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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天上)의 향기 439(치사환원(馳巳還苑))-13
생문(生門)과 사문(死門)을 모두 폐쇄하자 독인(毒人)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궁주는 꾸역꾸역 모여들을 독인(毒人)들 중에서 총관을 찾았다.
“궁주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자네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일단 인원부터 점검해봐.”
“알겠습니다.”
총관이 백장(百將)들을 찾아 인원점검을 맡긴 다음 궁주를 다시 찾았다.
“갑자기 환상(幻想)들이 사라지고 흩어졌던 수하(手下)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나도 모르겠다. 혹시 진에 대해 아는 사람 없어.”
궁주의 물음에 다들 대답이 없다. 평생 독물(毒物)들을 조련(調練)하고 독공(毒功)을 익히는데 집중하다 보니 다른 것을 익힐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 또 사실 진이라는 것은 우주만물의 생성과 질서를 연구한 주역(周易)을 토대로 완성된 학문으로 다방면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밀림 깊숙이 외부와 차단된 흑독애 독인(毒人)들이 접해보기나 했겠는가?
“젠장! 아무도 모르는 모양이군. 독희! 독희 없어.”
궁주의 부름에 독희가 달려왔다.
“부르셨어요.”
“몽몽이가 보이지 않는다. 몽몽이를 찾아봐라.”
“예! 알았어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백장(百將)들이 인원점검을 끝내고 총관에게 보고했다. 일천이 넘던 독인(毒人)들 중에서 현재 남은 인원은 팔백이 조금 넘었다. 연무군과의 전투에서 삼백에 가까운 독인(毒人)들이 죽거나 실종된 것이다.
“궁주님! 몽몽아가씨가 보이지 않습니다.”
“뭐야? 설마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호위하던 놈들 말에 의하면 안개가 피어오르기 전까지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애가 어딜 갔다는 거냐?”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정신을 잃고 쓰려져 있을 수도 있어요.”
“젠장! 각자 흩어져 찾아봐!”
궁주의 지시에도 독인(毒人)들이 서로 눈치만 본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안개가 자욱하며 한걸음만 잘못 디뎌도 환상(幻想)에 빠지는 곳인데 각자 흩어져 찾으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풍운이 몇 개의 돌을 던졌다.
“어~ 이건 또 뭐야. 으악~ 독나방이다.”
뒤쪽에 있던 독인(毒人)들이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지른다.
“뭐야. 왜 그래. 젠장! 또 환상이야.”
옆에 있던 독인(毒人)들이 환상(幻想)에 빠진 동료들을 끌어내려는데, 또 다른 환상(幻想)이 펼쳐진다. 뒤쪽에서부터 휴문(休門)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궁주님! 진이 또 변화하고 있습니다.”
“젠장! 뭘 알아야 대처를 하지.”
총관의 보고에 궁주가 발을 구르며 욕한다.
“뒤에서 수하(手下)들이 몰려옵니다. 앞으로 가야 합니다.”
뒤쪽에 있던 독인(毒人)들이 환상(幻想)을 피해 앞에 있는 동료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좁은 휴문(休門)에서 계속 버티다가는 압사(壓死)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앞쪽에 있던 독인(毒人)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놈들이 왜 그래. 멈춰~”
총관과 백장(百將)들이 소리치지만 혼란에 빠진 독인(毒人)들은 상관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 환상(幻想)이 만들어낸 공포에 판단(判斷)이 흐려지고, 군중심리(群衆心理)에 의해 사고(思考)가 단순해서, 그저 살아야겠다는 일념만 남은 모양이다.
“궁주님. 수하(手下)들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총관이 소리치며 달려오다가 뒤에서 밀어붙이는 독인(毒人)들의 물결에 휩쓸려 간다.
“궁주님! 우리도 가야 합니다. 잘못하면 깔려 죽습니다.”
“젠장! 가자.”
