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포그(brain fog)*
박이레
병명이 시적이군요
말하진 않았어요
그런 말은 얼마나 시답잖겠어요
환자가 밀린 의사 앞에서
환자로 앉아 있는 주제에
안개 낀 삶을 바라보아요
직장이란 밥그릇에
가정이란 침낭에
시간 사용과 대인 관계라는
거머리의 대가리 같은 것에서
아, 막힌 기도(氣道)를 틔어주는 기도(祈禱)와
기도 같거나 덜 빨린 팬티 같은
시와 글쓰기에서도
사방이 안개예요 주의보도 없이
거리와 건물과 관공서와
그곳에 들어앉은 이들과
우리의 대기 중에도
무기력과 혼란, 어눌과 우울을 앓는
병으로, 번아웃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노닥거리고 헐뜯고 드잡이하는
안개 혹은 안개들, 질기고도 질리는
인간이란 잡종들의 반성을 바라고 온 건지도
모르죠 코로나19인지 이구인지 짱구인지 바이러스는
웬만해선 퇴각하지 않아요
누군가는 방주를 지을지도 모르죠
노아처럼 소리치면서요
범람의 때가 온다고
빙하들도 녹아서 밀려온다고
브레인 포그는 시작이고
소사이어티 포그가 오고 있어요
이미 왔어요
사방에서 터지고 있잖아요
짓무른 목련 같은 것들이
눈깔을 희번덕거리는 탐욕들이
무쇠 바퀴를 단 안개 군단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는지도
모르죠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감염자가 완치 후 경험하는 주요 후유증 중 하나라고 한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5월호 발표
박이레 시인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및 국어국문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중퇴. 성대신문문학상 평론 부문 당선. 2018년 《시와 세계》 여름호로 시 등단. 2022년 제28회 전태일문학상 수상.
[출처] 브레인 포그(brain fog) - 박이레 ■ 웹진 시인광장 2023년 5월호 신작시ㅡ통호 제169호|작성자 웹진 시인광장