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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가벌가(執柯伐柯)
도끼자루를 잡고 도끼자루를 벤다는 뜻으로, 표준이 자기 손에 있는데도 엉뚱한 데서 기준을 찾는 어리석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執 : 잡을 집(土/8)
柯 : 가지 가(木/5)
伐 : 칠 벌(亻/4)
柯 : 가지 가(木/5)
출전 : 시경(詩經) 빈풍(豳風) 벌가(伐柯)
1633년, 회시(會試)의 시무책(時務策)은 법제(法制)를 묻는 출제였다. 문제는 이랬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법제가 있다. 법제가 타당하면 정치가 간결해서 백성이 편안했고, 법제가 요점을 잃으면 정사가 번잡해져서 백성이 원망한다. 한 나라의 치란은 법제에 좌우된다. 어찌해야 법제가 제자리를 얻고, 정사가 바르게 설 것인가?
윤선도(尹善道)는 글의 서두에서, 맹자가 "한갓 법으로는 저절로 행해질 수가 없다(徒法不能以自行)"고 한 말을 인용하고, "정치만 있고 그 마음은 없는 것을 '도법(徒法)'이라 한다(有其政而無其心, 是謂徒法)"고 한 주자의 풀이를 끌어왔다. 백성을 위한 마음 없이 정치를 위해 만든 법제는 도법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어 말했다. "법이란 정치를 보좌하는 것이고, 마음은 법을 만드는 것이다. 법이 아니고는 정치를 할 수가 없고, 마음이 아니고는 법을 만들 수가 없다.
대개 남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과 같게 하여, 도끼 자루를 벨 때 잡은 도끼 자루에 말미암는다면, 어찌 내 마음을 닦지 않으면서 능히 법을 세움이 있으며, 어찌 내 마음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서, 능히 법을 행함이 있겠는가?
선왕이 천하에 법이 되어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먼저 그 마음을 바로 하였기 때문이고, 후세가 법을 세우고도 폐단이 일어나고, 명령이 나와도 행해지지 않은 것은 그 마음을 닦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끼 자루를 벨 때 잡은 도끼 자루에 말미암는다는 글 속의 말은 출전이 있다. '시경' 벌가(伐柯)편에 "도끼 자루를 베고, 도끼 자루를 벰이여. 그 법칙이 멀지 않네(伐柯伐柯, 其則不遠)"라 했다. 도끼 자루감을 마련하기 위해 나무를 벨 때는 손에 쥔 도끼 자루를 기준으로 삼으면 되는데, 자꾸 멀리서 딴 기준을 찾으려 든다는 말이다.
'중용' 13장에서도 "도끼 자루 잡고서 도끼 자루를 베면서, 둘러보아 살피며 멀다고 생각한다(執柯以伐柯, 睨而視之, 猶以爲遠)"고 했다. 표준이 자기 손에 있는데도 엉뚱한 데서 기준을 찾는 어리석음을 말한다.
마음은 안 고치고 제도만 고치려 드는 사이에 민심은 저만치 떠나고 없다. 마음이 그대론데 제도를 바꾼다고 망가진 정치가 바로 서겠는가?
◼ 집가벌가(執柯伐柯)
도끼자루를 잡고 도끼자루를 벤다
최근에 형성된 '내로남불'이라는 용어는 현재 우리의 정치문화를 대변해 주고 있다.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디지만 남이 하면 공격해대는 것은 사실 정치 문화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목격하고 느끼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개인적 도덕성의 타락으로만 볼 수 없고 오히려 사회 전체적 인식수준의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 '중용'에 도끼자루를 만들기 위해 산에 나무를 베러 가서 어떤 모양의 나무를 어느 정도의 크기로 벨지를 몰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바로 자기 손에 도끼자루의 해답을 쥐고 있으면서 엉뚱하게 멀리서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은 허물을 저지르는 존재이지만 그 허물이 과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그 과한 허물을 법적인 죄라고 한다면 사회는 죄를 저지르면 범죄라 하여 처벌을 한다.
