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에 `럭셔리(Luxury)`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득한 이상향과도 같다. 단순히 `화려하다`는 의미 이상의 함의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 `럭셔리`는 수익성을 의미하고, 브랜드의 가치 상승을 뜻한다. 이 때문에 어느 수준 이상에 다다르면 대부분의 기업은 럭셔리 브랜드를 지향하고, 럭셔리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매일경제 MBA팀은 작년 9월에 벤틀리 브랜드의 새로운 수장이 된 볼프강 슈라이버(Wolfgang Schreiber) 회장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벤틀리는 브랜드의 탄생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도 럭셔리라는 단어를 곁에서 떠나보낸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 어떤 회사보다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럭셔리의 핵심은 높은 수준의 `희소성`(Exclusivity)에서 나옵니다. 동시에 럭셔리 브랜드 역시 비즈니스인 만큼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희소성과 성장 사이의 딜레마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럭셔리의 필수 요건인 희소성을 추구하다 보면 자칫 비즈니스의 존립 요건인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럭셔리 비즈니스가 힘들다는 뜻이었다. 희소성은 결코 많은 사람이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성장과는 상충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벤틀리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슈라이버 회장은 최근 매일경제 MBA팀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지리적인 의미의 시장을 계속 개척하면서 동시에, 럭셔리 자동차 시장 안에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세분화 작업을 통해 희소성과 성장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슈라이버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벤틀리는 럭셔리 자동차의 대명사와도 같다. 럭셔리의 정의는 도대체 뭔가.
▶럭셔리란 기본적으로는 높은 수준의 희소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고객에게 아주 독특한 고유의 경험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벤틀리는 최고 장인들의 기술이나 정교한 소재 사용 등을 통해 희소성을 실현한다. 또 개별 고객에 대한 세심한 이해와 남다른 서비스를 제공한다.
-희소성이 럭셔리의 기본 조건이라는 건 알겠다. 그러나 비즈니스의 기본 목표는 `현상 유지`가 아니라 `성장`이다. 딜레마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 아닌지.
▶벤틀리도 항상 이런 딜레마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 딜레마에도 답은 있다. 바로 시장의 확대와 세분화다.
-벤틀리의 사례를 들어 자세하게 이야기해 준다면.
▶시장을 협소하게 보면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당신이 보는 시장의 범위를 넓혀라. 벤틀리의 경우 최근 성장한 곳은 지금까지 벤틀리가 거의 팔리지 않던 곳들이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러시아, 남아메리카 등이 그랬다. 이들 시장에선 아직도 희소성의 가치를 뽑아내면서도, 성장할 수 있다. 이런 지리적 의미의 시장 확대가 필수다.
속해 있는 산업군 내에서도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벤틀리 최초의 SUV 개발 및 판매를 앞두고 있다. 벤틀리는 여태까지 세단과 쿠페만 만들어왔다. 하지만 SUV에 대한 고객들의 요구가 강하게 있어 왔고, 우리 입장에선 SUV 판매가 벤틀리 전체의 이익과 투자의 균형을 맞춰줄 수 있게 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희소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시장에서 벤틀리의 입지를 확대하고, 판매까지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처럼 분명 희소성을 지키면서도 성장할 수 있다. 다만 럭셔리 브랜드는 판매량에 지나치게 몰두해선 안된다. 그보다는 `높은 수준의 고급스러움의 유지`를 목표로 해야 한다.
-판매량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브랜드 자체의 문제가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해 판매가 흔들리는 것은 경계할 수밖에 없다. 안정적 성장을 위해 외부 요인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고객 수가 다른 대중 브랜드보다 적은 만큼, 고객들과 오랜 시간 동안 친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만이 답이다. 이런 관계는 경제적, 정치적인 상황 변수를 모두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벤틀리는 고객과의 관계라는 자산을 통해 경기 침체 등의 외부 요인에 크게 흔들림 없이 대응해왔다.
-럭셔리 브랜드도 중국과 같은 거대한 시장에서는 상당히 유연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벤틀리 DNA를 해치지 않는 수준의 현지화가 가능하다고 보나.
▶물론이다. 우리 모델들은 대부분 글로벌 시장 전반을 겨냥해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개별 시장의 요구에도 귀를 기울여야만 럭셔리 제품을 즐기는 고객들이 원하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별 시장을 타깃으로 한 맞춤 모델을 개발하되 한정판으로 만들어 일부 물량만을 생산해 판매한다. 이는 아주 오랜, 자랑스러운 벤틀리의 역사다. 뮬리너라는 개별 부서를 두고, 맞춤형 차량을 제작하는 일을 전담해 맡기고 있다.
