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190장 (구 177장) / 출애굽기 20 : 18 - 26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190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출애굽기 20장 18절 – 26절 말씀입니다.
18.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21.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25.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26.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아멘!
만약 내가 큰 병에 걸려 수술을 해야 하게 되었다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어떤 의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어떤 의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생명이 좌우될 수 있습니다. 환자들은 의사를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는데, 나를 담당한 의사가 경험이나 실력이 없거나 오진을 했을 때에는 그 의사를 만난 것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는 더욱 중요합니다. 누구와 결혼하느냐 하는 것은 일생이 달린 문제입니다. 잘 생기고 시원시원한 겉 인상만 보고 마음에 들어서 결정했는데, 막상 결혼해 보니 아내인 자신을 막 구타하고, 여러 면에서 믿을 수가 없는 사람이라면, 한 사람의 일평생은 도둑맞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그 대상에게 예배한다는 것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고, 내가 그 예배의 대상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나의 현재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명은 물론 나의 내세까지도 다 맡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하나님을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신앙생활 했으면서도 건성으로 교회 다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신앙의 태도가 달라졌다면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죽을병에 걸렸다가 기적으로 나은 신유를 경험했거나 특별한 말씀을 체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이 믿는 이 세상의 종교는 신상을 세워놓고 그 형상을 보고 절하고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통해서 그 신을 만납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형상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고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의 특징은 어떤 형상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가 없고 오직 말씀으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전달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나신 모습입니다. 그런데 구름과 번개와 연기는 보였지만 어떤 모양도 볼 수가 없었고, 대신 커다란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들려주신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들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것인데, 그들은 거기서 애굽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 되었고, 가나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서도 안 되었습니다. 그들은 구별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보여 주어야 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어 세계 만민 앞에서 뛰어나게 하심으로, 천하 만민이 하나님을 섬겨 복을 받게 하려는 것이 율법을 주시는 목적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아와서 선포하는 십계명이 정말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모세가 십계명을 선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엄청난 우레 소리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가득한 연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가지고 와서 백성들에게 선포할 때에 하나님은 시내산이 흔들리고 땅이 진동하도록 커다란 우레 소리를 내셨고, 시내산은 깜깜한 흑암에 싸이고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였고, 그 말씀이 자신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부탁하기를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 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하나님 앞에 가서 말씀을 받고 와서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두려움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와서,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을 ‘선지자’ 라고 불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 선포하더라도 두려운 마음으로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애매모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면한 상황과 처지에 대하여 아주 정확하게 가르치고 책망을 하고 바로잡아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하여 사람의 관절과 골수와 영혼을 쪼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나를 치기 위해서 자기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설교자에게 적대감을 가집니다. 그러나 말씀에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은 내가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 문제를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아시고 응답해 주시느냐고 감탄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 받았다고 좋아하며 순종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 천둥과 번개로 나타내신 것은 비록 사람이 내 말을 전하더라도, 그것은 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이니, 너희는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순종해라. 그래야 네 문제가 해결되고, 네가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려 주려고, 그들로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시험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자진해서 순종하려고 애쓰는지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해 보니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였고, 오히려 모세를 대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선포하는 저나 다른 설교자들이 인간이기에 부족하고 연약한 것이 많이 있지만, 설교를 들을 때에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말씀하신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33절에 보면, 겉으로 비교하기에 고넬료는 로마의 권력자요. 베드로는 무식한 갈릴리 천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베드로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자기를 찾아오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믿었기에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면서 말씀을 청종하다가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십시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 당신의 계획대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며, 그 뜻을 말씀으로 알려주시는 계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그 어떤 형상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 같이 느낍니다. 신이 눈에 보여서 그 앞에 가까이 가고 싶고, 만지고 절하고 그 앞에 무엇인가를 바쳐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우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를 그 어떤 모양으로도 형상화 하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올바른 자세는, 예배를 통해서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으로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내 삶의 상황에서도 두려움으로 들은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산제사 –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형식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와 말씀에 대한 순수한 순종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올바른 자세요.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의 올바른 신앙과 삶입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을 체험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