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의 안타까움에
나이가 들수록 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들에 대한 그리움에
편한 친구들 십여 명과 변산반도 채석강으로 설레는 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난 살아가면서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때면 떠올리는 사람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있다.
사람은 비밀(?)로 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 중 하나는 바로 변산반도에 우뚝 솟아있는 채석강이다.
켜켜로 쌓여있는 암석들
수평선 아래로 사위어가는 붉은 태양이 조용히 그려내는 황금빛 노을
삶의 애환을 가득 안은 채 물살을 가르는 통통배들
조금 쉬었다가 오면 누가 뭐라나 삼킬 듯 혀를 늘럼거리며 다가오는 파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모래밭을 팔랑거리며 뛰어다니는 꼬마녀석들
그래! 이곳이 바로 내가 열아홉의 나이에 세상이 너무 버거워 부모님에게 편지 한 장 남겨놓고
무작정 가출했던 곳이던가
그땐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의 미래는 온통 회색빛이라고, 앞으로 나의 삶은 절망과 고통뿐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나는 아무런 존재의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살아가는 의미도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어보였고 세상 사람들의 모든 짐이 내 어깨 위로만 무겁게 무겁게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열여섯 명의 친구들(남,여)이 써클을 만들어 들과 산과 중국집과 빵집으로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세월은 흘러 대입시험이 다가왔고 모든 게 자신이 없던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노라고 부모님에게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아 고민을 하다가 합격자 발표하던 날 가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물론 시험도 치지 않았으니 합격의 행운이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조그마한 동굴 속에서 하루종일 앉아 짙푸른 바다만 바라보고 있으니 밤이
찾아왔다.
1월의 겨울바다, 그것도 혼자서의 밤바다는 공포의 극치였다.
무서움과 추위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여인숙 주위를 서성거렸다.
격포항에 딱 두 군데의 여인숙이 있었는데 하룻밤 잘 돈은 있었지만 숙박비로 돈을 써버리면 다음부터가
걱정이었다.
민가 근처에서 서성이다간 강도로 오해받을 것만 같고 ' 에라이 추워서 얼어죽으면 그만이지'
이판사판의 마음으로 바닷가로 다시 나가 동굴을 찾아보기로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바닷가에서 삭풍을 피할 만한 곳을 찾는다는 것도 어려워 보였고 무서움에 도저히 혼자서는
밤을 샐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일은 내일이고 다시 여인숙 근처를 배회하니 아까부터 나를 관찰했는지 여인숙 주인이 나를 부른다.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하고 여주인의 따뜻한 배려에 하룻밤을 공짜로 잘 수가 있었다.
온기가 느껴지는 방에서 사지를 늘어뜨리고 누울 수 있음이 너무도 좋았지만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내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잠이 쉽게 오질 않았다.
"학생!!오늘 하루 더 자도 괜찮으니 오늘 하루만 더 자고 내일은 꼭 집에 가야 혀~~"
난 하루를 더 신세지고 짚시가 되어 친구집들을 떠돌기 시작했다.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아버님, 어머님에게 잘못 했노라고 무릎 꿇고 며칠이라도 빌고 싶었지만,
공부 한 번 목숨 걸고 죽도록 해보겠노라고 약속하고 싶었지만 발길이 집으로 향해지질 않으니
아~~~~!! !!!
10여 일을 떠돌다가 친구도 없는 친구집에서 생쥐마냥 생고구마를 우적우적 먹고 있는데
갑작스레 들려오는 어머님의 목소리 "영율아~~~~ " 아 ! 정겹고 그리웠던 저 목소리
" 아이구 내 새끼야~~" 환한 웃음으로 내손을 덥썩 잡는 나의 어머님,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무서움 보다는 만감이 교차하며 끝없는 눈물만 주룩주룩....
산골 마을에서 큰 길 신작로까지 어머님의 뒤를 따라 어둠을 헤치며 걸어나오는데 고교시절에 대한
후회와 공부에 대한 의지가 콧물, 눈물과 함께 파도처럼....
밤하늘의 별들이 눈에 들어오고 밤공기가 차갑게 느껴지면서 뭔가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만 같았다.
" 자거라 " 아버님의 한 말씀 속에 베어 있는 아픔과 사랑을 먼 먼 훗날에서야 알 게 되었으니 불효인지
다 그러는 것인지....
삼십 년 전의 아픈 추억이 베어있는 그 바닷가를 오랜만에 찾아갈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인다.
그땐 아픔이었지만 지금은 오색의 예쁜 추억으로 가슴에 간직한 멋진 중년이 되어
나 가리다 추억이 어려있는 그때 그 바닷가로. 사랑, 낭만,그리움, 그리고 모든 아픔까지 가슴에 안은 채.
오늘 저녁엔 조개구이를 아구아구 먹어치우고 내일 낮엔 그물로 막 잡아올린 싱싱한 횟감 들을 배가 띤띤하도록
먹어야겠다.
