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순간 얼어버렸다. 방금 전 그에게 실망해버린 경솔한 나에 대하여 내 자신이 자책하고 있었다. 아아. 그 대답은 다시금 나를 설레게 했다. 결국 외모나 어떤 다른 시각적, 촉각적과 같은 감각기관이 아닌 가슴으로 느낀 것이다. 내가 그에게 7년 전 어떤 인상을 남겨주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나를 그냥 감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그만큼 나는 그에게 꽤나 깊숙이 박혀있던 것이다. 그에게는 그 누구도 정의내릴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물론 그 매력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해당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만큼은 확실한 효과가 있는 듯하다. 그의 하이얀 피부는 더 이상 창백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입술도 조금은 붉게 보이는 것 같았고, 양 볼도 조금 발그레 해 보였다. 물론 이것은 그저 나의 시각적인 관점이지, 실은 그는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건 상관없었다. 나는 어느새 용기가 늘어나 있었다. 이제는 내가 그에게 느낄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도록 마음먹었다. 그는 분명히 나에게 상처를 안겨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상처 입히지 않는 한. “나, 나도 너 인 것 같았어!” 나는 조금은 쑥스럽지만 그래도 용기 있게 내뱉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서 잠시 입술을 꿈틀 거리더니 아주 살짝,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익- 웃고 다시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걸고 싶어 안절부절 못해있는 상태였으나, 그는 평화로워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 무표정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때때로 그의 앞에 무안하게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다시 책상을 바라보기도하고 다시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가하면 나를 또다시 바라보곤 했다. 이제는 나의 불안함과 초조함, 그리고 무안함이 절정에 달했다.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너와 친해지고 싶어. 그럴 수 있는 거지, 우리?’ 라고 말이다. 사귀는 것 까진 아니어도 아주 친한 친구사이 까지는 괜찮은 것 아닌가? 나는 터질 듯한 심장을 뇌로 누르며 입을 열었다. “저, 저기” 그가 넋을 놓고 있다가 눈에 다시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말을 해야겠다― 하고 입을 다시 여는 데, 복도에서 남자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엔 다른 중학교 놈들이랑 시합해볼까?” “그래, 내가 주선하지.” 우리 학교 말썽꾸러기 5인조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벌떡 일어선 나를 따라 고개를 같이 들어올렸다. 5인조는 교실에 들어와 시끌벅적 떠들다가 어정쩡하게 남아있는 우리 둘을 보고 잠시 굳었다. 물론 그들은 말썽꾸러기 인데다가, 생각이 얕다. 그들은 그러한 이유로 소문내기를 좋아하고 선생님, 혹은 여자아이들에게 장난을 치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점심시간 마다 항상 밖에 나가 축구를 하고 오는 바람에 작년 우리 반의 땀 냄새의 주범은 다 저들이었다. 나는 저들에게 우리 둘이 내내 같이 있었다는 걸 들키기 싫었다. 나뿐만 아니라 윤석이까지 곤란에 처해질 것이다. 게다가 윤석인 전학 첫날인데, 벌써부터 이상한 말이 나돌면 앞으로 얼마나 학교생활이 힘들겠는가! 나는 그들을 무마할 필요를 느꼈다. 그리고 생각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눈이 휘둥그레 져서 나에게, 아니 우리에게 물어왔다. “너희들 뭐하고 있었냐?” “뭐, 뭐하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그래?” 그 순간, 나는 실수 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윤석이를 쳐다보자, 윤석이는 표정이 굳어버리더니 고개를 다시 책상 쪽으로 숙였다. 그것은 무표정으로 굳어버렸다. 그는 내가 자신을 그들로부터 감추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당장 윤석이에게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저 5인조 때문에 굉장히 어중간하게 되어있던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도 하나 둘 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윤석이에게 무어라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용기박약이었다. 용기가 더 필요했다. 아니, 아니지! 5인조가 조금만 더 늦게 들어왔어야 했다! 이건 내 탓이 아니라 모두 저들 탓인 것이다. 앞문으로 민정이가 들어왔다. 민정인 나를 보더니 잠시 눈을 흘기고는 나에게 쿵쿵대며 다가왔다. “뭐야! 안자고 있었네? 덕분에 밥 잘 먹었다!” “아. 