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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가면무도회(假面舞蹈會)
"……."
당문우는 여전히 북궁도지의 방안에 누워 있었다.
대정신공을 몇 번 운용하는 사이 그의 내상은 완벽하게 치유되어 있었다.
그가 이토록 쉽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갓난아이 때부터 수십 차례나 벌모세수를 해왔던 탓도 있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유금이란 그 괴인이 황금피리의 비밀을 알기 위해 당문우를 치료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
당문우는 조금 전부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를 이토록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한 것은 어젯밤에 보았던 황금피리의 표면에 있던 그 기이한 문양(文樣) 때문이었다.
마치 뇌전과 같은 그 문양은 기이하게도 당문우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뇌전(雷電) 문양(紋樣)!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했다.
또한, 그 뇌전 문양 속에는 분명 그 어떤 중대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음도 분명했다.
하지만 당문우는 무려 한 시진 가깝게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다만, 그 뇌전 문양의 선(線)들이 어떤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감지했을 뿐이다.
그것은 흡사 혈맥(血脈)의 흐름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해보면 전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빌어먹을!"
당문우는 끝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로 그때였다.
털석……!
그의 품 안에서 뭔가 떨어지며 침상위에 나뒹굴었다.
그것은 소무항이 준 장난감 같은 비파(琵琶)였다.
당문우는 비파를 집어들었다.
장난감처럼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결코 범상치 않아 보이는 비파였다.
"……."
당문우는 무의식중에 비파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동안 비파를 살펴보던 그의 눈에서 돌연 혜광(慧光)이 솟구쳤다.
비파의 밑부분에 마치 뭔가에 긁힌 것 같은 흠집들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흠집이 아니라 옷칠을 한 것들이 떨어지면서 생긴 것이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비파의 겉면에 옻칠을 해두었다. 이것은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행위가 분명하다……"
당문우는 즉시 소도(小刀)를 꺼내 비파의 아랫부분에 칠해진 옷칠들을 조심스럽게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곳에서 가느다란 선(線)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문우의 눈이 날카롭게 빛을 발했다.
'악보(樂譜)다!'
그렇다. 비파의 밑부분에 복잡하게 그어져 있는 선들은 악보가 분명했다.
"흠……"
잠시 악보를 살펴보던 당문우의 눈에서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오오…… 실로 절묘한 음곡(音曲)이다."
풍류공자를 자처하는 당문우였다.
이 세상의 풍류공자들 치고 음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도 드문 법이다.
더욱이, 그의 모친인 혜원공주는 음악의 대가였다.
그 중에서도 비파를 타는 솜씨는 한때 천하제일로 인정받기도 했었다.
그녀의 그 비파타는 솜씨 때문에 당사적이 반했던 것이지만……
"……."
한동안 악보를 들여다 보던 당문우는 이윽고 비파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비파의 밑부분에 새겨져 있는 악보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땅……! 따당…… 땅…… 땅땅……!
참으로 아름다운 선율(旋律)이었다.
장난감같은 비파에서 이런 선율이 만들어 지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더욱이, 비파에 새겨진 음률은 믿을 수 없게도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띵…… 따당…… 땅……!
당문우는 점차 자신이 연주하고 있는 음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헉!"
이윽고, 연주를 끝내고 비파에서 손을 떼던 당문우는 기겁하고 말았다.
그는 경이(驚異)의 눈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방 안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수천 마리도 넘는 온갖 새들로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새들이 당문우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뿐더러, 음악이 끝났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멍하니 풀린 눈으로 당문우와 비파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문우는 일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 악보음에 의해 일어난 조화다.'
그는 확신했다.
'틀림없다. 그 악보의 음률에는 짐승들을 영혼을 제압하고 끌어들이는 섭혼(攝魂)의 마력이 깃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바로 그때였다.
덜컹!
방문이 거칠고 요란스럽게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들어섰다.
파다다닥……
파르륵……
그러자 방안에 있던 새들이 사방으로 분분히 흩어져 날더니 방 안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 아니?"
방 안으로 들어서던 사람이 놀람의 외침을 토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란 사람은 당문우였다.