공자는 법을 어겨 처벌을 내리는 제도에만 의존하면 사회가 염치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경계하였다. 법적인 그물망만 저촉되지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면 양심에 바탕한 염치는 잃어버리게 되는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현대 법치사회는 보편성과 객관성 내지 형평성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제도를 구현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쉬운 구석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의 양심과 결단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진퇴의 판단은 자신의 몫이다. 다른 곳이 아닌 자신의 손에 잣대가 들려있다.
◼ 시경(詩經) 국풍(國風) 빈풍(豳風)
제5편 벌가2장(伐柯二章)
伐柯二章에 章은 四句라
(1장)
伐柯如何오 匪斧不克이니라
取妻如何오 匪媒不得이니라
도끼 자루는 베는데 어찌할꼬? 도끼가 아니면 할 수 없느니라. 아내를 취함을 어찌할꼬? 중매가 아니면 얻지 못하니라.
[참고]
毛詩序에서는 주공을 아름다이 여긴 시로, 주나라 대부가 조정의 지혜롭지 못함을 풍자했다(伐柯는 美周公也니 周大夫 刺朝廷之不知也라)고 했다.
이에 대해 箋에서는 "성왕이 이미 뇌우와 대풍의 변고를 얻어 주공을 맞이하려고 했으나 조정의 신하들은 오히려 관숙과 채숙의 말에 미혹되어 주공의 성덕을 알지 못하고 왕이 예로 맞이하려는 것을 의심했기에 이로써 풍자했다(成王이 旣得雷雨大風之變하여 欲迎周公이나 而朝廷群臣은 猶惑於管蔡之言하여 不知周公之聖德하고 疑於王迎之禮라 是以로 刺之하니라)"고 했다.
제1장에서 柯는 도끼 자루(斧柄)로, 毛傳에서 禮義는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루(治國之柄)이고, 중매쟁이는 예를 쓰는 사람으로 나라를 다스림에 예를 쓰지 않는다면 편안하지 못하다고 했다.
箋에서는 도끼 자루를 베는데 오직 도끼가 능하다는 것은 같은 종류라야 그 종류를 구하는 것이니 성왕이 주공을 맞이하려면 마땅히 먼저 현인을 보내야 함을 풍자한 내용이라고 했다.
제2장의 籩豆 또한 향연을 베풀어 맞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시와 관련해 朱子의 해석은 납득하기 어렵다.
○比也라 柯는 斧柄也라 克은 能也라 媒는 通二姓之言者也라
○비교함이라. 가(柯)는 도끼자루라. 극(克)은 능함이라. 매(媒)는 두 성을 통하여 말해주는 자라.
○周公이 居東之時에 東人이 言此하여 以比平日欲見周公之難이라
○주공이 동쪽에 있을 때에 동쪽 사람들이 이 말을 하여 평일에 주공 만나기가 어려움을 비교함이라.
(2장)
伐柯伐柯여 其則不遠이로다
我遘之子하니 籩豆有踐이로다
도끼자루를 베고, 도끼자루를 벰이여, 그 법이 멀지 않도다. 내 지자를 만나니 변두가 줄을 서 있도다.
[참고]
'伐柯伐柯 其則不遠'은 '중용' 제13장에서 인용하여 도는 자기 자신에게 있지 다른 데에 있지 않으며, 군자가 사람을 다스리려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를 미루어 남을 다스리면 된다는 뜻으로 쓰였다.
詩云; 伐柯伐柯여 其則不遠이라 하니 執柯以伐柯호대 睨而視之하고 猶以爲遠하나니 故로 君子는 以人治人하다가 改而止니라
시에 이르기를, "도끼자루를 베고 도끼자루를 벰이여, 그 법이 멀지 않도다"고 하니 도끼자루를 잡고 도끼자루를 베는데 흘겨보고 오히려 멀다고 하나니 군자는 사람으로 사람을 다스리다가 고치거든 그치니라.
○比也라 則은 法也라 我는 東人自我也라 之子는 指其妻而言也라 籩은 竹豆也라 豆는 木豆也라 踐은 行列之貌라
○비교함이라. 칙(則)은 법이라. 아(我)는 동쪽 사람들이 스스로 나라고 함이라. 지자(之子)는 그 처를 가리켜 말함이라. 변(籩)은 대그릇이고, 두(豆)는 나무그릇이라. 천(踐)은 줄 선(예를 실천하는) 모양이라.
