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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2장 1-8절. 바울이 천부장 앞에서 변호함
1절.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rethren and fathers, hear my defense which I now offer to you.“
부형들아
Ἄνδρες ἀδελφοὶ καὶ πατέρες,
men, brothers and fathers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ἀκούσατέ μου τῆς πρὸς ὑμᾶς νυνὶ ἀπολογίας.
hear of me the to you now defense
직역하면 ‘여러분에 대한 나의 변명을 들으라’는 뜻입니다.
‘들으라’(ἀκούσατέ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hear) 잘 들으라는 뜻입니다.
1. 사도 바울은 자기를 때리고 죽이려고 한 원수 같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부형들>이라고 존칭어를 썼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자기 동족을 사랑하는 훌륭한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이 그 마음속에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바울이 볼 때 유대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난동을 부리고, 마귀에게 충동을 받아서 악의적으로 사람을 죽이려 하는 마귀 같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원수 같은 동족들을 사랑과 존경의 언어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바로 25년 전에 자기가 죽였던 스데반의 모습이었습니다.
즉 사도행전 7장 2절에서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유대교인들을 향해서 <부형들>이라고 호칭했던 것입니다.
2. 여기서 바울이 변명하는 말이란 것은 자기의 주관적 입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객관적으로 변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관적인 율법관이나 성전 제사에 대한 신앙이나 할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 아니라, 자기가 과거에 기독교를 핍박하던 자였는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이방인의 사도로 활동했던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재판에서는 객관적 사실을 가지고 변호하는 것이 힘이 있습니다.
2절.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hen they heard that he was addressing them in the Hebrew dialect, they became even more quiet; and he said,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ἀκούσαντες δὲ ὅτι τῇ Ἑβραΐδι διαλέκτῳ προσεφώνει αὐτοῖς
having heard then that in the Hebrew language he was addressing them
직역하면 ‘그가 그들에게 히브리말로 말하고 있는 것을 그들이 듣고’란 뜻입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προσεφώνει)은 미완료과거로서(he was addressing) 바울이 히브리말로 계속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듣고’(ἀκού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heard) 확실히 들은 것을 가리킵니다.
더욱 조용한지라.
μᾶλλον παρέσχον ἡσυχίαν.
even more they become quiet
직역하면 ‘더욱 그들이 조용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 동사(παρέσχον)는 부정과거로서(they become) 군중들이 아주 조용해진 것을 가리킵니다.
이어 이르되
καὶ φησίν
and he says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이란 뜻입니다.
‘이르되’(φησίν)는 현재형입니다(he says).
1. 바울 당시에 히브리어는 랍비들만 사용하는 어려운 언어였습니다.
이 히브리어는 고대에 평민들이 사용했지만, 바벨론 포로 이후 중간 시대부터는 주로 글을 쓰고 가르치는 랍비들만 사용하고, 일반인들은 잘 사용하지 않은 어려운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히브리어를 사용한 것은 바울이 예수 믿기 전에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유대인의 지도자인 랍비였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랍비들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히브리어를 바울이 말하자 그 권위에 눌려서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유대교 지도자로 있을 때는 어느 랍비보다도 더 장래가 촉망되는 위대한 랍비였습니다.
이런 가장 존경하던 랍비인 바울이 유대교를 배반하고 기독교 전도자가 되자, 그 만큼 유대교인들은 더욱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유대교인들은 그처럼 추앙받던 랍비 바울이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전향한 사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어야 합니다.
3절.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am a Jew, born in Tarsus of Cilicia, but brought up in this city, educated under Gamaliel, strictly according to the law of our fathers, being zealous for God just as you all are today.
나는 유대인으로
Ἐγώ εἰμι ἀνὴρ Ἰουδαῖος,
I I am man Jew
‘나는’(Ἐγώ)이 강조되어 있어서 ‘바로 나는’이란 뜻입니다.
동사(εἰμι)는 현재형입니다(I am).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γεγεννημένος ἐν Ταρσῷ τῆς Κιλικίας,
having been born in Tarsus of the Cilicia
‘났고’(γεγεννημένος)는 완료분사 수동태입니다(having been born).
