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진도에서의 추억
고향 진도에 내려가 열흘동안 지내며 환고향활동 일환으로 전복사업 구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왔다.
내가 직접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고,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전복 치패양식에 성공을 한터위에
그가 새로 진행하려는 일에 크게 공감되는바 있어 도와주는 입장에서 내려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는 차에 천안에서 진도를 구경하고 싶다는 강 길종(처남)님 일행이 내려오시어 진도 문화해설가로
활동중인 이 길삼형제와 진도 곳곳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우선 삼별초로 널리 알려진 용장산성을 지나, 이 순신장군의 명량대첩 전초기지였던 벽파진으로 발길을 향하고,
어둠이 짙어지는 시간이라 삼별초군이 거쳐간 흔적들을 잠시 더듬으며 숙소인 유스호스텔을 찾았다.

이 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ㅡ
비문은 노산 이 은상선생이 쓰셨고, 당대 명필가였던 진도출신 소전 손재형선생의 서체가 빛을 발한다.
비석 좌대인 거북은 천연 암반을 조각하여 그 위에 비를 세운점은 더욱 돋보이는 작품이다.
진도를 찾는 이 많지만 이곳을 잘 몰라 지나치는 분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곳을 가려면 진도대교에서 군내면 둔전리와 새등을 지나 고갯길에서 용장산성를 거쳐 가는길도 있고,
곧바로 벽파진으로 들어가면 된다.









이튿 날 의신면 초사리와 금갑을 지나 여귀산 자락에 있는 탑립마을로...
도로변에는 탑 이야기로 쌓은 돌 탑들이 눈길을 끈다.
바로 인근엔 아리랑마을과 국립남도국악원이 자리하고 있다.



보슬비가 내렸지만 추억 만들기엔 안성마춤이라 해야 할는지....??






남도석성을 찾아서

전에는 성안에 주택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성밖으로 이주시켰다.



세월호사건으로 유명해진 진도 팽목항
아직도 시신을 찾지못한 명단의 프랑카드가 애처러히 걸려있다.
세월호 진실을 인양하라는 건 무슨뜻일까...??
어떤이는 세월호가 국정원소속이라하기도 하고
세월호가 방사능폐기물(3중수소?)을 실어나르는 배였다느니,
살릴수 있었던 목숨들을 해군들이 의도적으로 구출하지 않았다는니 분분한 소리들이 귓전을 스친다.



소치선생 운림산방과 쌍계사를 찾았다.
쌍계사는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던 천년고찰이다.




운림산방과 쌍계사를 돌아보고
진도의 최고 명산 첨찰산을 올랐다.
산 정상에는 기상대가 있어 멀리 제주한라산을 관측하기 좋은 곳이다.
맑은 날씨엔 육안으로 한라산을 볼수도 있다.
날씨 관계로 기상대는 생략하고 뒤켠 산행로를 따라 하산하였는데...
길이 험준하여 마치 지리산이나 설악산쯤 오른 느낌으로 아찔하였다.

이곳이 나의 친구집이다.
이 집이 진도에서 최초로 전복을 양식했던 곳이고,민박집을 했던 집이기도 한데,
내가 진도에 가면 늘상 묵고 지내는 집이기도하다.

집 뒤켠으로 우리가 묵고 지낸 유스호스텔이 쳐다보인다.
때마침 벚꽃이 만개하여 산책하기 딱 알맞은 곳이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해변가와 유스호스텔 주변 산책로를 따라 산책시간을 보냈다.


위 원통은 앞으로 전복을 키워낼 집이라고 해야하나?
우선 시맨트로 아래쪽을 발라 바다밑으로 내려앉도록 준비하였다.
아래 사진은 신비의 바닷길 주차장이 있는곳이다.
이 현장은 내가 어렸을적엔 갈대로 뒤덮인 뻘밭이었다.
짱둥어와 게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고....
지금은 완전 상전벽해로 변해있는곳
이곳 바다엔 해마다 관광객이 수십만명 다녀가는명소가 되었고
전복,낙지등으로 어민들 소득이 풍요로운 어촌이기도 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주!!
댓글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