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박운현
해마다 음력 8월 초순初旬이 되면 벌초를 한다.
대개 이때는 처서절기가 지나면 돌아온다. 선선한 기운이 들기 때문에 풀이 더 자라지는 않는다고 해서다. 그래서 조상의 무덤에 풀을 벤다. 풀을 베는 일을 ‘벌초伐草를 한다’고 한다. 여름 내내 풀이 쑥쑥 자라 온통 묘지를 뒤덮는다. 풀을 베고 나면 이내 추석이 다가온다. 말끔히 풀을 베고 나서 묘소에 성묘를 하게 된다.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후손들의 덕담을 나누는 추석을 맞이하기 위해서 벌초를 하는 것이다.
벌초를 말끔히 한 무덤은 후손들이 번창하고, 그렇지 않고 쓸쓸히 누워 풀로 뒤덮혀 묵어난 데는 후손들이 없거나, 멀리 외국으로 나가 살기 위해 이민을 간 경우가 아닌지 모르겠다.
무덤에 풀을 베지 않고 그대로 두면 이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지경에 이른다. 예전에는 소를 산에 방목하여 배불리 먹도록 하여 무덤에 있는 풀도 어느 정도 먹어치우는 통에 덜 묵혀졌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무덤을 실묘失墓하고 주위환경에 파묻히게 된다.
풀을 벨 때는 벌이나 뱀, 열성감염병(쯔쯔가무시, 렙토스피라, 유행성출혈열), 중증열성혈소판 감소증후군(살인진드기) 등에 조심하여야 한다. 이런 독성을 가진 것들에 물리면 사망에 이르는 위험천만한 일이 발생한다. 특히나, 중증열성혈소판 감소증후군(살인진드기)은 물리면 치료약이 없어 더욱 애를 태우게 한다.
내 생각으로는 중증열성혈소판 감소증후군(살인진드기)는 우리나라 토착 생물이 아니고 외국에서 들어온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런닝 차림으로 살갗을 드러내 놓고 벌초를 해도 괜찮았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이상한 일이 자꾸 생겨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한데 요즘 이런 미생명微生命들이 벌초시기에 더욱 왕성하게 활동한다고 하니 더없이 걱정이 앞선다. 토시를 끼고 긴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매고 신발은 목이 긴 등산화 같은 걸 신어서 피부가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아울러 기피제를 뿌리면 이러한 것들이 피해서 달아난다고 하니 그렇게라도 해야 하리라.
어떤 글에서 읽은 일화 한 토막이 생각난다.
“어느 절에 주지스님이 자신의 은사에게서 들은 얘기로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도 함부로 다치게 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더라고 했다.
어느 불자가 정원에 옮겨 심어놓은 산야초에 진딧물이 많아 꽃을 살리기 위해 살충제를 살포하고자 하였는데, 이들도 귀한 생명체들인지라 함부로 죽일 수는 없어 ‘진딧물 제위에게 고함, 모년 모월 모일에 또 다른 목숨인 꽃들을 살리기 위해 만부득이 독스를 살포할 예정이니, 그전에 떠나 줄 것을 권고하는 바임’. 이라고 써서 정원의 나뭇가지에 걸어두었는데, 경이롭게도 이 진딧물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어느 집 앞에서 못생긴 강아지를 보고 무심코 ‘그 놈 참 못 생겼구나’ 라 하였는데 그 후, 그 길을 오갈 적에 볼 때마다 자지러지게 짖어 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궁리 끝에 ‘그래, 알았네, 그대도 부처님의 품성을 지닌 신성한 존재일세, 그만 용서 하게나’ 하자 바로 그 순간부터 전혀 짖어대지 않고 순해졌다”는 것이다.
이 일화 한 토막을 읽고 난 후 나도 느낀 바가 있어 벌초를 하면서 나타나는 비록 독성을 가진 미생명체들일지라도 자연의 생명을 가진 귀한 존재들이니, ‘ 미생명체인 그대들이여, 오늘 나는 조상님의 은덕을 기리고 후손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자 벌초를 실시할 것이니 이 자리를 떠나주오’라고 써서 주위 나뭇가지에 걸어 볼까 한다.
