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2-62-8. 봉수 신덕휴
갑술년(개도61년 1934년) 3월에 성자께서 도덕을 선포하여 드러낼 뜻으로써 대전 도청 앞에서 강연회를 주최하였다. 도기(사구기)200매를 만들어 만반의 준비를 거의 다 마치고 각 지방 도인 남녀와 일반 대중 다수가 모였는데 결국 일이 뜻과 같지 못하여 역직원 가운데 두어 사람은 갑자기 검속을 당하고 일반 도인은 혹독하게 쫓겨남을 당한지라.
덕휴도 역시 쫓겨 들어와 여러 사람과 함께 뵈오니, 성사께옵서 벌써 들으시고 분한 마음이 치밀어서 속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시는지라.
사부님께서 평소에는 기쁘고 노함을 드러내지 아니하시다가 오늘 일에는 크게 슬퍼하시는 빛을 보이시니, 이는 성인께서 도를 근심하시는 만고의 심려요, 범인의 심상한 근심과 노함이 아니라.
물러감을 고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수일 후에 선화부로부터 편지가 있어 말하기를 ‘인심이 흩어지고 사택을 받드는 것을 별도로 강구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정성이 있는 자 100여 인을 조직하여 50전의 금액을 결속하여 올리기로 정하였다’ 하거늘, 곧 준비해 가지고 들어와서 자세히 들은즉 강연을 이루지 못한 것은 오희운과 정해권의 저해한 바라.
성사께옵소서 아침 문안 시에 하교하시기를 “이번 일은 곧 사람의 목숨을 끊은 것이니, 죄여! 죄여!” 하시고 크게 슬퍼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