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사람을 만났다!
(송현 로마노 신부)
카네기(1888-1955)의 명저 성공론에 보면.
사업에 실패한 사나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전 재산을 모두 날리고 빚까지 짊어져 큰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무작정 거리를 걷다가 횡단보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로 맞은편에 양쪽 다리가 없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장애인은 바퀴를 단 나무판자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행 신호등이 켜지자 양손으로 땅을 짚으면서 도로를 건너오는 것이 아닙니까.
어느 순간 서로 눈이 마주치자 그 장애인이 쾌활하게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참 좋은 날입니다.
그는 장애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새삼 자신이 얼마나 부자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인생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욕실 거울에 붙여두고 매일 아침 면도할 때마다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
나는 하느님께 신발이 없다고 한탄했는데.
나는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행복한 사람은 가장 좋은 것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바를 최고의 것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만 바라본다면 늘 불행한 삶이 계속 될 뿐입니다.
반면 이미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해한다면 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실상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주님이 동행하시기에 어떠한 고통이나 시련도 없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오히려 하느님 때문에 더 손해보고 더 힘들게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궁극적으로 주님이 약속하신 복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희망을 두지 않고 저 세상을 향한 꿈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비록 지금 이곳에서 고통에 짓눌리고 눈물이 넘쳐나더라도 꿋꿋이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의 통찰대로.
고통은 고통 자체일 뿐이나 그 고통을 주님과 함께할 때에
그 고통은 경리롭고도 아름다운 선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새는 날개가 아무리 무거워도 그것을 떼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날개를 이용하여 날아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는 돛이 무거워도 그것을 잘라버리지 않습니다.
그 돛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이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