독희의 말에 궁주도 어쩔 수 없이 앞서 달려간 독인(毒人)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풍운이 진에서 솟구치자 천려빙백강시들이 함께 날아올라 병풍처럼 늘어선다. 그들은 평지를 걷는 것처럼 길게 연길된 진을 따라 달리고 있는 독인(毒人)들의 머리 위를 날아갔다. 멀리 사인곡 귀왕동과 연결된 비밀 통로 앞에 사인마도를 비롯한 생강시들이 반원을 그리고 독인(毒人)들을 기다리고 있다.
선두(先頭)로 달려가던 독인(毒人)이 눈을 가리며 멈칫하자 뒤따라오던 동료들이 충돌하며 바닥을 구리고, 뒤이어 따라온 독인(毒人)들이 엎어지며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아버님! 바로 공격할까요?”
“기다려. 태상이 신호를 보내면 그때 공격한다.”
소하가 사황홀을 흔들며 명령하자 강시들이 독인(毒人)들이 쏟아져 나오는 입구를 제외하고 거대한 원을 만들었다.
“눈 부셔.”
안개가 자욱한 진을 빠져나온 독인(毒人)들이 강렬한 햇빛에 눈을 가린다.
“저........저놈들은 뭐야.”
빛에 익숙해진 독인(毒人)들이 주변을 돌아보다가 고풍스러운 옷을 걸친 노인들을 발견했다. 하나 같이 표정이 없고, 눈빛이 멍하다. 저들은 누굴까? 독인(毒人)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끼리끼리 모여들었다. 진에서 독인(毒人)들이 절반이상 빠져나가자 풍운이 신호를 보냈다.
“차르르르~”
“독인(毒人)들을 죽어라.”
소하의 명령이 떨어지자 멍하던 생강시들의 눈빛에 생기가 돌며 독인(毒人)들을 향해 돌진(突進)한다.
“막아. 노인들을 막아라.”
생강시들의 공격에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던 독인(毒人)들이 힘을 합쳐 맞받아친다.
“펑~ 펑~”
“크윽~”
독인(毒人)들이 주르륵~ 밀려가며 피를 토하고, 독(毒)과 피를 맛본 강시들이 번개처럼 달려 붙어 목덜미를 물어뜯는 것과 동시에 양팔을 잡아 뽑았다.
“푸하하~”
검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자 강시들의 눈빛이 붉게 물들고, 녹슨 검(劍)처럼 뻣뻣하던 관절들이 풀리며 일류고수로 변해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독인(毒人)들은 범접(犯接)하기 조차 힘든 존재였는데 독(毒)과 피를 주식(主食)으로 삼는 강시들에겐 맛있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쉽게 말해 강시들과 독인(毒人)들 사이에 천적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순식간에 찢겨진 팔다리가 날아다니고, 검은 피가 냇물을 이룬다.
“이놈들 죽어라.”
궁주가 다가오는 강시를 향해 독장(毒掌)을 뿌렸다.
“펑~”
어깨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과 함께 핏물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끄어억~”
귀청을 울리는 괴성과 함께 날카로운 손톱이 번쩍거리는 강시의 손을 날아온다. 호랑이처럼 엎드려 공격을 피한 궁주가 강시의 비중(목), 단중(가슴), 단전(아랫배)를 연속으로 강타했다.
“쿵~ 쿵~ 쿵~”
“꾸아아악~”
혈도를 강타 당한 강시가 몇 걸음 물려났다가 괴성을 지르며 다시 공격한다. 3군데 사혈(死血)을 공격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놈들도 인간이 아니다.
“이놈~ 물려라.”
“깡~”
총관이 달려와 강시의 머리를 도(刀)로 내리쳤는데, 도(刀)가 튕겨 나온다. 총관이 다시 강시의 허리와 다리를 후려치고, 강시가 비틀거리자 궁주와 함께 물려났다.
“궁주님! 이놈들은 강시가 분명합니다.”
