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전근대 일본이 한국ㆍ몽골ㆍ러시아ㆍ유구(琉球) 등 외국과의 전쟁에 대해 기록한 문헌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들 문헌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류성룡의 『징비록』이나 안방준의 『은봉야사별록』, 『동국통감』과 같은 한국 문헌이 전근대 일본의 전쟁 문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징비록』이 조선ㆍ일본ㆍ청 등 동아시아 삼국에서 널리 읽혔음을 확인하면서, 한국의 고전 문헌을 단순히 ‘한국인의 고전’으로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인의 고전’으로서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한국학계에서 ‘국학’ 연구자로 간주되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한국이 세계에서 고립되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상, 한국의 문화적 성취를 연구한다는 것은 곧 동아시아의 문화를 연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한국의 역사적 성취는 그 많은 부분이 한반도 바깥의 지역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필자는 이들 지역을 연구하는 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 한국학이거나 충분히 한국학에 기여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며 ‘한국학’ 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필자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존경하는 어느 한국학 연구자는 필자를 진심으로 걱정하시며 이렇게 조언하셨다. “한국에서는 외국학만 연구해서는 학문적으로 이해받을 수 없다. 한국과 관련된 성과를 만들어 내야 연구자로서 정착할 수 있게 된다.” 남아시아의 하라판 문명 유적지에서 고병리학(古病理學, paleopathology) 연구를 진행하는, 역시 존경하는 어떤 한국인 연구자는 이런 하소연을 필자에게 하신 바 있다. “만약 일본인 연구자가 하라판 문명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 문부성에 연구비 지원을 신청한다면 ‘어떤 식으로 연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왜 한국과 관련 없는 지역의 연구에 우리가 지원해 줘야 하는가’라는 답이 돌아온다.”라고. 이러한 발언들은 극단적 사례일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하여 이러한 폐색감을 느끼는 ‘국학’ 주변의 연구자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 바깥에서 어떤 역사가 전개되었고 어떤 학문적 성과가 축적되었는지를 알 필요가 없다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연구를 ‘국학’ 분야에서 때때로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을 연구하면서 중국의 『경략복국요편(經略複國要編)』이나 『양조평양록(兩朝平攘錄)』, 일본의 초기 사료들을 다루지 않고 『조선왕조실록』이나 각 집안의 문집과 같은 한국 측 문헌만을 이용하여 서술된 임진왜란 연구를 21세기에도 여전히 접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조선 후기에 일본으로 파견한 통신사를 연구하면서, 일본 측에 방대하게 존재하는 일본어 문헌을 도외시하고 ‘문어 중국어’ 즉 한문으로 된 ‘창화집(唱和集)’ 등 만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통신사와 관련되어 일본에서 작성된 문헌을 크게 나누면, 일본인 사이에서 보기 위해 작성된 일본어 문헌과 조선인과의 외교적 관계를 위해 작성된 문어 중국어 문헌이 있다. 조선인 통신사 일행과 만난 일본 측 학자들이 대개 주자학자들로 한정되다 보니, 조일 양국 간에 문어 중국어로 오고 간 문헌만 읽으면 양국은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고 일본인들은 조선의 학문에 대해 동경심을 품었던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조선인 통신사 일행과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 일본의 비(非)주자학자들, 또는 통신사 일행을 만난 주자학자들이 남긴 일본어 문헌에서는 조선에 대한 우호적인 동경의 감정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이른바 ‘진구코고[神功皇后]의 삼한정벌’ 전설 이래 일본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한반도에 대한 우월 의식을 접한 고전 한국학 연구자는 충격을 받게 될 터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조선 후기의 통신사 제도가 선린 우호적(善隣友好的)이라기보다는 동상이몽적 외교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외교가 반드시 선린ㆍ성심에서 이루어져야 할 필요는 없으며 외교의 궁극적 목적이 양국 간에 안정을 가져오는 것일 터이므로, 통신사 외교를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최근 고전 한국학계 일각에서는 통신사 일행이 근세 일본의 한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가설이 증명되기 위해서는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무로마치 시대부터 동시기에 이르는 일본의 학술사는 물론, 일본이 청으로부터 수입한 방대한 중국 문헌이 일본 학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 청대 및 조선이 청에 파견한 연행사에 대한 연구 역시 문어 중국어 문헌만으로는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만주족의 청제국(The Manchu Way)』의 저자인 하버드대학의 마크 엘리엇(Mark C. Elliott) 교수는, 더 이상 문어 중국어만으로는 청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만주어ㆍ몽골어ㆍ티베트어ㆍ차가타이(Chagatai language) 등으로 작성된 문헌을 동시에 이용해야 한다고 논한다. 마찬가지로 고려 시대 후기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 몽골 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어 중국어와 함께 페르시아어 지식이 필수적일 터이다. 다행히 최근 고전 한국학계 전반에서 여러 외국 문헌을 다루는 연구자들이 나타나고 있고, 고전 한국학 주변 학문과의 교류도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한문’으로 이루어진 ‘한학’만이 진정한 학문이자 학문의 전부라는 태도는, ‘원어(原語) 성경’이라는 문구가 곧 ‘영어 성경’을 가리키던 20세기 후반의 현대 한국의 모습과 상통한다.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명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문명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발상이다. 그러나 전근대 한국을 둘러싼 세계에는 ‘한문ㆍ한학’ 이외에도 한국과의 관련이 진지하게 연구되어야 할 언어와 문헌이 다수 존재한다. 동시에, 조선 시대의 주류 학문 흐름이었던 주자학이 넓은 의미의 한문 세계인 중국ㆍ타이완ㆍ일본ㆍ베트남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주류였으리라는 관점은 통용되지 않는다. ‘한자문화권’이라는 개념으로 이들 지역을 포괄하려 시도하는 야심적인 연구자는, 주자학 이외의 폭넓은 중국학 소양을 통해 이들 지역의 다양한 ‘한학’ 성과를 연구 대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통신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각 지역의 고유어로 작성된 문헌도 문어 중국어 문헌과 동등한 정도로 검토함으로써 연구의 편향을 억제해야 할 터이다.
고전 한국학은 다양한 언어로 된 광범위한 지역의 문헌을 통해 지금까지 이상으로 풍성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전 한국학에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많은 영역이 감추어져 있다. 필요한 것은 상상력과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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