○言伐柯而有斧면 則不過卽此舊斧之柯하여 而得其新柯之法이오 娶妻而有媒면 則亦不過卽此見之而成其同牢之禮矣라 東人이 言此하여 以比今日得見周公之易하여 深喜之之詞也라
○도끼자루를 베는데 도끼가 있으면 이 옛 도끼자루에 나아가 그 새로운 도끼자루를 만드는 법을 얻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고, 아내를 얻어 장가드는데 중매가 있으면 또한 이에 나아가 보고 그 같이 굳게 맹세하는 예(同牢之禮, 곧 籩豆有踐)를 이룸을 넘지 않느니라. 동인이 이 말을 하여 오늘 주공을 쉽게 얻어 보고서 깊이 기뻐하는 말이라.
(伐柯二章이라)
(벌가2장이라)
◼ 伐柯伐柯 其則不遠
도끼자루를 베고, 도끼자루를 벰이여, 그 법칙이 멀리 있지 않구나라는 뜻으로,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가 실천하는 가운데 있는 것임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성어는 시경(詩經) 빈풍(豳風) 벌가(伐柯)에 나오는 구절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벌가(伐柯)
伐柯如何(벌가여하)
匪斧不克(비부불극)
取妻如何(취처여하)
匪媒不得(비매불득)
도끼자루 베려면 어떻게 하나
도끼 아니면 벨 수가 없다네.
아내 맞으려면 어떻게 한나
매파가 아니면 얻을 수 없다네.
伐柯伐柯(벌가벌가)
其則不遠(기칙불원)
我覯之子(아구지자)
籩豆有踐(변두유천)
도끼자루 베려면, 도끼자루 베려면
그 본보기 멀리 있는 것 아니네
내가 그의 아들을 만나면
예식 차려서 실천하리라
(解)
伐柯如何 匪斧不克
取妻如何 匪媒不得
比이다. 柯는 도끼자루이다. 克은 능함이다. 媒는 二姓의 말을 통하는 자이다.
○ 주공이 동쪽에 거했을 적에 東人들이 이것을 말하여 平日에 주공을 보기가 어려웠음을 比한 것이다.
伐柯伐柯 其則不遠
我覯之子 籩豆有踐
比이다. 則은 法이다. 我는 東人 自我이다. 之子는 그 처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籩은 竹豆요, 豆는 木豆이요, 踐은 行列의 모양이다.
○ 도끼자루를 벨 적에 도끼가 있으면 옛 도끼자루를 가지고 그 새로운 도끼자루를 만드는 법을 얻음에 지나지 않고 娶妻할 때에 매파가 있으면 또한 이에 나아가 그를 만나보아 同牢의 禮를 이룸에 지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東人들이 이를 말하여 오늘날의 주공을 만나보기 쉬움을 比하였으니, 깊히 기뻐한 말이다.
공자는 중용(中庸)에서 도(道)를 설명하며 이 시의 '벌가벌가 기칙불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은데, 도를 행할 때는 그것이 멀리 있는 것처럼 한다. 그렇게 하여서는 도를 실천할 수 없다(道不遠人,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
시경에 이르기를, '도낏자루를 자름이여, 그 법칙이 멀리 있지 않구나(詩云, 伐柯伐柯, 其則不遠)"고 하였다.
도낏자루를 잡고 도낏자루를 베는데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면서 그 일이 멀다고만 여긴다(執柯以伐柯, 睨而視之, 猶以爲遠).
그러므로 군자는 사람으로써 사람을 다스리고, 허물이 고쳐지면 그친다(故君子以人治人, 改而止).
충서(忠恕)는 도에서 멀리 있지 않다. 자기 스스로에게 시키는 것을 원치 않으면 남에게도 역시 시키지 말아야 한다(忠恕, 違道不遠.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
도낏자루로 쓸 나무를 벨 때에 산에 있는 나무를 모두 일일이 살펴볼 필요는 없다. 다만 자기 손에 쥐고 있는 도끼의 구멍 크기에 맞을 만한 나무를 골라 베면 된다. 도(道)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멀고 큰 것을 찾을 필요가 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데에서 출발하면 된다.
