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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울과 그의 일행이 멜리데 섬에 도착해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지만 그래서 배가 파선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생명을 잃지 않고 멜리데 섬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멜리데 섬에 도움의 손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1-2절에 보면 우리가 구조한 후에 앉은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비가 오고 날이 참에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거기에 도착해서 보니까 멜리데 섬 주민들이 이 바울 일행에 대한 동정의 마음이 일어나가지고 그들을 환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들이 오히려 적대자가 돼서 바울 일행을 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열고 마치 가족처럼 그들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도움의 손길입니다. 구사일생으로 도착한 섬의 이름은 멜리데 오늘날의 말타 또는 몰타라고 하는 곳입니다. 저도 여기 여러 번 방문을 했는데 방문하기 전에는 상상 속에서만 이 멜리데 섬을 생각을 합니다. 어떤 곳일까 그냥 외딴 어떤 섬 정도로 생각을 했어요.
근데 막상 가보니까 정말 아름다운 섬입니다. 그리고 큰 두 개의 섬이 있는데 그 섬 두 개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어요. 바울 일행이 파산을 해도 정말 아름다운 섬에서 파산을 해서 거기에 도착했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어권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영어 연수를 위해서 그곳에 갑니다. 한국 사람들의 교육열은 대단합니다. 어떻게 그 영어를 할 줄 아는 그 국가면 보내가지고 영어를 배우게 하는 거예요. 지금도 바울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또 그 후에 한 성 요한 기사단 이 그곳에 정착을 했습니다. 이 성 요한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 때 거기에 오는 의료 기사단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다고 하죠.
그런데 나중에 그 예루살렘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서 정복되자 이 사람들이 거기를 피해서 떠나서 오게 됩니다. 그래서 정착한 곳이 바로 이 말타라고 하는 섬이에요. 그래서 이 요한 기사단은 의료 기사단이라고 보면 좋아요. 15구 파리 15구에 보면 말타 기사단 병원이 있더라고요. 저도 메트로 타고 가면서 자주 그곳을 보게 되는데 신기한 것은 거기에 마크가 그 요한 기사단을 의미하는 그 십자가 마크가 우리가 어디서 많이 본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위거노 십자가입니다. 이 요한 기사단이 사용했던 그 십자가를 말타 십자가라고도 하고 이 말타 십자가가 후에 우리 개신교 프랑스 개신교인들이 위그노 십자가로 채용을 합니다. 그래서 그 밑에다가 이제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를 달고 사용하는데 그런 또 유례도 있습니다.
여러분들 여름이나 바캉스 때 방문할 곳이 많지만 이런 성경에 기록돼 있는 지역들을 가게 되면 참 좋습니다. 그곳을 가면 첫째는 많은 영감을 얻게 돼요. 또 그곳을 한 번 갔다 오면 성경이 보여요. 바울이 여기서 파산해서 어느 정도를 걸어 들어와서 어디서 사람을 만나가지고 어떻게 지냈겠구나 바울이 와서 기거했던 동굴도 지금 있습니다. 이제 그런 장소들을 보면서 우리가 성경 속으로 현장감 있게 깊이 들어갈 수가 있어요.
바울과 그 일행은 멜리데 섬에 도착했지만 구사일생으로 도착했지만 그들의 몸은 피로와 추위로 가득했습니다. 몸만 힘든 게 아니죠. 그들의 마음은 곤고함과 두려움으로 채워졌습니다. 몇 발자국도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지쳐 있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섬 원주민들을 준비시키셔서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도록 따뜻한 환대를 이미 준비하고 계셨다고 하는 겁니다.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그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우리 삶에도 폭풍이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건 굴곡진 거예요. 항상 좋은 날 평안한 날만 있는 건 아닙니다. 살아가다 보면 내가 잘못해서 또는 시절을 잘못 만나서 또 그 시대가 그렇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가만히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때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도움의 손길을 마련하셔서 우리를 환대하시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지친 마음을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8편 4절에도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우리를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를 늘 생각하시는 분이에요.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고난의 한복판에 서 있을 때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돌보십니다.