“뭐라고 강시라고? 배화교에서 강시 같은 것은 없다고 했잖아?”
“우리가 속았습니다. 보세요. 검(劍)이 튕겨 나오고 독(毒)을 처먹으면 오히려 힘을 내고 있습니다. 강시가 아니라면 지금 상황이 말이 되질 않습니다.”
“젠장!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
“도망쳐야 합니다. 강시는 우리 독인(毒人)들의 천적(天敵)입니다.”
“주위가 모두 포위됐는데 어디로 도망친단 말이냐?”
궁주의 말에 주위를 둘려보니 팔백이 넘던 독인(毒人)들 중에서 절반이상이 처참하게 찢겨졌고, 그나마 살아남은 독인(毒人)들을 가운데로 몰아넣고 아귀(餓鬼)같은 강시들이 차츰차츰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다. 그것뿐이 아니다. 하늘에는 수백의 인간박쥐들이 날고 있고, 멀리 번쩍이는 갑옷으로 무장한 철기군이 대기하고 있다. 어디 한군데 도망칠 구멍이 없는 것이다.
“항복해야 합니다.”
“방금 뭐라고 했어. 항복?”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천향선궁이 사사천교 따위에게 항복하란 말이냐?”
“그게 아니면 모두 죽습니다.”
“궁주님! 살려주세요.”
총관과 궁주가 떠들고 있는 사이에 강시에게 붙잡힌 독희가 애처롭게 소리쳤다.
“독희! 총관! 독희를········!!”
독희의 아랫배에 손을 쑤셔 박은 강시가 다른 손으로 목을 붙잡고 좌우로 벌리자 어깨에서 머리가 통째로 뽑히고, 내장이 쏟아지며 검은 피가 허공을 날린다.
“궁주님! 시간이 없습니다. 이러다가 다 죽습니다.”
허공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풍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팔백이 넘던 독인(毒人)들 중에서 육백이상이 강시들의 먹잇감이 되었고, 이제 남은 인원은 일백이 조금 넘는다. 더 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하다. 풍운이 소하일행 겉으로 사뿐히 착지했다.
“오셨어요.”
“장인어른 그만 물려나라고 하시죠.”
소하에게 손짓을 보낸 풍운이 사인마도에게 말했다.
“그 꼬맹이와의 약속 때문인가? 아직 궁주는 멀쩡하네.”
“궁주도 궁주지만 더 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합니다.”
“저들을 그냥 보내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아야 하네.”
“저들을 모두 죽인다하여 흑독애의 씨가 마르겠습니다. 또한 저들도 누군가의 아들이며, 아버지들입니다. 배화교의 꼬임에 넘어가 중원을 어지럽힌 죄는 충분히 받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만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사인마도가 잠시 풍운의 얼굴을 바라본다.
“은혜를 베풀라. 저놈들을 살려주면 얌전히 돌아갈까? 죄 없는 양민들이 또 다시 희생당하지 않을까?”
“강시들을 물려주시면 제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참~ 자네는 다 좋은데, 마음이 너무 여려. 교주. 그만 강시들을 물리시게.”
사인마도의 허락이 떨어지자 소하가 사황홀을 흔들었다.
“물려나라.”
소하의 명령에 피의 향연(饗宴)을 즐기던 강시들이 하나 둘씩 물려나는데, 달콤한(?) 먹이의 유혹(誘惑)을 떨치지 못한 몇몇 강시들이 사황홀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풍운이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강시들 뒤에 착지함과 동시에 어깨를 잡아 던지니 강시들이 낙엽처럼 날아간다.
“천려빙백강시! 생강시들을 막으세요.”
풍운의 명령에 천려빙백강시들이 독인(毒人)들을 사냥하고 있는 강시들을 향해 장(掌)을 뿌렸다.