산에 가서 도끼로 나무를 베어 도끼자루를 만드는데, 자기가 잡고 있는 도끼자루를 똑바로 안보고 비스듬히 보면서, 자기의 도끼자루와 새로 만들려는 도끼자루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집에 두고 온 부러진 도끼자루를 아쉬워 하면서 새 도끼자루를 만들기를 어려워 한 것이다. 새로 만들려는 도끼자루의 길고 짧은 법칙이 자기가 잡고 있는 도끼자루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간과한 것이다.
올바른 삶의 길은 사람이 사는데서 멀리 있지 않다. 자연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특출한 사람들의 삶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올바른 삶의 길을 실행하고자 하면서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 속에서 그것을 찾지 않고 멀리하면 그것은 올바른 삶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 伐柯伐柯 其則不遠
도끼 자루를 베고 또 벰이여, 그 방법이 멀지 않다는 뜻으로, 진리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천하는 가운데 있다는 뜻을 가진 시 구절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용(中庸) 제13장에는 다음과 같은 공자(孔子)의 말이 전해진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道)란 사람에게서 멀지 않다. 사람이 도를 행하면서 사람의 윤리와 도덕을 멀리한다면 도라 할 수 없다.
시경(詩經)에서 말하기를 '도끼 자루를 벰이여, 도끼 자루를 벰이여. 그 방법이 멀지 않구나(伐柯伐柯 其則不遠)'고 하였다.
사람들은 손에 도끼 자루를 쥐고 도끼 자루를 베는데 물끄러미 바라만 보면서 그 일이 멀다고만 여긴다. 그래서 군자는 사람의 도리로써 사람을 다스리고 허물이 고쳐지면 그만둔다.
충서(忠恕; 자신의 참된 마음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란 것도 도에서 멀지 않다. 자기에게 베풀어 봐서 원치 않는다면 남에게도 그것을 베풀지 않는 것, 그것이 도인 것이다."
공자는 시경의 '벌가벌가 기측불원'의 예를 들어 도끼 자루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벨 때는 산에 있는 나무를 전부 일일이 견주어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다만 자기가 가진 도끼의 크기에 맞는 적당한 나뭇가지를 베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손에 도끼 자루가 쥐어져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도끼자루 만드는 방법을 멀리서 찾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를 체득하고 발현시키는 일도 스스로 살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도를 너무 멀고 넓게 잡아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겨 남의 일로 치부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자의 말 중에서, '물획(勿畵;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규정해 선을 긋지 말라)하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능력이 얼마인지는 실제로 일을 해봐야 아는 것이지 미리 가늠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사람의 능력이란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는데, 미리 이것을 제한한다면 실제 능력의 반도 쓰지 못할 경우가 있다. 진리라는 것도 실천하는 데서 깨닫는 것이지 미리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선행하는 데 있어 마치 엄청나게 큰일이라고 짐작해서 어려워하기 보다 주위에 있는 휴지 한 장이라도 줍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렵지 않다는 것과 같다. 이처럼 공자는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와 같이 '진리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실천하는 가운데 있다'는 이 시 구절의 교훈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음으로 닦고 몸으로 행하여 심신(心身)이 일치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말처럼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나날이 더욱 새로워짐)하는 마음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잘 새기고 행한다면 '벌가벌가 기측불원'이 주는 교훈의 깨달음이 결코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 執(잡을 집)은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执(집)의 본자(本字)이다. 幸(행; 쇠고랑)과 丮(극; 꿇어 앉아 두 손을 내밀고 있는 모양)의 합자(合字)이다. 