갑자기 방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뜻밖에도 부친인 당사적이었기 때문이다.
"아, 아버님……"
당문우는 다급히 침상에서 뛰어내린 뒤 공손히 섰다.
그 사이에 그 많았던 온갖 새들은 모조리 방을 빠져 나가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
잠시 놀람과 의혹의 표정으로 창밖으로 바라보던 당사적의 시선이 다시 당문우를 향했다.
당문우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과 눈빛은 숨막힐 정도로 근엄하고 차가웠다.
"문우, 이젠 외박까지 하고…… 이제는 아비조차 안중에 없는 모양이로구나?"
"아, 아닙니다."
당문우는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소자가 외박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정……"
"사정은 무슨 사정!"
당사적이 매몰차게 아들의 말을 잘라버렸다.
"이 애비가 찾아온 것은 네녀석의 변명을 듣기 위함이 아니다."
그는 침상에 걸터앉으며 당문우를 쏘아봤다.
"궁유로부터 말은 들었다. 대체 어찌된 일이냐? 네놈이 무슨 망나니짓을 하고 다녔기에…… 네가 이 당사적의 아들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텐데도…… 어떤 놈이 너를 다치게 했단 말이냐?"
"그…… 그건……"
당문우는 쩔쩔맸다.
하지만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어떠한 것도, 어떠한 방법이나 궤변으로도 부친인 당사적을 결코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당문우는 결국 자신이 밤 사이에 보고 겪었던 일들을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소무항이 죽기 직전에 해줬던 말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
당사적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표정은 더할나위 없이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망연한 표정으로 한동안 당문우를 바라보다가 몽유병 환자처럼 중얼거렸다.
"마전…… 마전의 문이 열렸다고?"
"……?"
당문우는 내심 크게 놀랐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부친이 이토록 심각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부친은 지금 당장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해도 눈썹하나 깜짝하지 않을 철혈인(鐵血人)이었다.
그는 의혹을 금치 못했다.
'마전…… 대체 마전이 어떤 곳이기에 아버님이 저토록 심각해지신단 말인가?'
그때였다.
당사적이 두 눈을 비수날처럼 날카롭게 번뜩이며 당문우를 쏘아봤다.
"그 검은 복면의 괴인…… 소수천마라는 자의 무공이 혹시 이런 것이 아니었으냐?"
말과 함께 당사적은 한 손을 들어 가볍게 허공을 그었다.
스윽……
어느샌가 그의 손이 얼음처럼 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허공을 가르는 그의 손에서는 새하얀 백광이 뿜어지고 있었다.
번쩍!
"헉!"
당문우는 어젯밤에 당한 기억이 생생한지라 자신도 모르게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마, 맞습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
당사적의 얼굴이 다시 심각하게 굳어졌다.
"으음…… 한순간의 아량이…… 한순간의 방심이…… 끝내 이런 후환을 초래하게 되었구나……"
"……?"
당문우는 보았다.
당사적의 두 눈이 걷잡을 수 없이 음울하게 굳어짐과 동시에 그 어떤 두려움으로 잔잔히 떨리고 있음을……
'대체 그 무엇이 천하무적의 아버님으로 하여금 저런 표정을 짓게 만든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의 그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였다.
당사적이 음울한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틀림없다.
삼십 년 전에 무공만 폐지당한 채 쫓겨났던 십절마제(十絶魔帝) 후금량(侯金亮)……
그놈이 마침내 마전의 문을 열어버린 것이 분명하다.
물론 당시에는 그놈에게 마전의 문을 열 수 있는 용약마시와 마전 안에 잠들어 있는 십마왕(十魔王)을 깰 수 있는 마령천호기(魔靈天昊旗)가 있는 줄을 모르고 있긴 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세 분 사숙(師叔)의 말씀대로 역천지골(逆天之骨)을 타고난 후금량을 죽였어야 했다.
아아……
너무도 엄청난 실수였다.
후금량, 그 놈을 살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마전의 문이 열린 이상 그 악마의 저주가 깃들어 있는 마전의 문을 다시 닫을 수는 없게 되었다.