바울 일행이 이 멜리데 섬에 떨어져서 여기서 어떻게 이렇게 환대를 받으리라고 생각을 했겠어요 그런데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특별히 바울을 위해서 나머지 사람들은 사실 바울과 이 복음 전도자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부스러기를 부스러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에요. 어쨌든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 이미 그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시련을 기회로 만들고 계십니다. 3절에 보면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의 손을 물었는지라 물고 있는지라 거기 도착했는데 이게 겨울 9월 10월을 지나서 이제 막 겨울로 들어가는 시기였습니다. 얼마나 추웠겠어요? 물속에서 나왔어요. 온몸이 젖었어요. 배는 고파요. 근데 더 힘든 것은 추위입니다. 덜덜덜덜 떠는 거예요. 그래서 불을 피웠습니다.
몸을 녹이기 위해서, 그리고 그 불을 더 하기 위해서 옆에 있던 아마 그 주민들이 불 땔감으로 해놨는지 그 나무가 거기에 쌓여 있었어요. 아니면 자연적으로 떨어져 있을 수도 있죠. 그것을 주어서 바울이 거기다가 넣었는데 엄청난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곳에 웅크리고 있던 독사가 나와서 바울을 물고 있었어. 물고 매달려 있는 겁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바울에게 죽음이라고 하는 위기가 또 다가왔습니다.
특별히 이 시기에 독사 겨울로 들어가는 시기에 독사는 독이 맹렬합니다. 겨울잠을 자잖아요. 이 독사가 이제 가을쯤 되면 이제 모든 에너지를 몸에 비축을 하고 겨울잠으로 들어갑니다. 그 독사에 물려도 겨울잠 자고 난 다음에 물린 거 하고 겨울잠으로 들어갈 때 물린 거 하고는 천연 기차입니다. 이때 물리면 살아남기가 어려워요. 저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독사에 물린 사람 두 사람을 봤어요. 우리 사촌 육촌 형님이 지금은 이제 연로하셔서 돌아가셨는데, 이분이 우리 선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제가 어렸을 때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어요. 그분이 독사에 물린 거예요. 꼭 이렇게 나무를 해서 이렇게 해놨는데 그 나무를 지게에 실으려고 들었다가 가을에 그 속에 숨어 있던 독사가 와서 물어버린 거예요. 이분도 정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살았어요. 그 후에 원래 불신자들이 우리 일가 친척이 우리 집 말고는 다 불신자들이었는데 하여튼 뭐 이런 계기였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그 생명을 살려주셔서 모두 다 예수를 믿고 권사 장로로 살다가 주님 품으로 갔습니다.
하여튼 그런 일이 있었고 제가 아는 선배 목사님도 수양관에서 일하다가 가을에 독사에 물렸어요. 식사를 하면서 보여주는데 보니까 팔이 고압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시커멓게 타 있었어요. 나는 독사가 물리면 여기만 아픈 줄 알았는데 온몸이 타들어가는 거예요. 그게 이제 심장까지 가면 죽는 거예요. 그 독이 퍼지면 그래도 거기는 그 딸과 사위가 의사여서 응급 응급실로 빨리 가서 응급처치를 해가지고 생명을 구했습니다.
독사는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우리가 그냥 글로 읽는 거 하고 독사에 물린 사람을 보면 이게 얼마나 응급한 일인가를 알게 됩니다. 바울이 지금 그런 상황이에요. 독을 가득 품은 그 상태.
겨울잠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 상태에 독사가 이렇게 물고 있는 거예요.
그때 더 기가 막힌 것은 지금 바울을 따뜻하게 환대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들에게 선입견이 개입된 것이에요.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들이 처음 이 사람들을 환대한 것은 그 풍랑 속에서 살아남은 걸 보니까 이 사람들이 죄수의 몸으로 오고 있지만 이 사람들은 양심범들이다 그런 거예요. 이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환대를 했는데 갑자기 독사가 나와서 무는 걸 보니까 이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어도 이 사람들이 살인자거나 진짜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늘이 천벌을 내린 거다 이렇게 생각이 바뀐 거예요. 이 사람의 생각이 한순간에 이렇게 뒤집어집니다. 그래서 남들이 이렇게 한다고 너무 거기에 좋아할 것도 없고 또 나쁘게 생각한다고 너무 그것 때문에 낙심할 것도 없어요.