따라서 그 손에 쇠고랑을 채운다는 뜻을 나타낸다. 또는 음(音)을 나타내는 (녑, 집)과 丸(환; 손을 뻗어 잡는다)로 이루어졌다. 죄인(罪人)을 잡다의 뜻이 전(轉)하여 널리 잡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執자는 '잡다'나 '가지다', '맡아 다스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執자는 幸(다행 행)자와 丸(알 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執자의 갑골문을 보면 죄수의 손에 수갑을 채운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執자는 이렇게 죄수를 붙잡은 모습을 그려 '잡다'라는 뜻을 표현했다. 후에 금문과 소전을 거치면서 수갑은 幸자로 팔을 내밀은 모습은 丸자가 대신하면서 지금의 執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執(집)은 ①잡다 ②가지다 ③맡아 다스리다 ④처리하다 ⑤두려워 하다 ⑥사귀다 ⑦벗, 동지(同志) ⑧벗하여 사귀는 사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잡을 액(扼), 잡을 파(把), 잡을 구(拘), 잡을 착(捉), 잡을 포(捕), 잡을 조(操), 잡을 나(拏), 잡을 나(拿), 잡을 지(摯), 잡을 체(逮), 잡을 병(秉)이다. 용례로는 일을 잡아 행함을 집행(執行), 정권을 잡음을 집권(執權), 어떤 것에 마음이 늘 쏠려 떨치지 못하고 매달리는 일을 집착(執着), 고집스럽게 끈질김을 집요(執拗), 마음에 새겨서 움직이지 않는 일념을 집념(執念), 붓을 잡고 작품 등의 글을 씀을 집필(執筆), 의사가 수술을 하기 위해 메스를 잡음을 집도(執刀), 나라의 정무를 맡아봄 또는 그 관직이나 사람을 집정(執政), 주인 옆에 있으면서 그 집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집사(執事), 사무를 봄을 집무(執務), 병의 증세를 살피어 알아냄을 집증(執症), 정의를 굳게 지킴을 집의(執義), 허가 없이 남의 토지를 경작함을 집경(執耕), 뜻이 맞는 긴밀한 정분을 맺기 위한 계기를 잡음을 집계(執契), 고집이 세어 융통성이 없음을 집니(執泥), 자기의 의견만 굳게 내세움을 고집(固執), 편견을 고집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음을 편집(偏執), 굳게 잡음을 견집(堅執), 집착이 없음을 무집(無執), 거짓 문서를 핑계하고 남의 것을 차지하여 돌려보내지 않음을 거집(據執), 남에게 붙잡힘을 견집(見執), 제 말을 고집함을 언집(言執), 어떤 일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고 굳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의집(意執), 서로 옥신각신 다툼을 쟁집(爭執),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고집하는 일을 망집(妄執), 갈피를 잡지 못하고 비리에 집착함을 미집(迷執),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여 양보하지 아니함을 확집(確執), 전하여 주는 것을 받아 가짐을 전집(傳執), 마땅히 나누어 가져야 할 재물을 혼자서 모두 차지함을 합집(合執), 뜨거운 물건을 쥐고도 물로 씻어 열을 식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적은 수고를 아껴 큰 일을 이루지 못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집열불탁(執熱不濯), 더우면 서늘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집열원량(執熱願凉), 융통성이 없고 임기응변할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막집중(子膜執中), 고집이 세어 조금도 변통성이 없음 또는 그 사람을 일컫는 말을 고집불통(固執不通) 등에 쓰인다.
▶️ 柯(가지 가)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可(가)가 음(音)을 나타내어, 합(合)하여 가지를 뜻한다. 그래서 柯(가)는 ①가지 ②줄기 ③자루(끝에 달린 손잡이) ④모밀잣 밤나무 ⑤주발(周鉢: 놋쇠로 만든 밥그릇)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가지와 잎을 가엽(柯葉), 도끼의 자루를 부가(斧柯), 서로 엇갈린 나뭇가지를 교가(交柯), 남쪽으로 난 나뭇가지를 남가(南柯), 집 뜰에 있는 나뭇가지를 정가(庭柯), 무성한 나뭇가지를 번가(繁柯), 가로 벋은 나뭇가지를 횡가(橫柯), 죽은 나무의 등걸과 가지를 사가(楂柯), 바둑이나 음악 등에 심취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 것을 난가(爛柯), 도끼 자루감을 도끼로 벤다는 뜻으로 진리는 눈앞에 있는 것이니 먼 데서 구할 것이 아니라는 비유를 벌가(伐柯), 나뭇가지의 끝을 가조초(柯條杪), 자루 없는 도끼를 몰가부(沒柯斧), 남쪽 가지에서의 꿈이란 뜻으로 덧없는 꿈이나 한때의 헛된 부귀영화를 이르는 말을 남가일몽(南柯一夢), 남쪽 가지 밑에서 꾼 한 꿈이라는 뜻으로 일생과 부귀영화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음을 남가지몽(南柯之夢), 수목을 어릴 때 베지 않으면 마침내 도끼를 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는 호모부가(毫毛斧柯) 등에 쓰인다.