유일한 해결책이라면……
나 당사적이 후금량, 그놈을 찾아내어 마령천호기를 뺏아 십마왕을 다시 마전에 가둬버리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러나……
한동안 알 수 없는 말을 뇌까리던 당사적의 시선이 다시 당문우를 향하더니 그는 불쑥 물었다.
"장유금이라 했더냐?"
"……?"
"너를 구해줬다는 그 신비의 괴객(怪客) 말이다."
당문우는 흠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당사적의 눈에 일순 기광이 떠올랐다.
"그에 대해 다시 한 번 자세히 설명해보도록 해라. 그의 모습과 그가 사용했던 무공 등을……"
"그 사람은……"
당문우는 잠시 생각에 잠겨 기억을 떠올린 뒤 장유금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을 했다.
"……."
당사적의 표정이 기묘하게 씰룩였다.
"안개처럼 사라졌다고?"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렇다면…… 과거 사조께서 말씀하셨던 신선도(神仙島)에서 나온 사람이란 말인가?"
'신선도?'
당문우는 내심 흠칫 놀랐다.
-신선도(神仙島)!
들은 적이 있었다.
오색천붕이 살고있는 곳이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신선의 도(神仙之道)를 닦고, 그들의 추구하는 무예는 대륙의 무인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그 가공함은 필설의 형용이 불가능할 정도라 했다.
"아픈 곳은 없느냐?"
당사적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당문우를 응시했다.
"……."
당문우는 일순 콧잔등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비록 퉁명스럽고 차가운 말투였지만,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뜨거운 부정(父情)을 느꼈기 때문이다.
당문우의 대답이 떨림을 일으키며 흘러나왔다.
"괘…… 괜찮습니다."
"괜찮다면 다행이지만…… 애비가 무서워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당사적은 잠시 당문우의 몸을 살피더니 스쳐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오늘밤도 외박할 생각이냐?"
"……."
당문우는 움찔하며 일시 대답을 못했다.
사실 그는 오늘 밤엔 외박을 해야할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예옥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선뜻 대답을 못하자 당사적은 이마를 가볍게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너도 이젠 성인이 되었으니 이 아비로서도 언제까지 구속할 수는 없다만…… 기왕지사 너와 단 둘이 만난 자리이니 한마디 해야겠다."
"……."
"너도 알다시피 이 아비는 세 아들 모두가 무인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
"너의 두 형들이야 이미 무인의 길을 택해 버렸지만…… 너만큼은 네 어머님의 뜻대로 문(文)의 길을 가주길 바란다."
"……."
당문우는 내심 흠칫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당사적의 이런 말투와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혼자 만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이 순간 당사적의 말투나 표정은 마치 유언(遺言)을 남기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당문우가 심상치 않은 생각을 떠올린 사이에도 당사적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비는 오늘 밤 어디 좀 다녀올 생각이다. 물론 언제 돌아올지 모를 여행이 될 것 같다."
"……?"
"네 형들도 없는 집이다. 오직 너만이 두 분 어머니와 형제들을 돌볼 수 있다. 이 아비는 진실로 너를 믿는다. 아비와 형들이 없는 집안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으리라고……"
"……."
당문우에겐 뭐라고 말할 기회도 주지않고 당사적은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내일 오전 중에 너를 가르칠 글선생이 한 분 오실 예정이다. 누군지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절대 그 선생을 내쫓지 마라. 알겠느냐?"
"……."
당문우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친이 명령이 아닌 부탁처럼 말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알겠습니다."
"문우, 너만 믿는다."
당사적은 빙그레 웃으며 당문우의 어깨를 몇 번 토닥거려준 뒤 방문을 빠져나갔다.
"……."
홀로 남은 당문우는 왠지 기분이 착잡해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모든 생각들을 떨쳐버렸다.
그는 믿고 있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천하제일인인 그의 부친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자꾸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샘물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당문우가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떨쳐 버리는 데는 무려 한 시진이란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 * *
띵…… 따당……
삘리리…… 삘릴리리……
아름다운 선율이 천지에 잔잔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율을 따라 움직이는 것들이 있었다.