미, 미안.” “근데 여기서 뭐하고 있어?” “아…….그, 그게” 나는 윤석이를 잠시 쳐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러자 윤석이가 자리에서 스르륵 일어나더니 뒷문으로 나가버렸다. 그 순간 내 발 밑으로 지하 몇 천 미터로 훅-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다. 이런! 그럴 의도가 절대로 아니었는데! 그 때, 수다를 좋아하는 민정이가 역시나 아줌마스럽게 말투로 나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너~ 그거 들었어?” “뭐?” “쟤 있잖아, 전학 온 이유가 전 학교에서 폭력사건을 일으켰었대!” “폭력사건?” “응. 누구 한명을 엄청 팼다나? 그래서 전학 온 거래. 여기서도 사고 치면 퇴학이라는데. 무서워~ 그렇지?” “누가 그랬어?” “내 친구가. 교무실에 갔다가 선생님들끼리 말하는 걸 들었다던데?” 그럴 리가 없었다. 7년 전에도 그랬듯이 그가 그 누군가를 때린 것에는 분명히 명백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이유를 인증 받으려 하지 않았을 것 이었고, 그것이 사람들의 그릇된 인식과 오해, 편견으로 그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7년 전, 원장수녀님도 그랬다. 그는 그 전에도 누군가를 때리는 폭력사건을 많이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원장수녀님은 그가 아무개를 때린 이유는 묻지 않고, 전에 누군가를 때린 적이 있단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문제아로 낙인찍었던 것이다. 물론 누군가를 때린 다는 것은 반사회적이고, 나쁜 인식을 심어줄 수는 있지만 그의 주먹은 정의로웠다. 그리고 이유가 없이는 그 정의로운 주먹은 절대로 휘둘리어 지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어른들이라는 아주 딱딱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생물에게 자신의 억울함과 자신의 주먹의 정당함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금까지의 내 추리이지만, 거의 한 80%는 그렇지 않을까? 아니지, 이런 추리를 하고 있을 데가 아니다. 지금 나에게 급급한 것은 내가 윤석이의 기분을 망쳐놓았다는 것이다. 나는 민정이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5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쳐버렸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자리로 돌아가고 윤석이가 뒷문으로 다시 들어왔다. 나는 그런 윤석이를 뒤로하고 결국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 날,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나는 그에게 말 한번 걸어보지도, 아니 눈길한번 주지 못했다. 줄 수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이미 감정이 상해있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 날, 수업이 모두 끝나고 끝까지 우리에게 무관심해 보이는 담임선생님의 성의 없는 종례가 이어졌다. 그는 그냥 ‘어.’ ‘음.’ 만 반복하다가 그냥 1번에게 인사를 시켰다. 새 학기라서 우리 반에는 아직 반장이 없었다. 인사가 끝나고 선생님은 코를 부비적 하더니 나갔고,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밖으로 뛰어나가는 소리가 뒤섞였다. 나는 잠시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에게 말을 해야 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 그리고 그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로 나에게 감정이 상해있는 건 아닐까 나는 노심초사 했다. 가방을 메고 온 민정이가 말했다. “우리 분식집갈래? 오~랜만에.” “응…….아, 아니!” “응, 아니는 뭐야?” “아. 저. 먼저 가야될 것 같아.” 나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자리에 없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교실을 빠르게 둘러보니 뒷문을 통해 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아주 짧게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뒷문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왜? 왜 먼저 가야 하는데?” “민정아, 미안! 가봐야겠어!”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밖으로 튕겨나가듯이 달렸다. 뒤로는 민정이가 땍땍 대는 소리가 멀어져 갔다. 재빨리 나가자 또다시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이 아주 짧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계단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옆 반 남학생이 맞은편에서 걸어오다가 ‘어어, 조심해!’ 