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旣困窮이면生子不擧니라.誘之育之하여保我男女니라. 민기곤궁이면생자불거니라.유지육지하여보아남녀니라. 백성들이 곤궁하게 되면 자식을 낳아도 거두지 못하니, 이들을 타이르고 길러서 내 자식처럼 보호해야 한다. - 자유(慈幼) -
중국 후한시대의 문신이었던 가표가 신식 지방의 목민관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 당시에는 백성들이 너무 가난에 찌든 탓에 자식을 키우지 않고 버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법을 엄격하게 정하여 아이들을 버릴 경우 살인을 한 것과 똑같은 죄로 다스렸다. 가표가 재직하고 있던 지방의 남쪽에는 도둑으로서 살인죄를 저지른 자들이 살고 있었고, 북쪽에는 자식을 죽인 부인네들이 살고 있었다. 가표는 군사를 보내 그들을 잡아 벌을 주려 했다. 이때 부하 장수 하 나가 나서서 가표에게 남쪽 지방으로 먼저 가자고 고했다. 그러자 가표 가 크게 화를 내며 장수를 꾸짖었다. "도둑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이따금 있는 일이긴 하지만, 자기 자식 을 죽이는 짓은 천륜을 거역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찌 천륜을 거역한 자들을 놔두고 도둑부터 잡자고 하는가?" 가표는 당장 군사를 거느리고 북쪽으로 가서 자식을 죽인 여자들을 잡아 중벌을 내렸다. 이 일이 전해지자 남쪽에 있던 도둑들은 스스로 가표에게 찾아와 자수를 했다. 이 일로 인해 살려낸 아이들이 몇 년이 안 돼 1천여 명에 달했다. 그 지방 사람들은 입을 모아 "내 자식을 가표 수령께서 살려냈다."고 말하 면서 자기 아이들에게 모두 가씨 성을 붙였다고 한다. 또한 송나라 문신인 엽몽득이 허창 지방을 맡아 다스리던 어느 해에 홍수를 만나 이재민이 많이 생겼다. 그때 사람들이 서로 협동하여 10만 여 명이나 구해서 살려냈으나 버려진 어린아이들을 구하려 하는 사람 은 없었다. 그는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여 말했다.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왜 저 아이들을 구해서 데려다 기르지 않는 가?" 이 말을 듣고 관리가 답했다. "사람들이 아이들 데려다 기를 생각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 아 이들이 다 큰 뒤에 누가 와서 제 자식이라고 하며 돌려 달라고 할까봐 그 점이 걱정되어 그러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엽몽득이 그에 관한 법률을 찿아보았다. 그랬더니 `재 앙을 만나 내버린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다시 찾아가지 못한다.`는 구절 이 있었다. 엽몽득은 기뻐하며 그 조문을 수천 장 써서 일반 서민들에게 배포했 다. 그리고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기르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었으며, 곡식을 나누어 주어서 가난한 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그리하여 일이 거의 끝난 다음에 기록을 살펴보니 무려 3천8백여 명 의 아이들이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