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유나와 함께 나들이를
최 화 웅
추석 연휴는 만나고 헤어지며 지나갔다. 연휴 마지막 날에는 가족들이 손녀 유나와 함께 나들이를 했다. 하늘은 높고 산들바람 불어 가을은 더욱 맑고 깨끗했다. 태어난 지 15개월 된 유나가 ‘엄마, 아빠’에 이어 ‘할삐, 할미’를 외치는 동안 몰라보게 자랐다. 유나는 마침내 두 단어를 붙여서 말하기 시작했다. ‘OK'에 ’please'를 붙일 때는 낮은 목소리로 고개까지 다소곳이 숙이며 귀여움을 떤다. 유나만 보고만 있어도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절로 휠링이 된다. 기장 ‘아홉산 숲’으로부터 바닷가 ‘본다빈치 스퀘어’로 나가는 차 중에서 난생 처음으로 ‘엄마 까까’라고 두 단어를 붙여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일찍은 점심을 먹고 첫 행선지로 대나무숲과 금강송 군락지로 알려진 기장 철마 미동마을 뒤 아홉산으로 향했다. 추석을 보낸 연인과 가족 등 많은 사람들이 타고온 차량 행렬이 숲길 따라 행렬을 이루어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었다. 아홉산에는 쭉쭉 뻗은 굵은 왕대 맹종죽 대나무와 일제 강점기 때 금강송이라고 불렀던 우리 최고의 소나무를 뜻하는 황장목 숲길의 풋풋한 모습이었다.
남평 문씨 일족이 9대 400여 년에 걸쳐 가꾸고 지켜온 황장목 숲 속에는 고택 관미헌이 옛 모습 그대로 서서 ‘고사리조차 귀하게 여기라는 자연의 고마움을 일러준다. 철마는 부산 기장군 서쪽 지역으로 철마산(604m)에서 지명이 비롯되었다. 철마산은 이 지역에 홍수가 나자 동해의 용이 올라와 물을 빼주었으나 물이 마르자 용이 움직이지 못하고 쇠로 굳어버렸다는 전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고장이다. 철마는 기장군의 서쪽에 자리 잡았으며 동쪽으로 일광, 서쪽으로 금정구와 양산시 동면과 접하고 남쪽에 해운대와 기장, 북쪽으로 정관신도시와 경계를 이룬다. 철마를 둘러싼 산지가 연봉을 이루며 부드러운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동쪽에 달음산(742m)과 서쪽으로 금정산(802m)이 건너다보이고 북쪽으로는 철마산(418.4m)과 함박산(361.1m), 남쪽으로 계좌산(449m)이 둘러싼 분지다. 북쪽의 정관에서 발원한 수영강이 이곳에서 철마천이라는 이름으로 흐르는 개울가에는 초여름이면 구성진 개구리 울음 속에 들녘을 오가는 농부들의 발자국소리 가득했다.
철마는 모든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보존된 덕분에 옛 모습 그대로고 회동 저수지의 수원으로 상수도보호구역이 유지되었다. 부산에서 유일하게 프르름을 간직한 녹지대 중 하나다. 한우불고기집이 즐비한 웅천리에는 주말마다 인파가 몰리고 기장 5경인 홍연폭포 일대가 절경이다. 인근에는 조선시대 인현왕후의 폐비를 반대했던 이선(李選)이 유배와 지내던 곳이다. 온갖 서러움과 근심을 떨쳐버리는 정자라는 이름의 수리정이 개울을 끼고 자리 잡았다. 구칠리에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이 발견되었으며 영화 ‘군도’를 촬영한 현장이다. 철마의 북서쪽 너머로는 양산과 울산으로 이어지는 제14번 국도가 마을을 관통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유모차에 잠든 유나를 옮겨 태운 채 산길을 올랐다. 초입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유모차가 올라갈 수 있겠냐?”고 물어 보았다. 다들 고개를 저었다. 뒤돌아보며 계단이 많아 힘들 것이라는 걱정을 덧붙였다. 아쉬웠지만 우리는 유나가 더 자라면 다시 오기로 하고 돌아섰다. 숲길 산책을 포기한 뒤 어디로 갈까하고 의견을 모으다 유나를 위해 가까운 기장 해변으로 나가기로 했다.