라고 크게 외쳤지만 나는 대답도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손잡이 옆 밑으로 내려다보니 그가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잘 못하던 2단씩 계단 내려가기(한 번에 계단을 2개씩 내려가는 것)를 선보였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짓이었지만 나는 마음이 급해서 평소에는 무서워서 하지도 못하던 짓을 그냥 막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내려가면서도 나에게 조금은 놀랐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계단을 거의 부웅- 날다시피 내려오고 드디어 계단이 끝나는 바닥 부분에 발을 디디는 순간, 반대쪽에서 오던 한 아이와 정통으로 부딪히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그 아이는 청소에 쓸 물을 양동이에 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뒤로 자빠져버렸다. 꼬리뼈가 안으로 쑤욱- 하고 들어간 느낌이었다.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여기 있었다. 점점 아랫속옷과 치마가 축축해져 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려 바닥에서 일어나니 치마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되레 나에게 고함을 질렀다. “뭐하는 거야! 다 젖었잖아!” 그 아이도 바지가 다 젖어있었다. 나는 평소에 밝고 활동적인 성격이라 해도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내면 그대로 작아져 버리는 습성이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에서 ‘미안해’ 라는 소리가 튀어나왔고, 그 아이는 잠시 움찔 하더니 그냥 ‘됐어’ 라고 말해버렸다. 그렇지만 나도 피해자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하여튼 ‘정말로 재수가 없구나―’ 하던 찰나에 학교 현관을 바라보니 이미 윤석이는 실내화를 다 갈아 신고 출발한 상태였다. 나는 아직 실내화도 갈아 신지 않았는데! 나는 현관으로 뛰어나가 대충 실내화를 갈아 신었다. 아니, 실내화를 갈아 신었다가 보단 그냥 실내화는 실내화 가방에, 발은 신발 안에 쑤셔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그냥 꾸겨 신은 채로 그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다행히 비교적 느리게 걷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따라 온 것도 잠시 나는 나의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나는 그를 따라가던 발걸음을 잠시 정지시키고 내 상태를 다시 한 번 살폈다. 물론 지금 당장 그에게 가서 해명을 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런 상태로는 나는 완전히 미친 아이 취급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에게 창피를 당하는 건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젖어버린 치마와 다리 때문에 점점 몸에 오한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은 실패이다. 내가 너무 서두른 탓이다. 아니, 처음부터 내가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용기 있게, 정말 당당하게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오히려 다른 아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때 또 다시 어떤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그와 내가 처음 만나던 날, 그는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나에게 개구리만을 잡아주고 들어가 버렸을 때. 그 때 내가 느낀 원인모를 억울함과 분함. 그리고 무엇인가의 상실감이 물을 끼얹듯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눈앞으로 시야가 흔들흔들 거리는 게 느껴졌다. 눈을 한번 감았다 뜨자 눈 밑으로 뜨거운 게 공기에 닿아 차가운 게 뚝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손톱만 하게 시멘트 바닥이 젖어 들어갔다. 근데 그 앞으로 운동화 앞 꼼치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마치 나에게 왜 울고 있느냐고 묻는 듯 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 안녕.” 나는 그를 지나쳐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야만 했다. 지금 내 꼴은 너무나도 우습다. 이런데 울고 있기까지 한 모습을 보였으니. 난 창피함을 너머 괜히 억울하고 짜증이 났다. 난 조금 빠르게 걷기로 했다. 빨리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 발자국 소리가 빨라지면 날 쫓아오는 발자국 소리도 빨라졌고, 내 발자국 소리가 느려지면 그 발자국 소리도 느려졌다. 나는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우습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우습잖아.” “웃은 적 없어.” 맞는 말이었다. 그는 웃은 적 없다. 나는 내가 내 자신을 조소하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뭣 만 하면 엉성하고 어정쩡한 것이 바로 나였다. 나는 다시 뒤돌아서서 걸었다.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까지 날 쳐다보고 있었다. 