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이드MLB] 오타니의 ML 도전과 두 명의 선배들2018.01.09 오후 04:34 | 기사원문
해외야구 김형준 MBC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2012년 1월 텍사스 레인저스의 회장 놀란 라이언은 마이크 매덕스 투수코치를 대동하고 다르빗슈 유를 만났다. 텍사스는 15개 팀이 참여한 다르빗슈 포스팅에서 5170만 달러를 적어내 우선 협상권을 확보한 상태였다. 당시 <포트워스 스타 텔레그램> 보도에 따르면 라이언은 다르빗슈의 야구 철학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 라이언을 감탄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다르빗슈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마어마한 식사량을 자랑한 것이다. 음식이 나오는 족족 모두 해치우는 다르빗슈를 보면서 라이언은 성공을 확신했다.
메이저리그 첫 해 기록한 92.8마일(149km/h)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일본에서와 같았던 다르빗슈는 시즌 후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빠른 공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증량에 나섰다. 이듬해 스프링캠프에 나타난 다르빗슈는 날카로운 턱선이 사라져 있었다.
183일 162경기 일정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은 메이저리그에서 구속을 더 늘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르빗슈는 지난해 평균 구속을 94.2마일(152km/h)로 끌어올려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다. 94.2마일은 지난해 규정 이닝 투수 중 17위에 해당되는 기록이었다(크리스 세일 94.4마일, 맥스 슈어저 94.1마일, 클레이튼 커쇼 92.7마일).
다르빗슈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훈련은 아무리 힘들어도 참을 만한다. 그러나 식사는 그렇지 않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어야 한다. 언제나 토할 것 같은 느낌으로 산다. 증량을 위해서는 하루 종일 먹어야 한다."
다르빗슈(31)로부터 증량의 중요성을 귀가 따갑도록 들은 후배가 있다. LA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도전을 하게 된 오타니 쇼헤이(23)다. 놀란 아레나도(콜로라도)에게 트로이 툴로위츠키(토론토)가 있었다면 [관련기사] 오타니에게는 다르빗슈(사진)가 있었다. 
다르빗슈처럼 살이 잘 붙지 않는 체질인 오타니는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몸집을 불리기 위해 노력했다. 오타니는 고등학교 1학년 때 <8개 구단 드래프트 1순위>라는 큰 목표를 위해 64개의 세부 계획이 들어간 '만다라트'를 작성했다. 여기에는 8개의 중간 목표 중 하나인 '스피드 160km/h'를 위한 체중 증가도 들어 있었다.
오타니는 하루 13그릇(아침 세 그릇, 저녁 7그릇)의 밥을 먹으며 고등학교 입학 때 65kg에 불과했던 체중을 3학년 때는 86kg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3학년 고시엔 대회에서 정말로 160km/h 공을 던졌다. 고시엔 신기록이었다.
2016년 1월. 오타니는 생애 처음으로 세자릿수 몸무게(100kg)를 찍었다. 다르빗슈가 도움을 준 식단 덕분이었다. 오타니는 하루 일곱 시간의 훈련을 버티기 위해 하루 일곱끼의 식사를 했다. 여섯끼는 단백질 식단이었다. 시즌 중에도 97kg의 체중을 유지한 오타니는 그 해 포스트시즌에서 일본 프로야구 신기록에 해당되는 시속 165km짜리 공을 던졌다. 
오타니(1994년생)가 태어나기 전인 1990년 드래프트에서 8개 팀의 1순위 지명을 받은 투수가 있었다. 노모 히데오(사진)였다. 노모는 일본 야구 최초로 1억 엔대 계약금을 받고 긴테츠 버팔로즈에 입단했다. 하지만 눈은 이미 메이저리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본 야구 최고의 투수가 된 노모(26)는 1995년 LA 다저스에 입단했다. 계약금은 200만 달러. 다저스가 아마추어 선수들이었던 대런 드라이포트(1993년 2순위)와 박찬호에게 준 계약금은 각각 130만 달러와 120만 달러였다. 일본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신인왕을 따낸 그 해. 노모는 최저 연봉에 해당되는 10만9000달러를 받았다. 이는 당시 엔화로 계산할 경우 980만 엔으로 노모의 1994년 연봉(1억4000만 엔)의 14분의 1에 해당됐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가 2016년 12월에 맺은 새로운 노사협약(CBA)에는 오타니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항이 추가됐다. 해외 리그의 프로 선수로 인정되는 최소 나이를 만 23세에서 25세로 변경한 것이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경우 포스팅과는 별개로 국제 아마추어 선수의 계약금 한도액에 적용을 받으며 최소 연봉으로 시작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타니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2018년에서 2020년으로 미뤄졌다고 생각했다.
2016년 오타니는 다르빗슈의 4년차 연봉과 같은 2억 엔을 받았다. 그 해 닛폰햄 파이터즈는 다르빗슈가 있었던 2006년 이후 처음으로 리그 우승과 재팬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투수로서 140이닝 10승4패 1세이브 1.86(WAR 5.8) 타자로서 22홈런 67타점 7도루(.322 .416 .588 WAR 4.6)를 기록한 오타니는 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경기에서 팀의 1-0 승리를 이끈 1피안타 완봉승을 만들어냈으며 재팬시리즈에서는 2연패 후 4연승의 발판이 된 3차전 끝내기안타를 때려냈다.
오타니는 일본 야구 최고의 스타가 됐다. 야구 선수로는 2013년 다나카 마사히로(라쿠텐) 이후 처음으로 일본 프로스포츠 대상을 수상했으며 삿포로시의 인구가 200만 명이 되지 않는 닛폰햄은 처음으로 연 관중 200만을 돌파했다. 2017년 오타니는 다르빗슈의 5년차 연봉인 2억7000만 엔을 넘어서는 3억5000만 엔에서 3억8000만 엔 사이의 연봉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오타니는 욕심을 내지 않았고 다르빗슈와 같은 대우(2억7000만)에 만족했다.
오타니는 자신의 연봉을 부모에게 일임하고 한 달 10만 엔의 용돈을 받아썼다. 편의점 쇼핑이 유일한 취미이다 보니 그마저도 남기 일쑤였다. 오타니는 2016년 대상 때 자동차를 부상으로 받고도 면허를 따지 않았다. 야구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2년의 기다림 없이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택함으로써 231만5000달러의 계약금과 54만5000달러의 최저 연봉으로 시작하게 됐다. 오타니의 계약금을 2017년 드래프트에 대입하면 1라운드 28순위에 해당된다. 그리고 연봉은 지난 시즌의 5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의 오타니는 (청순한 여자친구가 없는 것을 제외하면) 마치 일본의 야구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다. 과연 오타니는 메이저리그에서 노모(123승109패 4.24 fWAR 27.3)와 다르빗슈(56승42패 3.42 fWAR 19.0)를 넘어 본인의 목표인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할 수 있을까. 누구보다도 극적인 출발을 하게 될 오타니의 시즌도 점점 다가오고 있다. [기사 작성 협조 박정환]
기사제공 김형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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