이 성에서 자라
ἀνατεθραμμένος δὲ ἐν τῇ πόλει ταύτῃ,
having been brought up now in the city this
‘자라’(ἀνατεθραμμένος)도 완료분사 수동태입니다(having been brought up).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παρὰ τοὺς πόδας Γαμαλιήλ
at the feet of Gamaliel
직역하면 ‘가말리엘 발에서’란 뜻인데, 한글 번역은 좋은 번역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πεπαιδευμένος κατὰ ἀκρίβειαν τοῦ πατρῴου νόμου,
having been instructed according to exactness of the our fathers law
직역하면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함에 따라서 교육받았고’란 뜻입니다.
‘교육받았고’(πεπαιδευμένος)는 역시 완료분사 수동태입니다(having been instructed).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ζηλωτὴς ὑπάρχων τοῦ Θεοῦ, καθὼς πάντες ὑμεῖς ἐστε σήμερον·
zealous one being of the God, even as all you you are this day
앞의 동사(ὑπάρχων)는 현재분사이고(being), 뒤의 동사(ἐστε)는 현재형입니다.
‘너희들’(ὑμεῖς, you)이 강조되어 ‘바로 너희들처럼’이란 뜻입니다.
1. 나는 유대인으로
바울은 정통 유대인으로서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습니다(빌 3:5)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잘 섬겼던 지파였습니다.
나머지 10지파는 북쪽 왕국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고, 바알 우상을 섬기고, 온갖 우상을 섬기다가 앗수르에 망했던 지파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정통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당당한 혈통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2.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바울의 할아버지는 로마 군대의 전쟁에 공헌을 하여, 로마가 세계를 정복한 후에 포상으로 로마 시민권을 획득했습니다.
그 후로 바울의 할아버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학문이 발달한 길리기아 다소 성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려서부터 다소 성에서 공부했고, 다소 성 사람들은 어린이에게도 혼자 자립하여 살 수 있도록 천막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13살까지 다소에서 자랐고, 유대인들은 13살부터 성인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13살 때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3살 이후로 30살까지 예루살렘에서 자랐습니다.
3.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바울은 13세부터 예루살렘에서 자라면서 당시 가장 학문이 뛰어난 가말리엘 문하에서 랍비 교육을 받았습니다.
가말리엘(Raban Gamaliel Ha Zaken: רַבַּן גַּמְלִיאֵל הַזָּקֵן: BC 15-AD 70년경)은 사도행전 5장 34절에 나오는 가말리엘로서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모두 제압하는 가장 존경받는 율법 교사였습니다.
이 사람 말이라면 유대 나라의 모든 산헤드린 공회원들도 다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한 마디로 유대 사회의 어른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 나라에는 전통적으로 두 율법 학파가 있었습니다.
즉 샴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가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 샴마이( Shammai Ha-Zaken: BC 50~AD 30년)와 힐렐(Hillel the Elder: BC 60~AD 20년)이 주축이 되어, 성경에 기록된 의무명령 248개, 금지명령 365개 도합 613개 조항의 율법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 세칙들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 많은 세부 시행규칙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 성경에는 안식일에 장사하지 말고, 오락을 즐기지 말고, 하나님께 예배하라고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바느질도 못 하게 하고, 십 리도 걷지 못 하게 하고, 짐승이 구덩이에 빠졌어도 죽지 않으면 건지지 못 하게 하고, 배가 고파도 이삭을 비벼 먹지도 못 하게 하고, 자기가 앉았던 돗자리도 가지고 가지 못 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은 생명과 복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전락시켜버렸습니다.
아무튼 샴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 중에서 나중에 힐렐이 더욱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울 당시에 이 힐렐 학파의 지도자가 바로 가말리엘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가말리엘 밑에서 모든 율법 교육을 다 습득하고 훈련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생 가운데 가장 뛰어난 계승자였습니다.
그래서 약관 30세에 최연소로 산헤드린 공회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유대교인이었을 때, 가장 엄한 바리새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빌3:5-6).