사람 생각이랑 이렇게 바뀌고 저렇게 바뀝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 환대가 저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인생이란 이런 거예요. 절망과 희망과 절망과 또 하나의 희망이 어우러지면서 진행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아무리 힘들어도 그 힘든 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건 아니에요. 잠시 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또 하나의 희망의 세상을 열어주실 수 있어요.
그리고 어려움이 오고 마음의 절망이 올 때는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지금부터 뭔가를 하시겠구나. 우리가 힘들고 절망하는 절망이 찾아오는 그 때는 하나님의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뱀을 독사를 털어서 불 속에 집어넣었어요. 바울도 대단한 분입니다. 독사가 물었는데 그냥 털어서 집어넣었대요. 그리고 바울은 멀쩡했습니다. 바울이 뱀의 맹독을 이겼어요.
사람들의 생각이 또 바뀌는 거예요. 이 사람은 금방 막 죽일 놈 했다가 금방 독사 털어놓으니까 야 이 사람은 하늘로부터 온 이 신과 같은 사람 신적인 사람이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놀라운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 전도자들에게 특별히 사도들에게 약속하셨던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이었어요. 마가복음 16장 17절 이하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이 복음을 전파하라
하시면서 주님이 주신 약속이에요. 복음 전하는 전도자들에게 또 복음을 듣고 믿는 이들에게 이런 역사가 나타난다는 방언을 말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뱀을 짚고 그 뱀의 독이 들어와도 또는 그것을 마셔도 아무 해를 받지 않는 그런 경지에 이른다는 거예요.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셨는데 오늘 이 예수님의 말씀이 이 사도바울의 위기 상황을 통해서 성취되고 있어요. 우리가 위기를 당하고 어떤 어려움을 당하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그런 걸 통해서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성취된다고 할 때 여러분 그 위기는 축복의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닥친 위기가 예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귀로만 듣던 그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내 삶으로 밀고 들어오는 놀라운 순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본 원주민들이 처음에는 바울을 죄인으로 단정을 했어요. 고대 세계의 사람들의 세계관입니다. 푹풍해서 살아남으니까 이 사람들은 의인이다. 또 생각했다가 뱀이 물으니까 이 사람들은 진짜 살인자다 그랬다가 뱀을 털어버리니까 이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온 신적인 존재다. 그러고는 이 바울과 그 일행을 더욱 존귀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어요.
물론 바울과 그 일행이 신이 되면 안 되죠. 그건 정말 신성 모독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지 않는 거예요. 바울도 그런 태도를 버리도록 했을 거예요. 그러나 이미 이 섬의 사람들의 마음은 바울을 향해서 열립니다. 이건 보통 사람이 아니다. 하늘이 보낸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 마음이 열리니까 그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 사람이 마음이라는 게 신기해요. 마음을 한 번 닫으면 아무리 청산 뉴스로 아무리 기가 막힌 설교를 해도 안 들립니다. 그 마음이라는 것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근데 마음이 열리면 그냥 아주 심플하게 간단하게 전하는 말이라도 그 말이 잘 박힌 모처럼 내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지금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바울에게 닥친 시련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었어요.
이런 상황을 드라마나 문학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까 이런 이런 급박한 상황. 이것을 사자성어로 한번 찾아보니까 여러 표현들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적당한 표현이 반전 무상이라는 단어가 있더라.
반전 무상 처음 들어보셨죠?
반전 무쌍 갑자기 상황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반전이라고 그래요. 무상이라는 것은 쌍벽을 이루다 서로 비등하게 겨루다 이런 뜻인데, 무쌍 그 쌍을 이룰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거예요. 얼마나 대단한 반전인지 그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저와 여러분의 삶에 반전 무상의 역사가 일어난다. 인간적으로는 전혀 희망이 없고 어떻게 살지 너무 막막하고 삶의 여망까지 사라지는 순간이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면 반전무상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는 그런 상황의 전환이 오는 거예요.
