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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함께 12·3 비상계엄 사태
“尹 탄핵 기각 설 수도 있다” 그 4인, 이진숙 손 들어줬다 [헌재 8인 해부⑩]
카드 발행 일시2025.01.24
에디터
박진석
정유진
12·3 비상계엄 사태
관심
2024헌나1호 방통위원장 탄핵심판 사건 선고하겠습니다.
2025년 1월 23일 오전 10시 1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재판정에서 문형배 헌법재판관(헌재소장 대리)이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읽기 시작했다. 해당 탄핵심판 사건의 대상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2024년 7월 31일 취임한 이 위원장은 취임 당일 김태규 부위원장과 단 두 명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와 KBS 이사 선임 안건 등을 의결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은 “방통위원 3인 체제를 충족해 토론과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방통위법의 취지를 어겼다”고 비판하면서 국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이 위원장 취임으로부터 불과 이틀 뒤인 8월 2일의 일이었다.
이 사건에 대한 선고는 헌재에 줄줄이 계류 중인 윤석열 정부 공직자 탄핵심판 사건들의 추이를 점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끌었다. 만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문 재판관의 입에서 나온 주문은 다음과 같았다.
주문. 이 사건 심판 청구를 기각한다.
이 위원장의 승리였다. 헌재 재판관 8인 중 4인이 기각 의견을 내면서 이 위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나머지 4인은 인용, 즉 “이 위원장을 파면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탄핵심판 대상자가 파면되려면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 못 미쳤기 때문에 헌재의 최종 결론은 기각이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23일 탄핵심판 사건 기각 결정이 내려진 직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이 위원장은 즉각 업무에 복귀했다. 각 진영은 이해관계에 따라 헌재 결정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서로를, 그리고 때로는 헌재를 비난했다. 하지만 서로 목소리를 높이느라 정작 주목해야 할 팩트에 관심을 둔 이는 많지 않았다. 문 재판관이 선고 과정에서 읽어 내려간 바로 아래 대목 말이다.
재판관 김형두·정형식·김복형·조한창의 기각 의견 요지는 김형두 재판관께서, 재판관 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계선의 인용 의견 요지는 정정미 재판관께서 설명하겠습니다.
각각 기각 측과 인용 측에 선 재판관들의 면면을 말함이다. 더중앙플러스의 ‘헌재 8인 해부’시리즈를 충실히 읽은 분이라면 저 이름들을 살펴본 뒤 무릎을 탁 칠 수도 있다. 미처 그 기사들을 읽지 못한 분이라면 바로 이 기사를 통해 왜 이게 중요한 문제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선고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결과를 미리 점쳐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탄핵심판 기각 의견을 내면서 이 위원장의 손을 들어준 4인의 재판관 중 김복형 재판관을 뺀 나머지 3인은 ‘헌재 8인 해부’팀이, 아니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면 취재팀이 취재한 사법부 인사들이 “윤 대통령 탄핵 기각 쪽에 설 수 있다”고 분석했던 인물들과 정확히 겹친다. 반대로 “이 위원장을 파면해야 한다”며 탄핵 인용 의견을 낸 재판관 4인은 모두 취재팀과 사법부 인사들이 “윤 대통령 탄핵 인용 쪽에 설 것”이라고 지목했던 재판관들이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한 명 한 명 다시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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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각파: 정형식·조한창·김형두 예상 그대로 적중
정형식 재판관. 연합뉴스
먼저 기각파 4인에 속한 정형식 재판관. 그는 헌재가 6인 체제였을 때 윤 대통령 탄핵기각 쪽에 설 수도 있다고 분석됐던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6인 중 유일하게 윤 대통령이 지명한 재판관인 데다가 뚜렷한 보수 성향을 지닌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인사청문경과보고서에 “이념적 편향성 때문에 헌재 재판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적시하면서 ‘부적격’ 의견을 냈을 정도다.
그런데 만일 윤 대통령 탄핵기각이 정 재판관의 소신이라 하더라도 그에게는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법부의 소식통인 A 판사가 이 부분과 관련해 내린 분석이다.
