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yyathāpi, brāhmaṇa, pabbatasaṅkhepe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79.“쏘나단다여, 예를 들어, 산꼭대기에 맑고 고요하고 청정한 호수가 있는데,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깊은 산에 호수가 있어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데,
Tattha cakkhumā puriso tīre ṭhito passeyya sippisambukampi sakkharakathalampi macchagumbampi carantampi tiṭṭhantampi.
그곳에 눈 있는 자가 언덕에 서서 조개류나 모래와 자갈이나 물고기의 무리가 움직이거나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시력이 좋은 사람이 둑에 서서 조개껍질, 자갈, 조약돌, 멈춰있거나 움직이는 고기 떼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Tassa evamassa –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
‘ayaṃ kho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이 호수는 맑고 고요하고 청정하다.
‘이 호수는 참 맑고 고요하고 깨끗하구나.
Tatrime sippisambukāpi sakkharakathalāpi macchagumbāpi carantipi tiṭṭhantipī’ti.
이곳에 조개류나 모래와 자갈이나 물고기의 무리가 움직이거나 서있다.’라고..
여기에 이런 조개껍질, 자갈, 조약돌이 있고 고기 떼는 멈춰있거나 움직이는구나.’라고.
Evameva kho, brāhmaṇ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쏘나단다여, 이 와같이 수행승은 마음이 삼매에 들어, 청정해지고 고결해지고, 티끌없이
바라문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오염을 여의어, 유연해지고 유능해지고, 확립되고 흔들림 없게 되어,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마음을 번뇌의 부숨에 대한 궁극의 앎으로 마음을 지향하게 하고 기울게 하여,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번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ayaṃ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ayaṃ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번뇌의 부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이것이 번뇌의 부숨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Tassa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ati,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을 때, 그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합니다.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ati,
존재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무명에 의한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합니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합니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합니다.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해탈하면 ‘해탈했다.’라는 궁극의 앎이 일어나면,
해탈에서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습니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그는 ‘태어남은 부수여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해야 할 일을 다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압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idampissa hoti paññāya
이것이 또 다른, 수행승의 지혜입니다.
이것이 역시 그의 통찰지입니다.
ayaṃ kho sā, brāhmaṇa, paññā’’ti.
쏘나단다여, 이것이 지혜입니다.”라고.
바라문이여, 이것이 바로 그 통찰지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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