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장님을 만난때는 2006년도 경이니
이제 5년째입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어서
저와는 한결 각별하게 지내던 터였습니다.
그러던중 제가 근무하던 곳을 떠나는 바람에
어르신과 헤여졌다가
지난해 5월에 실버하우스에 오시면서 다시 만나게 되였습니다.
86세의 나이에
당시 초등학교를 졸업하셨던 터라
늘 자부심이 대단하셨었습니다.
걷는 연습도 참 많이 했었는데
처음엔 서너바뀌만 돌면
더이상 운동 못한다고 차라리 날 죽여~ 하시더니
나중엔 열댓바뀌씩 아지와 돌곤 하셨지요.
뱃살이 많다고 허리 운동도 많이 했었습니다.
남이야 어떻든 말든
자기만 생각하는 마음도 유별나서
저와도 참 많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어르신은 물을 한잔 마셔도 꼭 기도하고 마시며
죽으면 천국에 가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시던 촌장님은 1달전인
2월 7일 입원하셨고 ........................
다니시던 교회인 고암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이 많이 다녀가시기도 했지만
별세전 하루전인 어제는 제천 소망교회 목사님 내외분이 방문하여
함께 기도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위독하시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방문하여
임종전 예배가 필요하던차
찬송가 321장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
요한복음 14장 말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을 읽고
기도중 거칠던 호흡이 가늘어 지고
한두번의 미세한 박동후에 곧 심장이 멎어짐을 느낄수 있었고
기도가 끝난후에는 이미 별세하셨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간호사들도 그렇게 빨리는 임종할줄 몰랐다고 합니다.
이제 평소에 다니시던 고암교회에서 장례절차를 진행하시기에
저의 임무는 여기서 종료가 되였습니다.
저녁을 마치고 어르신들이 침소에 든 것을 확인하고 늦은 시간에 장례예식장에 갔더니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어 보기에도 좋았고
돌석권사님 별세시에는 저 혼자 자리를 지켰는데 촌장님은 외롭지 않아 좋았습니다.
평안한 가운데 기도중에 천국에 입성하신 이범윤 촌장님 ~
이제 예수님이 계시고 고통 없는 천국에 가심을 축하드립니다.
부디 그곳에서 다시 만날때 까지 행복하게 영생하십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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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아침 6:30분에 발인예배가 있었습니다.
8시 부터 있는 장례에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찍 예배를 드렸습니다.
촌장님이 다니시던
고암장로교회 임상재 담임목사님이 집례하셨고 ..................
젊었을당시 쌀 한가마니씩 주고 준비 해 두었다는 영정사진은
지금의 모습과는 퍽이나 다른 모습을 하고 계십니다.
예배후 긴 행렬을 이루고 화장장으로 향합니다.
예전에 돌석권사님을 모셨던 제천 화장장 .....
이곳에서 화장예식을 치를때 목사님은 제게 기도할 기회를 주어
요한복음 14장 말씀을 인용하여 기도하면서
생명을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렸고
좋은 일기 주심에 감사
이제 홀로 남으신 아내 집사님에게도 긍휼을 베출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도우미 2분이 미리 음식을 장만해 두어
함께 식사를 나눈뒤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아내되시는 박집사님은 제 손을 꼭 잡아 주시면서
아들보다 더 낳다고 고맙노라고 하셨고
저 역시 힘 내시고 언제든 도울일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주십사 말씀드리고 인사 나누었습니다.
첫댓글 가시는길 함께 하시는분들이 많아 외롭지 않으셨겠습니다...고인의 명복을 빌며...장로님께서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가족들의 방문이 있었어요~~~ 이천 호국인들을 모신 곳은 예상보다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어서 살아생전 가 보셨다면 더 좋아 하셨을 것을 ~ 문득 떠 오른 촌장님과의 기억에 모두 눈물도 흘렸다가 ~~ 촌장님이 신앙 안에서 평안스럽게 임종 맞음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서로 나누고 ~ 후원금과 진료비 전액과 아내에 대한 고마움까지 넉넉하게 전달하셨습니다. 이젠 우리 모두 촌장님이 거하는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자고 기도했습니다. 유종의 미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듯 싶었습니다. ^^
아 ~ 제가 뵈었던 할아버님이 돌아가셨군요.. 미소가 아름다웠던 분이었는데 .... 고생 많으셨어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