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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유혹하는 사람에 대한 호감도 아니요, 위협하는 사람에 대한 맹종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헐벗고 버림받은 사람을 잊지 못하는 눈물이어야 하고, 정직하고 두려움 없이 양심껏 말하다가 투옥되어 고통 중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저버리지 못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행동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지학순 주교 옥중메시지 중에서)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 선종 20주년을 맞이해 2월 12일 제천 배론성지 소성당에서 원주교구장 김지석 주교의 주례로 추모미사가 봉헌되었다. 이날 미사에는 지학순 주교와 더불어 유신정권에 의해 고초를 겪었던 신현봉 신부와 최기식 신부 등 사제와 신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어 지학순정의평화기금 이사장인 최기식 신부는 웨스트파푸아의 분쟁종식을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와 중재에 나섰던 넬레스 테베이 신부를 소개해 인사말을 들었다. 테베이 신부는 올해 지학순정의평화상을 수상했다. 미사가 봉헌된 배론성지의 소성당에는 추모미사를 알리는 현수막도 없었고, 제대 앞에 지학순 주교의 영정도 비치되지 않아 추모객들의 아쉬움을 샀다. 미사 후 추모객들은 성직자묘지에 안장된 지학순 주교의 묘소에 들러 연도를 바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참석자로 가득 찬 강의실에는 ‘정의가 강물처럼’이라는 현수막과 장일순 선생이 지학순 주교의 선종에 바친 추모시가 걸려 있었다. 지학순 주교는 특별히 가난한 지역민들을 돌보며 장일순, 김영주, 이경국, 이창복 등 평신도들과 함께 일했다. 김정남 씨는 이날 강의에서 “1965년 3월 22일 원주교구가 설정되었고, 지학순 주교가 초대교구장으로 착좌한 것이 6월 29일이었다. 이날 주교로 성성된 지 주교는 그해 9월 14일부터 시작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마지막 회기에 참석했다. 그야말로 지학순 주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김정남 씨는 지학순 주교가 교구장 취임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민주국가’를 건설하는데 협력해 나갈 것을 청하며, “군기와 호령만으로는 윤리도덕이 확립되지 않으며, 여기에는 메마른 마음에 단물을 부어주는 종교의 부드러운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 주교는 교회가 실질적으로 사회에 기여하기를 원했다.
그 실천적 결과는 유신정권에 대한 도전이었고 “소위 유신헌법이라는 것은 1972년 10월 17일에 민주헌정을 배신적으로 파괴하고, 국민의 의도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라는 내용의 ‘양심선언’으로 드러났다. 이 양심선언으로 구속된 지 주교는 10개월 만에 석방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결성되었다. 이처럼 원주는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산실이었고, 정치적 망명자들의 은신처였다. 또한 한살림운동과 신협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지학순 주교 생전에 곁에서 줄곧 보좌해온 최기식 신부는 “그분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많이 배운 사람들은 ‘기억’을 강조하지만, 나에게 그분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최기식 신부는 1974년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면서 유학을 포기하고 지 주교 석방운동과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에 나섰으며, 최근까지 원주교구 사회복지운동에 참여해 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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