할아버지도 궁금했던 반고흐 빌리지전이 열리는 본다빈치 스퀘어로 방향을 돌렸다. 거기서는 반고흐 빌리지전이 열려 ‘고흐에게로 가는 길’과 리아가 가 있는 파리의 ‘몽마르뜨르 언덕’ 등 명화와 영상을 접목한 일곱 구역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대한 성과는 작은 일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고 다독였다. 유나의 손을 잡고 천천히 둘러보았다. 전시장 벽면에는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와 함께 그의 그림이 다양한 기법을 뽐내며 전시하고 있었다. 고흐는 “가장 어두운 밤도 언젠가는 끝이 나고 해는 떠오를 것이다.”라는 말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예술”이라는 말이 눈길을 끌었다. ‘반고흐 빌리지전’은 예술과 미디어를 결합한 첨단 디지털 기술로 그림을 재해석한 컨버전스 아트 방식을 선보였다. 컨버전스 아트는 명화와 영상기술을 접목시킨 디지털 아트 분야로 작품에 디자인·영상·음악을 더해 새롭게 구성한 전시 방식으로 관객들이 보다 생동감 있는 작품을 마주할 수 있었다. 프레임에 든 고흐의 자화상이 눈을 깜박이며 윙크를 했다. 유나가 최근에 배워 시작한 윙크를 하는지 번갈아가며 표정을 살폈다.
전시장을 나온 일행은 싱그러운 해풍을 맞으며 같은 건물 위층의 ‘카페 드 220볼트’에 들렀다. 갓 구워낸 빵과 바리스타가 축출한 커피가 향기롭게 구미를 당겼다. 900평에 달하는 넓은 규모에 놓인 테이블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유리창 너머로 동해 바다가 펼쳐진 시원한 전망과 곳곳에 엔틱 가구와 전구 볼트, 그리고 작은 식물원과 가죽공방 공간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몇 차례 함께 갔던 망미동의 F1963 테라로사 카페의 분위기였다. 커피향이 깔린 어둡고 차분한 내부로 들어섰을 때 포근한 기운이 덮쳤다. ‘카페 드 220볼트’의 첫 인상은 전문성이 느껴지고 엔틱한 실내분위기가 주는 중후한 무게감이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매장 전체를 철제와 우드로 꾸민 인테리어가 220볼트만의 특색이었고 텀블러나 머그, 패브릭 가방 등을 판매하는 부스 같은 차원으로 구성된 분위기와 폐공장을 재활용하는 인더스트리얼한 느낌이 역동적이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호주의 리아 가족이 파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부산에서 유나와 함께 고향의 산과 바다를 즐기는 가족나들이를 했다. 감사한 하루였다.
첫댓글 손녀와 즐거운 나들이를 하셨네요... 손녀 사랑이 글 속에서 풍겨나오는 듯 합니다.
추석 잘 지내셨죠?
감사합니다.^^*
유나가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내는 빈 공간을 그렇게 채워주셨네요...
모르긴해도 훗날 유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아주 좋아하는 훌륭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릴적 사랑 받은 기억이 아주 좋은 양분으로 스며들 것도 같습니다.
훈훈한 글들 들려주심에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손녀 덕분에 몸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할삐'라고 부르는 말에 홀딱하고 삽니다.^^*
부산에 살면서도 모르고 안가봤는데 국장님 덕분에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국장님 추석 잘 지내셨는지요.
건강관리 잘 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철머 한우마을 미동고기집 뒷산입니다.
그리 멀지 않아 편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