그리고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이 당시 율법의 세부 시행규칙을 다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이 때 바울은 당시 유대 나라를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줄 모세 같은 사람으로 촉망되었고, 백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때 바울은 신흥 기독교를 핍박하는 데 앞장섰고, 스데반을 죽이고, 기독교 말살 정책의 최우선 선봉장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기독교를 심하게 핍박한 것은 율법에 대한 열심이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을 바라보면서 자기도 과거에 군중들처럼 율법에 열심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열심>이라는 말은 열심당 과격분자였다는 말입니다.
당시 열심당원(Zealots)은 3대 가치인 백성, 성전, 율법을 파수하기 위해서 무력을 써서라도 3대 성결을 지키기로 맹세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행 21:28 참조).
4절.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persecuted this Way to the death, binding and putting both men and women into prisons,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ὃς ταύτην τὴν Ὁδὸν ἐδίωξα ἄχρι θανάτου,
who this the way persecuted as far as death
직역하면 ‘내가 죽음에까지 이 도를 박해했다’는 뜻입니다.
‘박해했다’(ἐδίωξα)는 부정과거로서(persecuted) 열정적으로 박해한 과거 사실을 가리킵니다.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δεσμεύων καὶ παραδιδοὺς εἰς φυλακὰς ἄνδρας τε καὶ γυναῖκας,
binding and delivering to prisons men both and women
‘결박하여’(δεσμεύων)는 현재분사로서(binding) 결박하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고, ‘넘겼노니’(παραδιδοὺς)도 현재분사로서(delivering) 결박하고 넘기면서 박해했다는 뜻입니다.
1. 바울은 과거에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즉 사도행전 8장 3절에 말씀한 대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 기독교인의 집에 쳐들어가서 남자와 여자를 모두 잡아다가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강제로 예수님을 모독하게 했습니다(행 26:11)
또한 교회를 뿌리째 없애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는데 책임자 노릇을 했습니다(행 8:1).
이처럼 바울은 과거에 바리새파 열심당으로서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했고, 남녀 성도들을 감옥에 잡아넣었고, 심지어 스데반을 죽이기까지 한 열성분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바울을 때리고 죽이려고 난동을 부리는 군중들보다 바울은 과거에 더 지독한 기독교 박해자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이 지금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볼 때, 한편 가소롭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서방파 두목인 김태촌씨가 조무래기 깡패들을 보고, 과거에 내가 깡패 두목이었다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기독교를 핍박한 것은 과거에 기독교를 올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자기도 과거에 몰라서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로 기독교를 핍박했었다고 고백했습니다(딤전 1:13).
그러면서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는 폭도들을 잘 이해한다는 마음을 비쳤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원수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바울의 모습입니다.
5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s also the high priest and all the Council of the elders can testify. From them I also received letters to the brethren, and started off for Damascus in order to bring even those who were there to Jerusalem as prisoners to be punished.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ὡς καὶ ὁ ἀρχιερεὺς μαρτυρεῖ μοι καὶ πᾶν τὸ πρεσβυτέριον·
as also the high priest bears witness of me and all the elders
‘증인이라’(μαρτυρεῖ)는 현재형 동사로서(bears witness) 나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παρ’ ὧν καὶ ἐπιστολὰς δεξάμενος πρὸς τοὺς ἀδελφοὺς εἰς Δαμασκὸν
from whom also letters having received to the brothers to Damascus
‘받아가지고’(δεξάμεν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eceived) 확실히 받아가지고 간 사실을 가리킵니다.
가더니
ἐπορευόμην,
I was on my way
동사(ἐπορευόμην)는 미완료과거로서(I was on my way) 계속 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ἄξων καὶ τοὺς ἐκεῖσε ὄντας, δεδεμένους εἰς Ἱερουσαλὴμ
in order to bring also those there being, having been bound to Jerusalem
‘결박하여’(δεδεμένους)는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bound) ‘결박당하게 하여’란 뜻입니다.
‘끌어다가’(ἄξων)는 미래 분사형인데, 목적으로 표현하려고 쓰인 것이므로(the future participle is used to express purpose), ‘끌어가기 위해서’(in order to bring)란 뜻입니다.
형벌 받게 하려고
ἵνα τιμωρηθῶσιν.
in order that they might be punished
동사(τιμωρηθῶσιν)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이고(they might be punished), 여기 가정법은 목적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subjunctive used to express purpose).
