 있다가 목화 열매가 열려요. 다래라고 하죠. 다래..
제법 커요.
키위 크기의 절반 정도 되는데, 그것 덜 익었을 때 그 안에 솜이 되면 안 되고, 아주 덜 익었을 때 달짝찌근한 것이 수분도 있고 조금 약간 떫은맛이 있으면서 지금도 목화가 있으면 따먹어봤으면 싶을 정도로..
목화도 애들이 하나 둘 아니고 떼로 몰려와서 따먹는데.. 배가 고프니까..
그런 것을 가지고 ‘네 이놈들!’ 하고 그 이상 없습니다.
우리도 죄가 아니었어요. 사실..
그런데 이 날이 안식일이야.
왜 안 되느냐 하면 따먹는 것은 괜찮은데, 안식일에 이것 비비면 타작하는 것이고 불면 추수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죄가 되는 거야.
여러분 유대인들이 쩨쩨한 것을 가지고 그렇게..
우리 성도들도 쩨쩨한 것을 가지고 되니 안 되니 그렇게 하지 마세요.
양심에 거리끼면 자기만 안 하면 되지, 남들 가지고 시비하고 정죄하고 것 좋은 자세가 아니야.
..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민수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먹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절대 일반사람은 못 먹는데 시장할 때.. 배가 고파서 목숨이 왔다갔다 할 때는 뭐든지 먹을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은 의식은 차선이고, 생명이 우선이야.
생명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 법에 의해서 시장할 때는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것이지만, 다윗도 먹었고 그와 함께 한 사람도 먹었다는 거야.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성전보다 더 큰 이’는 예수님이죠.
성전의 주인이니까 시비하지 말라 그 말이죠.
또 율법의 정신이 7절에,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그리고 중요한 것은,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주인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누가 감히 시비할 수 있어요?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 안하시는데, 바리새인들이 와서 괜히 시비를 걸고 하는 것 잘못된 거야.
이런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는 이런 말을 못합니다.
‘내가 안식일 법을 낸 주인이야.’
안식일 법을 낸 주인이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뭐 바리새인 떨거지들이 와서 시비하고 말이야..
한마디로 딱 끊어요.
여러분 그 이후에도 보면 베드로가 하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은데, 예수님이 참 많이도 보호해요..
내가 볼 때는 참 베드로 문제가 되겠다 싶은데 예수님은 어떻게든지 자기 제자들 변호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정말 우리의 보혜사이시다.
마지막 때에 하다하다 안 되면 자기 피를 내놓고 변호할 것 아녜요.
‘이 사람 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이 사람 죄 때문에 내가 대신 피를 흘렸지. 죄가 없으면 내가 왜 피를 흘려?’ 하고 자기 피로 변호하면 끝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을 끝까지 보호하시는 그런 면을 볼 수 있습니다.
9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시비하는 그 사람도 같이 회당에 들어가시는데, 안식일날 다 회당에 들어가서 랍비의 말씀 듣고 이렇게 하는 곳인데,
회당에 갔단 말이죠.
10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송사하려고..
예수님께서 얼마나 긍휼히 여기시는지..
병든 사람을 보면 그냥 못 지나가요.
틀림없이 고칠거다 하는 것으로 믿고, 미리 고치지 못하게 할려고 안식일에 병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율법대로는 안 됩니다.
피가 나거나 하면 지혈까지는 돼요.
생명이 위독하게 될 때에 생명을 보호하는 지혈까지는 유대인 율법에 되는데, 낫게 하면 안 되는 거야.
현상유지는 되는데, 그것을 낫게 개선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율법에는..
그래서,
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현상유지하고 있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참 이것도 지혜롭게 하는 거죠.
손을 주물러가지고 고치면 말썽이 날텐데, 그냥 손을 내밀라고 했어요. 내미는 것은 죄가 아니잖아요. 자기도 내미니까..
..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약이 오르는 거야.
어떻게 해서 좀 시비를 걸려고 하는데, 어떤 때는 성경말씀을 가지고 와서 묵사발 만들어버리지..
또 어떤 때는 고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밀라고 해서 내미니까 시비 못하게 만들어버리지..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14절에,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고칠꼬, 치료할꼬, 살릴꼬?’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꼬?’ 하는 거야.
