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포장 문화의 원형
달걀꾸러미
달걀은 깨지기 쉽다. 그 껍질은 태어나는 작은 병아리 소리에 무너지는 가장 민감한 생명의 벽이다.
달걀은 구르기 쉽다. 둥근 모양을 하고 있어서 신의 능력으로도 세울 수가 없다. '콜럼버스의 달갈'이라는 유명한 일화가 생겨난 것도 그 때문이다.
달걀은 또 썩기 쉽다. 자칫 부패하여 먹을 수 없는 곤달갈이 되고 만다.
이렇게 깨지기 쉽고 구르기 쉽고 썩기 쉬운 특성 때문에 달걀은 무엇으로 싸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인류가 맨 처음 물건을 싸는 포장 문화에 눈뜨게 된 것도 바로 그 달걀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짚으로 달같꾸러미를 만들었다. 충격과 습기를 막아주는 그 부드러운 재료 자체가 이미 새의 둥지와 같은 구실을 한다. 그렇다. 짚으로 만든 달걀꾸러미는 가장 포근하고 안전한 달걀의 집, 제2의 둥지다.
그러나 한국의 달걀꾸러미가 보여주고 있는 놀라움은 결코 재료의 응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점이라면 일본의 달걀꾸러미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같은 짚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달걀을 완전히 다 싸버린 일본 사람들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그것을 반만 싸고 반은 그대로 두어 밖으로 드러나게 했다는 데 있다.
왜 반만 쌌는가. 기능만을 생각했다면 일본 사람들처럼 다 싸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물리적인 기능만을 생각하여 그것을 짚으로 다 싸버린다면 달걀의 형태와 구조는 완전히 가려져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포장한 짚만 보이고 그 알맹이는 보이지 않게 될 것이므로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물건이라는 것을 모르게 될 것이다. 즉 달걀의 정보성, 언어성은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달걀꾸러미는 물리적인 일의적 의미밖에 지닐 수 없게 되어 기능이 형태와 구조를 가리게 된다. 근대 산업주의 문화와 마찬가지로 기능적 합리주의의 소산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이 달걀을 반만 쌌다는 것은 물리적인 기능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정보성을 중시했다는 증거다. 달걀꾸러미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것이 깨지기 쉬운 달걀임을 감각으로 느낄 수 있어 조심하게 될 것이다.
또 그것이 상품으로 전시되었을 때 그 신선도나 크기의 정보를 소비자에게 알려줄 수도 있다. 정보만이 아니라 형태와 구조를 나타내 보임으로써 달걀꾸러미는 시각적인 디자인의 미학을 제공한다. 포장된 것을 가리면서 동시에 표현하는 모순, 그 양의성 속에서 모든 포장 문화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휘한다. 짚과 달걀은 색채에 있어서나 유기질과 무기질의 촉감에 있어서나 거의 추상조각과 같다. 완벽한 대조와 조화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한국인이 만들어낸 달걀꾸러미는 '기술적 합리주의가 낳은 단순화와 협소화에서의 해방'을 시도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꿈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반만 포장된 달걀꾸러미야말로 기능성을 소통성으로 바꾸어가는 탈산업화 시대의 정신과 통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달걀꾸러미는 형태와 구조를 노출시킨 아름다움, 깨지지 않게 내용물을 보호하는 합리적인 기능성 그리고 포장 내용을 남에게 알려주는 정보성의 세 가지 특성을 동시적으로 만족시켜 주고 있는, 포장 문화의 가장 이상적인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문화 박물지 중에서
이어령 지음
첫댓글 맞아요 맞아 눈에 보여야 조심하게 되는것 유리화기 안보이게 포장해 깨졌다 반품 왔던 기억이 😢
완벽 더하기 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