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9. 16;00
하늘에선 먹구름이 요동을 치고, 북쪽 상공에서 내려온 '된바람'이
앞산의 나무들을 사정없이 뒤흔든다.
줄기가 굵은 나무도, 막 푸른 잎이 돋기 시작하는 작은 나무도 부러질 듯
위태롭게 휘어진다.
기상청에선 비와 강풍을 예고했는데 비는 오지 않고 태풍급 강풍이 북에서
몰려와 온 세상을 강타하자 전국 각지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먹구름을 뚫고 간신히 튀어나온 강한 햇살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오후,
울산에서 산불 진화에 나섰던 헬기 한 대가 추락하여 기장은 구조되었고
부기장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나쁜 소식이 뜬다.
세상이 왜 이리 소란스럽고 시끄러울까.
한동안 뻔뻔·내로남불의 대명사였던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로 세상이 두
조각 나 수많은 국민을 우울하게 만들더니, 이번엔 코로나 바이러스·주식
폭락·마스크 스트레스가 전 국민을 눈물 나게 한다.
매사 능동적이고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인 나도 세상일에 지쳐 가는지
우울해져가며, 산다는 게 점점 흥미가 없어지고 무료(無聊)해진다.
좋은 소식은 가뭄에 콩 나듯이 며칠에 한번 겨우 들어오고,
99.9%는 나쁜 소식만 들리는 세상을 살며 미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지
모르겠다.
맑은 햇살이 깊게 들어와도 마음이 슬프고 우울하다.
나도 우울증이 시작되는 전조(前兆)인가.
슬플 때는 웃거나 편안해질 수 있는 순간이 오지만, 우울증은 생활의 모든
양상에 스며들어 기쁜 일에도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자살 충동과 함께 신체의 통증 증상이 유발한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슬픈 감정이 단거리 선수라면, 우울증은 장거리 선수라는데,
슬픈 느낌이 2주 이상 지속되고 몇 주 혹은 몇 달 이상 지속되면 우울증
이라고 하는 거다.
슬픈 데에는 이유가 있고 우울증에는 이유가 없으며,
슬픈 감정이 많은 사람은 음식을 먹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먹는 데 흥미를 잃거나 불규칙적으로 음식을 먹는다.
슬픔은 유전되지 않고,
우울증은 가족력도 중요하고, 수면장애와 만성질환도 발병의 원인이 되며,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해행위를 하기도 한다는데,
우습게도 슬픔을 치료하는 약은 없어도,
우울증은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s)로 불리는 약이 처방되어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바람이 분다.
잠시 주춤했던 바람이 다시 강해지고,
온 누리에 가득했던 먹구름을 바람이 쫓아내자 하늘은 찬란하게 빛난다.
김범룡은 원곡에서 왔다가 사라지는 게 '바람'이라 했다.
그의 노랫말처럼 날 울려 놓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세상에 내려지고 있는 가혹한 역병(疫病)을 날려 버리고,
주식이건 마스크건 국민과 나의 불안을 말끔히 날려 보내고 사라지는
바람이 되라고 주문을 한다.
국민 대부분이 슬프고 우울해진 세상,
유리창에 우두커니 서서 세상을 뒤흔드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나 스스로
우울증인지 자가진단을 해본다.
2020. 3. 19. 오후
석천 흥만 졸필
첫댓글 요즘 세상은 사람을 슬프게하고 우울하게 하는 일뿐이라 누구나 석천과 같은 감정을 갖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8년 묵언수행과 8년 장좌불와한 성철스님을 생각하며 위안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