여러분 종교가 변질되거나 타락하면 더 악해요.
더 못되고 더 고약하고 더 편협하고..
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18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들레지도 아니한다’는 말이 무슨 말이죠?
들레지도 아니한다..
우리 말에 ‘들렌다’는 말은 회화체에서 안 쓰는 말이예요.
고쳐야 되겠죠.
이것은 헬라어로 ‘크라오카조’라는 말인데, ‘부르짖지 아니한다’는 거야.
목소리를 막 웅변식으로 하지 않는다는 거야.
소리를 내어서 떠들어대지 아니한다.
그래서 소리를 떠들어대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더라.
예수님 하시는 것은 예수님은 조용히 일하시는 분이예요.
우리는 별로 일도 안 하면서 나팔만 세게 불어서 추태를 부리는데, 예수님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항상 그저 다투지도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여서 떠들지도 아니하며 조용히 하기때문에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더라..
이번 204회 집회에는 부인도 삐딱하고 남편은 교회에 발도 안 대어본 사람인데, 성경의 성자도 모르는 사람이 왔어요.
그래서 왜 교회를 남편이 싫어하느냐 하면, 교회가 시끄럽다는 거예요.
시끄러워서 도저히 가기 싫어서 그랬는데, 에스라하우스는 참 조용하더래요.
하여튼 그 부인이 얼마나 공을 들여가지고 한번 모셔왔는데, 그 부인도 교회 안 다닌지 3년 되고, 십일조는 떼어 먹는 게 자기 권리라고 생각하고..
하여튼 요란하게 그렇게 하는 것을 보다가, 이번에 와서 너무 조용하게 그렇게 하는데, 남편이 중간에 눈물이 뚝뚝 흘렸다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 듣는 중에..
그래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노목사 생각과 자기 생각이 똑같다.
나도 교회에 항상 부정적인 것을 봐서 그래서 내가 안 나갈려고 한 것이다. 그 얘기를 하는 거야.
홈페이지에 장문의 글이 참가후 간증 방에 올라와 있어요.
그런 분도 있고 어떤 가정은 엄마와 아들이 와서 앉았는데, 아들이 조그마한 아들이 ‘엄마 왜 노목사님 얘기는 우리 목사님과 반대냐’ 하고 자꾸 묻더라는 거야.
부인은 굉장히 감동을 받고 있는데, 아들이 자꾸 왜 우리 목사님과 반대로 말하고 있느냐고 자꾸 묻는다고..
그런 얘기가 올라와 있어요.
우리가 거꾸로 많이 해요.
모름지기 교회는 조용하고 경건해야 되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많은 사람이 교회에 왔다가 발을 돌리는 거예요.
아무 생각없이 시끄럽게 그러니까..
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여러분 이스라엘 나라를 보면 도저히 차마볼 수 없을만큼 그런 상한 갈대인데, 그래도 꺾지않고..
지리산에 가서 보면 산청에 가서 보면, 성도수가 다섯명도 있고 열명도 있고 열다섯명도 있고 그래..
세상 단체 같으면 벌써 끝장났을 텐데, 그래도 꺾지 않고 한두 사람 남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고, 그래도 거기에 천사도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시고 그런 거예요.
제가 사천에 77년도에 갔을 때 온 동네에서 예배당이 제일 형편 없었어요.
모든 집집마다 전기가 다 들어왔는데 예배당만 전기가 안 들어오고..
거기 할머니 둘만 있었어. 둘다 글도 몰라요.
‘아무개 할매 기도하소. 사도신경 합시다.’ 하면 더 할게 없어.
찬송은 둘이 하면 2부고 셋이 하면 3부고..
가사가 달라도 곡이 똑같고..
그렇게 하다가 참 힘이 없죠.
세상에 어떻게 그게 교회가 유지가 되겠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할머니 둘이 엎드려 기도하니까 그것을 안타까이 여겨서 저같은 사람을 거기 보낸거야.
가서 예배당도 짓고 사택도 짓고 그렇게 했었는데, 그런 것을 보면서 세상에 교회라는 게 참 저래가지고 어떻게 유지 되겠는가 싶어도 하나님은 그것을 귀히 보는 거예요.