가면(假面)!
대략 이백 여명의 사람들이 온갖 종류와 형태의 가면들로 얼굴을 가린 채 넓직한 연회청(宴會廳)을 선율에 몸을 내맡기고는 흥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연회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옷이 일률적으로 똑같은 것들이었다.
사람들이 입고있는 옷들은 마치 포대자루처럼 생긴 괴상한 비단 옷들이었고, 크기가 하나 같이 똑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연회청에 있는 사람들은 누가 누군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는 여자인지 사내인지 성별조차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나, 그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남해의 심연(深淵)에서 캐낸 백옥(白玉)으로 만든 최상급의 옥잔(玉盞)을 하나씩 들고 그 안에 담긴 금존청(金尊淸)을 홀짝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가면서 담화(談話)를 나누고 있었다.
참으로 흥겹고 화기애애했으며 매우 고급스런 분위기였다.
무대(舞臺).
연회청의 상단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지금 반라(半裸)의 무희(舞姬)들이 악사(樂士)들이 연주하는 음률에 맞춰 지극히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춤을 추고 있었다.
덩실…… 덩실……
둥실…… 둥실……
매미 날개처럼 투명한 무의(舞衣)를 걸친 채, 풍만하기 이를 데 없는 젖가슴을 흔들거리면서 춤을 추고 있는 무희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데 더 이상 훌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내인듯한 덩치 큰 사람들의 가면에 가려진 눈 속에서는 벌건 음욕(淫慾)이 파충류의 그것처럼 끈적스럽게 번뜩이고 있었다.
둥땅…… 따당……
삘삘리리…… 뺄리리릴……
선율들은 갈수록 빨라졌다.
동시에 무희들의 율동 또한 음률에 따라 빨라지고 있었다.
우유처럼 뽀얗고 유난히 커보이는 젖가슴들이 출렁거리는 무희들의 춤사위!
'으음……'
당문우는 연회청의 한구석에서 술을 홀짝홀짝 마셔가며 무희들을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운라선희…… 정말 대단하군. 어디서 언제 저토록 뛰어난 무희들을 끌어모았지?'
참으로 도발적이고, 너무도 색정적인 무희들의 춤사위에 당문우는 아랫부분이 뻐근하게 팽창됨을 느끼고 있었다.
더욱이, 술기운이 거나하게 올라갈수록 그런 기분은 더욱 강렬해지고 있었다.
이때였다.
누군가 그의 등판을 손가락으로 찔러왔다.
"……?"
흠칫하며 돌아서는 당문우의 시선에 오 척도 안되 보이는 체구에 개구리 가면을 뒤집어쓴 사람의 모습이 파고들었다.
'하마……'
그렇다.
이 세상에서 당문우를 알아보는 이토록 키작은 사내는 동궁팔 뿐이었다.
당문우는 재빨리 물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흐흐흐……"
동궁팔이 야릇한 웃음을 흘렀다.
"색골, 이 하마가 하는 일이다. 언제 실수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허면……?"
"흐흐…… 걱정마라. 맹…… 아니, 예옥상인가 뭔가 하는 계집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네놈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
당문우는 반색하며 재빨리 물었다.
"그 계집은 지금 어디 있느냐?"
"아아…… 너무 서두르지 마라."
동궁팔이 손을 저었다.
"무슨 일이든 너무 서두르면 실패하기 십상인 법이다. 그리고…… 성주와 약속한 시간은 아직 한 시진이나 남았으니 넌 이곳에서 무희들의 춤이나 즐기고 있어라."
"아, 알았다."
동궁팔은 이내 사람들 틈으로 휘적거리며 사라졌다.
바로 그때였다.
"앗!"
어디선가 짤막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비명소리는 쫓는 당문우의 시선 속으로 무대 위에서 춤추고 있던 무희 하나가 맥없이 쓰러지고 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어?"
"뭐야?"
"저 계집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곳곳에서 놀람과 의혹의 외침들이 터졌다.
무희들의 춤사위도 이미 멈춰졌고, 악사들의 탄주도 중단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쓰러진 무희 곁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당문우도 호기심을 느끼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무희,
갑자기 쓰러진 그 무희는 참으로 아름다운 소녀(少女)였다.