▶️ 伐(칠 벌)은 ❶회의문자로 傠(벌), 瞂(벌)은 동자(同字)이다. 창 과(戈; 창, 무기)部로 사람 인(人=亻; 사람)部의 목을 잘라 죽이는 모양이며 죄인을 베다라는 뜻이, 전(轉)하여 치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伐자는 '치다'나 '베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伐자는 人(사람 인)자와 戈(창 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戈자는 낫이 달린 창을 그린 것으로 '창'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伐자의 갑골문을 보면 戈자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적을 잡아 목을 베었다는 뜻으로 伐자의 본래 의미는 '목을 베다'였다. 갑골문에는 '伐十羌(벌십강)'이란 대목이 나오는데, 이것은 '강족 10명의 목을 베었다'라는 뜻이다. 伐자는 이렇게 적의 목을 벤다는 뜻이었지만 후에 '치다'나 '정벌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伐(벌)은 ①치다, 정벌하다 ②베다 ③북을 치다 ④찌르다, 찔러 죽이다 ⑤비평하다 ⑥모순되다, 저촉되다 ⑦무너지다 ⑧자랑하다 ⑨치료하다 ⑩방패 ⑪공로(功勞), 훈공(勳功) ⑫간흙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칠 정(征), 칠 타(打), 칠 고(拷), 두드릴 박(搏), 칠 당(撞), 칠 박(搏), 칠 격(擊), 두드릴 고(敲), 칠 공(攻), 쇠몽치 추(椎), 망치 퇴(槌), 때릴 구(毆), 칠 토(討), 칠 력/역(轢)이다. 용례로는 벌목하는 구역을 벌구(伐區), 벤 나무의 그루터기를 벌근(伐根), 나무를 베는 때를 벌기(伐期), 나무를 베는 것을 벌목(伐木), 무덤의 잡초(雜草)를 베는 일을 벌초(伐草), 인간의 본성을 그르치고 은애의 정을 손상한다는 말을 벌성상은(伐性傷恩), 여색에 빠지어 타락케 하는 약이라는 뜻으로 술을 이르는 말을 벌성지광약(伐性之狂藥), 제나라를 공격하나 이름만 있다는 뜻으로 어떠한 일을 하는 체하면서 사실은 다른 일을 한다는 말을 벌제위명(伐齊爲名), 죄 있는 자를 벌하고 백성을 위문한다는 말을 벌죄조민(伐罪弔民), 천부의 양심을 끊는 도끼라는 뜻으로 사람의 마음을 탐하게 하여 성명性命을 잃게 하는 것 즉 여색과 요행을 이르는 말을 벌성지부(伐性之斧), 자기와 같은 자는 표창하고 자기와 다른 자는 친다는 말을 표동벌이(標同伐異), 무덤에 불을 조심하고 때맞추어 풀을 베고 하여 무덤을 잘 보살핀다는 말을 금화벌초(禁火伐草), 붓과 먹으로 징벌한다는 뜻으로 남의 죄과를 신문이나 잡지 따위를 통해 글로써 공격함을 이르는 말을 필주묵벌(筆誅墨伐), 동서로 정벌한다는 뜻으로 이리저리 여러 나라를 정벌함을 이르는 말을 동정서벌(東征西伐), 백 마리의 말이 한 마리의 준마를 친다는 뜻으로 뭇 신하들이 한 현신을 제거하기 위해 몰아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백마벌기(百馬伐驥),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같은 의견의 사람끼리 한패가 되고 다른 의견의 사람은 물리친다는 말을 당동벌이(黨同伐異), 열 번 찍어 아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뜻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여러 번 계속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면 기어이 이루어 내고야 만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십벌지목(十伐之木)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