땅에 있는 성도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곳에 나도 그들중에 함께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적은 무리여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소수의 무리가 모여도 우리가 무시하면 안 돼요.
다섯명 열명 그게 교회냐?
예수님께 물어봐요.
두 세 사람이 모인 그 곳에 내가 그들 중에 함께 한다는 거예요.
정말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라도 끄지 않습니다.
21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사야에서 그런 예언이 있었는데, 42장 1절에서 4절까지 있는 말씀이죠.
22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세상에 귀신들려가지고 눈이 멀고 , 그 다음에,
..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귀신 들려가지고 눈이 멀고 벙어리 된 사람이 있어요.
우리가 갓 믿을 때 제가 막 믿을 때, 지리산에 가면 삼장면 유평리라는 데가 있어요.
우리 성도님들과 같이 갔었죠?
거기에 유평교회라는 데가 있는데, 그 때 거기 집이 네 집인가 있었는데, 네 집 다 믿는 동네야.
그러니까 한국에서 복음화 100%인 동네죠.
그런데 거기에 11년 된 누운 병자가 있었요.
앉은뱅이가 아니고 일어나서 앉지도 못하고 누워서 삶을 사는 누운뱅이가 있었어요.
서성재라고 하는데, 누워서 머리쪽은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몸쪽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말라가지고..
힘이 없어요. 일어나지 못해요.
그 교회 어떤 장로님이 와서 집회를 하는 거예요.
장로님이 딱 성경학교 2년 한 것 외에는 신학을 한 분이 아니고 학벌이 좋은 게 아닌데, 믿음의 은사가 있었어요.
진짜 믿음의 은사가 있었어요.
그 네 가정 다해봐야 둘씩이면 8명이고, 한 10명 정도 앉혀놓고 집회를 하는 거야. 부흥회를 하는 거야.
그런데 그 누운뱅이도 은혜 받을려고 강대상 앞에 눕혀놨어.
건방진 콩나물 누워서 큰다더니.. 누워서 듣는 거예요.
그런데 머리가 크니까 듣는 귀가 있고 누워서도 동네 미싱도 고치고 라디오도 고치고 그래요. 머리가 좋아서..
그래서 듣더니 항상 이분은 믿음을 강조해요. 이 장로님이..
항상 믿음을 강조하는데, 자기가 믿음의 은사가 있으니까..
이 누운뱅이가 머리가 굵어지면서 인정한다하는 것과 믿는다하는 것이 뭐가 다른가 그게 마음에 딱 걸려가지고 질문을 했다는 거야.
장로님 인정하는 것과 나도 성경 인정하고 하나님 계신 것 인정하고, 인정한다..
인정하는 것과 장로님이 말하는 믿는 것이 무엇이 다릅니까?
그렇게 물으니까 장로님이 막 혼을 낸거야.
너 나이가 지금 몇살인데, 인정하는 것과 믿는 것을 구분을 못하느냐고..
인정하는 것은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고, 믿는 것은 행동하는 거야. 번쩍 놀래가지고 자기는 행동 못하잖아요. 아무 것도..
그래가지고 눈을 껌벅껌벅하더니 저녁예배 드리고 그 강사를 보고 누운뱅이가 ‘장로님 제가 예수님 이름으로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일어날 것이 믿어집니다.’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온 교회가 닭살이 돋는 거야. 저게 어떻게 일어나..
일어날게 일어나야지, 11년 동안 누워있던 사람이 어떻게 일어나겠나..
그렇게 했는데, 강사가 ‘그래 너는 예수님 이름으로 일어날 것이다.’ 했는데, 강사도 부담이 되는 거야.
선포는 했는데 안 일어나면 어떡하냐고..
아버지도 부담이 되고 본인도 부담이 되고..
그래서 강사와 서성재 아버지 둘이서 2월달인데, 지리산 계곡에 얼음을 깨고 가서 얼음물에 목욕을 했어요.
하나님께 맑은 정신으로 기도한다고..
그렇게 기도하고는 마지막날 아침에 새벽기도 나와가지고 믿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믿음을 불어넣은 다음에 11년 된 누운뱅이를 보고, ‘성재야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날찌어다’ 그랬어요.
