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갈매기
강 문 석
부산 남항 선착장을 떠나 태종대를 돌아오는 자갈치 크루즈. 그동안 코로나로 영업이 중단돼 문을 닫았던 매표소였다. 반색하며 티켓을 내밀었지만 매표원 표정에서는 마음고생이 읽혀졌다. 그는 나에게 30% 할인혜택을 강조했다. 승선권 이면에 붉은 스탬프 글자로 찍은 ‘재승선 시 30% 할인’을 부각시켜 한 번 더 타라는 것 같았다. 단체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설 수 있다니 이게 실로 얼마만인가 싶다. 정원 300명 크루즈는 시동을 걸자 곧바로 바닷물을 가르며 미끄러져 나갔다.
크루즈는 1층에 공연무대와 객실 그리고 2층에도 객실과 매점을 갖추고 있었지만 사방으로 바다를 조망하기엔 3층 야외데크가 제젹이었다. 30여 명 승객들은 데크 난간에 붙어서서 용두산 타워와 영도 송도 등 풍광을 감상하고 있었다. 옅은 해무가 바다풍경을 몽환적으로 바꾸고 있었다. 일전 카페에 올린 포토에세이에 필요하여 바다 쪽에서 찍은 영도 흰여울마을 사진을 찾았지만 어디로 숨었는지 나타나질 않았다. 그래서 7월 첫날 크루즈에 오르고 말았다.
야구경기가 재개되면서 ‘부산 갈매기’ 함성도 연일 그라운드를 흔들고 있다. 응원가로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부산의 역동성을 잘 담아낸 노래로 평가받아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함께 부산 연고 구단 응원가로 지정되었다. 노래가 높은 인기를 끈 덕분인지 구단 애칭마저도 '부산 갈매기'가 되었다. 이와는 달리 오늘도 자갈치 전망대엔 갈매기가 보이질 않았다. 코로나가 사람들 발목을 묶은 세월 동안 새우깡을 구경 못한 갈매기들이 집단으로 멀리 떠난 것 같기도 했다.
입담 좋은 선장은 마이크에다 외항에 떠있는 화물선과 유조선 그리고 주전자섬에 얽힌 얘길 구수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그는 크루즈가 태종대 영도등대 앞에 도착했을 때, 승객들에게 새우깡이 있으면 갈매기에게 주라고 방송했다. 선착장에 나붙은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지 말라!”는 경고를 잊은 것 같았다. 선장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보이지 않던 갈매기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날지 않고 물에서 유영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반가운 나머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청정한 바닷물 색상이 투영되기라도 한 듯 파란 하늘을 비상하는 갈매기들. 코로나 이전 수십 마리씩 몰려 환성을 질러대던 풍경은 아니었지만 반가웠다. 가을걷이 끝난 논밭에서 이삭을 줍듯 한 마리 한 마리를 찾아 카메라 앵글을 들이댔다. 새우깡을 선물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그들도 곧 시무룩하게 크루즈에서 멀어져갔다. 카메라 장비만 챙길 줄 알았지 갈매기들에게 던져줄 멸치는 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갈매기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그런 후회를 했다.
왜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매년 봄은 괭이갈매기 산란철이다. 물고기가 아닌 새우깡을 갈매기 어미가 되새김질해서 새끼들에게 먹인다면 영양실조로 성장하지 못하여 생태환경이 파괴된다고 보는 것이다. 갈매기는 철새지만 여름새는 한 종류밖에 없고 겨울새가 6종이나 된다. 우리나라 텃새갈매기는 괭이갈매기뿐이고 인천은 국내 최대 괭이갈매기 서식지다. 갈매기는 주로 바위절벽 위에 서식지를 정하면서도 억새풀과 풍부한 먹이가 있는지 살핀다.
갓 태어난 새끼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천적들 때문이다. 한 마리의 갈매기로 성장하기까진 고난의 여정을 견뎌내야 한다. 자동화와 스마트폰에 빠져 운동량이 현격하게 부족한 현대인들이 인스턴트식품에 길들여져 불룩한 배를 안고 뒤뚱거리는 모습이나 바다 위를 날지 않고 인간들이 던져주는 먹이로 살아가는 갈매기들 모두 단명하고 만다. 자갈치 크루즈나 인천 월미도 유람선이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지 못하게 하는 이유도 갈매기 수명을 제대로 지켜주기 위한 조치로 이해해야 한다.
어쩌면 먹이를 던져주는 사람은 자신이 갈매기에게 은전을 베푼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일본 오키나와는 오랜 세월 세계에서 으뜸가는 장수국가였다. 그러나 그곳에 주둔하는 미군들의 햄버거가 주민들의 입맛을 바꾸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인스턴트식품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도시철도까지 들어서면서 운동량이 현저히 줄어든 사람들 수명은 세계 꼴찌수준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전국에서 갈매기 군무를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은 해운대 백사장이다.
해운대는 먹이사냥을 위해 바다 위를 날아야할 갈매기들이 어느 때부터 삶의 터전을 이탈하여 무리지어 사람들을 만나러 백사장과 해안도로로 찾아든다. 쉽게 입에 들어오는 먹잇감의 유혹에 빠져든 것이다. 관광객들이 먹이로 갈매기를 유인한 것은 갈매기들의 매끈한 외모도 한몫했을 것이다. 백사장엔 비둘기도 떼 지어 먹이를 구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갈매기만 챙기고 비둘기는 외면한다. 오래 전 철새갈매기를 떠나보내는 환송행사가 광안리 바닷가에서 열렸다.
J교수가 어시장을 찾아 버려지는 생선토막이나 물고기 내장을 수거해서 갈매기들에게 제공하면서 행사는 시작되었지만 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리면서 판이 커졌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게 가장 좋은 자연보호라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그는 자연생태계를 교란시킨 것이 아닐 수 없으리라.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알려진 갈매기는 86종이지만 우리나라엔 11종이 살고 그 가운데 괭이갈매기만 텃새다. 괭이갈매기는 우리나라 연안 무인도에서 집단 번식하지만 외로운 섬 독도에도 많이 산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갈매기 조형물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부산 자갈치어시장 바다쪽 외벽에 붙은 조형물이 아닐까 싶다. 영도 남항동 쪽에서나 배를 타고 바다에 나서야 볼 수 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누가 설계를 했는지 대작이 아닐 수 없다. 연초록 은은한 외벽 색상 그대로 크게 날개를 펴고 웅비하는 두 마리의 갈매기. 그래서 바다를 떠나 만나는 '부산 갈매기'는 사직야구장과 자갈치 두 군데에 존재한다. "♪지금은 그 어디서 옛 생각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