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24.3.22(금)10;30- 14;40
★답사 코스;청계천(청계광장- 오간수교)
★참가(11명);강ㅇ식, 김ㅇ흠, 김ㅇ천, 문ㅇ기, 박ㅇ호, 송ㅇ순, 장ㅇ문 전ㅇ구, 조ㅇ우, 차ㅇ근, 채ㅇ병
★점심식사(13;00-14;00) 더 진국 동대문점(741-9882)
겨우내 움츠렸던 추위는 물러가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맞이하였다. 봄은 활동하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봄을 맞이하여 6반 반창회는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청계천을 신성덕 해설사와 함께 답사하기로 하였다. 만남의 장소는 청계광장으로 오전 10시 30분이다. 11명의 교우들이 참여하였다. 옥량낙월하며 일일여삼추하였던 교우들을 만나니 어찌나 반갑고 기쁜지 모른다. 특히 속초와 원주에서 불원천리하고 달려온 조진우, 채광병 교우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럴때 논어의 학이편 문구가 떠오른다.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면 불역락호(不亦樂乎)야.
벗이 먼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뜻이다. 청계광장에서 신성덕 해설사와 반갑게 대면인사를 하고 청계천의 역사 이야기가 이어진다. 답사범위는 청계천의 시작점인 청계광장부터 오간수교까지 3km이다. 청계광장은 매년 다양한 행사와 축제가 열린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빛초롱축제이다. 600년 서울의 역사가 녹아든 청계천은 서울 도심의 하천으로 조선시대부터 근대화까지 서울의 역사가 담겨있다. 청계천은 수도 서울의 대표적인 하천으로 서울의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곳이며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이자 휴식처이다.
그러나 청계천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청계천변에 정착하면서 청계천은 더욱 빠르게 오염돼 갔다. 결국 신속하고 간편한 해결책은 전면 복개뿐이었다. 그리고 1976년 8월 성동구 마장동에서 남산 1호터널을 잇는 총 연장 5,7km의 청계고가도로도 완공됐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은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청계천은 서울의 얼굴이며 상징이므로 꼭 복원해야 한다'고 하였다.그로부터 27년 후인 2003년에 청계천 복원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나서 청계천이 서울의 얼굴이라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청계천의 환경개선과 변화는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큰 역할을 했다. 청계천 광장에서 바라본 경치가 어느 외국 못지않게 아름다운 수도 서울이다. 청계천 수변으로 접어들면 청계천의 역사와 팔석담(八石潭)이 먼저 반긴다. 팔석담은 우리나라 팔도의 기운과 정기를 한 곳에 모은 영험한 곳이다. 이곳에 서서 고향도 느끼고 간절한 소망도 빌어볼 수 있다. 그 소망이 이루어 지도록 천지간의 모든 것들이 뜻을 모아준다. 청계천 상류에서 첫번째로 만나는 모전교는 1412년(태종12) 석교로 조성했다.
다리 모퉁이에 과일전이 있다고 해서 모교 또는 모전교로 불렸다. 여기서부터 청계천 다리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조선시대 설치된 다리는 9개이며 현재는 22개 다리로 200-300m 간격으로 설치돼 있다. 발길을 옮길때마다 눈길을 돌릴때마다 해설사가 바빠진다. 두번째 다리는 광통교이다. 광통교는 청계천 다리 가운데 유독 길이보다 폭이 넓은 다리이다. 원래 다리 이름은 대광통교였다. 명륜동과 혜화동 두 방향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합쳐지던 곳으로 넓은 다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1958년 청계천 복개로 난간은 창경궁과 창덕궁, 탑골공원 등으로 옮겨지고 본채는 땅으로 사라졌다.
