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285장 (구 209장) / 출애굽기 21 : 1 - 11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285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출애굽기 21장 1절 – 11절 말씀입니다.
1.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3.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7. 사람이 자기의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 같이 나오지 못할지며,
8. 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여 상관하지 아니하면,
그를 속량하게 할 것이나 상전이 그 여자를 속인 것이 되었으니,
외국인에게는 팔지 못할 것이요.
9.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 같이 대우할 것이요.
10. 만일 상전이 다른 여자에게 장가 들지라도,
그 여자의 음식과 의복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말 것이요.
11. 그가 이 세 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여자는 속전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할 것이니라. 아멘!
오늘 본문은 노예제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과 노예의 권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노예제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은 어떤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성경에 노예제도를 인정한다고 하며 매우 악한 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은 주장입니다. 이스라엘의 노예제도는 19세기의 흑인들을 사고팔았던 무자비한 노예제도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19세기의 노예제도는 제국주의자들이 약한 나라를 침공해서 식민지로 삼고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여 인간취급도 하지 않은 채 사고 팔았던 아주 악한 제도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종은 누가 붙잡아서 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 종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종이 되겠습니까? 굶어 죽을 형편이 되니까 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굶어 죽는 것이 좋습니까? 머슴살이라도 하는 것이 좋습니까?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종은 가난 때문에 스스로 부자 집의 종으로 들어가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종이 되는 것이 자유로운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빚을 지고 갚지 못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로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종이 된 이후에 그의 부자 친척이 종으로 팔린 그를 위해 팔려갈 때에 지불했던 돈을 다시 갚아주면, 그 종의 주인은 그 종을 해방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 종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돈을 대신 물어주는 부자 친척을 ‘기업 무를 자’ 라고 하였고, 이처럼 종에서 자유와 해방시켜 주는 제도를 ‘구속’ 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대신 치러주시고, 해방시켜 주시는 구속의 은혜를 구약성경은 이처럼 그림과 같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노예는 구속해 줄 부자 친척이 없는 경우라도 6년을 일했다면 7년째는 아무 조건 없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종으로 들어올 때에 단신으로 들어왔으면 단신으로 나가고, 아내와 자식들이 있으면 처자식과 함께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7년이 되기 전, 이스라엘에 50년마다 찾아오는 희년이 왔을 경우, 꼭 6년을 채우지 않아도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종은 첫째로 자발성이 그 동기이고, 둘째로 기한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6년이 그 기한이었고, 7년째는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종은 사실상 ‘연한을 계약하고 노동하는 근로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노예제도는 가난으로 죽을 형편의 동족을 살려주는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인 것입니다. 사회보장제도라고 해도 국가가 모든 부담을 갖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이 있는 경우 굶어 죽지 않게 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상당히 발전된 제도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언약서에 기록된 시민법을 보면 종에 관한 제도가 가장 먼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약한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과 배려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약자들에게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은 종과 관련된 제도를 가장 앞에 두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약한 자들, 소외된 자들, 종들에 대해 얼마나 큰 관심과 배려를 가지고 계셨는지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시내 산에서 법을 주셨는데, 온 우주의 창조주가 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종이 될 때에 ‘그가 단신으로 들어왔는지’ ‘결혼을 하고 들어왔는지’ ‘종이 된 이후 아내를 얻게 되었는지’ 와 같이 지극히 작은 일에도 세세하게 관심을 갖고 돌보셨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또 하나님은 종이 7년째 자유를 얻어 주인의 집에서 나가게 되더라도 또 다시 가난으로 인해 굶어 죽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신명기 15장 13절 ~ 14절에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공수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 하나님은 이렇게 오늘날 시행되고 있는 퇴직금 제도까지도 생각해주셨습니다. 6년을 일하고 7년째가 되어 나가게 될 때에는 후히 주어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자비로운 하나님의 모습입니까?
신명기 15장 18절에도 “그가 육 년 동안에 품군의 삯의 배나 받을 만큼 너를 섬겼은즉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네가 6년을 일했지만 일을 굉장히 잘했으니 더 하면 좋겠다고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무조건 7년째가 되면 자유롭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지금 시내 산에 모세를 불러 말씀하고 계시는 중인데, 이토록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쓰고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분이신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부려 먹었던 애굽의 노예제도에는 이런 자비로운 내용이 전혀 없었습니다. 히브리인의 남아가 태어나거든, 나일 강 하수에 던지라고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여성의 권리도 인정되지 않았고, 학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바로 애굽의 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의 노예제도와 이스라엘의 종 제도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노예제도에서는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로운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노예 제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은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공의와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성품입니다.
이런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약시대의 하나님 나라 백성인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정신입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나를 찾아와 돌봐주었고, 내가 헐벗었을 때에 옷을 주었고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다.” 고 말씀하시자,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우리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형제 중에 가장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행한 것이라.” 고 말입니다.
또 마가복음 9장 35절에서도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첫째가 되고자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첫째가 되는 방법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만 첫째가 되는 방법은 끝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서 약한 사람들을 섬기고 돌보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첫째가 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스라엘의 노예 제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이 얼마나 공의롭고 자비로우신지를 알았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성품인 공의롭고 자비로우심으로 하나님의 종 된 우리 모두도 예수님 말씀처럼 낮은 자리에서 섬김으로 첫째가 되고 으뜸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