설사 정 재판관이 탄핵 기각 의견이라 하더라도 나머지 재판관 전부가 탄핵 인용 편이라면 사람의 심리상 혼자 다른 쪽에 선다는 건 매우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이름이 역사에 기록돼 두고두고 인용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니까요. 그래서 결과가 7대 1로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면 그 역시 7쪽으로 붙을 가능성이 커요. ‘7대1 = 8대0’이라는 말이에요.
옛 상품 광고의 문구처럼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혼자 예라고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미다.
그런데 조한창, 정계선 재판관의 합류로 헌재가 8인 체제가 되면서 이 구도에 변수가 생겼다. 변수의 핵심은 조 재판관이었다.
조한창 재판관. 뉴스1
조 재판관은 정 재판관과 비슷한 주류(主流) 보수 인사다. 서울지법 판사와 부장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판사와 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및 수석부장판사 등 전형적인 법원의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아왔다. 게다가 서울법대 출신이고 남성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는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 최고 법관 자리가 빌 때마다 예외 없이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낙점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가 잇따라 대법관 후보군에 들자 사법부 안팎에서는 “대통령실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감지됐다.
조 재판관의 합류는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A의 이야기를 다시 인용해보자
만일 조 재판관이 탄핵 기각 쪽에 선다면 얘기가 달라져요. 확실한 탄핵 기각 의견 1표가 더 생겼다고 가정해볼까요. 정형식 재판관 입장에서 7대 1은 부담스럽지만 6대2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죠. 그럴 경우 만일 정 재판관 소신이 탄핵 기각이라면 소신대로 표를 던질 거에요.
그래도 6대2니까 탄핵 인용이 되고 대통령이 지는 것 아닌가.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중도로 분류되는 김형두 재판관의 존재다. A의 말이 이어진다.
김형두 재판관. 연합뉴스
일단 6대2가 명확해지면 그게 5대3으로 바뀌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탄핵 기각 쪽이 확실한 2표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마음이 흔들리는 분이 추가로 생길 수 있어요. 중도로 분류되면서 자기 의견이 아직 확고하지 않은 분, 이를테면 김형두 재판관 같은 분이 탄핵 기각 쪽에 합류할 수 있다는 거죠. 이게 조 재판관 한 명이 합류하면서 생길 수 있는 나비 효과에요
이 위원장 사건에서 A의 이 예측은 정확하게 현실화했다. 이들 3인은 모두 기각 편에 섰다.
인용파: 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계선 예상 모두 맞아떨어져
이 위원장 탄핵 인용 의견을 낸 4인 역시 마찬가지다. ‘헌재 8인 해부’팀의 취재에 응한 사법부 인사들이 “윤 대통령 탄핵 인용 의견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재판관들이 바로 이들과 정확하게 겹친다. 이 중 문형배·이미선·정계선 재판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 판사이다.
문형배 재판관. 임현동기자
문 재판관은 1992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한 이후 27년간 부산·경남 지역에서만 근무한 대표적 지방 법관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앞두고 주목해야 할 특징은 역시 그가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한 판사는 다음과 같이 장담했다.
문 재판관은 분명히 탄핵 인용할 겁니다. 의견도 굉장히 강하게 쓸 겁니다.
이미선 재판관. 뉴스1
이미선 재판관 역시 진보 성향이 뚜렷하다. 강원 화천 출신으로 중학교 때부터 외가가 있던 부산에서 공부한 그는 초임지가 서울지법(현 서울중앙지법)이었을 정도로 연수원 성적이 우수했다. 법원에서도 요직인 대법원 재판연구관, 중앙지법 형사합의 부장판사 등을 거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남편 오충진 변호사와 함께 노동법에 천착하면서 자연스레 진보 성향을 갖게 됐다는 게 법원 내부의 평가다. 실제 헌재 재판관이 된 이후의 결정례를 보면 가끔 문형배 재판관보다 더 전향적인 의견을 내놓을 정도로 뚜렷한 진보 성향을 보였다. 그가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입장에 설 것으로 예상된 이유다.