그런데 일어나는 거예요.
일으켜 세워가지고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한쪽발로 무게중심 옮기고 또 한쪽발로 무게중심 옮기고 걸었어요.
나았어요.
나아가지고 온 교회가 울음바다가 되고 그리고 나아가지고 제가 성경학교 입학할려고 갔을 때 이 분도 입학할려고 왔어요. 서성재가..
입학할려고 왔는데 나는 성경학교가 최고인줄 알고 입학을 했는데, 이 사람은 들은 게 많아 가지고 아이고 학교가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딴데로 간다고 고신대학에 갔어요.
고신측 목사가 되었을 겁니다.
나이가 저가 몇살 아래인데 목사가 되었어요. 그 누운뱅이가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그냥 고개만 끄떡 끄떡 아멘 아멘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거예요. 행동하는 것.. 일어나는 거야.
누운뱅이가 일어나는 거야. 앉은뱅이가 아니라.
그래서 귀신들어가지고 눈멀기도 하고 귀신들어서 벙어리가 되기도 하고 귀신들어서 누운뱅이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꼬부라진 귀신들이 들어가니까 사람이 꼬부라져버려요.
귀신 나가버리니까 꼬부라진 것이 펴지는 거야.
오늘 오후에 귀신에 대해서 특강을 할텐데, 혹시 여러분 중에 귀신이 있으면 귀신 쫓겨나고 자유하기를 바랍니다.
더러 들어있어요.
내가 이렇게 말할 때 뭐 있겠어? 그런 사람에게 있어요. 대개..
삐딱한 소리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귀신이 들어 있어요.
조금이라도 교회오면서 궁시렁 궁시렁 한다든지 이런 사람에게 있어요.
그런 것은 뭐가 있느냐? 궁시렁 거리는 귀신이 들어 있어요.
꼬부라진 귀신도 있고 눈먼 귀신도 있고 귀머거리된 귀신도 있고 벙어리된 귀신도 있고..
그래서,
..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다윗의 자손, 이것은 성경 한번 찾아볼까요.
예레미야 33장 펴 보세요. 33장 22절 보세요.
[예레미야 33장]
22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라
23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4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 택하신 두 족속을 버리셨다 한 것을 네가 생각지 아니하느냐 그들이 내 백성을 멸시하여 자기들 앞에서 나라로 인정치 아니하도다
2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주야의 약정이 서지 아니할 수 있다든지 천지의 규례가 정한 대로 되지 아니할 수 있다 할진대
26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려서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 된 자로 돌아오게 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바벨론에서 포로가 돌아올 것도 확실하고 그 다윗의 자손을 보내가지고 그들을 구원하신다. 메시야 예언이 그들에게 다윗의 자손이 와가지고 어떻게 한다.
다윗이 죽은지 오랜 후에 예레미야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거든요.
다윗이 죽은 후에 500여년 후에 지난 후에 예레미야가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다윗의 자손..
그리고 다윗의 자손이라는 이 말을 유대인들이 메시야의 대명사로 인식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벙어리가 말하고 하는 것 보더니,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이렇게 일반 서민들 보통 별로 지식없는 사람들은 눈이 단순해가지고, ‘아 이게 바로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이렇게 하는데,
쬐끔 어설프게 쬐끔 공부한 것들이 뭐라고 하느냐?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영광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에게 돌리는 거야.
예수님이 하신 좋은 일에 대해서 그 영광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에게 돌리는 거야. 이 사람들이..
지금도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은혜와 진리에 바로 접하게 되는데, 조금 들어있으면 걸림돌이 되는 거야.
조심해야 돼요.
우리 경상도 속담에 선무당이 집안 망친다고..
어설프게 해가지고 쬐끔 아는 것이 교만의 재료가 되어가지고 진짜 문제예요.
알려면 똑바로 알아야지 어설프게 알면 안 돼요.
25절,
25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고불변의 진리죠.
예수님이 이렇게 말하는데, 우리 동양의 격언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그런 말이 있죠.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형통하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교회도 화목해야 일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주변에 보면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워요.
