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사에 이어서 우리나라 뮤직비디오 감독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우선 주류에선 가장 유명한 홍종호 감독이 있다. 드라마 타이즈는 결코 안만든다는 그는 촬영세트와 조명, 카메라 만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미지의 조합만으로도 훌륭한 뮤직비디오를 만든다.
그가 만든 뮤직비디오를 보면 구도가 안정감이 있고, 광각렌즈 등의 적절한 사용과 능숙한 편집, 무엇보다도 세련된 화면의 색깔로 특별한 스토리가 없는 뮤직비디오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주류 가요들만 만들었던 경험으로 주류 이상의 상상력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도 있지만, 최근엔 진주의 <가니>같은 훌륭한 뮤직비디오도 만들었다.
작년에 최우수상을 수상한 차은택은 뮤직비디오의 서정시인이라 불릴 만큼 그 특유의 동양적인 화면구도와 색채, 서정적인 줄거리로 컬트 팬들을 많이 확보한 감독이다. 하지만 그는 초반부터 표절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승환의 <그대는 모릅니다.>는 Orbital의 <박스Box>, 김기덕 감독의 영화 <악어>를, 이정현의 <줄래>는 Aqua의 <바비걸>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꼭 표절이라고 말하지는 않더라도 개인의 상상력에서 나온 이미지가 아닌 기존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독창력을 중시하는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는 약점이 잡힌 것이다.
작년에 상을 수상한 이승환의 <당부>에서는 그가 항상 보여준 화려한 색깔과 서정미의 극치를 보여주었으나 올해의 <그대가 그대를>은 왠지 김세훈 감독의 (느와르 신파)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아서 아쉬웠고 왠지 매너리즘의 징조가 보이는 화면이 많았다. 하지만 신승훈의 <전설속의 누군가처럼>에서는 섬과 푸른 바다의 이미지로 큰 스케일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여 선이 굵은 스타일에도 재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올해 매스컴에 가장 많이 보도된 감독 박명천은 뮤직비디오 보다는 광고계에서 더 알려져있다.
TTL, Na, (남편이 손톱 깎는)한미은행, (전원주를 광고계의 최진실로 만들어버린...엄마 002) 데이콤등 혁신적인 광고들을 제작한 장본이다. 광고 리스트에서도 볼수 있듯이 그는 팀버튼 스타일의 기괴한 미학과 싸구려 키치의 미학, 뒷통수치는 다큐멘타리 등 모든 방면에서 그칠줄 모르는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그가 올해 만든 박지윤의 <성인식>뮤직비디오는 방영 초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비닐 하우스 같은 기묘한 세트나, 재봉틀 앞에서 바느질을 하다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는 설정과 핏방울, 창문을 두드리는 곰인형 소재 하나하나가 매우 상징적인 것들이었고, 감독의 상상력에 의해 멋지게 조합되었다. TTL광고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것만 빼고는 올해 최고의 뮤직비디오에 손꼽혀도 손색이 없다.
박명천 감독이 이전에 만든 뮤직비디오는 엄정화의 <포이즌>인데 흑백톤의 화면과 거울속에 둘러싸인 엄정화와 댄서들의 이미지는 정말 매혹적이어서, 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나는 우리나라 뮤직비디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외에도 다른 훌륭한 감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에 관해 적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케이블 음악 방송이 가수 이름 밑에 뮤직비디오 감독 이름을 보여주지 않고, 저작물은 감독과 제작사가 아닌 기획사에만 소속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뮤직비디오 감독에 대한 기사는 매스컴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홍콩에 본사를 둔 [V](채널 브이)는 뮤직비디오를 소개할 때마다 곡이름 밑에 뮤직비디오 감독의 이름을 보여주고 일본의 "바이브"채널에서는 뮤직비디오 감독 특집 방송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런 예의가 아직 없다.
뮤직비디오 감독의 입지가 높아진다면, 사람들이 각 뮤직비디오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될테고, 그렇게 되면 감독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좀더 신경을 쓰지 않을까?
뮤직비디오는 그 어느 영상매체보다 실험적인 기법이 난무하고, 그 실험적인 기법들은 바로바로 영화에 투입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우수한 뮤직비디오 감독들이 많이 존재한다면, 우리의 영화미학도 좀더 발달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독단으로 생각한 바람직한 수상작들을 열거해보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남자 솔로 부문:서태지-울트라 맨이야
여자 솔로 부문:박지윤-성인식/엄정화-크로스/진주-가니
남자그룹:거리의 시인들-빙 (이 뮤직비디오는 후보목록에도 없었다.조잡하지만 상상력에 있어서는 최고)
여자 그룹: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