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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게시판 스크랩 간화선 중흥을 위한 대선사 법회<2일째 혜국스님>
수부띠(道光:화수분) 추천 1 조회 97 13.08.30 11:32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간화선 중흥을 위한 대선사 법회<2일째 혜국스님>

 

2. 혜국스님(석종사 금봉선원장)

“내 문제 내가 해결, 생각의 한계 끊어지므로 행복온다”

 

 

간화선 중흥위한 대선사 법회 두번째로 25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혜국스님(석종사 금봉선원장)이 법문하고 있다.

“화두는 내 마음 보여주는 길, 그 씨앗이라도 심어라

내 마음 추슬러 삼매의 길 가도록 참선법 화두 이어준 수좌가 보물“

 

 

인류 역사상 학문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해왔다. 그러나 내 마음을 내가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길들여 와서, 기계문명이라는 엄청남 편리함으로 인해 게임중독 묻지마 폭력 등으로 황폐화된 것이다.

부처님은 사성제 고집멸도 등으로 인류의 고통은 집착임을 가르치셨다. 집착이란 내 죄업을 따라가는 것이라서 그림자를 따라가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죄업이 없다고 보고 집착에 대해 애초부터 없는 것을 집착이라 해 끊으려는 것을 경계했다.

 

간화선은 여기서부터 짚고 들어가야 한다. 조사선 간화선에서는 고집멸도도 집착 때문이다. 죄업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니다. 밖과 안 두 벽을 허물어 버리고 연기법 자체로 공(空)의허공성이 대자유가 되는 그 법으로 들어가 보자.

어제 밤 조계사는 깜깜했다. 서울도 시골도 깜깜하다. 태양이 석양에 저물어 깜깜한 것이 아니다. 태양은 한순간도 끊어짐이 없고 움직이지 않고 해는 분명히 비추는데 왜 깜감하냐. 태양은 한 찰나도 숨은 일이 없이 24시간 무한 광명을 비추고 있다. 광명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가 등을 돌려서 태양광명과 반대로 등을 돌린 것이다. 오늘 지구가 한 바뀌 돌아 태양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어둠이 없어졌다.

어둠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죄란 어둠이고, 죄도 흔적도 어둠도 없는 것이다. 어둠만 없는 것이 아니라 환한 것도 없다는 것이 간화선이다.

 

모든 모양은 감정을 따라 보는 것이다. 마음과 정신, 육신이 나눠 있는 것이 아니라 연기법에 따라 하나이며, 본래 부처로서 존재하는데 왜 죄업 속에서 갇혀있는가.

원래 고통이 내 죄업에서 일어남으로 본래 마음에서는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는 그 스승이 이 영원한 보배이다.

간화선 법을 만나 간화선으로 살아가면서 ‘나는 누구인가’란 근본 존재의 원리를 깨달아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것이 한국으로 전해진 것은 행운이다. 다만 불행은 개화기에 일본이 세계화에서 앞서 일본불교의 세계화로 나갔고, 티베트가 나라가 없어져 스님들이 세계 각국으로 떠나 국제화된 반면, 우리 간화선은 한참 세계화 과정에서 일본 침략으로 정신문명이기를 못펴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국력이 약해 세계화에 눈을 띄지 못했다.

 

오직 긴 마음 법 하나 놓치지 않으려 불법의 맥을 이어오는 지금이야 말로 간화선이 세계화로 나가고 있다. 유엔사무총장 세계은행 총재 등 빅3가 한국인이 진출해 한국의 기운을 엄청나게 뻗치고 있다.

간화선법이 한국에 내려온 보배 중의 보배로 빛난다. 마음속으로 소중히 생각하고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조계사 법당은 허공이고 다른 어떤 것은 허공이 아니라는 것은 마음이 따로 있다는 것과 같다. 전체 허공 그것에 기둥을 세우고 위치에 따라 명칭이 달라 질 뿐이다.

 

 

 

 

우주 연기법으로 법신이 둘이 아닌 하나이므로,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밖과 안의 벽만 허물어 버리면 부처님의 꽃을 가섭스님이 이해한 것이나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법문을 구름잡는 소리로만 듣지 아니하고,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직접 체험해서 내 인생을 해결하는 법을 알게 된다.