45년 후 청계천이 다시 햇빛 아래 모습을 드러내면서 광통교는 원래 위치에서 서쪽으로 155m 쯤 옮겨져 복원했다. 숭례문과 경복궁을 잇는 중심 통로에 위치한 가장 큰 다리어서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임금이 행차할때마다 광통교를 지났고 명나라 사신들도 서쪽의 동대문 대신 남쪽의 숭례문을 지나 이 다리를 건너서 궁궐로 입궁하도록 안내하였다, 한양의 랜드마크였던 셈이다. 광통교는 처음에는 흙다리였는데 1410년(태종10) 대홍수로 도성안 종로거리가 모두 침수되고
다리가 무너지자 태종의 지시로 정동의 정릉(신덕왕후 묘)을 성북구 정릉동으로 이장하고 방치한 석재 일부를 옮겨 돌다리를 만들었다. 구름 모양이 조각(고려말 전통 문양)된 석재 일부가 거꾸로 놓여 있었다. 신덕왕후 강씨가 얼마나 미웠으면 신덕왕후 강씨의 능을 장식하였던 석재로 많은 사람들이 통행하는 다리를 지나가게 하였는데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태종의 신덕왕후의 복수심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정교한 구름 무늬와 한가운데 두손을 합장하고 머리에 관을 쓴 신장상은 그 문화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세번째 다리는 광교다. 옛 광통방 인근에 있던 크고 넓은 다리라는 의미에서 광교라 일컬어졌으며 현재 광교 사거리가 이 위치에 해당된다. 광교를 지나면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가 나온다. 수백 마리의 말과 군사가 이동하는 장면을 벽면에 그려져 있다.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그 길이가 무려 186m에 이른다. 반차도의 중간중간에는 바닥에 그림의 의미와 설명을 새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반차도에 등장하는 인원은 1779명이며 779 필의 마필이다. 엄청난 규모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반차도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대왕이 아버지 묘소에 행차하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을 수원 화성행궁에서 모시러 가는 200리 길의 행차 장면을 그린 것이다. 김홍도 등 당대의 화가들이 그린 이 반차도는 왕실의 위엄과 질서를 장엄하게 표현하였다. 왕실의 기록화이자 한 폭의 커다란 풍속화를 연상시키는 이 빈차도는 왕실 행차의 격식과 복식의상, 악대구성 등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외국인들도 발길을 멈추고 신기한 듯 자세히 들여다 본다. 반차도를 계속 구경하면서 장통교로 향한다, 장통교 다리 근처에 장찻골로 불리는 마을이 있었다 하여 이 부근에서는 장찻골다리라 부르기도 하였으나
원명은 중부 장통방에 있던 다리이므로 장통교 혹은 줄여서 장교라 하였다. 장통교를 지나도 반차도는 계속 이어진다. 삼일교에 이르기 전 쉼터에서 숨고르기 하였다. 박창호 교우는 반창회 할때마다 간식을 준비해 온다. 만장생광한 교우가 아닐 수 없다. 과자와 커피, 음료수로 볼가심하고 여유로움을 즐겼다.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은 일상의 고단함을 덜어주고 행복함을 느끼게 한다. 삼일교는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을 한 뒤 전국에서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는 시위운동을 벌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삼일로 인근에 위치하여 삼일교라고 하였다.
다음 만나는 교량은 수표교다. 1441년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수표를 만들어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한데서 유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수표교 건너에 왕의 영정이 모여 놓았던 영희전이 있었기 때문에 국왕들이 여러 차례 이 다리를 건너 왕래하곤 하였다. 이 다리에 얽힌 이야기로는 숙종이 영희전을 참여하고 돌아오던 길에 수표교를 건너다가 장통방에 있던 여염집에서 문밖으로 왕의 행차를 지켜보던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고 마음에 들어 궁으로 불러들였는데 그가 바로 장희빈이었다. 정월에는 수표교에서 매년 연날리기 행사를 하였다.
