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1.부활 제4주간 토요일 강론>
<요한14,7-14>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너는 믿지 않느냐?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예수님은,
하느님께 가시는 길,
하느님 말씀 자체이신 진리,
하느님 말씀을 통한 창조로 생명이십니다.
이제 그 분이 나를 보는 것은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 하십니다.
즉 그분은 아버지 하느님 안에 완전히 녹아 무아이신 것이지요.
예수님의 생각 말씀 행동은 모두 아버지의 생각 말씀 행동을 표현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크신 사랑에 아들은 모든 것을 다 바쳐 응답하시는 것이지요.
그 결과는 완전 순명입니다.
예수님 앞에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육신 정신 영혼의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남김없이 바치십니다.
너무나 엄청난 사랑이지요.
이 사랑을 느낄 수만 있다면,
우리의 모든 육신 정신 영혼을 주님께 다 바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아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어떻게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요?
1.말씀(매일 복음 말씀 묵상)
1)기도
의식을 관장하는 신뇌로 상상을 하면 됩니다.
신뇌는 사랑 소속의 욕구, 힘 성취의 욕구, 즐거움의 욕구, 자유의 욕구 등이 있습니다.
신뇌로 그날 그날 매일 미사책에 나오는 복음 내용을 2번~10번 읽고 묵상하면,
무의식을 관장하는 구뇌는 실제와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실제로 오감으로 느끼게 됩니다.
신뇌로 상상할 때 예수님께 직접 질문하거나 대화를 하게되면,
구뇌는 실제로 그것이 일어난 것과 똑같은 느낌이 들게 됩니다.
의식마저 내려놓고 30초~1분 침묵을 합니다.
2)정화
생활 안에서는 묵상중에 만난 예수님이 나와 함께 있음을 상상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생활합니다.
2.성체
1)영성체
미사성제 중에 봉헌 때 헌금과 함께 내 육신과 정신과 영혼을 제단위에 밀떡과 함께 봉헌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우리의 에고를 당신의 에고로 삼아서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다시 당신 몸으로 부활하셨듯이,
밀떡과 함께 봉헌된 우리의 육신과 정신과 영혼을 당신 육신과 정신과 영혼으로 삼아서 아버지 하느님께 다시 바치십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부활하셨듯이 밀떡과 함께 봉헌된 우리의 육신과 정신과 영혼이 성체가 된 당신의 육신과 정신과 영혼이 되어 영성체 때 다시 모시게 됩니다.
마치 우리 몸의 머리와 심장 그리고 팔다리처럼 당신의 머리와 심장 그리고 팔다리가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2)단순기도를 통한 성체조배
지성으로 성체안에 예수님 계심을 믿고,
기억으로 내 모든 기억을 다 비워내어 예수님과 일치할 소망으로,
의지로 내 모든 기억을 하나 하나 성체안에 계신 예수님께 봉헌합니다.
일 생이 한 번 봉헌 될 때마다 의식마저 내려놓고 30초~1분 침묵으로 예수님과 함께 머뭅니다.
이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점차적으로 30초~1분의 성체조배하는 침묵시간이 점점 길어집니다.
<John14,7-14>
7 If you know me, then you will also know my Father. From now on you do know him and have seen him."
8 Philip said to him, "Master, show us the Father, and that will be enough for us."
9 Jesus said to him, "Have I been with you for so long a time and you still do not know me, Philip? Whoever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How can you say, 'Show us the Father'?
10 Do you not believ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The words that I speak to you I do not speak on my own. The Father who dwells in me is doing his works.
11 Believe m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or else, believe because of the works themselves.
12 Amen, amen, I say to you, whoever believes in me will do the works that I do, and will do greater ones than these, because I am going to the Father.