오늘 바울의 삶에 이런 반전 무상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어요. 사실 짧은 얘기지만 폭풍을 만나면서 지금 여기까지 이 이 멜리데 섬에 이런 역사가 일어난 얘기를 우리가 깊이 들어가 보면 막 정말 드라마틱한 사건입니다. 하늘과 땅을 왔다 갔다 하는 엄청난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났어요.
또 이렇게 이런 인생 이렇게 이런 것들이 일어나면 어떤 사람은 이게 부담되기도 해요. 인생이 그냥 잔잔한 바다 같은 그런 인생이 되면 좋겠다 하는 분도 있지만 사실 뭐 그런 인생은 별로 없고 그런 인생이 있어도 사실 그건 인생이 무효합니다. 좀 힘들어도 이런 드라마틱한 올라가고 떨어지고 막 계곡으로 갔다가 또 정상으로 올라갔다가 하는 그런 게 있어야 인생이 말이죠. 흥미진진한 거예요. 지금 이 멜리데 섬에서 바울은 그런 인생을 경험하고 있어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그런 인생 내가 어려서부터 살아온 삶이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렇다면 내 팔자는 왜 이러냐 내 인생을 왜 이렇게 괴로우냐 그러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흥미진진한 인생으로 이끌고 계시다. 그렇게 믿으시고 하나님이 일으키실 그 반전 무상의 역사를 기대하시면서 한번 살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그 섬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겠죠. 더 놀라운 것은 그 섬의 수장이었던 보블리오라고 하는 사람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버블리오가 예수를 믿은 거예요. 8절에서 10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버블리오의 부친 열 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멘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이런 상황을 목격하고도 예수를 안 믿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짜 양심의 화인을 맞았거나 이 마음을 철벽으로 두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이런 사건을 보고도 마음이 안 열리면 사실 예수 믿을 가능성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이 섬의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특별히 보블리오라고 하는 이 섬의 가장 높은 사람이 받아들였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유명한 사람 높은 사람 그런 사람을 여기다가 꼭 기록해야 되냐 이렇게 생각하는 그 열등감으로 가득 찬 사람들도 있어요. 이런 반론을 제기하는 그러나 이 복음이 전파되는 선교 현장에서 그 지역의 가장 유력한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는 건 굉장히 놀라운 사건이에요. 보블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그 섬 전체가 집단 개종을 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특히 더 그랬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이 서양에 살면서 서구 문명에 익숙합니다. 여기 개인주의 개인주의가 가득한 곳에 우리는 살아서 뭐 요즘 뭘 먹어도 더치페이를 하고 이런 게 일상화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를 믿어도 개인이 듣고 개인이 받아들이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고대 사회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이슬람 이슬람도 주로 음마라고 하는 공동체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 삶 자체가 공동체입니다. 또 이 서구 사회를 제외한 제3세계는 대부분 공동체 문화예요.
우리가 아프리카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추장이 있고 그 추장의 말 한마디가 생사 여탈권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러니까 추장이 뭘 하느냐가 중요해요. 우리가 사송드라라고 하는 곳에 가서 우리가 몇 번 단기 선교를 했는데 거기 가면 꼭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저하고 그 백 목사님하고 추장을 만나러 가요. 이번에도 만났고 늘 갈 때마다 만나면 만나서 우리 홍삼 이분들도 홍삼이 좋다는 걸 알아요. 홍삼을 가져다가 그분한테 주고 이제 얘기도 나누고 이렇게 돌아옵니다.
근데 이분이 하여튼 어떤 계기로 예수를 믿은 거야?
이분이 예수를 믿으니까 그 일대 그 추장의 영향력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교회로 나와 그래서 그 사송드라라고 하는 곳이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나오고 거기에 학교가 세워지고 학교가 세워지니까 그 옆에 호텔이 들어오고 도시가 점점 커졌어요.