얼굴색이 밀납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기는 했지만,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미녀(美女)가 아니었다.
미녀들의 전형적인 갸름한 얼굴의 윤곽에 초생달 같은 눈썹이 그러했고, 상아로 세공(細工)한 듯한 오똑한 콧날과 앵두빛 입술 또한 그녀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꾸며주고 있었다.
거기에다 어느 한 곳 흠잡을 데 없는 팔등신(八等身)의 늘씬한 몸매는 속된 말로 최상품의 여인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무희가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새파랗게 변색된 소녀의 입가에서는 실처럼 가느다란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걸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폐병(肺病)이다!"
"그렇다. 이 계집은 폐병을 앓고 있다."
그 한 마디에 장내는 일대 소란이 일었다.
"뭐, 뭐야?"
"폐병이라고?"
"운라선희! 운라선희, 어디 있소? 누굴 죽이고 싶어 이런 계집을 데려왔단 말인가?"
"빨리 이 계집을 끌고 가지 못해!"
일순, 소녀의 창백하던 안색은 더욱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몸을 일으키면서 다급히 말했다.
"아, 아닙니다! 소녀는 폐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여……"
그때였다.
한 사람이 앞으로 불쑥 나서더니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나쁜 계집! 누굴 속이려는 것이냐?"
찰싹!
"아악-!"
소녀가 비명과 함께 다급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의 입에서 다시 선혈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그녀를 때렸던 호랑이 가면의 사내가 사방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소생은 화가장(華家莊)의 소장주인 비룡공자(飛龍公子) 화진걸(華眞傑)이외다."
"……."
좌중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호랑이 가면의 사내, 비룡공자 화진걸이 득의양양하게 소리쳤다.
"소생은 언젠가 천약포(千藥 )에서 이 백가(白家) 계집을 본 적이 있소이다. 당시 이 계집이 천(千) 약사(藥師)에게서 폐병을 치료하는 약들을 구입해 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소."
"뭐야?"
"그게 사실인가?"
좌중이 또다시 술렁였다.
그때였다.
소녀, 백연령이 고개를 발딱 쳐들어 화진걸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거짓말 마라! 네놈은 지금 나 백연령(白燕 )을 강제로 추행하려다가 실패하고는……"
찰싹!
"아악!"
백연령의 입에서 또다시 비명이 터졌다.
화진걸이 사정없이 그녀의 얼굴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이 계집이 누굴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야?"
그는 백연령을 잡아 먹을 듯이 쏘아보며 고함을 터뜨렸다.
"백연령! 이 창녀(娼女) 같은 계집아! 이곳 사천성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한 번 물어봐! 나 화진걸이 너같은 비천한 계집에게 눈 한 번 돌릴 사람인가를……"
"……."
"흥! 네년이 알리야 없겠지만…… 사천 지방에서 우리 화가장의 위치는 당문에 버금 간다! 그런데…… 그런 집안의 후계자인 내가 너처럼 더럽고 비천한 창녀에게…… 허허……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온다."
"……."
"……."
그의 말에 좌중의 모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진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화가장은 그의 말대로 이곳 사천성에서는 제법 명성을 얻고 있는 가문이었다.
장주(莊主)는 대풍신도(大風神刀) 화옥청(華玉淸)이며, 그의 십팔초(十八招) 대풍도법(大風刀法)은 사천무림에서는 불패무적(不敗無敵)이었다.
또한, 화옥청의 성격은 열화(熱火)와 같을 뿐만 아니라, 불의를 보면 자신의 생명조차 초개(草芥)처럼 던져 버리는 철골(鐵骨)의 협웅(俠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비룡공자 화진걸은 사천성 최고의 기재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성격이 오만하고 건방진 것이 조금은 흠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에게 그런 모든 것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무예와 재능이 있었다.
"거짓말 마라!"
백연령이 고함을 질렀다.
그녀는 독이 잔뜩 오른 독사처럼 화진걸을 노려보며 이빨을 부드득 갈았다
첫댓글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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