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요일(雨曜日) 도서관행
어제에 이어 날씨가 흐려 강수가 예상된 구월 중순 금요일이다. 일전 화요일에 들리기로 한 도서관은 비가 오는 날을 틈타 나가기로 미뤄둔 날이다. 엊그제는 날씨가 맑은 날이라 작대산임도를 걸으면서 가을이 오는 길목에 핀 야생화를 탐방하고 왔더랬다. 그날 임도 길바닥 흩어진 도토리도 줍고 길섶에 절로 자란 들깻잎을 제법 따와 삶아 데쳐 나물로 무쳐 반찬으로 잘 먹고 있다.
퇴직하고 내가 사는 생활권을 떠나지 않고 낡은 아파트를 리모델링해서 사는 데는 세 가지가 충족되어서다. 첫 번째 치과를 비롯해 병원과 약국이 가까워 문밖을 나서면 가까운 거리에서 진료가 가능하다. 두 번째는 공공 도서관이 서너 군데 되어 마음 내키면 언제든지 개인 서재처럼 지내도 된다. 세 번째는 이웃한 아파트 상가에 서민 취향 주점이 있어 벗들과 잔을 기울이기 좋다.
현직 시절에도 즐겼던 술은 퇴직하고 한동안 계속 마실 수 있으리라 내다봤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혼자 가든 벗과 함께 가든 산행을 나서 하산 후 주점에서 잔을 기울이기 일쑤였다. 퇴직 후 십 년 정도는 마실 거라 봤는데 고작 일 년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맑은 술을 혼자서 두 병은 거뜬히 비우고 더하면 서너 병도 비울 수 있지만 이즈음 끝냄이 좋을 듯해 미련도 없다.
현직에 있을 때 근무지 도서관을 틈틈이 들렀다. 한 근무지 삼 년 이상은 보냈으니 그 학교를 졸업해 나간 학생들보다 내가 학교 도서관 장서 열람은 많이 했을 테다. 주말이나 방학이면 집 근처 공공 도서관을 찾았는데 그 횟수는 들쭉날쭉이었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아무래도 비가 오는 날 자주 갔다. 날씨가 무척 덥거나 추운 날도 냉난방이 잘 된 도서관에서 보내기 좋았다.
공공 도서관은 운영 주체가 어디냐에 따라 세 군데로 나뉘었다. 경남교육청 산하 도서관이 있고, 창원시청과 경남도청에서도 운영했다. 공공 도서관은 이들 운영 기관에 따라 인력과 예산이 달랐다. 용지호수 근처는 시청에서 운영하는 중앙도서관과 어울림도서관이 있고 교육단지에는 경남교육청 도서관이었다. 인재개발원이 진주로 떠난 사림동에는 경남도청 대표도서관이 있었다.
날이 밝아와 아침밥을 먹고 집에서 머뭇거리며 도서관이 열릴 시간에 맞추어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내 꽃대감 꽃밭으로 가보니 친구는 금관화 모종을 옮겨 심고 있었다. 옮기는 모종은 남은 가을 연방 화사한 꽃을 피우지 싶었다. 곁에는 역시 꽃을 가꾸는 밀양댁 할머니와 통장 아주머니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친구와 헤어져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반송 소하천을 따라 걸었다.
창원레포츠파크 동문에서 폴리텍 대학 캠퍼스를 관통해 교육단지 차도의 보도를 걸었다. 일찍 단풍이 물든 고목 벚나무들은 낙엽이 거의 져 나목이 되어갔다. 창원기공 곁 경남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창원도서관으로 갔다. 문이 열릴 시각에 맞추어 근년 들어선 신관 이층 열람실로 올라가 집에서 읽은 책은 반납하고 신간 도서 코너에서 읽을 책을 예닐곱 권 골라 창가 열람석에 앉았다.
뒤뜰 전망이 트인 창가에서 차승민이 쓴 ‘법정으로 간 정신과 의사’를 펼쳤다. 저자는 국립법무병원에 근무했던 정신과 의사가 쓴 정신감정과 심신미약에 관해 소개한 책이었다.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의 정신감정을 직접 해낸 내용으로 정신과 영역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교양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점심나절이 다가와 남은 책들은 대출받아 배낭에 채워 짊어지고 나왔다.
중앙동 오거리 상가에서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오후는 용지호수 어울림도서관으로 향했다. 기업체 후원을 받아 지은 간이 시설에 사서 혼자 운영하는 시청 산하 도서관이다. 그곳에서 빌려 읽은 책은 며칠 전 무인 반납기에 두고 간 적 있어 지방지 신문을 펼친 뒤 이기주의 ‘글의 품격’을 꺼내 읽었다. 글을 쓸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써야 좋을지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었다. 2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