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고 있을 때 그의 조수가 부주의하여 중요한 시기에 페인트 몇 방울을 흘렸다. 그 유명한 화가는 진노하여 젊은 조수에게 심한 말을 마구 하였다. 그는 울적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나버렸다. 다빈치는 혼자 쓸쓸히 그림을 계속하려고 붓을 들어 예수의 얼굴로 가져갔다. 갑자기 손이 얼어붙었다. 창조의 힘이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그의 창조력을 봉쇄시키고 말았다. 결국 그는 붓을 집어던지고 밖으로 나가서 그 소년이 울고 있는 것을 찾았다. 그는 소년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사과하였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었으니 나도 너를 용서하마. 다시 돌아가자. 나도 너도 모두 잘못을 저지른 거야. 사실 화를 낸 내가 페인트 몇 방울 떨어뜨린 너보다 더 큰 잘못을 범한 것이지." 소년은 다빈치를 따라 다시 돌아왔다. 다빈치가 붓을 잡고 그림 앞에 앉자 다시 창조력이 생겨나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 예수님의 얼굴은 그 날 이후로 수백 만의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당신은 주의 일을 더 잘 하려고 하다가 분을 내어 함께하는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은 없는가 ? 딤전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1.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됩니다. 굳은 날이 오기전 사역하기 좋은 날에 주의 일과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위해 기도하며 힘써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이 하나님의 은혜속에 귀한 역사를 이루며 지경을 넓혀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목 : 버릴것과 가질 것 성 경: 엡4:25-32 천국은 마치 좋은 것은 계속 가지고, 나쁜 것은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마13:47-50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천국비유에 보면,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물에 고기가 가득차면 물가로 끌어내어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나쁜 것은 과감히 내어버리고 좋은 것은 자꾸 취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나쁜 것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 영혼과 삶에 아주 잘 들어옵니다. 좋은 정원도 가꾸어 주지 않고 놓아두면 심지도 않았는데 금방 잡초가 우거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세계를 보면 더욱 금방 실감할 수 있습니다. 짜증내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짜증내고, 거짓말 하고, 과장하고, 분내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 이런 것들이 왔는지 참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역시 성경을 읽다가 보니까 '가라지'비유를 통해서 금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묻기를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습니까?" 주인이 가로되,"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우리 마음과 삶 가운데 우리가 원치 아니하는 가운데 못된 가라지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잘못된 것들을 항상 제거하고 좋은 것들을 취하려고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주는 메세지입니다. 분명히 그들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버려야할 잘못된 것들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것들을 지적하면서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라고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 주일로 한 해를 접는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지나온 삶들을 점검하면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이며 새롭게 더욱 취해야 할 것들이 무언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도전받고 결단하여 더욱 아름다운 하늘 나라적인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 있지만, 세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1. 언어생활에서 버려야 할 것과 취하여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한 마디로, 거짓과 더러운 말은 버리고 참된 말과 덕을 세우는 말을 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선 오늘 주신 말씀의 패턴을 말씀 드리면, 버리는 삶이 제대로 되어지기 위해서는 채우는 삶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컵에 더러운 물이 있을 때 새물을 자꾸 부으면 결국 새물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사람을 위로하고 유익하게 하는 거짓말은, 상처를 주는 진실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십계명에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보면,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 하는 것보다도 내 유익과 이해를 위해서 거짓말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설령 내게 유익이 떠나가고 불이익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변명은 필요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자칫 잘못하여 거짓말 하게 되어버리는 중요한 요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실과 내 의견을 구분하지 못하는데서 거짓말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그 아무개는 아주 불친절해,' '그 사람 아주 교만해','그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독단적이야' 여러분! 우리는 많은 부분을 내 개인이 직관적으로 느낀 인상을 가지고 사실이라고 주장하기가 쉽습니다. 그 사람에 대하여 잘 알고 난 후에는 잘못된 인상을 가졌다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어떤 것을 분명하게 잘 알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한 번 받은 인상이라든지, 어떤 사건을 잠깐 보고 주관적으로 생각한 것을 가지고 말함으로서 나중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닌 거짓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히 많은 것입니다. 특히, 해외에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인물평하고 사람들의 삶을 평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왜냐면 항상 새로운 사람들이 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깊히 알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단지 몇 번보고 대화한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을 평하여 이야기 하고 다니는 것은 거짓말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들은 것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거짓말'을 말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표현하는 것이 다 정확할 수가 없습니다. 듣는 것도 정확하지 못합니다. 내 주관적으로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들은 것은 참고만 하고 묻어 버리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나쁜 소문과 이야기는 더욱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해봐야 득 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잠언서에 보면,"땔감이 없으면 불이 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사람이 없으면 자연히 기억속에서도 사라지고 분쟁의 불길이 생길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남의 물건 도둑질하는 것도 죄지만, 훔진 물건을 사는 것도 공범입니다. 마찬 가지로 나쁜 소문 전하는 사람이 나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야기 재미있게 들어주는 사람도 같은 죄를 범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쁜 이야기, 다른 사람 흉보는 것 들으면 재미가 있고, 몰두하게 되는 자신을 보면 자기를 꼬집고, "아이쿠,나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직 멀었구나!"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전에 성 어거스틴이 주재하던 수도원 식당에는 이런 글이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남의 허물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 식당에서 환영하지 않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식당에서 잘 모여서 밥 먹으면서 남의 이야기를 말 하기가 쉽습니다. 친구끼리 모여서 소나 닭 잡아먹다가 나중에는 친구까지 잡아먹기 쉬운 것입니다. 것짖된 말,더러운 말,남의 허물을 들추는 말등은 모두 버려야 합 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자신을 볼 때, 그 입술이 너무나 더러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화 있을 찐저!