가능하면 일찍 출발하여 변산반도의 해넘이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고,
서울에 살다가 변산반도로 이사를 가 바닷가에 통나무로 집을 지어 지역에 거주하는 문인과 화가들에게
만남과 토론의 장을 제공해 주고 있는 친구집을 찾아가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며 진한 커피향에도 취하고 싶다.
온 세상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물들이는 저녁 노을처럼 그런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짐도 해보려는데 글쎄....
오늘밤에는 별이 유난히 많았으면 좋겠다.
친구들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창가에 별빛들이 펄펄 내려와 앉을 수 있도록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엄마 별, 저 별은 아빠 별, 저 별은 누나 별, 저 은하수는 동생들~~~'
"어머님 싸랑 혀 유~`" //
첫댓글 채석강에 관한 사진과 글을 올리고 나니 자꾸 아픈 추억이 쓰고 싶어서 부끄럽지만 고백의 글을 올립니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유일한 동물이다 "라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저도 우리 부모님 속 많이 상하게 했었는데 철들어 그나마 은혜갚음을 하려니까......딴 세상에 계시네요...앞으로는 좋은 추억만 있었으면 하는데 잘 될런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똑 같나 봅니다. 부모는 끝없이 배풀고 자식은 보은의 길을 알듯하다가 부모님이 떠난 후에야 후회의 눈물이....좋은 밤 되세요
많은 사람들이 몇번씩 짐을 쌓다 풀었다를 반복하지요, 특히 여자의 경우에는 더 빈번히... 다만 그럴 기회의 조성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그저 마음 가는대로 너울너울 흘러가는 인생살이, 저 흰구름처럼 또는 낮은 곳으로 쉬임없이 흐르는 물처럼, 고요하게 침묵하며 바람처럼 떠돌다 유유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이상을 그려봅니다. 학창시절 하도 많이 이리저리 쏘다녀봐서 가출은 생각지도 못해봤습니다.살아숨쉬는 멋진 글 잘 보았습니다. 여여하시구요~
너울너울 바람처럼 떠돌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진리를 가슴 깊이 느끼며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네요. 몇몇 시인들의 맑은 모습이 생각이 나는 밤입니다. 생각이 머무는 댓글에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매지구름 님의 변산반도 여행속에 - 옛추억을 더듬어보는 훌륭한 수필이 되었습니다 ----------
님이 표현하신대로 특정한 형식이 없이 붓가는대로 쓰는 게 수필이라지만 그래도 글이니 향기는 나야할 텐데 제 글에 과연 그런 향기가? ㅎㅎ 기분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추억에 한 페이지로 남길 수 있어 좋은것 같습니다....잘 감상하고 갑니다....
아픈 추억이지만 아픔을 굳은 의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동기가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멋진 추억이 되었답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움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변산반도 중앙에 위치한 새만금에 채석강의 아름다운추억.....매지구름님의 바램되루 따뜻하고 아름다운 노을을 함께할 그날을 마음으로나마 빌어드립니다..
노을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천사라고 부르는데 수호천사 님이 바로 그런 분? 마음 편한 하루이길 바랍니다.
몇년전 10월에 변산반도로 여행을 갔다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3개월정도 살다 나온 기억납니다... 참 좋죠...
여행을 갔다가 3 개월을 살 수 있는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형화 된 삶의 틀을 부수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서... 헬기 타고 운학 님에게 한 수 배우러 가야겠습니다. 받아주실 거죠? 멋진 하루이길 바랍니다.
앞날에 대한 막막함에 누구나 한번쯤은 일탈을 꿈꿨음직한 젊은날의 초상같은 모습이네요. 잠시의 방황이 그래도 이름모를 여인숙 아주머니의 따뜻한 배려와,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지금은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으니 다행이네요. 도봉산 산행후 돌아오는길에 사 주신 아이스크림 참 시원하더군요.^^
아이스크림을 드셨으면 빚을 갚아야죠 네? 이율도 높은데 빨리... 아픈 젊은날의 추억을 웃으며 생각할 수 있음도 작은 행복이려니 생각합니다. 또 뵐 수 있기를...
몇년전 친정 내려 가는 길에 세명의 친구들과 야밤에 모래밭을 뛰어 다니며 나 잡아봐라~~~~~~ 하던 시간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님두 힘들었던 시간의 추억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좋은시간 보내길 바래요~~~
파도소리 들으며 팔랑팔랑 모래밭을 뛰노는 세 명의 소녀, 이 소년도 그속에 같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도망가는 영글이.. 잡을 듯 말 듯 뛰쫓아가는 매지구름ㅎㅎ. 하얀 포말이 바지가랑이를 적시는 줄도 모르고 깔깔대는 소녀와 소년 ㅇ ㅠ ㅊ ㅣ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