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취생 시절의 대학생때 어느 여름날
벌초(伐草)를 하러 고향 선산을 갔다.
5살때 돌아가신 내 엄마의 산소앞에는 패랭이
꽃이 바람을 품어안았고, 뒷쪽에는 개암나무가
야트마하게 소꼽장난을 하고 있네...
엄마~ !!
왜 어린 자식들을 놔두고 먼저 가셨나요? 라는
가슴 아리는 서러운 외침도 점점 약해지는건
망각이라는 조물주의 선물 탓인가보다.
친척중 팔촌형수님 한분이 " 도련님~ 회관에
가서 와루바시 갖고 오세요" 라며 심부름...
터덜터덜 산에서 내려와 쇠젓가락을 한웅큼
갖다주니 형수님은 뻘쭘한 표정으로 "아니
와루바시 갖고 오라고 했는데, 도련님은
대학생이 와루바시도 몰라요 ? "
나는 국수들을 새참으로 먹고 있으니 아무
젓가락이나 갖다주면 될 줄 알았는데...(*_*)
어릴때는 어른들이 쓰던 자부둥, 고뽀, 벤또..
등등도 사실 못 알아 듣기는 했었다.
자칭 대한민국의 인간국보라 했던 무애 양주동
박사도 "기하(幾何)"의 뜻을 몰라 밤을 꼬박
샜다는데 , 난들 와루바시를 갖다주면 어떻고
쇠젓가락을 갖다주면 어떠랴...
올 가을 추석 전후에 고향 선산을 벌초하러 또
가야할텐데, 이번에는 뵈올 분들이 늘었다.
27년만에 본처(本妻)옆으로 돌아와 누우신
아버지와 작년에 그 밑자리에 묻힌 형님도
뵈야겠고, 세분이 저승에서 모두 화해했을까 ?
아~ 그리고 자그마한 개울 건너에 있는 그
팔촌 형수님의 산소앞에도 가서 와루바시와 소주
한병 놓고 와야겠다. 와루바시 잘 갖고왔고
예전 추억이 그립다는 말을 하며 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