정계선 재판관. 연합뉴스
정계선 재판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서울대 법대 시절부터 민중민주(PD) 계열 운동권으로 활동했고, 판사가 된 이후에도 진보 판사 모임의 쌍두마차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모두 몸담았다. 비록 판사 시절 판결을 통해 진보 성향을 표출한 적은 드물었지만 이번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는 탄핵 찬성 입장에 설 것으로 보인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정정미 재판관. 연합뉴스
정정미 재판관은 재판관 취임 당시만 해도 중도 성향 인사로 분류됐다. 우리법연구회 등 진보 성향 모임에 몸담은 적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법원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은 그가 중도보다는 진보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실제 그는 판사 시절 진보 판사의 대부격이었던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함께 행정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다. 김 전 대법원장이 외부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사법행정자문회의를 만들어 운영했는데 그때 자문회의 산하 법정디자인분과 위원장을 맡았던 게 바로 정 재판관이었다. 또 그가 헌재 재판관 취임 이후 내놓은 결정들을 봐도 중도라기보다는 진보 쪽에 가까운 의견이 많았다. 취재 대상 판사들이 조심스럽게 그가 탄핵 찬성 쪽에 설 것으로 점친 이유다.
뜻밖 사건: 김복형은 왜 기각파에 섰나
김복형 재판관. 연합뉴스
기존 취재 및 기사들에 비춰볼 때 의외였던 단 한 가지는 김복형 재판관의 스탠스다. 그는 이 위원장 탄핵심판 사건에서 기각 의견을 냈다. 탄핵기각파와 의견을 함께했다는 얘기다.
사실 취재팀의 불찰 또는 간과일 수 있는데, 앞선 취재 과정에서 이미 그가 탄핵기각파에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이가 있었다. 고법 판사 B였다. 그런데도 그걸 보도하지 않은 건 사실 불찰, 간과라기보다는 ‘설마 그 정도까지?’라는 현실성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다음은 B가 당시 내놓았던 분석이다.
만일 5대3이 되면 5가 조한창·김형두·정형식 재판관을 설득해야 하잖아.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면 그 와중에 김복형 재판관이 어떻게 될지 모르게 되는 거야. 김 재판관은 뚜렷한 정치적 성향이 없고 법리적으로만 판단하는 분이거든. 만일 탄핵기각파가 김복형 재판관을 포섭할 수 있다면 4대 4까지도 가능해지는 거야.
그 4대4가 바로 이 위원장 탄핵심판 사건에서 거짓말처럼 현실화한 것이다.
민주당이 ‘9인 헌재’ 구축에 목매는 이유 입증된 셈
민주당 입장에서는 가슴이 섬뜩해질 수 있는 결과다. 민주당이 이미 제9의 재판관으로 선출됐지만, 임명 보류 상태인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 촉구 목소리를 더욱 높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이유다.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뉴스1
마 후보자는 헌재 구성원 또는 예비 구성원 중 가장 진보적인 인사다. 그는 판사가 되기 전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면서 노회찬 전 의원,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등과 함께 사회주의 지하 혁명조직 ‘인천지역 민주노동자 연맹(인민노련)’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판사가 된 이후에도 그 진보 성향을 판결에 자주 반영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연히 재판관으로 취임만 한다면 그 누구보다도 명확한 윤 대통령 탄핵인용파로 분류될 수 있는 인물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마 후보자를 추가 투입해 9인 헌재 체제를 만들어야 혹여 있을지 모를 위험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상황이다. 마 후보자는 이르면 2월3일 헌재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유독 마 후보자만 임명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헌재 재판관 임명권 불행사 부작위 위헌확인’ 사건이 제기돼 있는데 헌재가 이 사건에 대한 선고를 그날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위원장 사건에 대한 선고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그대로 재연될 거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안의 내용이나 중대성에서 두 사건은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도 이 위원장 선고를 간과하기 어려운 건 앞에서 서술한 대로 재판관 8인의 개인 성향과 결정례에 따라 예상해본 재판관별 윤 대통령 탄핵 기각 또는 찬성 예상도(圖)와 거의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니 본격화하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재판을 지켜보면서 하나의 참고 사항이자 보조 지표로 눈여겨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는 게 취재팀의 생각이다.
에디터
박진석
관심
중앙일보 기획취재2국장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9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