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에 소재한 (주)로즈피아는 국내
최대의 장미 생산업체로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사태로 내수 위주의 화훼산업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회생 불능의 위기에 처
하자 재배농가들이 수출로 난관을 뚫어 보
자는 취지에서 설립한 농업회사법인이다.
2000년 8개 농가의 출자로 출범한 로즈피
아는 국내 최초로 공동선별장을 마련해 절
화가공, 규격 공동선별, 공동출하라는 신
개념 영농기법을 도입함으로써 생산성 극
대화로 인한 농가 소득 증대는 물론 우리
화훼산업이 핵심 수출산업으로 성장해 나
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현재는 105개 농가
가 참여하는 큰 조직으로 발전했고, 농림수
산식품부의 고품격 수출브랜드 ‘휘모리’ 인
증도 받아 화훼류 수출을 선도하고 있다.
로즈피아의 정화영 사장은 화훼산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로즈피아를 한국판
알스미어로 육성시킬 꿈에 부풀어 있다.
1987년 이래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회장,
장수화훼영농업인 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과학영농, 유통구조 개선, 수출판로 개척
등과 같은 대안적 농민운동을 전개해 위기
에 처한 농업인들의 자립을 돕느라 바쁜 나
날을 보내고 있다.
정 사장이 로즈피아의 롤모델로 삼은 것
은 화훼산업의 월스트리트라는 애칭이 붙은
네덜란드의 ‘알스미어 꽃 경매장(Aalsmeer
Flower Auction)’과 뉴질랜드 키위 브랜드
‘제스프리’다. “네덜란드는 수출의 20%를 화
훼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 화훼 거
래의 40%를 담당하고 있는 꽃의 나라입니
다. 1912년 소규모 재배농가조합으로 시작
해 현재 3,500여 화훼재배업자의 협동조합
기업으로 성장한 알스미어는 네덜란드 화훼
산업의 핵심으로 전 세계 5,000여 공급자와
1,100여 바이어를 상대로 매일 5만 건이 넘
는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키위 수출의 95%를 담당하며 세계 키위시
장을 장악하고 있는 ‘제스프리’도 우리로서
는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닙니다.
”
정 사장은 공업고등학교 출신으로 숱한고생과 거듭된 실패 끝에 도시 생활을 접고
귀농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여느 농사꾼들처럼 배추, 고추, 오이 등 채
소류를 키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 왕
성한 호기심에 재배, 비료화학, 시설농사,
농산물 유통 등 농업 전반에 대한 책을 모
조리 섭렵하면서 과학영농을 바탕으로 한
화훼산업의 높은 부가가치에 눈을 뜬 그는
장미 재배와 유통에 특화된 로즈피아 구상
을 실행에 옮기기에 이르렀다.
정 사장은 농업강국에 비해 토지이용률
이 현저히 낮은 우리 현실에서는 기술집약
적인 시설농업만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
력을 확보하는 길이라는 신념하에 과학영
농을 실천해 왔으며 단지를 조성해 농업인
들의 교섭력을 강화함으로써 유통구조 개
선에도 앞장섰다. “로즈피아는 재배 과정에
서부터 저온유통시스템을 적용하고 컴퓨
터로 습도, 공기, 햇볕 등의 재배환경을 조
절해 고품질의 장미를 생산함으로써 2002
년 국내 화훼업계 최초로 품질경영인증인
ISO9001과 ISO14000을 획득했습니다.”
한국 화훼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
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2004년부터 한국화훼수출협의회장을 맡
아 전국 화훼 주산지 농업인들을 직접 방문
해 화훼 수출에 대해 토론하고 설득하는 작
업을 해 오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
부부처 및 관계기관과의 폭넓은 협의로 화
훼류 수출 기반을 조성하고 있다.
이 같은 그의 노력 덕분에 재배농들이 화
훼류의 선별 및 포장, 유통 등은 신경 쓰
지 않고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고, 이
는 고품질의 화훼류 출시로 이어져 해외 바
이어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덕분에 로
즈피아 설립 당시 약 50만 달러에 불과했
던 수출액이 2002년 3백만 달러, 2009년
1,000만 달러를 각각 돌파하고 2010년에
는 2,000만 달러를 기록하는 등 매년 최고
수출 실적을 경신해 나가고 있다.
