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당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며칠 전 벵이 보내온 텔레그램 메시지를 읽고 깜짝 놀랐다.
“엄마!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You are a gift from God to me. Mam!)
보고 싶다고 제대로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자기 인생에서 받은 최고의 선물이라고 고백하는 벵의 사모하는 마음과 외로움에 가슴이 떨렸다.
샨띠홈 동년배였던 존밥이 죽고 라메쉬도 뒤이어 죽고 혼자 남은 그의 외로움은 사무쳤다.
그가 십대 소년일 때 하나님께 쓰는 편지에서 죄 없는 자기가 왜 에이즈라는 천형을 받아야 하는지를 질문하며 울었고 부모님께 쓰는 편지에서 아무리 부모님들이 죄를 져서 에이즈에 걸려 죽었다 할지라도 보고 싶다며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함께 영원히 살고 싶다고 하여 나를 울렸다.
지난 10월, 샨띠홈 방문을 마치고 나올 때 샨띠홈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한 마디로 아이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나의 실패였다.
떠나는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도 슬프고 어두웠다. 처음에는 8년 만의 해후에 너무 기뻐서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헤어질 시간이 되자 입술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다가 다시 흉중에 묻으며 눈물을 훔치는 것이 보였다.
나의 방문에 맞추어서 십여 명의 아이들이 모였지만 샨띠홈 공동체는 이미 깨졌다.
내가 현장을 떠났어도 우리 고아들은 닥터 헬렌의 보살핌 속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였다. 지속적으로 생활비와 장학금을 지원하였고 용돈과 필요한 시설과 비품들을 송금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으로 비좁아진 숙소문제 해결을 위해 20여 명이 함께 살 수 있는 널찍한 주택을 지었다. 그러나 닥터헬렌이 병원장직에서 물러나자 삐그덕거리기 시작하였다. 그가 샨띠홈 원장직마저도 수행할 수 없게 되고 아이들의 소식을 전해주던 마노하르 목사님이 소천하자 소식이 거의 단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하며 옛날 숙소를 리모델링하여 10여 명 이상의 여아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였다. 나에게 최우선 순위인 샨띠홈 운영비는 계속 보냈으나 새 원장으로부터 아이들 소식은 전혀 오지 않았다. 다행히 자원봉자들이나 주변의 목회자들이 가뭄에 콩 나듯이 아이들 소식을 전하여 주었다. 그런 중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인도가 록다운 되고 아이들이 눈물로 샨띠홈을 떠나고 닥터 헬렌이 사망하였다. 그의 소천 후에 몇 명의 아이들이 돌아왔지만 옛날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이들의 전송을 받고 나올 때 마치 벌거숭이 아이들을 차가운 눈보라 속에 버려두고 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대로 오면 아이들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아이들에게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였다. 내가 속울음으로 흔들리고 있을 때 영어가 가능한 수바와 벵이 전화번호를 청해서 번호를 서로 주고받았다. 그 후 그들을 텔레그램으로 초청 하여 그동안에 못들었던 이야기를 대충 들었다.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이야기는 존밥의 죽음, 라메쉬의 투병 그리고 코로나팬데믹 때 아이들이 샨띠홈에서 강제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었다.
나의 부재기간에 일어났던 과거사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아무리 반복하여도 슬픔과 고통만 재생산되므로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벵은 암으로 투병하다 죽은 라메쉬의 죽음이 준 슬픔을 말하였다. 그의 신음, 눈물, 고통에 절은 얼굴, 미라처럼 마른 앙상한 몸이 지금도 떠오른다고 하였다. 20년 2월 22일, 22살에 세상을 떠나는 친구 라메쉬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그는 외로움과 슬픔, 무력감, 공포와 불안에 빠져 떨었다.
그는 샨띠홈을 나간 뒤에 약을 먹는 것을 포기한 가우탐에 대하여서도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HIV 콘트럴 테스트, CD4테스트, 콘트럴드 바이럴테스트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존밥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그는 존밥이 죽던 날 그와 함께 술을 마시며 그의 절규를 들었다. 살 희망이, 기쁨이 없다고 말하는 존밥을 데려다 방에 눕혔는데 한밤중에 깨어보니 그가 사라졌다. 느낌이 좋지 않아서 나가보니 그가 싸늘한 시신으로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벵은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글을 쓰면서 부모님이 에이즈로 사망한 후에 학교에 갔다 왔더니 형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집에 아무도 없었다고 하였다. 공황상태에 빠진 그는 형들을 찾아 헤매다 친지의 손에 이끌려 ‘샨띠홈’으로 왔다.
그는 생각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였고 글을 발표하며 가끔 울었다. 나는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그의 꿈을 격려하였다.
2009년에 샨띠홈을 개원하였지만 한 달에 한두 번 밖에 들리지 않는 나는 그들을 권면하거나 꾸짖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항상 칭찬과 격려만 하였다. 사랑하고 축복하였다.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싸고 돌았다. 그리고 함께 있는 동안 신나고 재미있게 놀았다.