그리고 시장에 맞는 현지화만큼이나 개별 고객의 각기 다른 니즈에 맞는 개인화(Personalization)도 우리의 큰 관심사다. 예를 들어 런던과 두바이를 오가며 생활하는 고객의 경우 우리의 최고급 세단인 뮬산 차량을 각기 다른 사양의 버전으로 한 대씩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철저한 개인화는 분명 벤틀리의 특장점이지만 제품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도 있지 않나.
▶여기서 벤틀리가 럭셔리를 규정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나온다. 이는 벤틀리라는 기업이 아닌 고객의 입장에서 럭셔리를 즐기기 위한 요소다. 바로 `시간`이다. 우리의 제품은 자동차다. 그리고 자동차를 통해 고객들은 `드라이빙`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고객은 드라이빙에 대한 열정을 마음껏 누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고객은 또한 벤틀리라는 제품을 자신만의 제품으로 직접 만들어 나가는 시간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차량의 세부적인 선택사양을 모두 고객이 고를 수 있게 하는 주문생산방식인 `비스포크` 서비스를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를 고객들도 즐길 수 있어야 벤틀리가 부여하는 럭셔리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벤틀리가 컬래버레이션을 활발히 하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자신만의 DNA`를 강조하는 럭셔리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의 DNA를 더하는 컬래버레이션을 활발히 한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벤틀리의 컬래버레이션에는 원칙이 있다. 고객이 우리와 비슷하고 품질이나 서비스, 특별함과 희소성 측면에서 우리와 접근 방법이 비슷한 소수의 브랜드와만 작업을 한다는 게 원칙이다. 우리는 세인트레지스 호텔, 자이 스키, 브라이틀링 시계 등과 작업을 했다. 이들처럼 각기 다른 매력이 있고, 우리와 지향점이 비슷한 소수의 브랜드와는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할 예정이다.
-벤틀리는 종종 같은 영국의 자동차 브랜드 롤스로이스와 비교된다. 두 브랜드 모두 고향은 영국이지만 벤틀리는 폭스바겐에, 롤스로이스는 BMW에 인수돼 현재는 독일 회사 계열이 됐다는 공통점도 있다.
▶두 브랜드 모두 럭셔리 자동차 업계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럭셔리와 동시에 성능 측면까지 잡았다는 점이 벤틀리가 롤스로이스와 차별화하는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또 맞춤형 차량 제작 능력에 있어서도 2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법적인 또는 기술적인 안전상의 문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고객의 요구에 대해 `안된다`는 말을 하는 하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이런 점이 차별화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폭스바겐그룹에 포함돼 얻는 혜택이 있다면.
▶벤틀리는 연구개발(R&D)이나 비즈니스 측면의 도움이 필요할 경우 제3자가 아닌 폭스바겐그룹에 바로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벤틀리의 4륜 구동 시스템과 W12엔진 개발에서 폭스바겐그룹의 도움은 엄청났다. 아마 폭스바겐그룹이 아니었다면 개발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비용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폭스바겐그룹의 시스템을 벤틀리가 이용하고 적용해 벤틀리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적은 비용으로 훌륭하게 개발해낼 수 있었다고 본다. 또 부품 구매 시에도 그룹의 득을 많이 봤다.
-벤틀리에 오기 전에 폭스바겐그룹의 상용차 부문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던 것으로 안다. 타깃 고객이 완전히 다른 벤틀리에서 일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나.
▶상용차를 구입하는 고객들에겐 단 한 가지 목표가 있다. 차가 그들에게 돈을 벌어주는 일종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는 럭셔리 시장과는 완벽하게 반대다. 이 때문에 고객의 특성에 대한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고 공부했다. 자동차 회사의 CEO라면 자신의 고객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고, 고객이 왜 특정 차량을 구매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 부분에 충실하면 동일한 경영 방식과 엔지니어링 기술을 가지고도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트럭과 같은 상용차든, 벤틀리든 말이다.
■ Who he is…
볼프강 슈라이버 벤틀리 회장은 작년 9월부터 벤틀리의 신임 회장 겸 CEO로 일하고 있다.
슈라이버 회장은 1984년 폭스바겐그룹에 엔지니어로 입사해 1996년 폭스바겐의 트랜스미션 및 드라이버트레인 개발 담당 총괄로 올라선 인물이다. 이후 부가티에서 8년간 근무하며 슈퍼스포츠카 개발을 담당했으며 2006년부터는 폭스바겐 상용차 부문 CEO를 지냈다. 2010년 2월부터는 폭스바겐그룹의 이사회 대변인 역할도 함께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