“펑~ 펑~ 펑~”
“크억~”
생강시들이 비명을 지르며 독인(毒人)들로부터 물려나자 천려빙백강시들이 허공에 뜬 상태로 앞을 가로 막는다.
“모두들 물려나요.”
소하가 사황홀을 흔들며 다시 명령하자 잠시 반항했던 강시들이 물려나고, 이제 공터에는 처참하게 찢겨진 육신(肉身)들과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일백 정도의 독인(毒人)들만 남게 되었다. 풍운이 천려빙백강시들만 대동하고 독인(毒人)들 앞으로 나섰다.
“궁주가 누구죠?”
풍운의 말에 독인(毒人)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총관과 함께 있는 궁주를 바라본다.
“할 말이 있습니다. 나오세요.”
궁주의 표정이 복잡하다. 살육(殺戮)의 축제를 벌이던 강시들이 물려가고 마수마랑이 나타났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궁주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앞으로 나섰다.
“할 말이 뭔가?”
“항복하세요. 그럼 여러분을 살려드리겠습니다.”
“항복하면 살려주겠다. 그 말을 어떻게 믿나?”
“제가 말리지 않았으면 여러분 모두 죽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우릴 살려줄 이유가 없지 않는가?”
“몽몽소저에게 여러분이 항복하면 살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아이를 자네가 어떻게 알고 있지? 아니 그것보다 그 아이 지금 살아있나?”
“제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자네가 어떻게?”
“독광랑과 괴물로 변한 혁린무와의 대결에서 부상을 당해 환상연무대진에 숨어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독해담의 독(毒)! 지독하더군요. 만독불침인데도 불구하고 온몸에 독(毒)이 퍼져 치료가 쉽지 않았는데, 몽몽과 흑아가 나타나 만독신공을 알려주었습니다.”
“만독신공! 설마 그걸 익혔단 말인가?”
독해담의 독(毒)은 만독(萬毒)의 정화(精華)로 전설의 명약(名藥)이나 만독신공과 같은 신공을 익히지 않으면 해독자체가 불가능하며, 보통 독공(毒功)을 익히게 되면 피부나 눈동자의 색이 변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 풍운의 겉모습을 보면 독(毒)에 중독은커녕 독공(毒功)을 익힌 흔적조차 없다. 어떻게 된 것일까? 몽몽을 만났다는 것도 의심스럽고, 만독신공을 익혔다는 것은 더더욱 믿을 수 없다.
“제 말을 믿지 못하시는 군요. 그럼! 이걸 보여 드리면 믿을까요.”
풍운이 차크라에 잠든 독기(毒氣)를 끓어 올려 손을 내밀자 녹색 기(氣)가 몽실몽실 피어올라 주먹만 한 구슬이 되었다. 정령이 알려준 건곤일장을 응용하여 독기구(毒氣毬)를 만든 것이다.
“피우”
“파시시시시~”
풍운의 손에서 날아오른 독기구(毒氣毬)가 주변에 있던 바위에 달라붙더니 순식간에 작은 구멍을 뚫고 빠져나와 손으로 돌아온다. 궁주는 신기에 가까운 풍운의 무공을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신공들은 특정 성질의 기(氣)를 수련하여 몸에 축척한 다음 신체부위나 객체에 전달하여 그 힘을 표출하게 된다. 즉 기(氣)란 형태가 없고(無形), 냄새가 없으며(無臭), 색이 없다(無色). 하지만 신공의 깊이가 높아져 절정(絶頂)에 이르게 되면 무형의 기를 유형화하는 것이 가능한데 지금 풍운이 보여주고 있는 만독신공은 최소 십성을 넘어 절정에 임박한 이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서, 설마 독중지성!”
“독중지성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은 가능합니다.”
