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추모의 정은 더욱 애절”
故 육영수 여사 30주기 추도식 국립 현충원에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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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박서영 육영재단 이사장, 박지만씨등 유가족들이 나란히 분양을 하고 있다. |
각계 인사 2천여명 추모의 발길 이어져
고 육영수 여사 30주기 추도식이 8월 15일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 묘소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박서영 육영재단 이사장, 박지만 씨 등 유가족과 친지, 내외빈 등 추도객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재단법인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이 날 추도식에는 황인성 전 총리,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 민관식 전 국회의장, 길전식 전 공화당 사무총장 등 박 전 대통령 시절 공화당과 내각,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 지인들을 비롯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형오 사무총장 등 한나라당 의원,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 황우석 서울대 교수 등 재계, 언론계, 학계와 군 관계자 등 각계 각층 인사들이 줄을 이었다.
또한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추모하는 목련회, 민족중흥회, 정수추모회, 청호회 등 각종 민간, 사회 단체, 종친회, 향우회 등에서도 많은 추도객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경남 하동에서 휠체어 타고 오기도
특히 제1야당 대표로 부상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하는 모임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을 비롯 ‘사랑혜’ ,’근혜사랑’, ‘혜사랑아메리카’ 등 10여 곳의 민간 팬클럽, 인터넷 팬클럽 등 회원 500여명이 참가했으며 특히 ‘박사모’ 회원들은 남색 티셔츠에 ‘그리운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란 글귀가 적힌 어깨띠를 둘러 눈길을 끌었다. 이들 가운데는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 남매, 휠체어를 탄 불편한 몸으로 참석한 장애우도 있었다. ‘박사모’ 회원 임성규씨는 추모행사를 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보로 갔다가 이날 행사에 맞춰 상경하여 합류하는 등 전국 각지에서 참여한 열성파 회원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경남 하동군 매계리에서 올라온 강윤희씨(28)는 휠체어를 의지않고서는 한발짝도 떼지 못하는 1급 중증 장애우다. 5년전 20대 초반의 꿈많은 간호사였던 그녀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되는 불행을 겪었으나 좌절을 딛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지금은 인터넷 다음에 ‘푸른 날개’란 까페를 열어 장애우들의 공간을 만들고, 서부경남지체장애우회장으로도 활동하며 장애우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북돋우는 일을 하고 있다.
“육여사의 훌륭한 삶을 본받고 싶고요 제가 장애우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
목메인 추도사에 참석자들 모두 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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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묘사에 분향하기 위해 제단을 오르는 추도객들 |
이날은 지난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괴한의 흉탄에 운명한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육여사의 서거는 국내외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온 국민을 슬픔에 빠트렸다. 당시 공화당 정권에 비판적이던 조선, 동아일보 등 유력 신문들조차 ‘대한민국 국모 서거’라는 표현을 쓰며 비통해 했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던’ 그 날을 비통한 심정으로 지켜봐야했던 세 사람의 목 메인 추도사는 2천여 추모객들의 가슴을 저미게 만들었다.
육여사 생존시 청와대에서 수행비서관으로 모셨던 정재원씨는 여사께서 피격된 후 박 대통령께서 연설을 마저 끝내시고 피 묻은 고무신을 챙겨 오셔서 말없이 제게 건네주시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라며 읽어 나갈 때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김두영 비서관의 추도사는 추모객들의 마음을 더욱 애절하게 만들었다.
“강산도 변했고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연모의 정이 더욱 깊어가는 것은 숭고하고 고결한 인품이 우리 가슴 속 깊이 새겨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 지치고 소외되고 병들은 이들을 보살피며 걱정하고 고락을 함께 하시려던 사랑과 희생의 자세를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잠 한번 실컷 잤으면 좋겠다고 웃으시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추도사는 이어서 “고인과 고 박대통령의 치적에 대한 왜곡과 폄하로 혼탁한 지금의 세태를 보면서 후세들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저희들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결코 좌절하지않고 고인의 훌륭한 유지를 받들고 계승할 수 있도록 용기와 신념을 주십시요”라며 간절한 바램으로 끝을 맺었다.