벌초를 하다가 혹여나 미생명微生命들에 물려 산 사람이 되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조상님과 같이 나란히 잔디에 눕게 된다면 이보다 더한 불행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해마다 조상님들의 벌초를 빠짐없이 해오고 있다. 조상님들의 음덕으로 이렇게 아무런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랴. 옛부터 대개 음력 8월에 들어와서 벌초를 하여 왔는데, 요즘은 이를 잘 지켜지지 않고 이전이라도 언제든 한다.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함께 모여 다 같이 적당한 날을 받아 벌초를 하는 게 좋을 성싶다. 벌초를 하면서 모처럼만에 다함께 모여 반가운 얼굴을 보고, 우애를 다지고, 서로 안부를 묻는 기회가 되는 것이므로.
그게 사람 사는 목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조상 없는 후손이 어디 존재하겠는가, 하늘에서 어느 날 갑자기 호박넝쿨처럼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조상님들의 은공을 잊어서는 아니 될 이유이리라.
나도 음력 8월에 들어와서야 벌초를 한다. 처서가 오기 전 너무 일찍이 하게 되면 추석성묘 때나, 시월묘사 때 산소에 풀이 봄풀처럼 소롯이 자라난 경우를 종종 보아온 일이 있기에.
그렇게 처서가 지나고 8월이 와서 더위가 좀 누그러지면 벌초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연유에서다. 벌초 때가 돌아오면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이 어제 이련 듯 생각나는 게 있다.
조상님의 묘소에 벌초를 하고 마지막으로 주위에 풀이 우거진 곳을 제거하려다가 풀을 잡자마자 벌집을 건드렸는지 벌이 총 출동하여 벌화살을 맞은 일이 있었다. 조상님들의 가호가 계셨는지, ‘그러마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쳐서 벌화살을 심하게 맞지는 않아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멀찍이 한적한 곳으로 가서 맞은 부위를 살펴보니 종아리에 몇 군데 화살을 맞았다. 만일에 이 벌이 땅벌이 아니고 말벌이었더라면 어찌 되었겠는가 생각하니 전신에 식은땀이 흐른다. 말벌에 쏘이면 바로 수분 내에 절명을 하는 무서운 벌이기에.
요즘엔 사람이 죽으면 매장을 하지 않고 화장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체로 십중팔구 구 十中八九 具정도는 그렇게 한다고 한다. 좁은 땅덩어리에 그렇게 바뀌어 지는 게 다행이라 하겠다. 주택지, 농경지, 산업지가 잠식되면 그만큼의 용지난을 가중 시킬 수 있기에.
종래 매장풍속이 화장으로 바뀌어 지는 현상은 자연스런 것으로 오히려 권장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매장으로 인한 번거로움과 사후관리에도 여간 고역이 따르는 게 아니니까. 이시대의 흐름에 걸 맞는 변화의 조짐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와 같이 인구는 밀도는 높고, 좁은 땅덩어리에 사는 형편으로서 그런 것이니. 세계 여러 나라 장례풍속도 거의 화장으로 시행하는 나라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매장된 조상들의 묘소는 물론 잘 관리되어야 하겠지만.
후손된 도리로서 정성을 다하여 조상님들의 묘소는 관리되어야 하리라. 이번 달 9월 3, 4일이나 10, 11일에는 형제들이 모여 벌초를 해야겠다. 예년과 다름없이.
오늘이라도 전화나 메일로 연락을 취하여 벌초 날을 결정해야겠다. 후손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나이 어린 자식들에게 몸소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니.
첫댓글 귀감이 되는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벌초할때, 조심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이듭니다^^
벌초에 얽힌 일화와함께 조상을 기리는 마음, 잘 읽었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벌초는 조상에 대한 마음이지요.
무슨 일이든지 간에 하게 되면 꼼꼼하고 빈틈없이 성실하게 임해야 하겠지요. 그러하면 아무런 탈이 없습니다. 허겁지겁 덤벙대다 꼭 탈이 납니다. 이는 개인사부터 국사까지 마찬가집니다. 크고 작은 일 모두 다 그러합니다. 남 탓 하지말고 자기 일을 비롯하여 사회일이나 단체일 등을 할 때는 필히 단단히 챙겨서 탈없는 삶을 영위하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