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19. 균형을 잃으면 다 잃습니다.
---(팟캐스트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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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우(甘雨) 라디오/TV)---
http://gamwoo.tv/천수답의-새벽묵상일요칼럼-균형을-잃으면-다-잃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천수답의 일요칼럼 오늘은 교회 속에 있는 오해 열아홉 번째입니다. 제목은 균형을 잃으면 다 잃습니다.
사람들은 세계적인 장인들이 만드는 가방이나 의류 혹은 신발 같은 물건들을 고가에 매입하고 그것을 집안에 보관하곤 합니다. 그런 물건들을 흔히 사람들은 명품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명품과 비교해 볼 때 거의 비슷해 보이는 이것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실재로 명품들이 아니라 짝퉁들입니다. 짝퉁들은 명품들과 모양과 디자인과 심지어 상표까지 똑 같지만 어딘가 차이가 발견 됩니다. 짝퉁에도 레벨이 있다고 합니다. 짝퉁도 진품과 거의 차이가 없이 잘 만들어진 짝퉁은 아주 비싸게 팔립니다. 어떤 것은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이 있다고 합니다. 몇 해 전 어느 쇼핑몰에서 한 직장 여성이 프라다 가방을 고가에 매입을 했습니다. 정품 확인서까지 확인하고 가방을 가지고 다녔지만 얼마 후 상표를 보니 PRADA가 아닌 PPADA 라고 적혀 있어서 깜짝 놀라서 사진을 찍어서 보냈더니 쇼핑몰에서 회수해 갔다고 합니다. 정품 확인서까지 발행된 진짜 같은 가짜였던 것이지요.
가방이나 상품 같은 것은 잘못 사면 교환하거나 환불 받으면 되지만 신앙에서 명품 신앙이 아닌 짝퉁신앙에 빠지면 이것은 꽤 어렵고 힘든 일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한번 신앙의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면 성경을 읽는 관점이나 사고의 변형이 생겨서 모든 것을 사시적인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오히려 바른 것을 틀리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설이나 이단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신앙에도 그리고 신학에도 짝퉁이 있습니다. 때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런 신앙에서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권고 합니다. 그럴 듯 해보이고 그럴싸해 보일지라도 가짜는 가짜일 뿐 진짜가 될 수 없습니다. 짝퉁 신앙은 모양은 있습니다. 열정도 있어 보이고 나름대로 신앙의 신실함도 있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주는 참된 사랑의 능력은 결코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장로님이 한 때 폐금 수집 하는 일을 했습니다. 주로 치과를 찾아다니면서 치아 교환을 한 사람들은 빼버린 금니를 모아서 다시 금을 분석해서 되파는 일인데 처음 초보일 때 치과에서 금니를 돈을 다쳐주고 꽤 많이 매입했는데 글쎄 분석하는 공장에 가져갔더니 그 금니들이 거의 다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순금과 합금을 구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더랍니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정말 진짜인지 가짜인지 육안으로는 구별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도구가 시금석이랍니다. 이 시금석은 금의 순도를 측정하는 도구인데 주로 석영과 같은 치밀하고 단단한 재료로 만들어집니다. 거기에 금을 긁어서 줄을 낸 다음 표본 금 빛깔을 기준으로 색깔로 순도를 구분하는데 100%를 24K로 규정하고 14K, 18K등으로 금의 순도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출애굽기에 하나님의 성소를 만들 때 모세가 입힌 모든 성구들은 정금으로 싸서 입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의 재료들은 모두 정금이 사용되었습니다. 합금이나 불순물이 들어간 것들은 배제되었습니다.
(출 25:11)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출 25:17)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출 25:24)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출 25:29)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정금으로 만들지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바라시는 신앙은 정금신앙입니다. 그래서 욥은 고백하기를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의 순도를 시험하는 시금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의 말씀이 아니라, 우리 신학교 교수님이 아니라, 우리 교단의 신조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신앙의 순도를 구별하게 하는 순수한 시금석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우리들의 신앙이 이 시금석에서 떠나 왜곡되지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이 어느 한사람의 의견이나 비뚤어진 편중된 가르침은 아닌지 진지하게 두드려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안 속습니다. 그래야 후일에 실망하지 않습니다. (행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성경을 상고하는 사람들이 신사적인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너그러운 사람들입니다. 성경이 바로 시금석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교회 안으로 짝퉁신앙, 짝퉁 신학을 가지고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짝퉁 신학들은 완전히 틀린 신학이 아닙니다. 일면 일리가 있고 맞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단의 가르침에 현혹됩니다. 그런데 이런 짝퉁 신학의 문제는 틀린 것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입니다. 율법에 대한 태도를 예를 든다면 교회 안에는 두 가지 극단이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주의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율법을 준수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율법주의 신앙에는 절대 참된 쉼이 없습니다. 그런 신앙은 열심히 하면 할수록 절망과 좌절을 경험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영적 교만에 빠지지만 정작 자신의 구원에 대한 참된 확신을 없습니다. 사단은 율법주의로 사람들을 공략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극단 즉 무법주의 혹은 율법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내세웠습니다. 율법주의가 오른 쪽으로 기울어진 극단이라면 무법주의는 왼쪽으로 기울어진 극단입니다. 저들은 더 이상 우리가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럴싸하지만 이것도 율법에 대한 균형을 잃은 짝퉁입니다. 그들은 말하길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으니 이제부터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율법에서 벗어났으므로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양쪽의 균형 잃은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한 기울어진 짝퉁신학입니다. 아무리 그럴 듯 해보여도 그 끝은 완전히 빗나간 전혀 다른 종착지를 만납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얻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율법을 폐할 수 없습니다. 오리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더욱 굳게 세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심금석인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완전히 틀린 가르침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더 위험한 신앙은 균형을 잃어버린 신앙입니다. 교회 안에는 균형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신앙입니다. 비뚤어진 자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재단하고 성경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면서도 자신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유일한 시금석으로 여기고 날마다 성경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굴복시키는 것이 모든 성경학도들의 바른 태도입니다.
균형을 잃은 짝퉁 신앙, 오늘은 그것을 고민해 보면서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점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