1.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란 산헤드린 공회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산헤드린 공회를 가리키는 표현들은 <대제사장과 장로와 서기관>이라고도 했고(막 15:1, 마 16:21),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라고도 했고(행4:5), 그냥 <장로와 서기관들>이라고도 했고(행 6:12), 또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라고도 했습니다(행 25:15).
원래 산헤드린 공회는 72명으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로 구성되었고, 회장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이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의 최고 통치기구이며, 최고 법정이었습니다.
물론 로마 당국의 지배 하에 있는 유대인 자치 기구였습니다.
이 산헤드린 공회원은 30세 이상 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당시 약관 30세로서 최연소 공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산헤드린 공회의 결의를 통해서 기독교를 핍박할 권한을 부여받았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기독교인들의 집에 들어가서 남녀 기독교인들을 때리고,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스데반을 죽이는데 책임자 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권한을 위임받아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사실은 산헤드린 공회원인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자신의 말에 대한 증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당시에 대제사장은 유대 나라의 최고 통치자였습니다.
보통은 왕이 최고의 통치자인데, 예수님 당시나 바울 당시에는 대제사장이 유대 나라 최고의 통치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판을 받을 때도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의 집에 가서 먼저 재판을 받았습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에도 팔레스틴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이 있었고,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는 왕 헤롯 안디바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나라의 최고 통치자는 대제사장이고,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도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 이스라엘 나라는 사울 왕이나 다윗 왕이나 솔로몬 왕이나 그 후 스룹바벨 시대에도 왕들이 통치했는데, 언제부터 대제사장이 최고 통치자가 되었는가요?
네, 구약 말라기 시대 이후 신약시대까지 약 400년간 중간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BC 323년에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그 후로 나라가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그 후로 BC 170년경 안티오쿠스 4세가 강한 헬라화 정책을 쓰면서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우상 신을 세우고,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 하게 하고 제우스 신을 숭배하게 강압했습니다.
그러자 BC 167년에 제사장 가문의 마카비가 혁명군을 이끌고, 헬라군과 3년간 게릴라전을 펼쳤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BC 164년 12월 25일에 독립을 쟁취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했습니다.
이 일을 기념하여 ‘하누카’ 절기를 지킵니다.
이렇게 제사장 가문이 유대 나라의 독립을 이룩한 후에, 제사장 가문인 하스모니안 가문이 나라의 통치권을 장악했습니다.
그 후로 예수님 당시나 사도 시대에도 유대 나라가 AD 70년에 로마에 멸망하기까지 대제사장이 유대 나라의 통치자가 된 것입니다.
단지 갈릴리 지방의 분봉왕 헤롯은 로마의 앞잡이로서 어용 통치자였습니다.
2.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1) 바울은 예루살렘과 유대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웃 나라 수도인 다메섹으로 피신한 기독교인들을 잡아 오도록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인 대제사장에게서 공문을 받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 다메섹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피난 간 기독교인들도 많았습니다.
얼마나 바울이 극단적으로 기독교 말살 정책에 선봉장이 되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지금 데모하고 있는 데모 군중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국가를 대표해서 기독교 말살 운동의 선봉장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 최고 통치기구이며, 의장이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바울은 기독교인 체포 협조공문을 대제사장에게서 받아 가지고, 군인들도 이끌고 이웃 나라 아람 나라의 수도인 다메섹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메섹 여러 회당에서 골수 유대인들과 협조하여 기독교인들을 체포해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 처벌하려고 했습니다.
(2) 이렇게 바울은 당시에 기독교를 세상에서 없애려고 산헤드린 공회 동의안도 얻고, 외국에 갈 공문도 얻고, 군대까지도 인솔하여 기독교를 박해했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기독교 핍박은 현재 바울을 죽이려고 한 군중들보다 훨씬 더 포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울도 기독교가 진정한 구원의 종교이기 때문에, 이렇게 목숨 걸고 전도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6절.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t happened that as I was on my way, approaching Damascus about noontime, a very bright light suddenly flashed from heaven all around me,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Ἐγένετο δέ μοι πορευομένῳ καὶ ἐγγίζοντι τῇ Δαμασκῷ
it happened but to me journeying and drawing near to the Damascus
직역하면 ‘그러나 여행하면서 다메섹에 가까이 가고 있을 때, 나에게 --일이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일어났다’(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it happened) 확실하게 일어난 사실을 가리킵니다.
