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보문학>의 동인문집인 '내 마음의 숲'이 지금 원고를 모우고 있다.
운월 김순일의 '엿의 추억'이란 수필이 올랐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엿과 조청을 만드시는 과정을 자세히도 설명했다.
쫀득거리는 엿과 조청을 먹으면서 행복했던 추억이 있는 옛날을 회상하였다.
나는 위 수필을 거듭 거듭 읽으면서 아래처럼 댓글을 달았고, '세상사는 이야기방'에도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1)
엿을 만드는 과정을 잘 나타내셨군요.
과거에는 엿을 만드는 시간 즉 '기다림의 미학'이었고, 현재에는 핸드폰의 '빨리빨리 문화'로 보셨군요.
이 두 성향을 합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뜻으로 결언했군요.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정서가 깃든 글이기에...
중국 한자말이나 영어의 낱말은 한국말로 고쳤으면 합니다.
즉 한자 '후'를 우리말인 '뒤'로 바꾸고...
영어말 '덱스트린'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어떨까요?
합당한 낱말이 어렵다면 글이 다 끝난 뒤에 별표(*)를 한 뒤에 보충설명을 했으면 합니다.
...11시간이 지난 후 밥알이 동동 뜬 후 한 번 더 끓이면 식혜가 된다. ...'뒤'...
... 굳은 후 사각형으로 자르면 ... '뒤' ...
* 덱스트린(dextrin) :
녹말을 열, 효소, 산 등으로 가수 분해를 할 때 생기는 여러 가지 중간 생성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엄지 척! 합니다.
제 어린시절에도 엿 만드는 과정을 보았지요.
2)
엿, 아랫목, 가마솥, 아궁이, 장작, 장작불, 동네 우물, 이불, 찬물, 빨래, 눈꺼풀, 하품, 조청, 숟가락, 가래떡, 입안의 침, 밥알, 방망이, 고물, 귀퉁이, 자투리, 숲, 동네 꼬마들, 손맛, 찹쌀떡, 사탕, 먹거리, 술병, 장터, 엿장수 가위, 쇳조각, 장판, 온돌, 추운 겨울, 틀니, 등.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이 듬뿍 들었군요.
자꾸만 사라지는 우리말, 우리문화를 되살려서 쓴 문학글이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합니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 경기도 성남에는 매 4일과 9일에 열리는 모란시장이 있지요.
재래시장이기에 '없는 것은 빼놓고 있는 것은 다 있다'이지요.
얼굴에 이상하게 분칠하고, 이상한 옷차림을 한 각설이들이 연극하고, 한편에서는 엿장수가 있지요.
엿가위를 철거덕 거리며 '엿 먹어'라고 크게 소리쳐서 물건 사러온 장꾼들을 불러서 엿을 사 먹도록 하대요.
문학-글은 이래야 한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수필(산문)에서는 많은 것들을 나타낸다.
독자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수필(산문)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지나간 옛날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시골, 산골마을에서 태어났고, 자랐던 나도 엿을 만드는 과정을 잘 안다.
서해안 산고라당 아래에 있는 시골집에는 안부엌, 바깥사랑방, 일꾼사랑방이 있었다. 여러 곳의 아궁이가 있었고, 아궁이마다 커다란 무쇠솥인 가마솥이 있었다.
오래 전 내가 재래식 부엌을 부수고 신식의 부엌으로 꾸몄다. 보수를 하면서 한 군데만 아궁이를 남겼다. 일꾼사랑방의 부엌이다. 재래솥인 무쇠가마솥이 아직도 걸려 있다.
내 어린시절, 청년시절에는 엿을 고와서 만드는 과정에서 사내 머스마인 나도 잠깐 힘을 보탰다.
통밀에 샘물을 부어서 싹(뿌리)를 튀웠다. 며칠간. 어지간히 실뿌리가 길어지면 멍석 위에 널어서 볕을 쬐였다. 꼬들꼬들하게 다 마르면 멧돌로 갈아서 하얀 가루를 냈다.
이 가루를 떠서 모시푸대 자루에 넣고는 물을 부어서 오물조물 주무르고, 또 홍두깨 방망이로 자루를 눌러짜서 즙을 내렸다. 이 즙을 가마솥에 넣고는 하얀 쌀밥을 넣고는 다시 장작불을 끄르름하게 오래 오래 땠다.
김(수중기)이 오르는 가마솥 밑바닥이 누르지 않도록 주걱으로 빙빙 돌리고 식혜(감주)를 만들었다. 허옇게 부풀어 오른 쌀밥은 흐물거리고..
뜨거운 김이 서리고, 달짝지근한 내음새가 부엌에 가득 찼다.
식혜(감주)가 다 되면... 식혜(감주)를 퍼 냈다.
엿을 만드려면 이 감주(식혜)를 모시푸대 자루에 붓어 넣고는 방망이로 눌러서 즙을 짰다.
솥 안에 이 즙을 넣고 다시 불을 때면서 즙물이 졸아들게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즙의 물은 줄어들고, 쫀득쫀득한 조청이 된다. 이 조청을 더 끓여서 엿을 만들고...
내 할머니와 어머니는 조청을 만들었다. 엿은 만들지 않았다.
조청을 작은 항아리인 옹이에 퍼담고는 뚜껑을 덮었다.
조청.. 얼마나 달콤하며 맛이 있었던가. 기다란 가래떡 끝에 조청을 찍어서 먹으면 얼마나 달콤했던가.
내 기억은 오래 전에서 멈췄다.
서울 아파트에서 사는 아내는 결혼초기에는 차례 제사 지낼 때에는 식혜(감주)을 만들었으나 조청은 전혀 만들지 않았다.
지금은 식혜마저도 별로 만들지 않는다. 단것을 좋아하는 남편(나)이 무한정 퍼서 먹을 것 같기에... 내가 당뇨병환자라서 그럴 게다.
위 김순일 작가의 수필 '엿의 추억'이 주는 이미지가 나한테는 무척이나 강렬하다.
언제 경기도 성남에 있는 모란시장으로 장구경 나가야겠다.
모란시장에는 엿을 파는 엿장수가 있다. 얼굴에 이상하게 화장을 하고, 요상하게 옷을 입을 각설이 엿장수가 있다.
지나가는 장꾼을 향해서 '엿 먹어!'라고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혹시 욕하는 것은 아닐까?
'엿 먹어라'라는 말에는 어떤 뜻도 들어 있다.
인터넷 어학사전으로 '역 먹어라'를 검색한다.
'엿 먹어라' : 상대방을 슬쩍 골려 주거나 속여넘길 때 속되게 이르는 말
나중에 보탠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ㆍ
좋은 합평 반영토록하겠습니다ㆍ
예.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