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의 유명 사찰로는 학도암, 불암사, 천보사가 있고 암자로는 석천암이 있다.
이들 불암산 사찰들의 특징은 산명(山名)에서 알 수 있듯
바위가 많아 사찰마다 마애불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부연하면 학도암의 거대한 마애관음불좌상, 불암사의 마애삼존불,
천보사의 눈썹바위의 마애여래상과 삼성보궁의 마애불상과 더불어
석천암에는 마애미륵불이 조성되어 있다.
석천암 가는 길은 불암산 정상 가는 길의 깔닥고개에서 내려가는 코스와
불암사나 천보사에서 정상 가는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길이 있다.
불암산 둘레길은 늘 다니는 길이라 눈에 너무 익은 탓에
교만한 마음이 생겨 정상 등산로를 따라가지 않고
천보사에서 숲길을 바로 접어 들었더니
길 없는 길이라 반 시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무려 2시간을 넘게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도착하니 석천암 위쪽이었다.
사서 고생한 셈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했는데....
석천암은 불암산(507m)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람으로,
오르는 등로도 바위 너들길로 가파르다.
행정지역으로는 석정봉과 전망대가 있는 쪽은 노원구에 속하지만,
그 뒤편은 남양주시 별내면에 속한다.
석천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알려져 있으며,
또 불암사의 사내 암자로도 소개되어 있다.
창건주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 흥덕왕 때 지증(智證)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지증(智證)대사는 824년(헌덕왕 16)희양산문(曦陽山門)을 일으켰던 선사로
불암사 절 입구 제월루(霽月樓) 앞에 세워져 있는
천보산 불암사 사적비(天寶山佛巖寺事蹟碑)에 의하면
불암사의 창건주로도 알려진 선사이다.
@석천암(石泉庵)은 창건 이후 기록은 물론 고려 시대의 기록도 없고
다만 조선 시대고종 19년(1882년)에 병역제도의 개편으로 오위제도가 해체되자,
오위장(五衛將) 이장군(李將軍)이 옛터에 암자를 짓고 수도하였다고 전한다.
또 2015년 독일 경매에서 환지본처(還至本處) 된지장보살 시왕도 불화 1점이 있는데
그 화기(畵記)에 봉안처가 <양주 천보산 석천암'(揚州天寶山石泉庵)>이고
조성연대는 1848년으로 기록되어 있어
석천암은 적어도 조선 중기까지는 존속되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현재 석천암 지장보살시왕도는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후 1899년에 거사(居士) 김한구(金漢九)가 낡은 건물을 수리하고 이곳에서 공부하였으며,
1956년에는 주지 창근(昶根)스님이 요사채를 중수하고,1960년에는 법당을 세웠다.
당우로는 201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2013년에 재건한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채가 있고,
마애약사전이 있으며 마애미륵불입상이 있다.
이 미륵불은 1966년설봉스님이 조성하신 것으로 오늘날 석천암의 상징이 되고 있다.
마애미륵존불일주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이 거대한 마애미륵불은
석천암의 마스코트로서 좌측은 대웅전,우측에는 종무소가 있고
마애불 앞에 조성된 기도처는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같은 쌍혈자리로 풍수지리학상 명당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마애미륵불은 1966년 설봉스님이 발원하여 조성했다고 하며
또 다른 이야기로 불교신문에 의하면
1960년 박광문이라는 거사가 이곳에서 신병을 치료 중
꿈에 미륵불을 현몽하고 바위에 미륵불을 조성하여 4년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거대한 자연암벽에 고부조로 조각된 마애불은 미륵불로서
둥근 얼굴에 이마에는 백호가 있고,
이목구비(耳目口鼻)는 둥근 얼굴에 비하여 균형이 조화롭지 못하다.
법의는 통견으로 발까지 덮고 있으며,
수인은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여 가슴 위로 향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여 허리 아래로 내려져 있다.
근래에 조성된 마애불치고 빼어난 솜씨는 아니며,
가사는 투박한 고부조로 선각 처리되어 있다.
대웅전전면 3칸, 측면 2칸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된 대웅전은
201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2013년에 재건한 것이다.
풍수지리로는 명당인 쌍혈자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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