원래 수표교는 현재 장충단공원에 있다. 다음은 관수교다. 이곳에 청계천 준설사업을 위한 준천사가 설치 되어 있었고 준천사에서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옛 교량 명칭으로 현 관수동에 위치한다. 그 이후로 세운교, 배오개다리, 새벽다리, 마전교, 버들다리가 차레로 등장한다. 이 다리들의 명칭은 지명과 나무, 상가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마지막으로 오간수교다. 한양도성 안에 있는 다리로 동대문에서 을지로6가로 가는 성벽아래 청계천 6가에 있던 다섯칸으로 된 다리였다. 임꺽정은 이 다리를 통하여 달아났다고 한다.
여기서 해설사의 이야기가 모두 끝난다. 반창회의 대미를 장식하는건 맛있는 음식이다. 청계천을 벗어나 먹자골목(종로 46길)으로 들어서면 더 진국 동대문점이 나온다. 비교적 좁은 식당이지만 손님들이 제법 많았다. 오찬메뉴는 국밥과 수육곰탕이다. 여기에 술을 빠지지 않는다. 교우들과 어울려 음식을 함께 먹으니 천국이 따로없다.. 교우들이 권하는 술잔에 훈훈한 정이 묻어나고 인간미가 넘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정겹게 말품앗이 하면서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다. 식사하다 보면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 듯이 시간이 훌적 지나간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식사 유사는 강완식 교우가 솔선수범하였다. 마음 씀씀이가 너무 아름답다. 고마운 마음에 교우들 모두 박수로 화답하였다. 식사를 하고나서 커피가 빠지면 섭섭하다. 문성기 동문이 쏘겟다고 하여 약속 커피숍으로 향한다. 주로 나이드신 노인들이 단골 손님이다. 다방의 역사가 40년이 되었다고 한다. 레트로 감성이 훨씬 묻어나는 다방이다. 다방 한가운데 난로를 설치하여 열기가 가득하였다. 커피와 쌍화차로 여유롭게 낭만을 즐기고 동대문역에서 각산진비하였다. 커피는 문성기 교우가 산다고 했는데
김경흠 교우가 이 지역이 자기 옛 작전지역이라고 하면서 선의를 베풀었다. 정말 고마운 교우들이다. 화양연화 시절의 교우들과 어울리면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가득하다. 교우(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줄고 훨씬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으며, 정기적인 만남으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단명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보고도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만남의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건강할 때 자주 만나서 우정을 쌓으면 건강에 이롭고 즐겁게 사는 길이다.
sd16 6반 반창회 브라보!
청계광장 소라탑에서 신성덕 해설사가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 설명하는 중
청계광장에서 바라본 풍경
청계천 수변길(산책로)로 들어서서
청계천의 역사 기록물 앞에서 설명하는 해설사
팔석담
첫번째 만나는 모전교
하천 산책로를 따라서
광통교
정동의 정릉(신덕왕후 강씨)을 장식했던 호석을 다리 하부에 설치
호석을 거꾸로 설치
신덕왕후 무덤에서 나온 호석을 설명하는 해설사
뛰어노는 물고기를 유심히 바라보는 교우들
광교
광교 하부에 넓찍한 공간 '공연및 전시회'로 활용
귀여운 유치원원생들
청아한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외국인들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
장통교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를 유심히 바라보는 교우들
삼일교 전 쉼터에서 숨고르기 하면서 간식(과자, 음료수, 커피)으로 기 보충
삼일교
물속의 청둥오리
수표교
연둣빛으로 물들고 있는 버드나무
관수교
청계천 담벽에 설치된 우천시 수문 자동 열림
물속을 유심히 쳐다보는 교우들
세운교
세운교 지나서 쉼터에서 숨고르기
배오개다리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
새벽다리
마전교
나래교
버들다리
오간수교
오간수교와 수문상친임관역
오간수교 모양을 본뜬 담벽
계단을 올리
먹자골목(종로46길)
더 진국 동대문점
식사전 인삿말하는 반장
정겹게 식사하는 교우들
약속 다방
차 한잔 마시고 각산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