왜 이해의 문제로 진리를 끌어내리려고 하는가. 잘못 익혀 놓은 습관은 언제가 이겨내도 이겨내야 한다. 이는 불교의 업이다. 업의 무게를 느낄 줄만 안다면 그만큼 소중한 일이 없다. 그렇게 정법을 믿어서 내가 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이런 법을 깨달아서 부처가 되는 것이다.

 

간화선은 생각의 한계가 끊어지므로 행복이 온다. 다음 생에도 내가 한국에 태어나길 원하는 것은 간화선 때문이다.

고봉스님은 ‘오직 화두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로 참구하라’고 말했다. ‘공부하고 공부하여 생각이 머무를 데 없는 것에 문득 내 마음 깨달아 화두를 타파해야’ 함을 말하고, ‘실답게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을 강조했다.

공안참구를 바다의 파도에 비유해 보자. 파도는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있고 없는 양변이 없어짐은 부처님은 허공성이라 했다. 여기서 중도란 정견을 바로 보는 것이고, 파도는 번뇌이며, 바닷물과 파도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그렇다면 파도는 있는 것으로 봤을까, 없는 것으로 봤을까.

 

부처님은 연기법으로 모든 원인은 무멸이고, 없애야 하는 것으로 말씀했다. 간화선에서 파도는 바닷물의 마음 고향 그 자리 하나이고, 바람에 따라 모양만 달라진다. 번뇌는 파도처럼 내 마음의 잘못된 변형이다. 번뇌망상을 없애는 것은 그 바람만 끊어버리면 된다. 자기마음을 깨달을 수 없을 때, 그래서 화두가 중요하다.

왜 닦는가? 본래 부처인데 왜 닦는가. 거울이기에 닦는다고 했을 때, 더러운 것은 거울이 아니라 습관이며, 잘못된 습관을 닦는 것이다. 부처이기 때문에 익혀놓은 습관을 닦는 것이다.

 

‘이뭐꼬’ 화두는 생각이 일어나기 전, 오직 모를 뿐이란 순수성 청정성에 바로 다가가는 것이고, 중생들이 무엇인가 알아내려고 의정을 일으켜서 공안으로 본래 자리에 돌아가는 것이다. 조주선사의 ‘달마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까닭?’에 대한 ‘뜰 앞의 잣나무니라’란 대답은 생각이전을 보여준 참 마음의 정확한 표현으로, 아름아리에 놀아나지 않게 하고, 본참 공안이란 일체 중생들을 위해 바로 우리 마음을 보여주고 근본윤회를 깨달아, 적당한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운다.

태고스님 말씀을 옮겨본다. ‘사람의 마음이란 지극히 미묘해, 말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분별심을 화두 일념으로 참구하여 반드시 깨닫게 된다’고 했다.

 

 

 

왜 한국에 도인이 안 나오는가. 화두 참선법은 내 생각을 따라 가서는 참나를 찾을 수 없음을 일깨운다. 자신이 이해하는 화두 참선은 과거에 믿음이고, 알음알이로 인해 발심이 생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발심에 대해 동산스님이 위산스님을 찾아가 참나를 찾는 공부를 보자. 위산스님은 무정설법(無情說法)으로 그냥 보여줬다. 그냥 죽비를 든 엣 스승들은 확 막히도록 가르침을 줬다. 원래 부처님 경전마다 모두 무정설법이라서, 중생은 업력의 노예이며 감정의 노예라서 확철히 깨달도록 하는 내 마음 안에 있는 부처임을, 오늘 그 자리 청정으로 돌아가는 연기법을 수행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내 마음 추슬러 삼매의 길을 가도록 참선법 화두를 이어준 수좌가 보물같은 분이다. 화두는 내 마음을 보여주는 길이다. 여러분들은 그 씨앗이라도 심어 달라

 

 

 

출처: 미디어붓다>

 

 

 

“간화선이 뜬구름 잡는 어려운 이야기?
왜 ‘이해’라는 말로 ‘진리’를 끌어내립니까?”
혜국대선사, 간화선 대법회 이튿날 법석 올라
“간화선은 한국의 보배…화두는 체험하는 것”
기사등록 : 13-04-25 17:55 모지현기자

 

글쓴이 : 모지현기자
 

 

간화선 중흥을 위한 간화선 대법회의 이튿날 법석에 석종사 금봉선원 선원장인 금아 혜국 대선사(사진)가 자리했다.