항상 꿈과 희망을 물었고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하는가를 물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기도하고 친구의 손을 잡고 기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샨띠홈을 지도하는 닥터와 총무, 조리사를 위해서, 학교친구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게끔 하였다. 그리고 고아와 과부와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였다. 함께 노래와 춤을 추고 퀴즈놀이를 하고 풍선을 불고 과자와 사탕을 나누어 먹었다.
책과 노트를 검사하였고 모든 아이들이 자기가 쓴 일기를 읽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이나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때로는 아이들의 악기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하였다.
실내에서 놀이가 끝나면 밖에 나가서 뜀박질하며 놀았다.
아이들에게 꿈을 주기 위하여 고등학교부터는 전원 장학금을 지급하였고 대학 입학생들에게는 무조건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주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인도 명절과 기독교 명절에는 용돈을 주었고 선물을 주었다.
특별히 1년 한 번씩 첸나이로 초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며 꿈꾸며 생각하며 치유하는 시간, 화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관광도 하고 쇼핑도하고 전자 오락게임도 하고 바닷가에서 마음껏 뛰어 놀았다.
이렇게 만 5년을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나는 한 마디의 말도 없이 한국으로 떠났다. 한국으로 온 뒤에는 직접 가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이나 선생님을 시켜서 용돈과 선물을 전하고 칭찬하며 함께 놀아주라고 부탁하였다. 고아는 특별히 명절에 더 서럽고 외롭기 때문에 명절에 용돈과 선물을 빠트리지 않았다.
시간적으로 8년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직업훈련원과 전문학교, 대학교 장학금을 보내주었고 심지어는 실습재료비까지 보내주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나의 부재를 부재로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20년 코로나로 각자 흩어지고, 닥터 헬렌이 죽으면서 아이들은 샨띠홈이 끝났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고 내가 돌아 왔으나 누구도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 또한 샨띠홈을 살리려면 넘어가야하는 산이 너무 많으므로 부딪히기 싫어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쪽을 택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무섭고 두려운 세상 광야에서 혼자 비 맞도록 가만히 두지 않기로 하였다. 에이즈환자로서 섬처럼 외롭게 살아가야하는 그들의 미래를 위하여, 자립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기로 하였다.
그 처음 단계가 영어가 가능한 친구들과 소통이었다. 자주 소식을 묻고 전하여 끊임없이 엄습해오는 외로움과 슬픔, 무력감과 비참함을 잘 견딜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 다음에 그들의 생계를 위한 자립을 모색하기로 하였다. 샨띠홈 아이들끼리 공동사업을 할 수도 있고 개인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그들의 불안한 미래와 생존의 문제를 생각하고 있을 때 수바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엄마! 12월 12일이 나의 생일이어요.”(Hello Ma! December 12th is my birthday.”
순간 당혹하였지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고 네팔에 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서 생일 선물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선물을 사서 보냈다. 선물을 사면서 벵의 선물도 함께 샀다. 셔츠 2개와 쵸코렛과 성탄카드를. 그리고 벵에게 사실을 알렸다.
벵은 가슴 벅차하였다. 그는 선물을 물건이 아닌 사랑으로 받았다. 에이즈에 감염된 불쌍한 고아가 무더기 중의 하나로 받는 선물이 아니라 엄마가 아들에게 보내는 사랑으로 받았다.
그는 한 마디 문장으로 14년 동안 샨띠홈을 생각으로 울며불며 기도하며 노심초사하며 잠 못이루었던 고뇌와 고심을 다 날려 버렸다. 나를 눈물의 바다에 빠뜨렸다.
“엄마! 당신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입니다.”(You are a gift from God to me. Mam!)
함께 지낸 기간이 겨우 5년, 그것도 한 달에 한두 번 밖에 만나지 않았는데 그가 내 마음을 읽었다.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 나의 마음을 주었다. 생명, 시간, 눈물, 기도와 사랑을 주었다. 선물이나 물건, 용돈과 장학금은 마음이 함께 한다는 상징,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선물에 담긴 마음을 알려면 산전수전 다 겪고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야 가능하다.
그런대 그는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죽음을 마주 대해서 일까? 세상의 소외와 사회적 고문을 많이 받아서일까? 그는 고통 속에서 마음으로 사람들을 보는 훈련을 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방문 때 아이들에게 일기를 계속 쓰는지를 확인하였는데 벵이 이따금씩 쓰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다음에 그 일기장을 보여주겠다고 하였다. 그가 소설책을 읽고 있어서 독후감을 써보내라고 하였고 시 쓰기를 권면하였다.
하나님께서 벵을 통해서 차별과 소외, 문화적인 고문으로 신음하며 비인간화 된 에이즈고아들의 인권을 회복시키며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자유와 해방을 주시길 간절히 빈다.
2022.12.28.수요일 밤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