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기는 내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썼던 글이다.
다시 읽어보니 연방 미소가 벙글어진다.
사발소 게시판에 소개해 본다.
아들과 대화를 하다가 우연찮게 '타잔얘기'가 나왔다.
'타잔'이 너무 멋지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여자친구를 한쪽 팔로 안은 채 넝쿨을 붙잡고 정글을 종횡무진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러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있지. 그것은 여자 친구를 사귀는 일도, 밀림으로 가는 것도, 타잔 복장을 갖추는 것도 아니란다.
네가 타잔처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늘부터 '팔굽혀펴기'나 '철봉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예?"
아들은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아직 '구심력'과 '원심력'의 원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나는 타잔의 '그 동작'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타잔이 긴 넝쿨을 타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는 행동은 넝쿨 길이를 반지름으로 하는 '원운동 원리'란다. 이때 대단한 구심력과 원심력이 동시에 작용하게 되지. 그러므로 자기 체중의 2배에 해당하는 무게를 그의 한쪽 팔뚝이 지탱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행동이다.
넝쿨의 길이가 길수록, 이동거리가 멀수록 그 힘은 몇 배 더 커지는 법이고. 거기에 '제인'까지 한 쪽 팔로 안고 가려면 자기 체중의 3-4배에 해당하는 무게를 한쪽 팔뚝이 너끈하게 견딜 수 있어야만 비로소 시도해 볼 수 있는 액션이야"
"...."
내 얘기를 듣고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잠시 후에 한 마디를 곁들였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장면이야. 그래서 애시당초 엄청난 근력의 소유자가 아니면 '타잔'역 캐스팅도 불가능하지. 그런 걸 바로 '언감생심'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누구나 생각은 할 수 있으나 실제로 연기로 표출하는 것이 99.99%의 사람들에겐 불가능한 영역이니까"
"너도 '타잔놀이'를 잘 하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팔굽혀펴기'나 '철봉훈련'을 열심히 해야 한다. 적어도 네 친구들 2-3명을 등에 태운 채 '팔굽혀펴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돼야만 사랑하는 제인을 안은 채 넝쿨을 타고 날아갈 수 있지.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남자로 칭송받겠니?"
아들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럼, 전 제인과 함께 넝쿨을 타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저 혼자만이라도 타잔놀이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라고 했다.
"하하하."
"아들아. 좋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능력에 맞게 심신을 단련하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단다. '타잔' 역이 매우 멋있어 보이지만 그건 '철인3종 '이나 100킬로 이상의 '울트라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과 정신력이 겸비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다.
물론, 영화는 픽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현실과 다른 면들이 많지. 그리고 위험한 장면에선 대역을 쓸 수도 있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맨발로 뛰기, 수영하기, 악어와 싸우기, 넝쿨 잡고 날아가기, 절벽을 기어오르기, 사자와 맨몸으로 격투하기, 코끼리를 능수능란하게 동원하거나 활용하기 등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란다"
아빠의 말이 끝나자 아들의 눈빛이 비장해 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하나 둘"
그날부터 가끔씩 아들 방에서 예의 그 '팔굽혀펴기'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주 어렸을때 부터 아빠 뒤를 따라 '해병대'에 지원하겠다고 했었다.
아들의 그 생각이 커서도 변함없기를 기도하고 있다.
"아들아. 해병대 가면 '타잔놀이'를 많이 할 수 있다. 꼭 가보렴. 아주 재미있지. 재미있고 말고. 하하하"
"사랑한다. 아들아"
일기는 여기서 끝났다.
아주 오래 전 기록을 다시 읽다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숱한 세월이 흘렀음을 절감했다.
'타잔놀이' 얘기를 주고받던 어린 아이가 벌써 '해병대'를 제대했고 이제는 캠퍼스마저 떠나려 하고 있다.
곧 자신만의 진로에 첫발을 내디디며 건강한 사회인이 되겠지.
머지않은 장래에 아들이 다시 아들을 낳으면, 그리하여 그 꼬맹이가 지 아빠에게 '타잔얘기'를 물어오면, 상술한 바와 같이 '넝쿨과 제인 얘기'를 들려주면서 '심신단련'의 중요성을 강조할 게 뻔하다.
그런 날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세월은 총알보다 빠르다. 그리고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영원한 진리임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아침이다.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오늘도 멋진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브라보.
2017년 11월 21일, 화요일
새벽에 큐티 마치고,
타잔에 대한 대화와 일기를 반추하며 몇 자 쓰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