서거 당일은 방송사 마다 모든 정규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추모방송을 내보냈는데 당시 방송사 아나운서 였던 강영숙 예지원 원장은 “네시간 동안 원고도 없이 생방송을 하는 동안 눈물이 앞을 가려 몇 번이나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라며 30년 전의 기억을 되새기며 추도사를 이어갔다.
“총격을 받자 하늘도 비통함을 이기지 못해 비가 내렸고, 몇 시간 뒤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는 하늘나라로 가시는 길을 밝혀주듯 황금색 찬란한 광채를 띄던 저녁 노을이 꼭 엊그제 본 것처럼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어머니 희생시킨 남북관계 발전위해 노력”
세 사람의 추도사가 참석자들의 가슴을 한동안 메이게 만들었다면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말을 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어머니를 희생시킨 남북관계는 개인적으로는 뼈에 사무치게 아프지만 과거를 묻고 남북관 계 발전과 평화를 유지시키는 데 노력하겠습니다...”라며 그러는 것이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고 어머니의 뜻을 받드는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고 박대통령의 유신 과오 논란 등 과거사 문제로 국가적인 분열현상까지 보이고 있는 가운데도 고인이 남긴 숭고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기리고자하는 흠모의 발길은 그치지 않고 있다.
취재/이해상,최진호·사진/김동욱 기자
국모(國母), 故 육영수 여사 30주기 추모행사
일제치하 유일 여성항일단체 맥 이은 근우회(槿友會) 주체로 열려
국모에 대한 그리움의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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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불교, 천주교의 종교계 대표들이 모두 참여해 육여사를 추모했다 |
2004년 8월 14일. 근대화 이후 유일하게 ‘국모(國母)’ 호칭을 받은 고 육영수 여사의 30주기 추모행사가 현충원 국립묘지 박정희·육영수 여사 묘비 앞에서 근우회(槿友會) 주최로 열렸다. 60여명의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됐으며, 간혹 내리는 비가 육 여사를 그리워하는 눈물을 대신하는 듯 했다. 사람들은 요즘 어려운 경제와 사회를 걱정하는 박 전대통령과 육 여사의 눈물이라고 가슴 아파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기독교와 불교, 천주교 세 종교의 대표들이 모두 참여해 육 여사를 추모했다.
봉사의 무궁화 정신
근우회는 일체치하에서 유일했던 여성항일단체로 신간회와 신민회 등과 함께 활동을 했다. 1927년 조신성 여사가 건립하고 이대총장이었던 김활란 여사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1930년 일제의 교묘한 탄압으로 맥이 끊겼지만 1980년 이희자 現 근우회 회장이 다시 일으켜 세웠다.
지금은 ‘나라 사랑, 겨레 사랑, 무궁화 사랑’이라는 이념 아래 국내는 물론, 미국·러시아·캐나다·일본·중국·사이판·괌에서 40만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 어머니의 힘인 근우회는 매년 육 여사 추모식을 갖고 있으며, 전국에 무궁화를 심고 종자를 퍼뜨리는 일을 한다. 86아시안 게임에서는 김포공항에서 각국 선수들을 영접했고, 88올림픽 3,600여명, 대전 EXPO에서는 3,000여명의 근우회 회원들이 자원봉사를 했다.
지금은 서로 단합하고 화합해야할 때
근우회 이희자 회장은 현 사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두고 친일이니 하며 말이 많은데, 우리는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이 일본 육군 장교를 했던 건 일제 강점기에서 힘을 키우기 위한 방법이었을 뿐입니다. 박 대통령이 1만 달라 경제를 성장시킨 것,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우리나라를 찌든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점을 우리는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지금은 사회나 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따지기 전에 화합을 해서 이 위기를 잘 극복해야 합니다. 보수고 진보고를 떠나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취재/유승원·사진/박영하 기자
첫댓글 대한 뉴우스를 저쪽뚜껑당은 안보는가봐요.ㅠ.ㅠ
맞아요~ 저넘들은 북조선인민공화국 뉴스만 본데요~ 그래서 눈치보기 바쁘답니다. 슬퍼요~~
ㅠ.ㅠ 어렴풋이 기억나는 장면... 문둥이 손잡아주던 육영수 여사님이 기억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