로즈피아는 연간 매출액의 70%를 차지
하는 장미를 중심으로 국화, 백합, 프리지
아 등 화훼류와 파프리카, 토마토, 딸기 등
과채류를 수출하고 있는데, 일본이 수출의
90%를 차지하는 주력 시장이며 러시아, 우
즈베키스탄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해 나가
고 있다. 특히 2004년부터 공을 들여 온 러
시아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일본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은 러
시아 시장은 신선 농산물의 90%가량을 해
외에 의존하고 있는데 물류비 부담을 줄이
고 유럽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지역에 마케팅을 집
중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한국산 장미는 1
송이에 약 5달러에 팔릴 정도로 인기가 매
우 높습니다. 장미 이외에도 국화·백합·
수국·란 같은 화훼류와 토마토·파프리
카·수박·호박 등 과채류, 사과·배 등 과
일류가 수출되고 있으며 지난해 말부터는
우즈베키스탄 시장에도 진출해 장미, 조경
수 등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정 사장은 로즈피아가 2,000만 달러에
달하는 중견 수출업체로 성장하는 과정에
서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무엇보다 수많은 재배농가들이 모인 회사
이니 만큼 이들의 갈등을 조율해 협력에 대
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일이 맘처럼 쉽
지 않았다고 말한다.
로즈피아는 최근 발생한 일본 대지진으
로 타격을 받고 있다. 수출시장이 편중된
탓에 전북 농수산물이 전체 수출의 40%에
달하며 대일 수출 1위인 장미가 당장 영향
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 사장은 “그
간 시장을 다변화하고 생산 품목을 다양화
하는 노력을 경주해 오긴 했는데 일본 사태
가 워낙 심각한 수준이라 수출이 정상을 되
찾으려면 시일이 꽤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
다. 그러나 로즈피아가 한 단계 더 성장하
기 위해 겪어야 할 좋은 경험으로 삼고 있
습니다. 또한 꽃을 사랑하는 일본의 문화
습성이 큰 자연재해가 닥쳤다 해서 쉽게 변
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듯이 이번 위기를 통해 로즈피
아는 한층 더 견실한 조직으로 단련될 것
입니다”라면서 상황을 낙관하고 있다. 로
즈피아는 일본발 비상상황에도 불구하고
농림수산부, 전북도, 전주시의 지원을 받
아 계획대로 오는 5월 기존 300평 규모에
서 1,000평 규모로 공동선별장 시설을 대
폭 확장해 전주로 이전한다.
정 사장은 사람들이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지’ 하는데 실제로 해 보니 농사만큼 힘든
것이 없다고 했다. 농사란 것이 몸으로 때우
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농사만큼 재배
기술, 비료화학, 물리 등 다양한 과학적 요소
가 작용하고 땀을 흘린 만큼 정직하게 보람
을 가져다주는 것도 없다는 것이다. 네덜란
드처럼 작은 나라도 화훼산업의 역사가 천
년이 넘고 매출액이 4조 원에 달할 정도인데
우리 화훼농업도 수출산업으로서 확고한 기
반을 갖춰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것이 소망
이라고 밝혔다. 정 사장은 “일본이 품질 좋은
장미를 생산하면서도 한국에서 장미를 많이
수입하는 이유는 일본 화훼농가가 고령화돼
재배농가 수가 매년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일본의 전철을 우리도 밟는다면 화
훼산업이 핵심 수출산업으로 성장할 수 없
게 됩니다”라면서 농촌 고령화를 막기 위해
서는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여 농가 소득을
도시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이는 것
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지난해 말 20여 년간 우리나
라의 화훼 수출산업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
를 인정받아 제15회 농업인의 날에 금탑산
업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3월에는 지
식경제부,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제신문이
주관하는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으로
도 선정됐다. 그의 꿈을 향한 세계시장으
로의 행보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