진짜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싸웁니다. 자기가 절대 옳대. 자기가.. 앞으로 우리 그런 것 하지 맙시다. 별것도 아닌 것을 쩨쩨한 것을 가지고 더 큰 일 제쳐놓고 시시하고 쩨쩨한 것 가지고 싸워서 반목하고 그래서 또 패가 갈라져서 한패는 또 1층에서 예배하고 한패는 2층에서 예배하고 저주하고 그래봐..
끔찍한 일이예요.
스스로 분쟁하는 집이나 교회나 나라나 서지 못한다는 거예요.
26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귀신 쫓아내는 것은 유대인들도 더러 했던 거예요. 그게..
..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굉장한 얘기죠.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강한 자’는 마귀죠.
..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예수님께서 딱 한마디로,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중간 입장이 없습니다.
예수님 편이든지 아니면 마귀편이지, 중간입장은 없는 거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이 있어요.
여기 33절이 키인데요,
33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이 하는 행실, 예수님이 하는 행동의 열매를 보면 나쁜 게 있어요? 없어요?
귀신 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 고친 것 좋은 일이예요? 나쁜 일이예요?
한편 손 마른 사람 낫게 한 것 좋은 일이죠.
예수님 속에 좋은 영 성령이 있으니까 좋은 일 하는 것 아녜요?
그러니까 좋은 열매를 보면서도 나쁜 나무라고 말해 봐. 잘못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지금 충분히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성령이 하신 일이다 하는 것을 인정할 만한데도 인정하지 않고 이것을 다 훼방하고 비방하고 좋은 일 했는데, 그 좋은 일을 갖다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에게 돌려버리니까 성령 훼방죄에 걸리는 거야.
그래서 이 바리새인들이 십일조 땡전하나 안 떼어먹고 다하고 안식일 철저하게 지키는데, 쩨쩨한 것을 가지고 시비하면서 자기 눈에 뭐가 씌웠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악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까지 악하게 보면서 이렇게 못되게 구는 거예요.
34절,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음에 가득한 것.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여러분 보세요. 예수님 말씀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는 거야.
누가 언제 몇번 들어도 천번 만번 항상 옳은 거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그러니까 우리가 일생 말한 것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나..
우리가 일생 말한 것을 다 모아가지고 이게 모자이크를 하면 내 영혼이 나오는 거예요.
내 영혼의 색깔과 내 영혼의 성향과 내 모든 것이 내 말로서 내 자신의 인생을 만드는 거야.
그것 보면 안다는 거야.
그러니까,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우리가 일생동안 무슨 말을 하고 사는지 생각을 해봐요.
그래서 말, 말 이전에 조심할 것은 생각이죠.
제가 가끔 말씀드렸죠.
음식도 가려서 먹어야지만 말도 가려서 해야 되고, 생각도 가려서 해야 돼요.
우리 마음속에 무슨 생각들이 떨어지는지..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많이 봤잖습니까? 그렇죠?
또 무슨 표적을 구해..
예수님 짜증내시는 거야. 그렇죠?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여러분 악한 사람들 음란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악을 즐기고 죄를 즐기고 하는데, 진짜 하나님의 종이라면 우리가 회개하든지 말든지 앞으로 고려해볼텐데, 진짜 맞나? 어지간하면 죄에서 안 빠져나올려고 자꾸 기적을 요구하는 거야.
예수님 말씀에 꼭 악하고 음란한 것들이 기적을 요구한다는 거야.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안 보여 줘. 뭘 보여주느냐?
선지자 요나의 표적이죠.
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하시면서, 바로 요나 이야기까지 연결되어가지고,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아시는 대로 요나의 전도가 개떡같이 한건데, 그 니느웨성이 여러 도시가 연결되어가지고 길이가 50km되니까 큰 도시죠.
큰 길로 한 바퀴 돌아도 사흘은 해야 되는데, 하기 싫어서 하루 해놓고 제발 알아듣지 못하고 회개하지 말고 성이 무너져라. 그런 심보인데, 요나의 전도를 듣고도 니느웨 사람들 회개했다는 거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지금 여기 와 있어.. 여러분 예수님께서 요나보다 더 큰 이가 맞죠?