 

4월 25일 오전 10시 30분, 굵은 빗발을 뚫고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 모인 2백여 명의 사부대중은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혜국 스님의 법문을 경청했다.

혜국 스님은 한 시간여에 걸쳐 간화선과 법에 대해 법문했으며, 법문이 끝난 후에는 질의응답으로 불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아래는 혜국 스님의 법문과 질의응답을 간추려 정리한 것이다.



모든 인류의 고통의 원인은 집착입니다. 간화선은 여기서부터 짚고 들어가야 합니다. 있는 것이 집착하느냐 없는 것에 집착하느냐. 우리 조사선, 즉 간화선은 안과 밖 두 개의 벽을 허물어 모든 것이 허공성이 되는 대자유를 느끼게 합니다.

 

어제 밤, 깜깜했지요? 왜 깜깜합니까? 사람들은 태양이 서산에 져서 깜깜하다고 하는데, 태양은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도 않았고, 24시간 중 단 1초도 햇빛을 비추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해는 분명 비추고 있는데 왜 깜깜합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태양과 반대쪽으로 등을 돌려 깜깜합니다. 태양같이 움직이지 않는 광명이 우리 마음자리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역력하게 부처인데 왜 죄업 속에서 허덕입니까.

 

본래무일물이라 했습니다. 화두참구를 통해 우리도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간화선이고, 간화선이 우리나라에 역력하게 살아있는 것은 엄청난 행운입니다. 나는 한국에 태어나 간화선을 만난 것을 진정 복으로 여기고, 다시 태어나도 꼭 한국에서 태어나 간화선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다만 일본 불교가 일찍이 세계화되고, 티벳도 나라를 잃는 바람에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스님들이 세계 각처에서 티벳불교를 알려 세계화된데 비해 우리나라의 간화선법은 세계로 널리 퍼지지 못했습니다. 세계화를 해야 할 시기에 세계화에 눈뜨지 못했고, 일제강점기 36년을 거치며 국내에서 간화선법을 지켜내는 것만 해도 어려웠습니다. 우리의 간화종장들, 화두참법을 한 어른들이 간화선법을 지켜내지 못했다면 한국의 간화선법도 사라졌을지 모릅니다.

 

요즘 불자님 중에는 간화선이 어렵다 생각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요? 그러면 안 됩니다. 간화선은 한국이 가진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간화선법이 한국에 내려오는 보배라는 사실을 우리 불자들부터 마음에 새길 때 진정으로 간화선이 빛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귀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은 감정으로 받아들여 감정으로 이해하는 범주입니다. 간화선법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해서 내 인생 전체를 해결하는 법입니다. 어떻게 진리를 귀로 듣고 이해합니까? 왜 ‘이해’라는 말로 진리를 끌어내립니까?

 

또 요즘 도인이 안 나온다고 하지요? 생각이 미치지 못해 발심하지 못한 까닭이니, 요즘 사람들은 무조건 이해하려고 하고 알음알이로 따지기 때문에 도인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 익힌 습관, 무조건 이해해야만 받아들이는 습관, 즉 업(業)은 언제라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짊어지고 다니는 업의 세계는 본인만이 해결할 수 있어요. 부처님 정법을 믿고 내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하느님만 믿으면 된다, 천국간다, 하지요? 부처님은 뭐라고 합니까? ‘내 말만 듣고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내 노예다’ 했어요. 제법무아, 제법무상, 그 법을 알려줘 부처 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부처의 일이라는 스승이 이 지구에 와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부처님 믿는 사람들의 복은 대단한 겁니다.