‘여행하면서’(πορευομένῳ)는 현재분사이고(journeying), ‘가까이 가고 있을 때’(ἐγγίζοντι)도 현재분사로서(drawing near) 두 가지 동사는 ‘여행하면서 가까이 가고 있을 때’란 뜻입니다.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περὶ μεσημβρίαν ἐξαίφνης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περιαστράψαι φῶς ἱκανὸν περὶ ἐμέ,
about noon suddenly out of the heaven to have shone light great around me
‘비치매’(περιαστράψ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ave shone) 빛이 갑자기 확 비친 것을 가리킵니다.
1. 다메섹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250킬로 가야 합니다.
이 거리는 당시에 군사들이 5일은 걸어가는 거리였습니다.
이 다메섹은 고대에 강대국인 아람 나라의 수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메섹에 가서 기독교인들을 체포해 오려고 군사들을 이끌고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의 다메섹에 다 갔을 때, 정오쯤 되어 갑자기 하늘로부터 큰 빛이 바울을 둘러 비췄습니다.
여기서 <큰 빛>이란 햇빛과 같은 자연적인 빛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비치는 초자연적인 빛을 가리킵니다.
즉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는 예수님이 임재하심으로써 비치는 초자연적인 큰 빛이었습니다.
<큰 빛>이란 단어에서 <대광> 고등학교 이름이 나왔습니다.
원래 팔레스틴에서는 정오에 햇빛이 너무나 강렬해서 밖에 다니지 못하고, 무화과 같은 나무 그늘에서 쉬거나 낮잠을 잡니다.
단지 요한복음 4장의 수가 성 여인처럼 특별한 경우에만 한낮에 다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얼마나 기독교인들을 잡아 가둘 열성이 대단했으면, 이런 대낮에 햇빛을 마다하지 않고, 군사들을 이끌고 다메섹으로 행군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정오에 만난 큰 빛은 그 강렬한 자연적인 햇빛보다도 더 큰 초자연적인 빛이었습니다.
이 빛을 바울은 한 번 보고는 망막이 상해서 눈이 멀었습니다.
그러나 이 큰 빛은 죄인을 회개시키는 생명의 빛이요, 참 빛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9장 5절에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장 9절에도 예수님을 참 빛이라고 했습니다.
7절.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I fell to the ground and heard a voice saying to me, 'Saul, Saul, why are you persecuting Me?‘
내가 땅에 엎드러져
ἔπεσά τε εἰς τὸ ἔδαφος
I fell then to the ground
‘엎드러져’(ἔπεσά)는 부정과거로서(I fell) 갑자기 확 엎드러진 것을 가리킵니다.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καὶ ἤκουσα φωνῆς, λεγούσης μοι
and I heard voice, saying to me
직역하면 ’소리를 들었는데 나에게 말씀하시기를‘이란 뜻입니다.
‘들으니’(ἤκουσα)는 부정과거로서(I heard) 분명히 들은 것을 가리킵니다.
’이르되‘(λεγούσης)는 현재분사입니다(saying).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Σαοὺλ Σαούλ, τί με διώκεις;
Saul Saul, why me persecute you?
‘박해하느냐’(διώκεις)는 현재형으로서(persecute) 박해하고 있느냐는 뜻입니다.
1. 짐승을 타고 가던 바울은 갑작스럽게 큰 빛이 비취자, 짐승이 놀라서 뛰어오른 바람에 짐승 위에서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초자연적인 큰 빛만 보인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호렙산에서 가시 떨기나무에서 초자연적인 빛을 보고, <모세야 모세야 네 발에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울에게 <사울아 사울아>하고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사용한 헬라식 이름이고, ‘사울’은 원래 유대식 이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강점시대에 한국식 이름이 있고, 일본식 개명 이름이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울을 개인적인 이름으로 불러주신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은혜입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범죄 하여 나무에 숨었을 때, 하나님이 <아담아 아담아> 하고 찾아와서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내 이름을 불러주어도 영광스러운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개인의 이름을 불러주신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은혜가 풍성한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을 지독하게 핍박하는 바울을 형벌하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새 사람 만들기 위해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도 인자가 온 것은 목숨까지 주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인 바울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3-16절에서 나는 죄인 괴수였지만, 예수님께서 일체 오래 참으사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러 임하셨다고 고백했습니다.