그런데 너희는 지금 회개 안하는 것 아니냐?
요나가 무슨 기적을 보였어요? 안 보였어요?
하나도 보인 게 없어..
요나가 무슨 산상보훈 같은 설교 한 적도 없고, 개떡같이 하루밖에 안 했는데,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썅..’ 하면서.
알아들으면 회개하니까..
그렇게 무성의하게 개떡같이 했는데, 이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듣고 임금까지 조복을 벗고 삼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금식을, 동물들과 가축들까지 금식하면서 회개했다는 것 아니냐..
예수님 생각할 때 하나님 보실 때 너무 귀엽고 기특한 거야.
그래서 나중에 그 아시는 대로 그 니느웨 사람들 불러다가, ‘얘들아 니느웨 사람들아, 우리 애들 사마리아 사람들 잡아다가 회개 좀 가르쳐라. 회개를..’
주전 721년에 니느웨 사람들이 와서 사마리아 사람들 몽땅 다 잡아가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예수님이 그것을 못 잊고 있는 거야.
요나가 그렇게 성의없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회개했던 니느웨 사람들..
또 42절,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땅끝도 한반도가 아니고, 지금 아라비아 반도 끄트머리야.
그래도 그 사막길을 교통도 불편한데, 아마 그 거리가 여기서 북경가는 것만큼 될거거든..
그런데 낙타나 의지해가지고 그렇게 먼 길을 왔다는 거야.
진리를 찾아서..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그 먼 길을 왔다는데,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있는데, 너희가 안 듣는 것 아니냐?
그래서 심판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서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
여러분 우리 샤론교회는 가만히 보니까 대단한 분들이 많아요.
세상에 부산에서 오고 경주에서 오고 울산에서 오고 광양에서 오고 진주에서 오고..
무슨 교회가 이런 교회가 있어요?
좀 겁나요.
내가 가끔 생각하기를 ‘야 나 같으면 내가 집사 때 아니면 성도일 때 진리를 찾아서 그 먼길을 가겠는가..’
이분들이 나보다 틀림없이 나를 심판할게 아닌가.. 먼데서 왔다고..
나보다 더 열심 있는 것 같아..
남방 여왕이 그 먼데서 온 것 때문에 하나님이 못 잊어하는 거야.
솔로몬 같은 사람은 말을 들으려고 그 먼길을 왔다는 거야.
왕왕보면 먼데 사람이 일찍오고 더 열심이죠.
가까운 사람은 종치고 나서 집에서 출발하고..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44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이 악한 세대, 이 악한 세대가 예루살렘 유대인들 세대가 더 악한 세대예요.
여러분 제가 봐도 예수님을 믿다가 교회에 다니다가 안 믿고 삐어져 나간 사람들이 더 악하게 되는 수가 많아요.
그런 사람 더러 있죠.
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자꾸 예수님을 집으로 데려갈려고 하죠.
왜 이상한 사람들과 쌓여서 다니는가..
자주 예수님을 빼내어가지고 집으로 모셔갈려고 와 있습니다.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이것은 육신적 혈연적 관계보다 영적인 관계,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그것을 즐거워하면서 행하는 자야말로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고 천국의 가족이라는 겁니다.
혈연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이라도 혈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 진리에 연합된 사람이 더 소중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고, 예수님 말씀을 가만히 들어보세요.
얼마나 옳은지.
언제나 옳고 2000년 전에도 옳고 앞으로 2000년 후에도 예수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진리 편에 예수님 안에 진리편에 서야지, 꼭 삐딱하게 해가지고 바리새인들부터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사람을 정죄하고 그런 대열에 서 있으면 복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복있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특별히 그보다 율법보다 훨씬 더 수준 높은 신약에 있는 예수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고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주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 될 줄 믿습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회당에 갔던 일들과, 또 예수님께서 섬기는 자세 곧 다투지도 아니하고 들레지도 아니하며 길에서도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지만,
항상 좋은 일 하시고 선한 일 하시고 그리고 또 자기를 드러내지 아니하시고 좋은 열매를 맺히는데도, 그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제자를 정죄하고 시비를 걸고 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하나님 섬기고 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섬길 것인지 말씀을 통해서 잘 배워서, 주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