풍운이 독기구(毒氣毬)로 땅바닥을 때리자 대지(大地)가 검게 물들며 주변에 있던 생물들이 녹아내리고, 풍운이 다시 독기(毒氣)를 모으자 검게 죽어가던 대지가 본래의 색으로 돌아온다. 독해담의 독(毒)을 내공으로 승화(昇華)시킨 것도 모자라 단지 독기(毒氣)만으로 대지(大地)를 죽이고 살리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궁주는 너무나 어이없는 현실에 머리가 멍해졌다. 평생을 만독신공을 익히는데 받쳤지만 구성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새파란 놈은 하루 만에 십성을 넘어 독중지성의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풍운이 독기(毒氣)를 거두고 다시 묻자 궁주가 끄덕거린다.
“제가 할 말은 다했습니다. 이제 선택은 궁주님께서 하십시오.”
궁주가 머리를 흔들고 현실로 돌아왔다.
“항복하면 살려주겠다고 했나?”
“몽몽과 그리 약속했습니다.”
“자네는 그렇다고 치고, 저들이 우릴 용서해 줄까?”
궁주가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소하일행을 가르치며 질문한다.
“독인(毒人)들의 태반이 죽고 살아남은 자가 일백을 넘지 않습니다. 선궁이 중원에 들어와 저지른 악행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몇 가지를 약속해 주셔야 합니다.”
“약속? 그건 뭔가?”
“더 이상의 악행(惡行)은 안 됩니다. 또한 배화교와 완전히 단절(斷絶)하고 천향선궁으로 돌아가세요.”
“그건 어렵지 않네. 어차피 백여 명밖에 남지 않았고, 독물(毒物)들도 모두 소진하여 그걸 원상복귀하려면 족히 수십 년은 넘게 걸릴 걸세. 배화교에 협력하고 싶어도 이젠 힘이 없어. 더구나 자네가 있지 않나. 우리 독문(毒門)의 전설인 독중지성이 버티고 있는데, 우리가 감히 중원을 넘보겠는가?”
“좋습니다. 그럼 항복하시는 겁니까?”
풍운의 말에 궁주가 하늘을 보고 잠시 고민했다.
“몽몽이를 볼 수 있겠나?”
“어렵지 않습니다. 잠시 기다리세요. 천려빙백강시들! 제가 없는 동안 독인(毒人)을 지켜주세요.”
풍운이 천려빙백강시들에게 부탁하고 하늘로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점처럼 변했다. 무림에서 가장 빠른 음양비가 펼쳐진 것이다. 잠시 후에 풍운이 몽몽을 안고 나타났다.
“몽몽!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풍운의 가슴에 안겨 있던 몽몽이 폴짝 뛰어내렸다.
“아버지. 미안해. 허락도 없이 만독신공을 알려줘서.”
“아니다. 그깟 만독신공이 본궁 식구들 목숨보다 귀할까? 잘 했다.”
“이제 항복하는 거야.”
“그래. 몽몽이가 살아 있는 것도 확인했으니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하마.”
“아저씨! 들었지. 아버지가 항복했으니 나머지 분들은 살려주는 거지.”
“그래! 약속했으니 지켜야지. 교주님! 이들에게 길을 열어주세요.”
소하가 풍운의 겉으로 왔다.
“운랑이 약속하셨으니 저들을 보내주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저들이 운랑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잠깐만! 아저씨! 우리 아버지와 무슨 약속 했어?”
풍운과 소하의 대화에 몽몽이 끼어들었다.
“배화교와의 단절, 그리고 더 이상의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천향선궁으로 돌아가라고 했어.”
“우리 아버지! 한입으로 두말 하시는 분 아니야. 아버지가 약속했으면 지켜.”
“만일에 지키지 않으면, 또 다시 양민들에게 악행을 저지르면 어떻게 하실 거죠.”
몽몽이 소하를 찌려보다가 숨을 깊이 들이 마신다. 치미는 화를 삭이는 모양이다.
“내가 여기 남을 게. 만일에 우리 선궁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면 내가 대신 벌을 받으면 되잖아.”