13 And whatever you ask in my name, I will do, so that the Father may be glorified in the Son.
14 If you ask anything of me in my name, I will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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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추천의 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홍성남 마태오(신부)
우리의 프란치스코 교황님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슈퍼스타라고 부릅니다. 아이돌 못지않을 만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대 교황님들 중에서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분은 아마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처음일 겁니다. 사람들은 왜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열광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언제나 세상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 아파하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깊이 관여하시면서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나 자괴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자신들의 곁에서 함께하는 분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남미의 군사정권하에서 일반 시민들이 겪는 아픔을 함께(LET US DREAM 렛 어스 드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 프란치스코 교황 POPE FRANCES, 오스틴 아이버레이/김주현 옮김,(주)북이십일 21세기북스, 2020, p.15)
하셨던 교황님은 교황이 되신 후에는 전 세계 시민들의 대변인이 되셨습니다. 교황님의 행적을 보면서 가톨릭 사제로서의 자부심과 교회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 이후 교황청에서 홀로 힘겨운 걸음을 하시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등에 큰 짐을 지신 것 처럼 힘겨운 걸음을 내디디시는 교황님의 모습을 보면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님의 대리자로서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시는 듯한 모습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마음 아프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황님을 위한 작지만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드립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LET US DREAM 렛 어스 드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 프란치스코 교황 POPE FRANCES, 오스틴 아이버레이/김주현 옮김,(주)북이십일 21세기북스, 2020,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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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은 무엇을 뜻하나요?
무엇보다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신자들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마치 우리 몸의 머리와 팔다리처럼 그분과 우리를 연결하고 하나로 만들어 준 만큼 그 관계는 매우 견고합니다.[787-795]
->146, 175, 200, 208, 217
“기껏해야 그들은 나를 죽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죽인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나를 완전히 죽이지는 못할 것입니다.”(아렌베르크의 로베르트 프린츠(1898~1972년), 1944년 7월 20일에 일어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공모자)
(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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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교회-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예수님과 이루는 친교이다
->787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제자들을 당신과 함께 살게 하셨고(마르1,16-20; 3,13-19 참조),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계시하셨으며(마태13,10-17 참조), 당신의 사명, 당신의 기쁨(루카10,17-20 참조) 그리고 당신의 고통에(루카22,28-30 참조) 그들을 참여시켜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 사이의 더욱 긴밀한 친교에 대해 말씀하신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와 함께 있겠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15,4-5). 그리고 당신의 몸과 우리의 몸 사이의 신비롭고도 실제적인 친교를 예고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6,56).
->788 당신의 존재를 제자들이 눈으로 볼 수 없게 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아들처럼 버려 두지 않으셨다(요한14,18 참조). 예수님께서는 세상 종말까지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마태28,20 참조), 당신의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 주셨다(요한20,22; 사도2,33 참조). 이로써 예수님과 이루는 친교는 어떤 의미에서 더 강화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불러모으신 당신 형제들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시어 신비로이 당신 몸을 이루셨다.”(교회 헌장, 7항)
->789 교회를 몸에 비유하는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 잘 보여 준다. 교회는 단순히 그리스도 주위(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337)/
에 모인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몸 안에서, 그분 안에 하나가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세 가지 측면, 곧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이루는 모든 지체 간의 일치, 그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특히 강조되어야 한다.
“한 몸”
->790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된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긴밀하게 결합된다. “그 몸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신자들에게 나누어지며, 신자들은 수난을 당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성사를 통하여 신비롭게 실제로 결합되는 것이다”(교회 헌장, 7항).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결합시키는 세례에서 특히 그러하다(로마6,4-5; 1코린13,13 참조). 그리고 “성체의 빵을 나누어 먹으며 실제로 주님의 몸을 모시는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또 우리 사이에 친교를 이루도록 들어 높여진다.”(교회 헌장, 7항)
->791 몸의 단일성이 지체들의 다양성을 없애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때에도 지체들이 서로 다르고 그 직무가 서로 다른 것이다. 성령께서는 한 분이시다. 그 성령께서 당신의 풍요와 직무의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선물을 교회에 유익하도록 나누어 주신다”(교회 헌장, 7항). 신비체의 단일성은 신자들 사이에 사랑을 낳고 자극한다. “그러므로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아파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한다.”(교회 헌장, 7항). 끝으로 신비체의 단일성은 모든 인간적 분열을 극복한다.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338)/
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3,27-28).
“그리스도께서 이 몸의 머리이시다”
->792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콜로1,18)이시다. 그분은 창조와 구속의 근원이시다. 성부의 영광 안에 들어올려지신 그분은 “만물의 으뜸”(콜로1,18)이시며, 특히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당신 통치권을 만물 위에 펼치신다.
