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6] 강정자 (姜禎資) - 말씀따라 모든 사연 뒤로하고
11. 김천 지역장으로 발령받아 - 1 1 1961년 2학기 때였다. 어렵게 등록금을 받아 수강신청일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참아버님께서 대구에 오셨다. 참아버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식구들이 모인 가운데 아버님께서 “너 일어나.”라며 나를 지목하셨다.
2 그렇게 나를 불러 세워놓고 한 시간 반을 말씀하셨다. 참아버님은 말씀 도중에 나를 보시더니 “너 김천으로 가라. 김천 지역장을 해라.”라고 하셨다. ‘김천 지역장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3 “남자들은 보내 봐도 다 후퇴하니까 여자가 가서 고생하라고. 눈물을 흘리면 김천이 개척된다고!” 하시며 김천 지역장으로 명하셨다. 교회를 다니더라도 공부만은 끝까지 하길 바라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4 대학교 입학 때 아버지와 공부해서 교수가 되겠다고 약속했던 일도 생각났다. 부모님이 맘에 걸려 선뜻 김천 지역장으로 가겠다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5 경북대학교 캠퍼스를 거닐며 한 달을 고민한 끝에 ‘그래, 참아버님 말씀 따라 살자. 김천에 가자’라는 결정을 내렸다. 6 1961년 가을, 등록금과 영영 사전 등을 팔아 돈을 마련해 김천으로 떠났다. 그 당시 여자 지역장으로는 마산의 신미식(申美植) 씨 다음으로 내가 두 번째였다. 김천에는 아무런 기반이 없어 김천에서 멀지 않은 지례면(知禮面)으로 갔다.
7 지례에는 40일 전도 기간에 전도된 청년들이 기반을 닦아 나오고 있었다. 나는 지례에서 청년들과 함께 김천지역 개척 기반을 닦기 시작했다.
8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영어와 한문, 원리를 가르쳤다. 참아버님께서는 전국 순회를 하실 때마다 단 몇 분이라도 김천에 들리셔서 위로를 해주셨다.
9 여대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시골 처녀로 변해버린 나를 보시며 “너는 너를 다 잊고 살구나. 내가 김천에다가 비석을 세워주마.”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10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혀 김천(金泉) 황금동(黃金洞)으로 거처를 옮겼다. 내가 김천에 자리를 잡자 참아버님께서는 변함춘씨, 김금옥(72가정)씨, 최희자씨, 곽희석(124가정)씨, 유봉희씨, 홍성자씨 등 여자 식구 8명 정도를 보내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