8절.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I answered, 'Who are You, Lord?' And He said to me, 'I am Jesus the Nazarene, whom you are persecuting.‘
내가 대답하되
ἐγὼ δὲ ἀπεκρίθην
I then answered
동사(ἀπεκρίθην)는 부정과거로서(answered) 확실하게 대답한 것을 가리키고, ‘내가’(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Τίς εἶ, Κύριε;
who are you, Lord?
동사(εἶ)는 현재형입니다(are you).
이르시되,
εἶπέν τε πρὸς ἐμέ
he said then to me
직역하면 ‘그 때 그가 나에게 말씀했다’는 뜻입니다.
동사(εἶπέν)는 부정과거로서(he said) 확실하게 말씀한 사실을 갈킵니다.
나는--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Ἐγώ εἰμι Ἰησοῦς ὁ Ναζωραῖος,
I I am Jesus the Nazareth
여기 ‘나는--이다’(Ἐγώ εἰμι)는 예수님이 요한복음에서 자주 쓰신 자칭어(self saying, ‘I am’ saying)로서,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내가’(Ἐγώ, I)가 강조되어 있고, ‘바로 나는 --이다’라는 표현입니다.
동사(εἰμι)는 현재형입니다(is).
네가 박해하는
ὃν σὺ διώκεις.
whom you you are persecuting
여기 ‘네가’(σὺ, you)도 강조되어 ‘바로 네가’란 뜻입니다.
‘박해하는’(διώκεις)은 현재형으로서(are persecuting) ‘박해하고 있는’이란 뜻입니다.
1.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을 찾아와서 <사울아 사울아> 하고 이름을 부르시자, 바울은 <주님 누구십니까?>라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에게 누구시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이 물음은 바울이 지금 말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물은 것입니다.
즉 바울이 <주님>(Κύριε)이라고 부른 것은 히브리어로 <아도나이>(אדני: my Lord: 나의 주님)라는 뜻으로서, 구약의 여호와(יהוה) 하나님을 감히 직접 부르지 못하고 ‘아도나이’라고 부르는 유대인들의 호칭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여호와 하나님께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물은 것은 자신이 지금 철저하게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에게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에게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과연 자신이 지금까지 섬겨온 그 하나님이신가를 물은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핍박한 예수 믿는 성도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 하나님이신가를 물은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시내산(호렙산)에서 가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께 그 이름을 물어본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 곧 여호와>라고 대답해주셨습니다. (출 3:14-16)
그런데 그 하나님은 바울에게 <나는 예수라>고 답변해주셨습니다.
여기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신약의 ‘예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2.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바로 예수님이라고 대답하셨고,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느라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도록 박해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울이 열심히 섬겨온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바울은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인간으로 오셔서 온갖 질병을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나사렛 예수가 바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유대인들이 그토록 미워해서 죽였던 나사렛 예수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니 말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예수 믿는 성도들을 때리고 잡아 가두고 죽이기까지 하고, 지금도 다메섹에 도망간 예수쟁이들을 체포하려고 가는데, 바로 자기가 핍박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니 말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180도 반전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껏 평생을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일만을 위해서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아왔는데, 나사렛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란 말이었습니다.
바울 자기가 세상에서 없애버리려고 한 기독교가 바로 구원의 종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반전의 간증을 들은 유대인들은 사도행전 22장 22절에서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둘 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정도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향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나봄으로써 회개하고 180도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완고한 유대인들처럼 불순종하지 말고, 바울처럼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사도행전 22: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요한계시록 1: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출애굽기 3: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사야 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행전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사도행전 22: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9:13-15.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도행전 10:13-15.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성도들을 최일선에서 핍박했던 사울(바울)을 용서하시고, 사도 삼으신 놀라운 사랑의 주님을 날마다 충심으로 잘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시고,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