->79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파스카에 결합시키신다. 모든 지체는 그들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되도록”(갈라4,19) 그리스도를 닮기로 애써야 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우리는 생명의 신비 안으로 받아들여진다…..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며 머리에 결합된 몸으로서 그분의 고난을 함께 받는 것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으려는 것이다.”(교회 헌장, 7항)
->79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성장하도록 돌보신다(콜로2,19 참조).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향해 자라도록 하시기 위하여(에페4,11-16 참조) 당신 몸인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선물들과 서로 다른 봉사직을 주심으로써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에서 서로 돕도록 하신다.
->795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교회는 ‘온전한 그리스도’(Christus totus)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이다. 성인들은 이러한 일치를 매우 생생하게 의식하고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339)/
그러므로 우리가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된 것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이 된 것을 기뻐하고 감사 드립시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로 보내 주신 이 은혜를 이해하십니까? 놀라고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우리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분과 우리는 온전히 한 인간입니다……그러므로 머리와 지체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충만함입니다. 머리와 지체들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말합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21,8: CCL 36, 216-217(PL35, 1568).
우리 구세주께서는 당신이 취하신 교회와 하나의 인격체임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성 대 그레고리오, ‘욥기 교훈’, 서문, 6, 14: CCL 143, 19(PL 75, 525).
머리와 지체들은 말하자면 신비스러운 하나의 인격체이다(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대전’, 3, q. 48, a. 2, ad 1: Ed. Leon. 11, 464).
잔 다르크 성녀가 재판관들에게 한 말은 거룩한 교회 학자들의 믿음을 요약하고 신앙인의 상식을 표현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성녀 잔 다르크, ‘판결문’: Proces de condamnation, P. Tisset 편(파리 1960), 166면(Textus gallicus).(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340)/
아브라함-“모든 믿는 이의 조상”
->146 이처럼 아브라함은 히브리서가 제시하는 신앙의 정의(定義)를 그대로 실현한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주고 그대로 실현한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히브11,1).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그것이 그의 의로움으로 인정되었습니다”(로마4,3)(창세15,6 참조). “굳게 믿음”(로마4,20)으로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이의 아버지”(로마4,11.18)가(창세15,5 참조) 되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87)/
III.하나인 믿음
->175 “우리는 교회로부터 받은 이 신앙을 정성스럽게 보호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성령의 작용으로, 훌륭한 그릇에 담긴 값진 유산과 같은 이 신앙은 끊임없이 스스로 젊어질뿐더러, 그것을 담은 그릇 자체도 젊게 하기 때문입니다.”(성 이레네오 ‘이단 반론’, 3,24,1: SC 211, 472(PG 7, 966)).(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99)/
I.”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200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구약의 하느님 계시에 근거한 하느님의 유일성에 대한 고백은 하(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109)/
느님 존재에 대한 고백과 분리될 수 없으며, 이 둘은 모두 근본적인 것이기도 하다. 하느님께서는 유일하시다. 오직 한 분의 하느님만이 계신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께서 본성과 실체와 본질에서 오직 한 분이심을 고백한다.”(‘로마 교리서’, 1, 2, 8: P. Rodriguez편(바티칸-팜플로나 1989), 26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110)/
“나는 곧 나다”
->208 당신께로 이끄시는 신비로운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미소함을 깨닫는다. 불타는 덤불 앞에서, 하느님의 거룩함을 대면하여 모세는 자신의 신발을 벗고 얼굴을 가린다((출애3,5-6 참조), ‘거룩하시고 거룩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영광 앞에서 이사야는 “큰일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나는 입술이더러운 사람’(이사6,5)이라고 부르짖는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하느님의 표징을 보고 베드로는 부르짖는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하느님의 표징을 보고 베드로는 부르짖는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루카5,8).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거룩한 분이시므로 당신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는 인간을 용서하실 수 있다. “아무리 노여운들 내가 다시 분을 터뜨리겠느냐…..나는 사람이 아니고 신이다. 나는 거룩한 신으로 너희 가운데 와 있다”(호세11,9). 요한 사도도 같은 말을 한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양심의 가책을 받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요한3,19-20).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113)/
하느님께서는 진리이시다
->217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계시하실 때에도 진실하시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가르침은 “참된 법”(말라2,6)이다. “진리를 증언하도록”(요한18,37)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116)/
보내셨다. “하느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이해력을 주시어 그 참되신 분을 알아보도록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1요한5,20)(요한17,3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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