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입니다. 고백했습니다. 그 때 천사중의 하나가 활활 타는 숯불을 가져다가 입술에 대어 주면서 "네 죄가 씻음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박혀 있는 부정하고 더럽고, 거짓된 말들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 정말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남이 내말 한 것을 말하기 전에 내가 한말을 기억하면서 회개 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 내입에 오직 참된 말, 즉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채우시고, 덕스러워서 사람들의 영혼에 상처를 주기 보다는 상처를 치료하는 말을 하고 살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 2. 도적질하는 것을 버리고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는 것 입니다. 엡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 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이것은 남의 재산을 존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제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남의 것을 도적질하는 경우의 삶을 살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의미를 보면, 꼭 도적질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게하기 위하여 라는 말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부정직한 상행위를 통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도 말하자면 도둑질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노동의 대가인 일 삯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것도 결국은 도둑질입니다. 또 남의 일을 맡아서 일을 하면서 일 삯만큼 일하지 않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또한 정직하게 일해서 받는 보수가 아니라, 상대에게 뇌물을 받는 것도 도둑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빈궁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의무입니다. 그래서 옆에 빈궁한 자를 보면서도 구제하지 않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도둑질의 한 형태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돈을 주신 것은 나의 이기심만을 충족하기 위해서 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 하라고, 구제하라고, 봉사하라고, 주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안주는 것도 도적질인 것입니다. 또한 죄송합니다만, 하나님의 것을 내지 않는 것도 하나님에 대한 도둑질의 행위인 것입니다. 말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예)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요, 설교자였던 스펄죤은 "십일조를 바치지 아니하고 내가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요,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는 것도 도둑질하는 것이요, 주일 지키지 않는 것은 주일 도둑이요, 예배 시간에 예배드리지 않는 것은 예배 도둑이요,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도둑놈이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도둑질에 대하여 우리는 회개하고 버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대신 선한 일을 취해야 합니다. 자꾸 선한 일을 하다보면 악한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땀흘려서 돈을 벌어야 남의 돈이 귀한 줄을 알게 됩니다. 그래야 남의 돈을 공짜로 가지려는 도둑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내게 있는 것이 많아서, 넉넉해서가 아니라, 그저 있는 것으로 빈궁한 자에게 주면 하나님이 분명히 채워주십니다. 그러니 더욱 줄것이 있게 되고 남의 것을 탐내지 않게 됩니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3. 분노하는 것을 버리고, 인자하게 여기고 용서하는 것을 가져야 합니다. 엡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4: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분노는 미움에서 오는 것입니다. 미움을 버리고, 용서하며 서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는데, 이 해가 넘기지 전에 마음속에 분노를 간직하며 사는 모든 것을 풀 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러분 그 무엇보다도 심각하게 결단하십시오. 이 해를 넘기기 전에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 미움이요, 형제에 대한 분노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이 일을 위하여 해결하고 기도하는데에 많은 시간을 반드시 보내야 합니다. 이 분노가 가슴에 싸여 그대로 있게 되면 먼저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정에게도 검은 구름을 가져다주며, 자신의 삶을 구속하며 파멸에 빠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오늘 본문에 한 원리를 우리에게 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본문말씀에 비추어 엄밀히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내가 깊히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용서가 임했다고 기뻐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상한 내면에는 아직도 갇혀 신음하는 나의 영, 곧 용서받지 못해 하나님의 빛과 생명을 접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진정한 변화와 성장이 없으며, 이웃사랑과 용서가 없는 것도 결국 나의 내면이 용서받지 못하고 상한 그대로 갇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의 의지로는 결코 용서가 안 됩니다. 용서의 본질은 내가 먼저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도 보면, 분노와 미움은 내가 굶주렸다고 하는 것의 표현입니다. 즉 내가 사랑과 관심에 굶주렸고 이를 채우고 싶었는데, 그것이 좌절될 때 발생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사랑으로 용서로 먼저 잘 채워진다면 분노와 미움의 마음은 필요 없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정말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깊히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이 나를 진정 사랑하시고 용서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내 영혼중심에 체험으로 가득 채워지면 사랑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나 자신도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생길 때, 더 미운 짓을 하고 하나님의 분노 살만한 일을 한 나 자신을 하나님이 그래도 사랑하시고 용서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너무나 깊히 받아들일 때, 오히려 상대에 대한 불쌍히 여기고자 하는 마음과 용서의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참된 신앙 안에서는 '상처받았다'는 말을 쓰는 것조차 반대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저는 여기 와서 많은 사람들로 부터 상처받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무척 많이 상처받고 있는 목사중의 하나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해외에 나오는 성도라고 해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무척 조심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내가 상처를 주었다는'사람은 못 만나 보았습니다. 다, 남의 말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사람 들 뿐이었습니다. 나는 후에 깨닫기를 성경에 예수님이 고난 받았다, 핍박을 받았다는 말은 보았어도 상처받았다는 말은 못 읽어 보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온갖 욕지거리를 들었어도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 못했습니다. 낮아지신 마음이었고, 겸손한 마음이었고, 저들을 용서하는 마음이 이미 준비되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주려고 오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은 상처받은 사람이 교만한 것입니다. 우리는 상처받은 권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절대 상처라는 것은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 상처받는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결론) 이스마엘과 이삭,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고 구박합니다. 그래서 약속이 아닌 자식 이스마엘을 과감히 내어보냅니다. 잘못된 것은 내어 보냅시다. 가져야 될 것은 바로 가지십시다. |
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사랑과 총명과 지혜와 지식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