 

바닷물이 본래 마음이고 파도가 거기에 이는 못된 성질인 것과 같이 부처가 변해서 중생이 되는 것이고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로 볼 것이냐 둘로 볼 것이냐, 있다고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연기법입니다. 파도란 바닷물이라는 마음자리가 바람에 의해 변한 것이라는 것. 파도가 바로 바닷물입니다. 본체는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바로 간화선이고 간화선은 머잖아 인류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불자들이라면, 내가 완전한 불자구나 하려면 화두를 들어야 합니다. 아프기 싫어도 아프고 늙기 싫어도 늙어요. 내 몸뚱이도 내 마음대로 못하거늘 가족이, 세상이 내 맘대로 됩니까? 그런 집착을 끊고 삼매를 보여주는 수행의 궁극체가 화두입니다.

오늘 당장 달라지는 것은 환영이요, 씨앗을 심고 후에 달라지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입니다.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화두란 내 마음에 물들지 않는 마음이구나’라는 씨앗만이라도 심어준 것이면 좋겠습니다.

 




혜국 스님은 이날 대법회에서 간화선이야말로 한국의 보배 중의 보배라고 강조했다.



<질의응답>

―수행을 하는데 자꾸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고, 감정에 끄달리지 않으려다보니 다소 쌀쌀맞아졌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부딪힌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부딪히는 것을 해결해가는 게 삶입니다. 계속 부딪히세요. 또 화두는 메마르다 메마르지 않다의 양변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쌀쌀하다는 것에 속지 말고 쌀쌀하지 않다는 것에 속지도 마세요. 항상 화두일념하는 것을 제일로 삼되, 내가 쌀쌀맞아 가족이 불편하다면 다 함께 가기 위한 방편으로 쌀쌀맞은 태도를 누그러뜨리세요. 쌀쌀맞은 마음을 고쳐가는 것도 공부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거울처럼 사람들을 비추고 거기에 응해가는 과정입니다.

 

―내 마음 안에 다른 영가가 들어와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영가는 하나의 기운입니다. 술을 많이 먹고 술기운에 횡설수설하거나 뜨거운 음식을 먹고 더워지듯 내 안에 기운을 받아들이면 장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본래 공하거늘 다른 기운이 들어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내가 받아들인 겁니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흘려보내세요.

 

―화두에 대한 의심이 잘 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화두를 들어야 합니까?

 

진정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선지식에게서 화두를 받아야 합니다. 믿을만한 선지식, 스승에게 화두를 받고 내 깨침의 정도를 점검받아야 합니다. 법거량을 하다보면 막힙니다. 많이 막혀야 합니다. 막혀보지 않은 사람은 참된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참 나를 알고 싶습니다.

 

내 뭄뚱이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생각도 내가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가 알고 싶다는 발심을 했다면 스승을 찾아 화두를 받는 것이 순서입니다.


 

 

[불교신문 2908호/2013년4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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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9.09 11:57

    첫댓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잘 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화두를 들어야 합니까?

    여보쇼 뭔 화두를 들어요?
    부처님은 화두를 들라고 가르치지 않았어요
    염화실에서 활동중인 화수분님께서 옮겨 오셨군요
    어디 초기불교 카페에 부처님 원음과 전혀 거리가 먼 이런 간화선 주장을 가져 오십니까?
    참 답답 합니다
    대승불교를 지향하는 법우님들의 이런 망상 심히 걱정 스럽습니다 ..

  • 13.09.06 21:31

    저런 모양세니 조계사가 엉망징창 이죠.중국에서는 벌써~~ 없어진 회두 ..
    그래서 부처님(붓다)을 똥막대기 라고 답을 했읍니까? ㅎㅎㅎㅎㅎㅎㅎㅎ

  • 13.08.30 13:54

    간화선 ~~~~~직지심법 ! 상근기만이 가능한 최상승 수행법입니다.
    경전에 코가 꿰인 이들은 전혀 ...외계로 보이겠죠~~

  • 작성자 13.08.31 12:45

    ()()()

  • 13.09.06 21:21

    아즉도 저런 화두를 들고 ...ㅉㅉㅉ 비방도(바라이죄) 못하겠고 언제까지 저렇게 중국불교에 매여서.. .언제 수행은 하남?
    아예 혜능 대사 한테 조사선을 받지 그러나.....

  • 13.09.07 13:38

    바른눈을 가지라는 스님의 가르침 감사 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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