이게 복음의 역사예요. 그래서 이 높은 사람이 유력한 사람이 예수를 믿어서 그 공동체가 회심을 하는 것을 가리켜서 선교학에서는 집단 개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전해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집단 개종이 더 파워풀한 복음 전도의 효과가 있다. 훌로 신학교 지금은 돌아가신 분인데 맥가브란이라고 하는 그 선교학을 만드신 분이에요. 교회 성장학과 선교학을 만드신 분인데 이분이 선교사로 인도에서 선교를 하면서 그걸 경험하고 관찰하면서 내린 결론이 뭐냐면 집단 개종의 역사가 중요하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초대교회도 그랬고 집단적인 개종이 일어났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누가 예수를 믿어도 그 공동체 안에서 안전하게 예수를 믿을 수 있어요.
오늘 그 예 중에 하나입니다. 하여튼 이 멜리데라고 하는 몰타라고 하는 섬의 집단 개종이 일어나고 있는 그런 현장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사람이 자기 집으로 바울 일행을 초청해서 또 대접을 하는데 때마침 보블리오의 아 부친이 열병과 이질로 앓고 있었어요. 이것은 당시로는 거의 사형 선고입니다. 열병 열대지방의 열병 그러면 대표적인 것이 말라리아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라리아 약을 먹거나 치료를 하기 때문에 걸려도 어지간하면 살아나요? 조금 조금 아픈 건 아닙니다. 상당히 아파요. 우리 팀 중에는 아직 단기 선교 가가지고 말라리아를 걸린 사람 없어요. 얼마나 정말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근데 은석이하고 우리 노아 두 사람이 1년 동안 지내면서 말라리아를 한 두 번 앓은 것 같아. 얼마나 그게 고통스러운 건지를 걸려본 사람은 나도 아직 안 걸려봐가지고 잘은 모르지만 걸려본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거의 죽다 삽니다.
한국의 옛날에 아프리카 여행을 한 분들이 한국에 갔는데 자꾸 아픈 거예요. 그 병원에 가도 몰라요. 이게 뭔지 그래서 나중에 죽게 됩니다.
근데 그게 어떤 병이냐면 말라리아야 말라리아 약만 먹으면 낳을 수 있는 것을 그 약을 먹지 않으니까 죽음에 이르는 거예요.
당신 무슨 약이 있어요?
그러니까 말라에 걸렸다 그러면 사형 선고 거기다가 이질이 있어요. 오염된 물질이나 물 음식 이런 거 상한 것을 먹으면서 생기는 탈입니다. 심한 복통과 설사와 탈수, 체력 저하 이것도 사형 선고와 같은 거예요.
우리 어릴 때 콜레라 그다음에 그런 열병들 막 설사 복통 그런 게 있었어요. 그거 걸리면 거의 초토화되는 거예요. 때마침 그의 아버지가 희한하게도 그의 아버지가 이 병에 걸려 있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안수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6장 말씀처럼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깨끗하게 치유됐어요. 바울은 그들의 환대를 치유로 보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했어요. 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냥 복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목마른 사람이 찬물을 마시듯이 이 복음을 그들은 흡수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부터 그 섬 전체가 복음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어요.
초기 교회사에 따르면 보블리오는 그 후로 예수를 잘 믿어서 몰타 섬의 초대 비숍이 됐다고 합니다. 초대 주교가 됐어요. 후에 네로 황제가 박해를 할 때 신앙을 끝까지 지키다가 하나님 앞에 순교자로 그는 그의 삶을 마감하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사노라면 지금 바울이 폭풍과 또 멜리데 섬에서 경험했던 이런 인생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크고 작은 어떤 사람은 좀 적은 이런 일들이 오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정말 삶의 여명을 그런 잃어버릴 정도로 그것이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캄캄한 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그런 상황도 만날 수 있어요.
그러나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다음 스텝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를 환대하기 위해서 그 누군가를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을 기대해야 돼요.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시련을 기회로, 절망을 희망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에요.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