“저..........저기. 몽몽아.”
“아버지 걱정하지 마. 아저씨가 몽몽이 지켜줄 거야. 그치 아저씨.”
풍운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몽몽이 소하를 다시 째려본다.
“이제 됐지. 나를 볼모로 잡고 있으면 되잖아.”
“소저가 남을 필요는 없어요. 그냥 저분들의 무공을 파하면 간단해요.”
“소하 그건 너무 잔인하다.”
“몽몽소저를 볼모로 잡고 있는 것보다는 그게 더 확실해요.”
소하가 고집을 부리자 보다 못한 사인마도가 왔다.
“교주. 무인에게 무공을 파하는 것은 죽이는 것보다 잔인한 짓이다. 이 꼬맹이가 애주의 자식이라고 하니, 꼬맹이를 잡아두고 그만 보내주자.”
“아버지. 그건~”
“소하. 장인어른 말씀대로 하자. 내가 약속한 거잖아.”
사인마도에 이어 풍운까지 설득하자 소하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좋아요. 제가 양보할게요. 그런데 저들은 어떻게 돌아가죠. 여기서 운남까지 거리가 얼만데?”
소하의 질문에 풍운이 궁주를 바라본다.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무언의 물음이다.
“여기까지 와서 뭘 더 숨기겠나. 혹시 이런 결과가 있을 것에 대비하여 본궁에 남아 있던 병력을 불렸네. 아마 그들이 달려오고 있을 것이니 그들과 합류하여 돌아가면 되네.”
“지원병을 불렸단 말씀입니까?”
“부르긴 했지. 하지만 여인들과 나이어린 소년들로 구성되어 있네. 한 마디로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서 도망갈 구멍을 마련하려 부른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네.”
“그들이 지금 어디쯤 오고 있죠?”
“아마 광동성쯤에 도착했을 것이네. 우릴 보내 주면 복견성에서 그들과 합류하여 운남으로 돌아가겠네.”
“알겠습니다. 소하 들었지.”
“그래요.”
소하가 사황홀을 흔들어 명령하자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강시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가세요. 시체들은 저희들이 곱게 안장시켜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몽몽이는 언제 보내줄 건가?”
“여러분이 무탈하게 천향선궁에 도착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래! 몽몽이를 잘 부탁하네. 총관! 가자.”
궁주가 몽몽을 돌아보고 먼저 출발하자 총관이 살아남은 독인(毒人)들을 모아 뒤를 따른다. 사사천교와의 전투에서 구 할에 가까운 독인(毒人)들과 수십 년을 키운 독물(毒物)들이 몰살(沒殺)당하고, 궁주가 아끼던 독희도 죽었다. 몽몽은 떠나는 아버지와 아저씨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고마워. 이 은혜 잊지 않을게.”
“몽몽이 먼저 은혜를 베풀었잖아.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
“그래. 나 좀 다시 데려다 줘. 더 이상 못 보겠어.”
흑독애가 떠난 자리에 처참하게 찢겨진 시체들이 뒹굴고 있다.
“소하! 몽몽이 데리고 먼저 갈게.”
“그래요. 저는 정리 좀하고 갈게요. 먼저 가세요.”
풍운은 천려빙백강시들을 대동하고 몽몽과 함께 성으로 돌아갔고, 소하는 생강시들을 다시 귀왕동으로 돌려 보내고 장내를 정리했다.
<< 계속 >>
pc : 길고 길었던 사사천교와 흑독애간의 전투가 종결되었습니다. 끝이 좀 허무하지만.........풍운의 성격상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적(敵)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흑독애도 풍운의 편이 되었으니 이제 남은 세력은 배화교와 포탈랍궁, 홍교, 곤륜정도가 남았습니다. 다음 편에 새로운 부제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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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온정은 남아있구나~~
즐감합니다~~~~~~~~~~~~~~~~~
즐독요
감사 드립니다
재밋게 보고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