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찬송가 315장 (구 512장) / 출애굽기 21 : 26 - 36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315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출애굽기 21장 26절 – 36절 말씀입니다.
26.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 것이며,
27. 그 남종의 이나 여종의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지니라.
28.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로 쳐서
죽일 것이요. 그 고기는 먹지 말 것이며 임자는 형벌을 면하려니와,
29.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고 그 임자는 그로 말미암아 경고를
받았으되, 단속하지 아니하여 남녀를 막론하고 받아 죽이면,
그 소는 돌로 쳐죽일 것이고 임자도 죽일 것이며,
30. 만일 그에게 속죄금을 부과하면
무릇 그 명령한 것을 생명의 대가로 낼 것이요.
31. 아들을 받든지 딸을 받든지 이 법규대로 그 임자에게 행할 것이며,
32.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
33.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두거나 구덩이를 파고 덮지 아니하므로,
소나 나귀가 거기에 빠지면,
34. 그 구덩이 주인이 잘 보상하여 짐승의 임자에게 돈을 줄 것이요.
죽은 것은 그가 차지할 것이니라.
35. 이 사람의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살아 있는 소를 팔아,
그 값을 반으로 나누고 또한 죽은 것도 반으로 나누려니와,
36. 그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는 줄을 알고도
그 임자가 단속하지 아니하였으면,
그는 소로 소를 갚을 것이요 죽은 것은 그가 차지할지니라. 아멘!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법 중 ‘손해배상법’ 입니다. 먼저 종이 상해를 입었을 때에 대한 손해배상법인데, 주인이 자신의 종의 몸을 상하게 했으면 무조건 놓아주어 자유인이 되게 하라고 말씀입니다. 이건 철저하게 종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하나님의 자비의 법이요. 긍휼의 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28절 – 32절 말씀까지는 소가 입힌 손해배상법입니다.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음을 알고 이로 인해 경고를 받았으면서도 주인이 단속하지 않아 소가 사람을 받아 죽였을 경우에, 그 소와 함께 그 소 임자도 죽이거나 생명의 속죄금을 내도록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법은 일면 소 임자에게 가혹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 임자가 직접 사람을 죽이거나 의도적으로 소로 하여금 사람을 죽이도록 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 임자가 자신의 소가 언제든지 사람을 받아 죽일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의를 기울여 적극적으로 불의한 사고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임무를 소홀히 한 그 행동은 소가 사람을 받아 죽이는 것을 방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소 주인에게 그 책임을 엄하게 묻게 하신 것입니다.
이 법의 중요성은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없을 뿐더러,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위기에 처한 생명을 구해야 하는 적극적인 의무도 함께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부주의나 무관심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생명을 잃게 된다면,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자신의 생명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생명까지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약한 자들이 불의한 권력이나 폭력에 의해 몸이 상하거나 목숨을 잃어 갈 때, 무관심하면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생명을 보호해야 합니다.
'로베르 장군' 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인데, 그 영화에서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나치에 저항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잡혀왔는데, 그중에 저항운동에 참여한 적이 없는 한 젊은이가 잘못 잡혀 와서 자신은 억울하다고 이렇게 외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저항운동에 가담하다가 잡혀 와서 죽어 마땅하지만 나는 그저 장사나 하고 돈이나 벌면서 살아왔는데, 이처럼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습니다.” - 그 청년이 그렇게 큰소리로 외치고 있을 때에 침묵하던 한 저항운동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그 사실, 그것이 바로 네가 죽어야할 마땅한 이유다. 전쟁은 5년이나 계속 되었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 갔으며, 수많은 집과 도시들이 파괴되어 갔는데 도대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래서 너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우리의 무관심 속에 생명을 잃어 간 사람들의 생명에 대해, 그들을 직접적으로 죽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이 죽어 갈 때 외면하고 무관심한 우리 자신들에게도 함께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땅히 구원해야 할 영혼들을 구원하지 않았다면 그 생명들이 지옥으로 갔을터인데, 그 책임도 하나님은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부주의로 다른 사람의 생명이 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핍박하고 위협하는 세상의 불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항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며 성도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길인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영적 생명인 영혼들도 건져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31절, 32절을 보면 사람을 받아 죽인 소의 임자가 생명의 속전을 낼 때, 죽은 자가 아들이든지 딸이든지 구별 없이 똑같이 율례대로 행하고, 죽은 자가 남종이나 여종일 경우에도 똑같이 은 삼십 세겔을 배상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이처럼 생명의 속전에 있어서 차이가 없이 똑같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한 것은, 생명의 가치에 있어서 남녀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생명이란 똑같이 소중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오늘 본문 33절 – 36절에 보면 가축에 대한 손해 배상법입니다. 어떤 사람의 소가 다른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살아 있는 소를 팔아 그 값을 반분하고 죽은 것도 반으로 나누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경우는 다른 소에 의해 죽임을 당한 소의 주인이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므로, 어떤 면에서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법을 세우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공동체라는 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경우에는 다른 소를 죽인 소의 임자에게 전혀 고의성이 없고, 평소에 그 소가 다른 소를 받는 버릇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더불어 살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이런 경우에 한 당사자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묻지 않으시고, 양자가 함께 손해를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즉 한 공동체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축복과 성공을 함께 나누듯이, 피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 손해나 불행도 함께 나눠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서는 좋은 것만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불행과 고통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또는 직장이나 사회에서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타인에게 그 책임을 모두 전가시키고, 자신은 어떤 손해도 보지 않으려는 자세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가족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서로가 힘을 합해 그 불행이나 손해를 감당해야 하듯이, 교회 안에도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함께 책임지고, 온 성도들이 힘을 합쳐 그 어려움을 나누어 짊어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손해 배상법’ 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고의적으로는 물론이려니와 부주의 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명이나 재산이나 명예에 손해를 입히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모두가 자신만을 챙기는 이기주의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성도들은 특별히 이웃의 영혼에 대하여 항상 깊은 관심과 따듯한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생명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직 돈만 알고, 쾌락만 추구하고, 이 땅의 것만 바라보고 살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영혼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들의 생명이 영원한 생명이 되도록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에스겔 3장 17절 – 19절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파수꾼의 사명을 강조하시면서 “네가 악인에게 악한 길을 떠나 하나님 믿고 생명 구원을 얻으라고 전도했는데도 안 믿으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겠지만,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그러나 전도하지 않아 그 영혼이 지옥에 가면 그 책임을 너에게 묻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는 동안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하게 살아가시고, 불신 영혼들을 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생명구원의 사명도 잘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