더 이상 창피를 당하기 싫었다. 이번만큼은 그도 야속하고 날 쳐다보는 그들도 야속했다. 그러나 더 야속하게도 내 걸음걸이에 맞춰 그는 날 따라오고 있었다. “따라오지 마!” 난 신경질 적으로 그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한 치의 변함도 없이 말했다. “우리 집이 이쪽이야.” 나는 그가 더더욱 야속해져왔다. 그가 잘 못한 것도 없는데, 그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돌아서서 신경질 적으로 걸었다. 치마에서 떨어진 물이 종아리에 닿을 때 마다 스타킹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바람과 함께 내 살을 에는 듯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던 곳은 보육원 이었는데 집이 이쪽이라 함은 집이 있단 뜻이 아닌가? 그렇지만 내가 7년 전 갔던 그 보육원은 이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그렇담 그는 부모님을 만났다는 것인가?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아니, 일단 그것은 둘째 문제이다. 아무래도 지금 그에게 나의 억울함과 지금 이 심정을 알려야 될 것 같다. 안 그러면 그가 이런 날 알아주는 그 날까지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 할 것만 같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저, 저기” 그는 내가 잠시 생각하는 동안 내 앞을 앞질러서 가고 있었다. 그가 잠시 내 쪽으로 뒤돌아보았다. “이런 말 하는 거 좀 우스운데. 기분 나빴니?” “무슨?” “아까 내가 그렇게 말….” “아아. 난 괜찮아.” 괜찮아? 왜 괜찮다는 말이 나오는 거지? 그렇다면 정말로 기분이 나빴던 것일까? 그는 내 말을 끊어버린 채로 나의 질문이 무엇일지 간파해냈고 그는 정말로 내가 예상하지 못 한 대답을 했다. 나는 그가 ‘아니, 기분 나쁘지 않았어.’ 혹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그런 말이 왜 기분 나빠?’ 라고 대답해 줄 것이라 믿었는데, 아니었다. 그는 확실히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아,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신경 쓰지 마.” 그는 또 다시 내 말을 끊고 내 질문을 간파해냈다. 물론 누구라도 간파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해도 나는 그에게 더욱 더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나는 오기가 생겼다. “기분이 정말로 안 나빴어?” 그는 나의 공격적인 말투에 조금 멈칫하는 것 같더니 이내 눈동자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그렇게 뜸 들이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왜 나가버렸니? 기분이 나빴던 거지?” “나가버리다니?” “네가 나가버렸잖아!” “아아, 화장실.” 순간 나는 발끝에서부터 뭔가 뜨거운 게 화악 하고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저 화장실이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난 그에게 아주 무례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나 혼자 과대망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한마디 던져왔다. “내가 나가서 기분 나빴어?” 심장이 요동쳐왔다. 절대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나에 대해서 화난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렇다면 미안.” 그 말을 듣자 나는 곧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에게서 미안하단 소리를 들으려고 그랬던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가 내 이런 심정을 알아주길 원했던 것뿐인데. 미안하단 소리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이해해 주길 바랐다. 미안해하길 바란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나는 이 시점에서 결국 중학교 3학년, 아니 초등학교3학년보다도 못한 애라는 것을 알았다. 어린애. 그중서도 아주 유치하고 치졸하기 짝이 없는 어린애. 나는 그에게 미안하단 소리를 왜 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한심했다. “아, 아니. 미안할 거 없어.” 그리고 그는 다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분 나쁘지 않았어. 너를 이해해.” 이해? 나를 이해? 내가 어떻게 했기에 나를 이해한다는 건가? 그는 잠시 쓴 웃음으로 피식 웃더니 돌아섰다. 나는 그에게로 달려가 그의 옆에서 그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물었다. “나를 이해하다니?” 그는 다시 멈춰서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말하기를 망설이는 것 같았다. “이해하다니!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망설이더니 이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다른 아이들은 내가 고아라는 걸 모를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