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인간는 내일을 알 수 없는 한계 속에 사는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요시야의 넷째 아들 여호아하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17대 유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가 형들을 제쳐두고 어떻게 왕위에 오를 수 있었는지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국민이 그를 데려다가 기름을 부은 점으로 미루어 볼때, 그는 요시야의 아들들 중에서 왕의 생전에 가장 총애를 받았든지, 아니면 국민적인 지지도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의 나이는 이십삼세로서 혈기가 왕성한 청년기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나이로만 보면, 그는 적어도 몇십년은 유다의 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재위 기간은 고작 3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즉 그는 애굽의 바로느고에 의해 재위 3개월 만에 폐위되어 애굽으로 끌려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아하스의 짧은 통치 기간은 우리에게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해 줍니다. 사람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약 4: 14).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알게 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내일 무슨 일이 생길런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 점을 각성하고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일도 시간은 충분히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시간이 자신의 주권 아래 있기라도 한 것 처럼 허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만입니다. 시간은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주님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 7). 이 말씀은 당신의 재림과 관련하여 주신 말씀이지만,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아버지의 권한’ 속에는 각 개인의 시간도 포함됨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중에 자신의 수명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건강한 사람은 장수하게 되고, 병약한 사람은 단명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요 보편적인 사실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이러한 상식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한 어리석은 부자처럼 죽음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때에 찾아옵니다(눅12:16-21). 또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도 한 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나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누구에게나 내일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최선을 다하고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우찌무라 간조의 말처럼 하루를 일생으로 알고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훌륭한 하루가 있으므로 훌륭한 일생이 있게 된다는 그의 말은 음미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